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교육 칼럼
신발이 안 떨어져요
50년 전에 들었던 어느 아주머니의 말씀이다. “신발이 안 떨어져요.” 이 말이 나에게는 아직도 커다란 충격으로 남아있다. 그 날은 어머님과 함께 우리가 살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그러니까 그저 한 십분 정도만 걸으면 도착할 수 있는 동네 시장에 갔었다. 왜냐하면 얼마 전 (내가 생각하기론 새 신을 사 신은 것이 한 달쯤 된 것으로 생각된다.) 새로 산 운동화가 힘 없이 찢어진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신발을 사 신으려고 어머니와 함께 시장으로 갔던 것이다.
그날 나는 신발 가게 앞에 길게 늘어 놓은 예쁜 신발들을 보며 햇빛이 따스하게 내리 쪼이는 한 쪽 구석에 사과상자 위에 앉아 있었다. 가게 안에서는 어머니와 가게 아주머니께서 어떤 신발이 튼튼하냐고 말씀을 하고 계셨다.
“아니! 한 달도 안된 신발이 벌써 떨어지면 어쩐데요?” 하고 어머님께서 말씀하시면,
“아이구 어머니 어디 신발이 문제인가요? 아이가 신을 험하게 신나 보군요!” 하신다.
“어데요! 이제 일곱 살인 어린아인데 뭔 신발을 이긴데요?”
“그래도 신발이 이래 새것인 상태로 터진 것은 아이가 험하게 신은 것 맞아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시며 어머니는 좀 더 튼튼해 보이는 신발을 고르시느라 여념이 없으시다. 가게 주인 아주머니께서 어머니께 추천하신다.
“엄니 이것이 새로 나온 것인데 ‘오리 표 예요’ 신어 본 사람들이 아주 튼튼하다 하데요.”
“애가 극성맞으니 원 어째야 좋은지 모르겠네.” 하시며 어머니는 오리표 운동화를 손으로 만지작 만지작 하신다.
빈 사과 상자에 앉아 해바라기 하며 할 일 없이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던 나는 얼른 일어나 엄마 쪽으로 다가갔다. 하얀 신발이 보기가 좋았다. 새끼 발가락이 삐쳐 나온 헌 운동화를 재빨리 벗어 던지고 엄마 손에서 오리표 신발을 빼앗듯이 낚아채곤 주저앉아 신발을 발에 끼워 보았다.
가게 주인 아주머니께서 내 발에 신은 신발의 코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시며 말씀 하신다.
“이것 보세요. 잘 맞네요. 근데 일곱 살 맞아요? 밥 잘 먹나 보지? 한 덩치 하는 구만.” 쉴새 없이 말씀을 늘어 놓으신다. 그때 다른 아주머니께서 가게 안으로 들어서신다. 좁은 출입구여서 나는 한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아주머니께서 지나가시도록 비켜 드렸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 손에는 한 켤레의 신발이 들려 있는 것이 아니라서 좀 이상하게 느꼈었다. 다 낡아서 오래 신은 듯한 신발이 한 짝만 들려 있었던 것이다.
“혹시….. 신발을 한 짝만 파는 것도 있남유?” 좀 부끄러운 듯 하기도 하고 창피해 하시는 것 같기도 했는데 나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 그 아주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뭐래요? 아니 신발을 한 짝만 파는 것이 어데 있데요?” 주인 아주머니의 어이 없다는 말투에 그 아주머니는 아주 난감해 하시며 비닐 봉지 안에서 다른 한 짝의 신발을 꺼내시는데 우리 셋은 깜짝 놀랐다. 그 신발 한 짝은 아주 새것이었고 전혀 흙도 묻어 있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한 짝 신발은 이래 새것인데 어째 한 짝만 헌 신발이 되었데요?” 가게 주인 아주머니께서 두 짝 모두 신발을 받아 들으시며 고개를 갸웃갸웃 하시며 말씀하셨다. 그리곤 나를 바라 보시며,
“이 아이도 새것 인채로 한쪽 신발만 터뜨려 와서 새로 산다고 하던데…..” 하고 말씀 하실 때 어머니께서 한 마디 거드신다. “신발이 헤진 것이 아니라 미어진 것 이예요. 얼마나 들로 산으로 헤메고 뛰어 다니는지 신을 너무 험하게 신은 거지요.” 하신다.
그렇게들 말씀하실 때 그 아주머니의 표정이 뭐라 표현하기 힘든 그런 표정이셨다.
“그래요? 얼매나 좋을꼬!”
“우리 아가 그래 뛰어 놀면 얼매나 좋을꼬!”
놀란 표정에 한숨을 쉬시며 한편 슬퍼 보이기도 하고 한편 부러워하는 눈치이기도 한 아주 묘한 얼굴표정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내가 어른들에게 야단을 맞는 것인지 칭찬을 받는 것인지 ‘어리둥절’ 이라는 표현은 그럴 때 쓰는 것 아닌가?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서 내가 쉰 일곱 해를 살면서 ‘어리둥절’ 해본 기억이 또 있나 꼽아보기도 한다.
‘어리둥절’을 해결 한 것은 바로 다음 그 아주머니의 말씀에 모두 깜짝 놀라며 한참을 미안해 했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우리 아이는 소아마비를 앓아서 한쪽 다리가 짧아서요……..”
“목발을 하고 다니는데 목발과 함께 딛는 다리 쪽의 신발만 헤져요.” 하시는 것이었다.
그 해 겨울을 나고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국민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는데 1학년 같은 반에 조그마한 아이가 목발을 짚고 맨 앞에 서 있었고 나도 모르게 맨 뒤에 섰던 나는 그 아이와 가장 친한 친구로 지내는 사이가 되었었다.
공부를 잘 해야 한다고 아이를 다그치지 마세요. 공부보다 더 귀하고 중요한 것은 내 마음 안에 함께 하시는 성령님께서 가르치시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서 스스로 배운다고 말들을 한답니다. 하나는 사람이 가르치지만 열은 하나님이 가르치십니다.
우종필(아름다운교회 안수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