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이야기(7)
반 유대주의
지난 해 10월경 유대인들의 모임이 있어 참석 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저명한 강사가 초청되어 회당에서 강연이 있었다. 그 즈음 IS가 공개한 참수 사건이 있었는데 참여한 테러분자가 호주에서 자란 호주 청년 이었다. 호주내에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지하 조직이 있고, 훈련받는 사람이 100여명이 넘는다는 말을 돌고 있을 떄였다. 그리고 호주 신문에선 시드니와 브리스베인에서 IS와 연계된 것으로 보이는 이슬람 폭동을 일으키려던 일부가 체포되는 일이 보도되었다. 그 때 호주 정부가 테러 비상 지역을 선포하고, 몇개 지역에 공공 장소를 가는 것을 피하고 일찍 귀가 하라는 보도를 할 즈음이었다. 강사는 유대인 사회에서 역사에 관한, 그리고 특히 홀로 코스트와 연관된 반유대주의에 대해 많은 책을 쓴 분이었다.
반 유대주의의 뿌리에 대해 2차 세계 대전을 전후한 반 유대주의에 대해서 유대인으로 부터 좋은 강의를 듣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강연이 끝나자 질문이 이어지고 함께 참석한 청년들, 부모세대나 할아버지, 할머니 뻘 되는 모든 참가자들이 자신들의 생각들을 거침없이 질문하고 또 대답을 듣곤 하였다. 이들의 대화에서 가장 핵심은 안전에 관한 것이었다. 자신들의 세대 뿐만 아니라, 2세들 과 부모세대들의 안전에 대한 우려와, 방비에 대한 고민들을 쏟아 내었다. 호주 유대인들의 회당이나 학교를 가게 되면 보안 점검이 엄청나게 까다로운 것을 경험하게 된다. 특별한 모임에는 늘 먼저 참석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보내도록 해서, 신분을 먼저 확인 하고 입구에서 또 한번 점검을 거쳐야 입장을 할 수 있다. 어린 학생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도 입구에 바리케이트와 땅속에서 올라오는 방어 기둥도 다른 곳에서는 쉽게 접하지 못하는 설비들이다. 이것들은 안전에 대해 이들이 얼마나 세심한가를 발견할 수 있는 물증들이다.
도망자 유대인
이들의 대화 속에서는 우리 한국 사람들이 생각 할 수 없었던 안전에 대한 갈급함을 느낄 수 있었다. 호주에서 살면서 나는 한번도 안전에 대해 염려해 본적이 없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학교를 보내며 키웠지만 내 아이들이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거나 왕따를 당하며 살것이라고는 상상해 보지 못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호주에 살면서도 늘 자신들의 안전을 염려 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테러에 관한 보도가 나오면 이들은 제일 먼저 테러의 대상자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었다. 이들은 수세기를 나라없는 민족, 늘 반목하는 사람들로 살아 왔기 때문이다. 반 유대주의가 극성을 부렸던 유럽의 전쟁과 학살을 피해 남아공으로 호주로 도망치다 시피 안전지대를 찿아 왔지만, 그들은 안전하다는 이곳에서도 늘 테러의 타겟이 되고, 늘 공격의 피해의식에 사로 잡혀 있다. 마치 어디를 가도 안전한 곳은 없는 도망자의 마음으로 살아 가는 것 같다.
유대인들은 수세기에 걸쳐 나그네로 살아야 했다. 그리고 어디를 가도 눈총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그리고 특히 이슬람과 기독교로 부터 박해와 개종의 끊임없는 요구를 받아야 했다. 그것은 종교 개혁 시대에도 어김없이 적용 되었다.
종교 개혁과 반 유대주의
마틴 루터(AD 1483~1546)는 종교 개혁 초기에 유대인들과도 연합을 하려고 했지만, 그들의 절기와 안식일을 지키는 율법적인 문제들로 인해 그들을 비판하기 시작 하였다. 그리고 루터교의 수장인 그의 주장은 루터교의 본산인 독일의 크리스챤들에게, 정치인들에게, 사회 모든 영역에 걸쳐 그 영향이 미치게 되었다. 이것은 후에, 독일이 유대인의 인종 말살 정책을 세우게 되기 까지 직 간접의 영향을 미친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건이 되었다. 그는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이라는 저서에서 이런 말을 기록하고있다.
