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56)
마틴 트루딩거 목사(Rev Martin Trudinger BA, 1883-1955.9.1)
한국명: 추마전(秋瑪田) 목사, 마산 1922-25; 진주 1926-28; 통영 1929-37; 부산 1938-41
마틴 트루딩거는 요크셔에서 강력한 선교사 전통을 지닌 가족에서 태어났다. 그는 수단에서 6년을 선교사로 일했고, 그 후 애들레이드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1917년 학사(BA)를 마쳤고, 말리(the Mallee)에 있는 여러 교회들을 섬기다가 한국의 선교사로 임명을 받았다.
한국에 와서 그는 처음에 마산에서 일했고, 짧은 기간을 진주에서 일했다. 마틴과 아이린(Irene)은 통영에서 9년을 보냈고 1938년 맥켄지 목사 부부가 은퇴할 때까지 섬겼던 나환자 선교사역을 대체하기 위해 부산으로 이전했다. 이따금, 특별히 그의 사역 초기에, 트루딩거 목사는 안수 받은 선교사들의 부족으로 인해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들을 맡고 힘들어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로인해 그의 건강은 손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따금 부과되는 선교회의 회계 일을 맡으면서, 마을 교회들을 보살피는 사역을 효과적으로 감당했다.
1941년 이후 전쟁이 일어나 트루딩거는 한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그는 건강이 나빠서 1942년부터 목회했던 페놀라(Penola)의 교회를 1949년에 사임했다. 마틴 트루딩거는 부끄럼이 많고 조용한 사람이었으나 깊은 신앙과 확고한 소명이 있었고 용기와 성실성과 이타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1947년 해외선교위원회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한국에서 20년 동안 성실하고 풍요한 열매를 맺는 사역을 해왔던 마틴 트루딩거 목사와 그 부인은 건강이 좋지를 못했다. 비록 트루딩거 목사는 다소간 회복을 하였고 페놀라에서 목회를 지속하고 있지만 그 부인은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 두 사람의 그리스도의 훌륭한 일꾼들은 선교지에서 건강을 잃었다.”
마틴 트루딩거는 1955년 9월 1일에 사망했다.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