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80)
조지 쇼 샌디슨 율 목사(1919. 10. 21-2001. 2. 8)
서울 1950

조지 율은 장로교 목사의 아들이며 손자였다. 그는 스카치 칼리지, 멜번대학, 오몬드 칼리지 신학부에서 교육을 받았다. 1948년 9월 율은 설교자 자격을 얻고 중국그리스도교회(CCC: Church of Christ in China)의 초청으로 중국사역자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11월 16일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듬해 2월에 중국그리스도교회의 권면에 따라 그의 중국행은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연기 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1949년 7월 19일 선교부는 부산 국립대학에서 가르치라는 계획을 가지고 조지 율을 한국선교사로 임명하였다. 그와 아내 발레리는 1950년 2월 23일 인천에 도착했고 서울의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공부했다.
그들은 6.25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으로 철수했고 영연방점령군의 휴식처인 에비수에 임시로 숙소를 정했다. 조지는 일본에서 일을 찾았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학생기독운동 농장 지원 프로젝트에 도움을 주었다. 결국 조지와 발레리 율은 호주로 돌아왔고 1950년 10월 말로 선교부와 맺은 임무를 종결했다.

조지는 파크빌과 애보츠포드(Abbotsford) 근교산업지역에서 명예목사로 섬기면서 1957년까지 역사를 강의했고, 그 후 교회사 교수로서, 1977년까지 오몬드 칼리지에서, 1988년까지는 스코틀랜드 애버딘 대학에서 가르쳤다.
조지는 성공회의 트리니티, 예수회, 감리교, 회중교회, 장로교회의 신학교들을 함께 묶어 연합신학교수단(United Faculty of Theology)을 설립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호주연합교회의 형성에도 기여했다.
조지는 목사, 교사, 작가로서의 일을 거의 81살로 죽을 때까지 지속하였다. 조지는 종교개혁과 르네상스 역사에 대해 열정이 가득하였다. 그의 신학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종교개혁의 교리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정병준 교수
(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