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7)
벨레 멘지스 (1856. 6. 30-1935. 9.10)
한국명: 민지사 선생, 부산 1891-1924
벨레 멘지스는 발라랏(Ballarat)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한국선교사를 지원했을 때, 그녀는 모교회인 발라랏의 에벤에저 교회(Ebenezer Church)를 섬기고 있었다. 그녀는 1891년 10월 12일 부산에 도착했다.
멘지스는 한국에서 장로교여선교회(PWMU) 선교사역을 건설한 기초이며 반석이었다. 최초 세 명의 여성선교사들 중에서 그녀만이 은퇴 연령까지 남아있었으며 그 이후에도 한국에 머물렀다. 그녀는 체력적으로 강하거나 권위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조용하고 겸손하였다. 그녀의 능력은 전 생애를 통해 타인과 주고받은 사랑의 힘이었다.
그녀는 한국어를 습득하는데 그리 훌륭하지 못했으나 ‘부산에서 착한 권력자’로 일컬어졌다. 그녀가 첫 번째로 개종시킨 심상현은, 1894년 10월 중반, 세례 받은 후 6개월 만에 죽었으나 그가 가족들에게 말한 증언은 풍요로운 열매를 맺었다.
그녀는 1892년 버림받은 소녀들을 보살피고 신앙으로 기르기 위해 미우라 고아원(Myoora Institute)을 설립했다. 그녀는 엄마처럼 소녀들을 보살폈고 그들로부터 “엄마”로서 사랑의 받았다. 고아원에서 자란 소녀들 중 많은 수가 지역교회들과 학교들 안에서 지도자와 교사가 되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전도는 많은 사람들을 믿도록 했고 그녀는 매주 그들을 정성스럽게 가르쳤다. 그녀는 여러 해를 부산진 교회에서 가르쳤는데 연례사경회, 주중 소녀들을 위한 공부반을 운영했다.
멘지스는 부산 최초의 여학교와 남학교를 세웠고, 자신의 한국어 선생의 아버지를 교사로 채용했다. 한국을 섬겼던 모든 선교사들 중에서 멘지스 만큼 사랑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열 명 중에 첫째로 자란 벨레 멘지스는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되는 법을 익혔다. 어른이 되어서 그는 많은 고아들을 길러내었고, 부산에 도착하는 새로운 미혼 선교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머니가 되어주었다.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