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위경쟁사회 : 왜 우리는 최선을 다해 불행해지는가?
마강래 / 개마고원 / 2017.9.5
풍요 사회를 구가하는 사람들의 삶이 행복하리라고 보는 건 매우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2015년 기준 GDP 세계 11위의 경제 규모, 국가예산 규모는 세계 12위, 경상수지 흑자 순위는 세계 5위, 외환보유고 순위 세계 7위인 한국은 어떨까? 분명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나라임에 틀림없지만, 여러 행복지수에서는 하위권을 면치 못한다. UN이 발표한 ‘삶의 만족도’ 조사에서 한국은 10점 만점 중 5.8점으로 58위였다. 다른 조사에는 80위, 심지어 118위를 기록한 조사도 있었다. 이런 수치를 들이밀 것 없이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인들이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는 증거다. “한국은 풍요로운 사회가 지옥 같은 곳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다.” 도대체 왜 이런 걸까?
저자는 한국이 ‘지위경쟁사회’라는 데서 답을 찾는다. 오로지 한 단계라도 더 높은 등위를 지향하는 지위경쟁은 사람들을 끝없는 불안과 초조 상태로 만든다. 따라서 지위경쟁이 우리 모두의 행복을 깎아 먹으며, 전 사회적인 노력의 낭비를 가져온다고 경고한다.
– 목차

1장 지위경쟁이란 무엇인가?
경쟁은 타인과의 비교라는 상대적 개념이다
보상의 격차는 사람들 마음에 경쟁심을 심는다
남들만큼은 노력해야 ‘그 모양 그 꼴로’라도 산다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어낸 상대평가
풍요로운 사회에서 경쟁은 ‘지위’를 향한 경쟁이다
양극화를 촉진하는 지위경쟁
낭비적 노력으로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지위경쟁
2장 끝없는 노동을 부추기는 지위경쟁
[전반전] 임금은 지위다!
임금은 ‘남들보다 얼마나 잘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토너먼트에서의 최종 승자는 누구일까?
나만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
[후반전] 풍요로운 사회, 줄지 않는 노동
풍요로운 사회에서의 불안한 고용
줄지 않는 노동시간
한쪽에는 과로가, 다른 쪽에서는 실업이 넘쳐나는 아이러니
취업을 위한 지위경쟁의 딜레마
3장 소비는 잘 보이기 위한 지위경쟁
[전반전] 상품에 녹아 있는 고급지위라는 기호
지위경쟁사회에서의 소비
고급지위는 반드시 소수만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소비와 지위의 과시
소비로 나타나는 지위 상승의 욕망
[후반전]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조작되고 만들어지는 욕망
소비 욕망의 두 가지 특징
쫓고 달아나기의 낭비적 경쟁
소비와 소유를 통한 자기규정이 헛된 이유
4장 학벌사회에서의 지위경쟁
[전반전] 넘치는 대졸자, 학벌싸움도 지위경쟁!
교육열과 지위경쟁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 우리의 교육열
학벌사회와 보상의 격차
졸업장 인플레, 그리고 지위경쟁
[후반전] 평가, 평가, 평가, 그리고 지위경쟁
학생평가와 지위경쟁
교수평가와 지위경쟁
대학평가와 지위경쟁
5장 더 나은 배우자를 얻기 위한 지위경쟁
[전반전] 일부일처제? 경쟁 억제제!
일부다처제에서의 지위경쟁
무한 경쟁을 막기 위해 일부일처제 원칙을 받아들였던 인류
[후반전] 일부일처제에서의 지위경쟁
‘더 많은’ 배우자에서 ‘더 나은’ 배우자로
상향혼이 가져오는 배우자 경쟁
결혼 경쟁에서 남녀의 지위는 다른 기준으로 평가된다
지위가 낮으면 결혼도 못한다
결혼비용의 증가는 지위경쟁의 영향이다
6장 무한히 허용해서는 안 되는 지위경쟁
낙오자를 만들어내야만 굴러가는 시스템
지위경쟁은 행위의 본질을 잃게 만든다
지위경쟁은 모두의 행복을 깎아먹는다
지위경쟁은 더욱더 큰 격차를 발생시킨다
註 221
찾아보기 230
– 저자소개 : 마강래
인생의 반을 도시경제 연구에 바쳤지만 지천명이 다 돼서야 자신의 학문이 도시만이 아닌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한 공부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지난 몇 년간 ‘사회경제적 형평성 제고’와 ‘국토의 균형적 발전’을 주제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요컨대 ‘함께 사는 법’에 대한 고민을 토대로, 경쟁과 차등에 기반을 둔 사회경제 시스템의 다양한 변수들이 도시민의 삶의 만족감을 어떻게 떨어뜨리고 있는지 면밀히 살피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고민의 중간 결과물로서 저자는 ‘더 높은 지위’라는 신기루를 좇는 우리의 노력이 헛되고 낭비적이며, 이로 인해 우리 삶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중앙대학교 정경대학에서 응용통계학(경제학사)을 전공했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계획학 석·박사과정을 밟고 영국 런던대학교에서 도시계획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출판사 서평
.무엇이 지위경쟁인가?