“첫 번째, 유대인의 사당(synagogues)과 학교를 불 지르고, 타지 않는 것은 땅에 묻어 흙으로 덮어서 그 흔적을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하라. 이 일들은 우리들의 신 야훼와 그리스도교의 명예를 걸고 하라!..두 번째, 내가 충고하노니 그들의 집들을 모조리 다 파괴하라! 왜냐하면 그들의 집은 그들의 사당과 같은 용도로 쓰이기 때문이다. 집 대신에 그들이 지붕 아래나 헛간에서 집시처럼 살게 하라…세 번째, 우상 숭배를 하고 거짓말하고 저주하는 그들의 기도서와 탈무드에 관한 글들을 모두 압수하라.” (출처 : 마르틴 루터의 저서 –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Jews And Their Lies>” )
마틴루터와 같은 종교 개혁자가 이런 반 유대주의적인 극렬한 말을 했다는 것은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루터교의 본산인 독일에서 마틴루터의 이러한 유대인들에 대한 비난들은 적잖이 독일의 기독교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히틀러가 유대인을 말살하는 미치광이 짓을 하고 있을 때 루터교회는 잡잠하고 있었다. 오직 고백교회의 본 훼퍼같은 소수의 사람만이 히틀러에 대항하고 그들은 감옥에서 그들의 생을 마감해야 했다. 기독교 내에서의 반 유대주의는 중세에만 극성을 부린 것이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 교부시대, 존경 받는 교부들로부터도 그 뿌리를 깊이내려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교부들
그 시대 ‘황금의 입’이라 불리던 설교의 대가, 요한 크리소스톰(AD 340~420) 은 “유대인들은 음탕하고 탐욕스럽고 욕심 많고 불성실한 악당들이며, 상습적인 살인자들이고, 파괴자들이며, 악마에 붙잡힌 자들이다. 또한 방탕과 술 취함으로 탐욕스런 돼지와 염소같이 변했다. 그들은 오직 한 가지만 알고 있다. 배를 채우고 술 마시며 서로 물어뜯어 죽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너희를 증오한다(God hates you!).”고 말했다.
그리고 ‘참회록’, ‘하나님의 도성’ 삼위일체 신학 뿐 아니라 기독교의 신학을 집대성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존경받는 교부, 성 어거스틴(AD 354~430)도, “유대인들이 죽는 것이 마땅하지만, 대신 천벌을 받은 증인으로서 그리고 교회가 회당을 이겼다는 승리를 증거하는 증인으로서 지구 위를 떠돌아다니도록 운명 지워졌다”고 말했다.
실제 유대인들은 11세기 십자군 전쟁에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약30만명에 가까운 생명이 개종을 을 요구 받으며 죽어가야 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도 개종을 요구 받으며 13-14세기에 걸쳐 종교 재판을 받고 구금을 당하거나 고문을 당하며, 추방을 당하거나 죽음을 맞이하는 일들이 허다하게 발생하였다. 중세(1347-1452), 유럽에 페스트가 창궐해서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일이 죽는 일이 있었다. 당시 유럽의 인구가 7300만명 정도 였다고 하는데 페스트로 인해 약 2400만명이 죽었다. 몸이 검게 타듯이 죽는다고 해서 흑사병(Black Death)이라고 불려진 페스트는 동물의 혈관이나, 벼룩의 내장에서 서식하는 세균이 주로 쥐의 벼룩을 통해 사람에게 감염 되었다고 한다. 페스트는 치사율이 60%-90%까지 이르고, 이틀에서 칠일이내에 생사가 결정 되었다. ‘신의 재앙’이라고도 불리운 페스트는 사람들에게 죄를 각성해야 한다는 종교적 자성을 일으켰지만, 한편 유대인들이 병을 가져온 주범으로 몰려 그들이 살던 게토와 터전에서 쫓겨나고 화형에 처해지게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애굽의 반 유대주의
이러한 반 유대주의의 뿌리는 어디에서 부터 시작 되었을까? 중세, 교부시대의 핍박 보다도 훨씬 더 일찍 반 유대주의의 모형을 토라(모세오경)에서 그 뿌리를 찿아 볼 수 있다. 그것은 출 애굽기의 첫장에서 힌트를 발견 하게 된다.
출애굽기1장7절 아래에,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출1:7-16)”고 바로가 명령을 공표 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그들의 힘이 강해지자 애굽왕은 그들을 두려워 하여 핍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역을 지우고, 엄하게 그들을 다스리게 되었다. 남자아이를 낳으면 죽여버리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인종을 말살하려는 정책이 약3500년 전, 그 시대에 이미 애굽에서 태동 되고 있었다. 그들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더 많은 일을 하게 하고 착취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엄한 규율을 적용하였다. 이것은 마치 나치 독일이 유대인들에 대해서 높은 세율과 특별한 법을 제정해서 그들의 자산과 권한을 빼앗는 일들을 서슴지 않은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아마도 나치들은 이미 그 시대 이집트에서 유대인들을 옥죄고 탈취할 수 있는 비밀을 캐낸 것 같다. 1938년 11월 10일 유럽전역에서 “크리스탈 나흐트”라고 불리는 유대인들에 대한 징계와 보복의 밤은 유명한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 있다. 유대인들의 회당과 상점의 유리 진열대가 깨지고, 집의 창문과 가구들이 내던져지며, 온통 밤이 깨어진 유리 조각들로 인해 수정이 빛나는 밤이 된 것 같다는 닉네임을 얻게 되었다.
이것이 극렬한 반유대주의의 표징과 전조가 되었고, 이는 홀로코스트로 이어지는 유대인 말살 정책의 근간이 되었다.
정원일 목사 (Christians for Israel – National Director. Korea)
베다니 사역 본부 대표, 키비 호주 대표(문화 교류학 박사 과정 중)
0410-430-677, wijung@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