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이야기(5)
유대인의 복음과 하나님의 뜻
지난 주에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에 관해 살펴 보았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영원한 언약을 시작으로 예수그리스도가 다윗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왕위를 잇는 왕으로 이 땅에 오시게 되었다. 즉 유대인의 혈통을 따라 우리가 사는 역사 가운데 실제로 오신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탄생이며, 성육신 사건이다. 많은 신학자들과 신앙의 선각자들은 기독교의 가장 신비한 사건으로 성육신을 들었다. 사도요한은 이 사건을 요한복음1:14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로고스)고 기록하였다. 즉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또 말씀으로 그의 백성들에게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따라 또 말씀가운데 다윗의 혈통의 언약 안에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것을 의미 한다.
언약 가운데 오신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우시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 하셨다. 그것은 곧 유대인들의 고난에 관한 것이며, 이방인의 때가 차기 까지 오랜 기간동안 그들이 온 세상에 떠돌아 다니는 삶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또한 이방에 복음이 전해지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맞물려있는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의 약속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 제자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베다니 마을로 가셨다. 그리고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그것은 성령에 관한 말씀이셨다. “볼지어다…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눅24:49-51).
사도 누가는 이 내용을 동일하게 사도 행전에서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올라가신 그대로 베다니 동네에서 승천하신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시며, 감람산이 바로 승천의 장소이며 또한 성령 강림과 재림의 약속을 담고 있는 장소임을 명시 하고 있다(행1:8-12).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사도행전1:8-12)”
베드로 이야기 – 유대인에게 전한 복음
그리고 예수님의 약속대로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유대인들에게 성령이 임하고 온 세상을 향한 복음의 역사는 유대인 사도들로 부터 시작 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사도행전의 역사는 줄곳 유대인들에게만 집중 되어있었다. 그것은 다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던 베드로의 행적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사도 베드로가 욥바 지역에서도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욥바 바닷가에 사는 무두장이라 불리는 피장 시몬의 집에 유숙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장한 저녁 즈음 다락에서 기도를 하는데 비몽사몽간에 하늘로부터 흰 천이 내려왔는데 유대인으로 결코 먹을 수 없는 짐승들을 담고 있었다. 그러자 음성이 들리며 이것을 잡아먹으라 하는 명령에 세번을 극구 부인하다가 다시 음성이 있어 “하나님이 깨끗게 한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말라”는 음성을 들으며 환상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방인 고넬료의 집
베드로가 환상의 의미를 마음 속에 두고 있을 때, 고넬료 역시 자신에게 보여진 환상을 통해, 베드로를 초대하려고, 가이샤라로 부터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가 유숙하는 피장 시몬에 집에 당도하게 된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들과 함께 고넬료의 집에 다다르게 되는데, 그 때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사도행전10장28-29절)” .
이 말은 곧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지만 이방인들과는 접촉하지 않았고,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해 온 것을 발견할 수 있고, 또 이방인에게 가게 된 것이 베드로 자신의 의도 이기 보다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줌으로 그의 생각을 변화 시켜서 선뜻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도록 된 것을 암시 하고 있다. 이 사건은 나중에 바울로 부터 책망을 듣고 많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고 소명을 해야하는 일로 번지게 되는데, 이것은 유대인 사도들 역시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이 집중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한다.
이방인의 집에 임한 성령
고넬료의 집에간 베드로가 예수님의 공생애와 죽음과 부활과 죄사함에 대해 말씀을 전하자 고넬료의 가족들과 집안에 성령이 하늘로 부터 임하고 방언을 말하며 마가의 다락방의 유대인들에게만 임했던 동일한 성령이 임하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사건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이 사도들의 의도이기 보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의 생각을 바꾸어서 주관하신 사건인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사도들은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려 하였고 하나님은 이방에 집중하고 계셨다는 것이다.
유대인의 사도 베드로
이 일이 있은 후 베드로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을 때, 믿는 유대인들이 이방인과 함께 기숙하고 먹고 한 것에 대해서 비난 할 때, 베드로가 일어나, 자신이 욥바 피장 시몬의 집에서 본 환상과 고넬료의 집에 가게 된 계기와 그 때 성령이 이방인의 집에도 임하게 되어 그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동일한 회개와 하나님의 백성된 것이 증명되었음을 설명하게 되었다. 그 말은 들은 사도들과 지도자들이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하고 반문하였다. 이 때, 베드로의 말을 잠잠히 듣던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고 고백하게 되었다.(행11:17-18)
이 일은 나중에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지역인 안디옥에 복음을 전하면서 이방인들에게도 유대인의 관습과 율법을 요구하였던 당연하다고 여겼던 규율에 대해서 최초의 교회공의회라 불리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논쟁의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욥바와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서의 성령의 역사는 베드로의 설명에 의해, 궁극적으로 이방에 전하던 복음에 율법의 무게를 덜어주는 파격적인 결정을 하게 되었다. 이 결정은 유대인들이 생명처럼 생각하는 모세의 율법도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보다 중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동일한 백성의 범주에 포함 시키고자 하시는 성령의 뜻을 가늠하게 한다. 이 모든 것은 욥바의 사건으로 부터 시작 되어 이방에 복음이 전해져 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들이 차례로 제거되는 과정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방인의 사도- 히브리인 바울
이방의 사도라 불리는 사도 바울은 이방에 전해지는 복음을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소개 하고 있다. “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3:8-9)”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3:14)” 이방인을 위한 특별한 복을 따로 준비 해 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인 유대인들에게 약속한 동일한 축복을 이방인들이 상속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아브라함의 시대 부터 이방인들에게도 동일한 축복을 주시고 구원의 은혜를 주시는 것이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로마서10장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11:12-13)”고 강조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인 이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것은 어느 면에서나 부족하거나 또는 넘치지 않는 아브라함의 축복,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동일한 권리와 약속을 부여 받게 되는 것이다. 오직 그 약속을 따라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 이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이방으로 전해지는 복음에 비해 유대인들은 믿음을 갖지 않았다.
혼미해진 유대인의 심령
사도 요한은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이 유대인들이 믿게 하기 위하여 많은 표적을 행했음에도 그들이 믿지 않았음을 탄식하는 구절을 여러번 기록 하였다. 사도 바울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해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시기나게 하고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 유대인들에게는 혼미한 심령을 주셨다”고 말하고 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11:8-11)
이방의 복음이 전해 지게 된 것은 유대인들이 혼미해진 심령,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처음 부터 이방인의 구원을 꿈꾸고 계셨다. 그리고,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을 실족하게 하면서 까지 우리 이방인을 구원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이 말은 이방 교회들이 부흥을 이루고, 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앞으로 나아오게 되었지만, 유대인들이 비록 실족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할 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그들을 버리시지 않음을 약속하고 계시다는 말이다. 사도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롬 11:1)”하고 마치 돌직구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짧고, 강하게 분명하게 알려 주고 있다.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롬 11:17-18)”
흔히 우리의 구원이 중요하고, 이방의 구원에 대해서는 민감한 나머지,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마음을 마치 미리 알고 있는 듯한 사도 바울의 경고 이다.
우리에게 공급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액의 뿌리는 바로 이스라엘이다.
정원일 목사 (Christians for Israel – National Director. Korea)
베다니 사역 본부 대표, 키비 호주 대표(문화 교류학 박사 과정 중)
0410-430-677, wijung@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