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 교육 칼럼
사람을 걱정합시다!
인터넷을 통하여 섬뜩한 기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기사를 읽으며 우리 어른들의 무책임한 방임이 이러한 일들을 만들어 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한 숨이 나왔습니다. 모두들 같은 생각이시겠으나 “왜 이렇게 되었나”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여중생들끼리 한 편에서는 폭행을 하고, 한 편에서는 폭행을 당하고, 또래들끼리 문자를 주고받으며 사진을 공유하는 가운데 정말로 한심한 대화가 오가고, 보는 이들은 차마 입에도 담기 어려운 상태의 피투성이가 된 아이를 무릎 꿇게 하고 사진을 찍고, …. 오호 통재라!!
우리 아이들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누구의 책임일까요? 대한민국에 “국가재건”이라는 목표가 있고 강력한 지도자가 있을 당시에는 이런 일이 없었습니다. 지금 국민들의 시각과 국가의 능력으로 폐허 위에 재건대의 움직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 그들과 함께 어수선한 나라꼴을 보며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제 각각으로 살아냈던 모습들을 보며 한심하다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 당시의 우리 선조들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던 그 방법이 최선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누구를 탓하자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잘못을 찾아내어 책임을 묻자는 그런 말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저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사태들을 정확하게 판단하여 우리 어른들이 어떠한 잘못을 저질렀기에 아이들이 이렇게 해도 되는 것으로 알고 살아내고 있는가 하는 문제제기를 해보자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또 자라날 다음세대들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이시라면 사진 속의 그 여학생이 내 딸이 아닌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러나 그 아이가 내 딸이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냥 놔두어도 괘념치 않을 정도인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수기치인(修己治人)이란 말과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란 말을 처음 배울 때 가슴이 떨리고 무언가를 엄숙히 다짐하듯이 글을 익힌 생각이 납니다. 내가 남을 가르치거나 다스리는 것은 그만큼 신중하게 자신을 갈고 닦은 후에야 가능한 일이고, 자신과 함께 자신의 가정이 온전하게 가르쳐진 다음이라야 한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였습니다.
맘몬주의, 물질만능주의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을 벌기위한 노력은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사람답게 살아내야 하는 다음세대들을 올바로 가르치는 일에는 소홀히 한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 한국의 민주화과정에서 부작용으로 탄생한 부산물이라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인권”이라는 단어입니다. 사람이 권리를 주장하려면 적어도 책임과 의무를 이행할 줄 아는 그런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국가에는 통치를 위한 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법은 문서화해놓고 있습니다. 알던 모르던 위정자들이 민주주의라는 틀을 이용하여 정해놓은 법을 지켜야만 하는 것이 현대를 살아내는 모든 사람들이 겪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법조문에 기록된 것만을 지키며 사는 것이 아니라 글로 만들어 놓지는 않았지만 전통적으로 전승되어 오는 예의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법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을 필자는 창조주 하나님의 가르침이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법으로 정해놓고 지키지 않아도, 가족을 이루고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당연히 지켜야 하는 그러한 법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문법을 지키는 사회가 아니라 성문화 되지 않은 예를 갖추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글을 씁니다. 모본을 보이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크리스천들의 행동을 촉구해 봅니다.
우선, 내 아이만이라도 지식을 가르치기 전에 지혜를 가르치고 예의를 갖추는 아이로 키우기 위한 모본을 보이는 부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작은 것부터 원칙을 정해 놓고 아이와 함께 지켜나가는 삶 속에서의 가르침이 시행 되어야 하겠습니다.
즐거움이라는 것을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과 함께 할 때 얻어지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싶습니다. 자연 속에서 활발하게 뛰어 놀며 생명에 대한 존귀함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작은 생명체 하나라도 귀하게 여길 줄 알게 가르치고 싶습니다. 삶의 목적이 함께 하는 즐거움 속에서 당연히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싶습니다.
이런 교육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겠습니다. 내 아이 이지만 사랑으로 가르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하겠습니다. 부모가 서로 사랑하며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겠습니다.
어떤 부모님의 자녀 교육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어머니는 아이의 지식 욕구를 핸드폰과 컴퓨터로 대신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질문에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서 답변하는 것이 아니라 귀찮게 여기고 아이의 관심을 동영상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서 아이가 얻게 되는 것은 사랑이 없는 지식일 뿐입니다. 게임에 나오는 잔인한 폭행 영상 앞에서 아이가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허접하기만 한 오락물에서 아이가 배울 수 있는 것은 기회주의적인 약삭빠른 수단뿐입니다. 이러한 교육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들과의 관계는 부모님들의 한숨과 아이들의 원망뿐이라는 것을 인식하여야 합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이며 다음세대들인 어린 아이들을 위하여 말이나 글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가르치는 부모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보여주는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온 인류에게 모본을 보이신 교육방법인 것입니다.
많은 수의 가정에서 아이가 성장하면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깨지는 것을 봅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상태로 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과 비견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것을 미약하지만 나부터 바꾸어 보는 실험을 하려 합니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치고, 몸으로 보여주는 교육을 통하여 다음세대들에게 진정으로 살만한 세상은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니요, 서로 존중해 주는 배려를 통하여 돕고 도움 받는 그러한 삶이 행복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진정 엄청난 충격 앞에서 다음세대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여는 아침입니다.
우종필 안수집사(풍성한 알곡교회)
icn05033@empa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