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53)
제인 엘라이저(데이지) 맥카그 디커니스(?-1974. 4.25)
한국명: 맥계익(麥啓益) 선생, 부산진(1918-19) 통영(1920-25)
거창(1925-30) 진주(1931-40) 부산진(1940-42)
맥카그(Jane Eliza McCague)는 1917년 12월에 디커니스 훈련소에서 2년의 훈련과정을 마친 후, 1918년 6월 10일에 멜번북노회에 의해 칼톤(Carlton)의 세인트 앤드류 교회의 선교사-디커니스로 임직을 받았고, 그해 8월에 한국에서 사역을 하기 위해 떠났다.
부산에서 언어 공부를 한 후에, 데이지 맥카그는 통영으로 임명되었고, 20년 동안 그곳과 거창과 진주에서 섬겼다. 그녀는 시골 여인들을 가르치는데 소질이 있었다. 각 선교지부에서 그녀는 지역 안에 있는 교회 하나 하나를 방문하면서 광범위하게 순회하였고, 마을 교회 여성들을 중심지들로 모아 사경회들을 운영했다. 그녀는 또한 자신이 가르치는 성경학원에 입학하기를 희망하는 여성들을 위해 준비반들을 조직했다. 그녀는 각 선교지부에서 전도부인들을 감독했고 그들을 수 주 동안 약한 교회로 보내 그 곳을 일으켜 세우도록 했다.
그녀는 정규학교를 다닐 기회를 갖지 못한 마을 어린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또 다른 전문성이 있었다. 이것을 위해서 그녀는 마을 교사들을 지도했다. 그녀는 또한 어린이 목회에 전문성을 가진 전도부인들과 함께 일하면서 마을 어린이들에게 예수, 성경의 기초, 그리고 기독교 신앙을 가르쳤다.
1940년 그녀는 알버트 라이트 목사와 결혼해서 부산진으로 돌아왔고 그곳에서 1942년 그들이 추방될 때까지 당국에 의해 감금되었다. 알버트와 데이지 라이트는, 호주로 귀국한 후, 쾀바툭교회(Quambatook Church)에서 목회했고, 그후 선교부서의 요청에 따라 에나벨라 원주민선교회에서 3년을 섬겼다. 최종적으로 라이트 가족은 빅토리아 안에 있는 프람링햄(Framlingham) 원주민 공동체에서 일했다. 라이트 부인은 1974년 4월 25일에 사망 했다.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