본래 지위경쟁은 학력이 사회적 지위획득의 수단이 되면서 사람들이 더 높은 학력을 취득하려 경쟁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의 학력이 계속 올라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교육사회학의 용어였다. 저자는 이 용어를 빌려와 그 개념을 확대하고 재규정한다. 예컨대 지금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얼마나 가졌는지에는 큰 관심이 없다. 중요한 것은 ‘남들보다’ 무엇을 얼마나 더 가졌는지다. 절대적인 성취보다 상대적인 위치가 더 중요해지는 경쟁, 이것이 지위경쟁이다.
저자가 재정의한 지위경쟁의 특징은 두 가지다. 첫째, 상대평가라는 점에 있다. 남들과의 비교에서 자신의 순위가 달라지기 때문에 이 경쟁에는 어떤 절대적 기준이 없다. 내가 아무리 객관적으로 잘해도 남들이 더 잘하면 나는 못하는 것이다. 둘째, 보상 격차가 크다는 것이다. 만약 그 차이가 크지 않다면, 경쟁은 치열해지지 않는다. 상대평가에 따른 보상의 격차가 지위를 만들어낼 만큼 크기 때문에 사람들은 경쟁에 뛰어든다.
지위경쟁이 관철되는 지위경쟁사회에서는 내가 가만히 있으면 남들이 나를 앞질러 간다. 그리고 앞서가는 사람에게는 큰 보상이, 뒤처지는 이에게는 가혹한 벌칙이 주어진다. 이런 구조에서는 모두가 계속 달릴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이 속도를 올리면 나도 더 빨리 뛰어야 한다. 결국 서로가 서로를 쫓으며 한시도 쉬지 못한다. 이른바 ‘레드퀸 효과’다.
.지위경쟁사회의 풍경들: 노동, 소비, 교육, 결혼의 영역
우리나라 직장인의 절반 이상은 평균임금보다도 낮은 소득을 받지만, 상위 1%들은 수억 원의 연봉을 받고 있다. ‘상대적으로 좋다’는 평가는 억대 연봉도 받게 해주지만, ‘상대적으로 나쁘다’는 평가는 연봉의 동결/인하 내지 해고를 불러올 수도 있다. 낮은 평가를 받음으로써 생기는 자존감의 상처는 덤이다. 이것이 직장인들로 하여금 더 길게 더 많이 일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우리나라에서 SKY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학생들은 1만 명 내외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53%, 부총리 및 장관의 71%, 병원장의 53%, 종합병원 의료인의 42%, 법조인의 65%, 고시합격의 54%, 대학교수의 40%, CEO의 53%가 SKY대학 출신이다. 반면 하위권 대학을 나와서는 취직도 힘들다는 걸 모두 잘 안다. 허리가 휘도록 사교육비를 내고 밤잠을 줄이면서까지 공부를 하는 이유다.
최근 노동사회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20∼30대 남성노동자 임금 하위 10%의 기혼자 비율은 6.9%다. 그런데 상위 10%의 결혼 비율은 82.5%로 12배나 더 높다. 학력으로 따졌을 때도 비슷한 양상이다. 20~30대 중 대졸 학력 소지자는 약 55%가 기혼자다. 하지만 고졸 학력의 경우는 45%다. 특히 고졸 남성은 32%만이 결혼을 했다.
