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 교육 칼럼
“함께라야 행복합니다”
조용히 묵상하며 나는 언제 누구와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했었나 생각해 보세요. 또 지금 내 아이는 누구와 함께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할까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세상의 첫 사람 아담을 당신 닮은 형상으로 만들어 생기를 불어 넣으신 후에 혼자 있는 아담을 보며 생각 하셨을 것입니다. 모든 만물은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지만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을 보시기에 좋아 보이지 않으셨기 때문에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셔서 하와를 만들어 돕는 배필로 두시고 보시기에 좋아하셨던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알고 쓰고 있는 사람인 (人)자는 중국의 문자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 人자는 혼자 있으면 쓰러질 수 있기 때문에 서로 의지하라고 하여 그렇게 쓴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로 의지하라고 하는 의미가 있다고 하는 것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내용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아마도 중국인도 모두가 노아의 후손으로 성경말씀이 적혀있는 책은 없었으나 조상들로부터 입으로 전해져 온 하나님의 말씀에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합니다.
우리들은 항상 누군가와 함께 있게 됩니다. 어려서는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과 언제나 함께였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형제들, 자매들, 등 또한 동네 어른들과 먼 친척들과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과 선생님들 수 많은 사람들과 만남과 헤어짐을 지속하면서 이제까지 살아오고 있는 것이지요.
정상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항상 누군가와 함께 있으며 생활해 나아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지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물며 나쁜 짓을 하며 살아가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도 혼자서는 용기도 나지 않고 무서워서 그 나쁜 일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누군가와 함께 모의하고 서로 의지하여 도둑질도 하고 선한 사람들을 사기치기도 하는 것이랍니다.
이러한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들은 언제나 누구와 함께 있어야 마음에 평안을 얻고 그로 인해서 행복해 질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누가 누구일까요? 아이들에게는 그 누가 바로 부모님들인 것입니다. 아이가 부모님과 함께 일 때 가장 행복한 것은 태어나서 말도 못하는 어린 아이들이 그 부모의 품에서 평안을 얻는 것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입니다.
일전에 한국에서 기사화된 내용 중에 한국의 가정에서 아이들이 그 부모와 함께 대화하는 시간이 평균적으로 일일 5분을 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대화하는 시간이 이렇다면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수록 아이들은 좀 더 창의적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이론에는 너무 미약한 것이 아닐까요? 부모와 함께 함으로 자녀들에게 심리적인 안정이 만들어지고 그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지혜(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지혜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기술을 갖추는 능력이라고 합니다.)의 변화가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깨달아 가는 과정에서(이 과정을 우리는 공부라고 합니다.) 그렇지 못한 아이들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고 합니다. 내 아이와 함께 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열심히 하고 있으면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의 능력으로 그 일들을 어깨너머로 다 배운다고 합니다. 더욱이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아이들과는 다르게 하나를 깨달으면 열을 함께 깨닫는다고 하지요.
이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어떻게 하던지 많이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함께하는 시간 동안에 아이들이 참 안정과 참 평안을 느끼도록 하려면 지시하고 명령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자유의지를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아이들이 요구하는 새롭고 모험적인 실험들이 세상의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더라도 부모님들에게만은 강하게 구하면 가능해 진다는 원리를 터득하게 하는 것으로 아이가 부모를 더욱 더 좋아하게 되고 따르게 되고 평안함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부모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아이들은 절대로 비정상적으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 부모님들께서는 무엇인가를 함께 하셔야 했을 것입니다. 요리를 함께 한다거나 아니면 종이접기를 하거나 거실에서 씨름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자전거를 타거나 썰매를 함께 만들기도 하여야 하실 것 입니다. 연을 만들고, 썰매를 만들고 바람개비를 만들어 함께 놀았던 기억으로 아이들은 좀 더 발전시킨 모양으로 스스로 만들어 놀 줄 아는 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학습이며 창의교육이 되는 것인 줄을 많은 부모님들이 모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농,공,상 이란 말을 들어본 기억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우리나라 이조 500년 사를 그르치게 만든 기술자들을 무시하는 풍조였지요. 글을 읽는 선비들은 지위가 높았으며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천한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부모들이 그 좋은 기술들을 자녀들에게 가르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현대에 와서 생각하면 일본의 가족기업들이 성공을 하고 경제적으로 부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을 보며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가족들이 무엇인가를 정성을 들여 함께 하고 있다면 어린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우리에게 주신 지혜 즉 창의적 기술로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보고 배우는 어깨너머 교육이 가능해 집니다. 함께 하지만 강압적으로 가르치지 않으면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방식으로 보고 따르며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의 생각주머니는 스스로 커지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신 하나님 말씀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서로가 항상 함께 하라고 가르치시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아무런 준비가 없더라도 함께 여행을 떠난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사랑하는 부부가 조용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입니까. 우리 어른들은 모두 경험을 했기 때문에 알고 계십니다.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좋은 것인지를. 함께 할 때 우리 몸 안에서 좋은 에너지가 발생되고 그 힘으로 세상을 발전 시킨다는 사실을. 우리 주변에 외롭게 홀로 지내는 아이들이나 노인들을 되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가까이는 우리 가족 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영혼이 있는가 확인해야 하구요, 넓게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그러한 환경에 방치된 영혼(독거노인이나 결손가정의 아이들)이 있는가 살펴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와 함께하며 참 평안과 행복을 알게 된 우리 아이가 자라면서 함께 해야 하는 또 다른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야 더불어 함께 하는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우리 어른들이 부모가 되면서 잘못 알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아이들에게 많은 지식을 넣어 주어야(주입식 교육) 우리 아이들이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이 험악한 세상을 이겨내고 살아가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어른들은 절대 맞출 수 없는 아이들의 적절치 못한 학습 타이밍에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하면 아이들은 배우지 않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억지로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가르치십니다. 마주서서 가르치지 말고 그냥 최선을 다하여 정성 들여 꼭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으면 아이들은 하나님 주신 창의적인 지혜로 스스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맘 문을 연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고 자라난 창의적인 발상으로 생각 주머니들이 커지게 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우리가 사는 이세상도 좀 더 아름다워 지리라 생각합니다.
우종필(아름다운교회 안수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