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50)
엘리스 진 데이비스 의사(1989. 3. 9-1981. 6. 15)
한국명: 대지안(代至安) 선생, 진주 1918-41
진 데이비스 의사(Dr Ellice Jean Davies)는 존 데이비스(Rev John G Davies)의 둘째 딸이며, 헨리 데이비스 선교사의 조카딸이고, 마가레트 데이비스 선교사의 동생으로 1918년 1월 26일에 한국에 도착하였다. 데이비스 의사는 의료장교가 되어 프랑스 전선으로 떠난 매클라렌 의사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진주에 임명되었다. 그녀는 한국에서 의료행위를 하기 전에 도쿄에서 의료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그녀는 안과와 이과 병원(the Eye and Ear Hospital)의 경험과 대리의사로서의 경험 이외에도 멜번의 부인병원과 아동병원에서 레지던트 의사로 일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에 한국어를 배우는데 힘을 쏟았으나 점차적으로 여성과 소녀들을 위한 야간학교를 감독하는 것 같은 다른 책임을 맡았다. 진주병원에 데이비스 의사의 존재는 여성의사와 상담하는 것을 선호하던 여자 환자들에게는 큰 혜택이었다. 그녀는 여성 외래환자들을 살피는 책임을 맡았고 1921년 말경에는 여성 입원환자들도 돌보게 되었다. 일주일에 세 번의 오후 시간에는 수술을 시행했고 두 번의 오후 시간에는 공부하는 시간으로 할애 했다.
데이비스 의사는 직원들에게 선임의사였을 뿐만 아니라 이따금 감독자이기도 했다. 그녀는 의술의 발전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휴가의 일부를 대학원 연구를 위한 과정들에 참석하는데 사용했다. 그녀는 1926년에 북경 의과대학에서 두 달 과정의 강의에 참여했고 중국의료협회의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데이비스는 훌륭한 의사였으며 행정가였고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것을 기뻐하는 따뜻한 전도자였다. 그녀는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교회 주일학교에서 가르쳤고, 인근의 두르개 파견주일학교(Toorgai outreach Sunday School)를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아이들이 연주회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녀는 때때로 주일 오후에 병동에 가서 성경요절들과 찬송들을 가르쳤다.
데이비스 의사는 해방 후에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 대신 그녀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여러 곳에서 의료 사역을 하였다. 그녀는 뉴질랜드 나환자신탁이사회(Leper Trust Board)를 대표해서 뉴헤브리데스에서 한센병 환자들의 상황에 대해 연구했고, 빌라(Vila)의 패튼기념병원의 원장 제미슨(Dr T J K Jamieson)과 교대했고, 이따금 남 산토(Santo)의 병원을 관리하였다. 그녀는 또한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주 원주민 부서를 위해 일했고, 북서 오스트레일리아, 에나벨라(Ernabella)와 퀸즐랜드 북부의 원주민들 사이에서 장로교선교회를 위해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그리스도의 영 가운데 헌신적으로 사람들을 섬기며 깊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진 데이비스는 1981년 6월 15일에 멜번에서 사망했다.
정병준 교수
(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