통계청에서 발행된 『한국의 사회동향 2015』에 의하면, 1995년에는 20~30대의 65%가 결혼을 했다. 하지만 이 비율은 꾸준히 낮아져 2010년에는 47.6%로 떨어졌다. 15년간 무려 17.4%포인트가 낮아진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결혼 감소 추세는 학력이 낮은 사람들이 결혼을 못하면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20~30대 대졸자 중 기혼자 비율은 1995~2010의 15년 동안 약 55%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하지만 1995년 70% 정도였던 고졸 중 기혼자 비율은 2010년 약 45%로 크게 줄어들었다. 중졸자 중 기혼자의 비율은 같은 기간에 81.8%에서 51.9%로 무려 29.9%포인트나 하락했다. -194~195쪽
지위경쟁의 연료는 ‘나만 뒤처지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이다. 우리 사회에서 지위경쟁에서 밀려나는 건 영구적인 탈락을 의미한다. 이런 지위경쟁은 개인에게 고통을 줄 뿐 아니라 결국에는 집단을 공멸의 위기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어떻게 지위경쟁의 쳇바퀴를 멈출 것인가
직장에서 동료에 뒤지지 않기 위해 야근과 휴일근무를 밥 먹듯 하는 것,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명품을 두르고 다니는 것, 별 필요도 없는 공부를 단지 자격이나 지위를 얻기 위해 몇 년씩 해야 하는 것, 부모의 재산이 든든할수록 결혼할 확률이 올라가는 것…. 이 런 것이 지위경쟁의 사회적 양상이다. 지위경쟁사회는 낙오자들을 만들어내며 굴러간다. 사회의 많은 영역에서 사람들은 남보다 뒤처지지 않으려 최선을 다한다. ‘무한 경쟁’이라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힐 뿐, 그저 남을 제치기 위한 경쟁은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 불행해질 뿐이다. 모두가 경기장에서 일어나 경기를 관람하면, 모두 앉아서 볼 때와 다를 바 없이 힘만 더 드는 것처럼 말이다. 전형적인 ‘낭비 경쟁’이다.
사회 발전 초기에는 경쟁이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더 많이 일할수록 생산량은 늘어나고, 더 많이 공부할수록 교육 수준은 올라갈 것이다. 이는 사회적 부를 늘리며, 경쟁 참여자들에게도 이익을 준다. 그러나 일정한 발전을 이룬 사회에서 단지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노력은 더 이상 사회적 부를 높이지 못한다. 오히려 승자독식이 심해지며 자원배분이 불평등해진다. 결국 사회적 이득보다 사회적 손실이 더 커지는 것이다.
저자는 이제 우리가 경쟁의 정도와 속도를 늦춰야만 한다고 말한다. 지금과 같은 지위경쟁은 ①경쟁의 내용보다 순위에 집착하게 만들어 본질을 잃게 하고 ②출혈 경쟁으로 모두를 패배자로 만들며 ③소수가 사회적 보상을 독식함으로써 지속가능성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경쟁으로 인한 이득보다 폐해가 훨씬 크다는 걸 깨닫고 새로운 협력적 시스템을 고민하자는 것이 저자가 이 책에서 전하는 메시지다.
○ 홍길복 목사의 세번째 잡기장 (74) 중에서 _ 10월 14일자
‘Living Together’ – 함께 사는 삶

저희들이 살고있는 호주는 흔히 다문화사회, Multicultural society라고 합니다. 실제 시드니만해도 세계 180여개나 되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다양한 언어와 문화, 전통과 역사, 음식과 종교를 배경 삼아 서로 어울려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다른 동리와 마찬가지로 저희들이 살고있는 마을 입구에도 “Many culture, One community” (다양한 문화에 하나의 지역사회)라는 간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초창기엔 장로교회, 감리교회, 회중교회가 통합하여 하나의 교단을 이룬 ‘호주연합교회’ (The Uniting Church in Australia)도 통합 후 몇 년만에 “호주연합교회는 다문화교회다” (The Uniting Church in Australia is the Multicultural Church)라는 신학적 선언을 했습니다.
인문학의 궁극적 꿈 중 하나는 모든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협력하고, 사랑하여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개성, 성격, 생각, 경험, 주의, 주장, 이념, 목표, 종교를 지닌 사람들이 피차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할 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보다 더 살기 좋은 공동체가 될 것 이라고 믿습니다.
아프리카 속담 중에 있는 말입니다.
‘빨리 가고 싶으면 혼자 가라. 그러나 멀리 가고 싶으면 함께 가라’ – If you want to go fast, go alone. If you want to go far, go together.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남긴 말입니다.
