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숙종현의광륜예성영렬장문헌무경명원효대왕실록 (肅宗顯義光倫睿聖英烈章文憲武敬明元孝大王實錄) / 숙종실록 (肅宗實錄)
《숙종현의광륜예성영렬장문헌무경명원효대왕실록》(肅宗顯義光倫睿聖英烈章文憲武敬明元孝大王實錄)은 숙종이 즉위한 해(1674년) 8월부터 세상을 떠난 1720년 6월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책으로, 조선왕조실록의 한 부분이다. 모두 65권 7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노론이 편찬을 완성한 《숙종실록》은 영조 때 정미환국으로 정권을 잡게 된 소론에 의해 그 내용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소론은 노론이 《숙종실록》을 편찬하면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는 빼 버리거나 일부러 사실과 다르게 기록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소론은 실록의 전면 개수를 요구했으나, 사실상 어려운 일임에 따라 빠진 부분을 보충하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 추가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소론에 의해 새로 추가된 부분은 《숙종실록보궐정오》(肅宗實錄補闕正誤)라고 한다.

– 숙종현의광륜예성영렬장문헌무경명원효대왕실록 (肅宗顯義光倫睿聖英烈章文憲武敬明元孝大王實錄)
.대한민국의 국보 151호 조선왕조실록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구성 65권 73책
.소재지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부산 연제구 국가기록원 역사기록관
.등록구분: 1973년 12월 31일 국보 지정, 1997년 10월 세계기록유산 지정
– 서지적 사항
1674년 8월부터 1720년 6월까지 숙종의 재위 45년 11개월 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65권 73책. 활자본. 정식 이름은 ‘숙종현의광륜예성영렬장문헌무경명원효대왕실록(肅宗顯義光倫睿聖英烈章文憲武敬明元孝大王實錄’이다.
책의 체재를 보면 권1·2를 1책으로 묶었고, 권13·14·15·32·34·38·50은 상·하 2책으로 각각 나누었으며, 권35는 상·중·하 3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책 수가 73책이 되었다. 이 실록은 숙종이 죽은 지 반년 뒤인 1720년(경종 즉위년) 11월부터 편찬하기 시작해 1728년(영조 4) 3월에 완성되었다.
– 편찬 경위
만드는 데 9년이나 걸린 것은 숙종의 재위 기간이 46년이나 되어 기사(記事)의 분량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편찬 과정에서 노론·소론의 정쟁으로 정국이 자주 바뀌어 실록 편찬 책임자도 변동되었기 때문이다.
1720년 11월 숙종실록찬수청(肅宗實錄纂修廳)을 설치할 때는 노론이 정권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노론인 김창집(金昌集)이 총재관(摠裁官)이 되어 도청(都廳)과 1·2·3방(房)의 당상(堂上) 및 낭청(郎廳)을 선임하고, 시정기(時政記)와 『승정원일기』 등 국가 기록을 바탕으로 실록을 편찬하였다.
그러나 1721년(경종 1) 12월에 소론 김일경(金一鏡) 등이 김창집·이이명(李頤命)·이건명(李健命)·조태채(趙泰采) 등 노론 4대신의 죄를 논하고 신임옥(辛壬獄)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에 소론 대신이던 조태구(趙泰耉)가 총재관이 되어 도청과 각 방의 당상 및 낭청의 대부분을 소론으로 바꾸고 편찬을 진행하였다. 그 뒤로 최석항(崔錫恒)·이광좌(李光佐)로 총재관이 바뀌었으나, 모두 소론인 까닭에 편찬 방침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1724년 8월에 경종이 죽고 노론 측에서 지지하던 영조가 즉위, 노론이 정권을 담당하게 되었다. 때문에 실록 총책임자는 다시 노론으로 바뀌어 편찬을 계속, 1727년 9월에 인쇄가 완료되었다. 그런데 인쇄가 완료될 무렵, 정미환국이 일어나 노론이 물러가고 이광좌 등 소론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소론은 노론이 편찬한 실록에 대해 마땅히 들어가야 할 기사도 노론에 불리하면 빼거나 일부러 잘못되게 기록한 것이 있다며 개수(改修)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으므로 각 권의 끝에 빠진 기사를 보충해 넣거나 잘못된 기사를 바로잡는 이른바 보궐정오(補闕正誤)를 붙이기로 하였다.
이에 실록보궐청(實錄補闕廳)을 설치하고 이광좌를 총재관으로 삼아 보궐정오를 편찬, 1728년 3월에 인쇄를 마친 뒤 노론이 편찬한 실록과 합쳐 각 사고(史庫)에 봉안하였다.

참고 = 위키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