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63)
클레어 엘리스(Clare Ellis)
한국명: 이명선(李明鮮) 선생, 통영 1925-27; 마산 1927-1933; 거창 1928년 6개월
클레어 엘리스는 아주 자격이 뛰어난 유치원 교사였다. 그녀가 PWMU에 지원했을 때 서부 멜번에 있는 세인트 제임스 자유 유치원의 원장으로 2년간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전년도에 마가레트 데이비스가 연설한 대회에서 선교에 대한 소명을 느꼈다.
디커니스 훈련소에서 과정을 마친 후에, 클레어 엘리스는 실천적이고 이론적인 유치원 교사 훈련을 더 수행했다. 그녀는 한 동안 장로교소녀협의회(PGA) 지도자로서 일했고 한국선교사 시절 이 단체의 지원을 받았다.
그녀는 1925년 9월에 한국에 도착해서, 즉시 서울의 언어학교로 갔다. 1926년 중반 그녀는 통영으로 가서 어린이들의 교회(60-80명의 유치원 어린이들)를 도왔다. 그녀는 마을 교사들을 위한 여름방학 사경회에 참여했다. 그녀는 또한 세 명의 유치원 교사들을 훈련시키는 것을 도우면서 한 동안 거창에 있었다. 언어학교에서 또 한 번의 학기를 마치고 그녀는 던와 함께 통영 지역의 시골 교회들을 방문했다.
1927년에 클레어 엘리스는 통영에서 마산으로 이전하여 유치원실습센터를 설립했고, 그곳에서 경남 전역에서 찾아오는 유치원 교사들에게 훈련과 실습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녀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줄 곳 유치원 교사 훈련 사역을 지속했다.
1933년 엘리스는 병든 어머니를 보살피기 위해 선교회를 사임하고 집으로 가야 한다는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사임은 동료들에게 큰 슬픔이 되었다. 동료들은 그녀의 사역에 대해 다음과 같은 감사의 기록을 남겼다.
“우리가 엘리스의 사임 소식을 들었을 때 그것은 큰 슬픔이었다. 엘리스는 한국에서 8년의 사역을 통해 우리 도에서 유치원 사역의 능률을 증대하는데 현저한 공헌을 했다.
엘리스는 정부의 교육규칙들 때문에 선교회가 소망을 가지고 있었던 유치원훈련소를 지속할 수가 없었지만, 유치원 교사들과 원장들을 위한 훈련수업들을 통해 그리고 개인적인 시찰을 통해 어린들의 개성을 발전시키는 새로운 이상을 경남전역에 널리 퍼트렸다.
엘리스의 적극적인 선의의 정신은 기질, 국적, 종교의 장벽들을 무너뜨렸다. 그녀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그녀가 그들에게 주려고 했던 것들이 일의 진정한 성공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선교회와 경남을 위해 엘리스가 했던 사역에 대해 그녀에게 감사한다. 그녀의 새로운 삶속에 늘 행복이 있기를 소망한다.”
정병준 교수
(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