‘혼자 꾸는 꿈은 그냥 꿈에 지나지 않지만 같이 꾸는 꿈은 언젠가는 꼭 현실이 됩니다’
마더 테레사는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당신은 내가 못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린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고 있습니다’
일본 속담 중에 나오는 말입니다.
‘한 개의 화살은 쉽게 끊어지지만 10개의 화살은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만유인력을 발견했던 존 뉴턴은 자신의 업적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좀 더 멀리 보게 된 것은 난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곰곰이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 까지 죽지 않고 살아온 것은 그 누군가가 우리를 도와주고 살펴주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과 배우자, 자녀들과 이웃들, 친구들과 선생님이 계셔서, 오늘의 내가 있는 것입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낮고, 한 손으로는 박수를 칠 수 없듯이, 인생길은 혼자선 갈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 가야 할 길도 사막과 정글과 낭떠러지가 있습니다. 우린 서로 길을 알려주고, 소식을 전해주며, 함께 손을 잡고,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가야, 죽음의 순간에서도 아름답게 인생 여행을 마무리 할 수 있습니다.
인문학은 서로 함께 가고, 다같이 살려는 노력중 하나입니다. 누구는 빨리 가고, 누구는 묶어 두면 않됩니다.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어도 되는건 아닙니다. 혼밥, 혼술은 할 수 있어도, 그래도 그 밥과 그 술은 나 아닌 그 누군가가 만들어준 것입니다. 세상만사, 한 발만 뒤로 물러서서 보면 다 얽히고 설켜 있습니다. 독불장군은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 기성세대와 젊은세대, 동양과 서양, 진보와 보수, 이 종교와 저 종교, 서로 싸우거나 이기고 정복해야 할 대상이 절대 아닙니다. 서로 보충하고, 메워주면서 협력하고, 같이 가야할 인생과 역사의 동반자입니다. 작은 고울들이 모여 강을 이루고, 강들이 모여 대양을 만들어냅니다. America First는 절대 않됩니다. 세계는 운동 시합이 아닙니다. 우리는 Australia First, Korea First 할 줄 몰라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양 사람들은 엘리베이터 탈 때만, You first, me last 할 것이 아닙니다. 세계는 ‘공생 공사’ ‘일심동체’로 엮여져 있습니다. 그걸 우리는 Global이라고 합니다.
여당은 야당을, 야당은 여당을, 진보는 보수를, 보수는 진보를,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서로 인정하고 이해하고 안아주고 함께 가야합니다. ‘피차 물고 싸우면 다같이 멸망합니다’ 세월이 지나면 모두 그게 그것입니다. 하늘에서 보면 벤쯔나 현대는 구별이 않되고, 지구는 그져 둥굴게 보일 뿐입니다.
우린 경쟁의 상대가 아니라, 협력의 대상입니다. 개인도, 국가도, 정치도, 종교도 모두 다 ‘같이 살고 같이 죽는 공동 운명체’입니다.
아프리카에서 구호 활동을 하던 한 서양 선교사가 길을 가다가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서 놀고 있는 아이들 10여명을 보고 이리 말했습니다. “얘들아, 우리 달리기 시합 한번 하자. 1등 하는 아이에는 내가 이 커다란 과자 상자를 상으로 줄께” 그리곤 아이들을 한 줄로 세워놓곤 ‘출발!’ 하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입니까? 아이들은 한명도 뛰지 않고 그냥 그대로 서있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는 물었습니다. “아니, 왜 그러니? 왜 뛰질 않는 거니?” 그러자 한 아이가 나서서 말했습니다. “1등한 친구만 상을 받으면 나머지 9명은 어떻게 하라구요? 우린 그런 게임 않해요!”
지금 우리는 잘못된 서구적 사고 방식, 자본주의의 모순, 끝없는 경쟁적 교육, 이기적 논리, 성공만이 내 인생의 목표라는 그릇된 생각에 포로가 되어 그걸 교육이요, 신앙이요, 선교요,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좋은 목표인양 ‘갈라치기’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보다 더 아픈 것, 더 쓰라리고 위험한 것이 무엇인질 그 코로나의 한 가운데서도 깨닫지 못하는 게 저와 우리가 아닌가 싶어 마음이 많이 아프네요.
Living Together !
함께 가고, 함께 살고, 함께 행복해 지는 세상을 위해 마음 쓰시는 인문학 친구들에게…
Carpe diem !
Bonam fortunam !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