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교육 칼럼
어설픈 창의력도 칭찬하세요.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질문이 많아지는 시기는 4살 정도 되면서부터 입니다. 이 때는 아이들의 눈에 비치는 모든 신기한 세상이 궁금해 지기 시작하는 시기이지요. “잉게모야?” “이건 왜이래?”… 등.
또한 무엇이던지 스스로 해 보려고 시도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물병의 물을 컵에 따라보려고 시도하기도 하구요. 양말을 자기가 신어 보겠다고 고집을 부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의 커다란 신발을 신고 현관을 나서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이 보이기 시작하면 부모님 들은 좀 더 아이들과 같이 하는 시간이 늘어나도록 조치를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을 도와 주셔야 아이들이 자신의 뇌를 자기 스스로 사용하는 데에 재미를 붙이게 되는 것이고요, 그러한 순간이 차츰 늘어나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스스로 계획한 일을 체험해 보며 보내게 될 때 아이는 창의적인 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 벌어진 재미있는 상황을 예를 들어 말씀 드리겠습니다. 한국의 겨울은 참으로 춥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집안에서 입던 옷만으로 밖에 나가게 되면 당장 추워서 큰일이 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창의력이 분출되기 시작한 아이들은 가끔 양말도 신지 않은 채로 엄마의 하이힐을 신고 문 밖으로 나서려 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대부분의 부모님 들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혹시 모르긴 하지만 그런 상태로 밖에 나가면 추워서 안 된다고 하시면서 아이를 붙들고, 양말을 신기고, 옷을 두툼하게 입히고, 신발을 갈아 신기우고, 함께 나가기 위하여 준비 하시지 않으셨나요? 아니면 안 돼! 라고 하시며 아이의 시도를 묵살 시켜 버리시지는 않으셨나요?
이러한 상황이 만들어 졌을 때가 스스로 학습이 가능한 가장 좋은 때라는 것을 알아차렸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 주어야 할까요?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이를 혼자 방치하지 않는 것이고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세심한 관찰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는 아이 혼자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는 어렵겠지만 주의하여 관찰해야 합니다. 혼자서 문을 열기 위한 시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아이의 손가락이 문틈에 끼이는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하지요. 문을 열고 나가려 하면 안전하게 문을 붙잡아 주시고 그냥 나갈 수 있게 도와주시면 됩니다. 날씨가 매섭게 춥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아이가 밖으로 나가면 부모님 들은 뒤 따라 나가서 아이의 상태를 관찰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필자와 함께 창의교육을 연구하던 한 젊은 부부교사는 자신들의 아이가 아파트 현관을 나서도록 놔 두었다가 아이가 추워서 발을 동동 구를 때까지 기다려 주고 견디기 힘들 정도의 상태가 되었을 때 아이를 안고 집으로 들어와서 때는 이때다! 하고 아이하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추웠지? 발은 차갑지 않았어?” 당연히 아이는 많이 추웠다고 했고 부모 들은 아이를 꼬옥 안아 주셨겠지요? 이 순간 아이의 머리 속에는 자연스럽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체험학습이며 스스로 학습이 진행된 것이지요. 부모님 들이 자칫 놓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아이를 보호하는데 아이의 생각 즉 창의적 상상마저도 보호막 안에 넣어 두려는 잘못된 육아 때문에 아이들은 의존적이고 스스로는 아무것도 결정하려 하지 못하는 “마마보이”스타일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뇌를 스스로 사용할 때 맛볼 수 있는 희열을 느낄 수 없도록 차단하는 아주 나쁜 예를 보이는 “과잉보호”가 이런 상황의 연속 속에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사랑스러운 자녀들이 무엇인가 하려고 시도하는 시기가 되면 좀 더 세심한 관찰과 주의집중이 필요하게 됩니다. 안전하게 보호하는 완벽한 동행이 필요한 것이지요.
많은 부모님들이 ‘자신의 아이를 잘 키우려는 생각’을 하셔야 하는데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은 ‘자신의 아이를 다른 아이보다 잘 키우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간단한 생각의 차이가 우리 아이들의 창의력을 키우는 느긋하고 행복한 가르침을 조급한 통제 속에서 행복하지 않은 교육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교육을 사람인 부모나 선생님이 한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바랍니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보모님들은 교육을 담당하지 마시고 언제나 안전한 보호만 담당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합니다.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또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부모님들입니다. 헌데 문제는 이 부모님들이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변하여 내 사랑하는 아이의 혼란스런 뇌의 상태는 고려하지 않고 아이를 위한 다는 핑계로 통제하고, 야단치고, 명령하는 위치에 서게 되는 잘못된 판단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의 행복을 파괴하고 아이의 밝은 미소를 볼 수 없게 하는 안타까운 상태로 변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전 하여 주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이 서로라는 말씀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 서로라는 말에 우리 아이들은 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른들끼리 서로는 되고, 청춘 남녀간에는 서로가 되는데 부모와 자식은 왜 서로가 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꼭 맞는다고 생각 할 수는 없겠지만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를 한 사람의 온전한 영혼이라 생각하지 않으시고 부모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구요 서로가 존중해 주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를 내가 소유한 물질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어린 아이이지만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말은 그 어린 아이의 생각과 행동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생각은 곧 계획입니다. 어떠한 계획이 상대로 하여금 묵살 당했을 때의 마음 상태를 생각하시면 아이와 나의 관계에서 아이의 생각 즉 계획을 존중한다는 말이 왜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아이들의 어설픈 계획도 칭찬해 주시고 존중해 주세요. 그러면 아이들은 상황을 판단하고,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 보면서 결과에 대한 평가를 스스로 하게 되며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 판단부터 시작하여 어느 부분에서 자신의 실수가 있었는지 스스로 피드백 하게 됩니다. 물론 스스로 자신의 뇌를 사용했기 때문에 행복한 마음 속에서 모든 과정이 이루어 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 고 하셨는데 하물며 가족인 부모, 형제, 자매, 부부, 자녀와 서로 서로 사랑하셔야죠?
우종필(아름다운교회 안수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