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라에서 들려주는 교육칼럼
가족 기념일
A라는 분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목에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꽃다발도 놓여져 있었습니다. 누군가 교통사고로 죽음을 당한 것 같았습니다. 그 십자가를 보는 순간, 온 몸이 오싹해졌습니다. 이상하다 여기면서 다음 날도 그 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어제와 같은 섬찟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서움이 다가왔습니다. 아마 교통사고로 죽은 혼령이 자기에게 나타나는 것인 것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곳을 지날 때 마다 그 섬찟한 느낌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 길로 가야 하야 하나 아니면 돌아서 가야 하나 하는 그런 갈등이 있는 가운데 하루는 자전거에서 내려서 그 십자가 앞으로 가 보았습니다.
한 청년의 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태어나고 자라 청년이 되기까지 그를 사랑하고 키우던 부모 생각이 났습니다. 함께 친하게 지내며 인생의 고민을 나누던 친구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청년의 죽음에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부모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그 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이제는 더 이상 오싹한 기분이 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억울하게 죽은 혼령의 혼을 달래 주어서 더 이상 자기에게 오지 않는 것일까요?
그는 생각하기를 죽음, 죄와 어두움, 귀신 이야기, 이런 것이 우리를 두렵게 하지만, 그 사건 속에서 그들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다면, 불쌍하다고 여기는 긍휼이 있다면, 그 긍휼이 어두운 마음을 모두 물리치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교통사고로 죽은 청년을 기억하는 가족들은 그 슬픈 날이 되면 이곳에 와서 꽃을 두고 갈 것입니다.
길가에 놓인 십자가와 잊혀져 가는 그를 기억하고 사랑하며 놓아두고 갔을 꽃들에는, 그들이 지켜가는 기념일에는 사랑과 긍휼이 함께 놓여 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B라는 분의 아들에게 매우 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아들과 종교가 달랐지만, 기독교와 모슬렘으로 다른 신앙이었지만, 어느 누구와도 나누지 못하는 마음의 깊은 고민도 나눌 수 있는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는 매우 똑똑하고 멋지고 남을 배려하는 깊은 마음이 있었지만, 존재적 불안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내가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했습니다. 실제로 죽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할 때에도 그 아들은 충고하고 말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를 접하게 됩니다. 그 전날에도 만나고 같이 놀러가기도 하고 쇼핑도 함께 하던 친구였는데, 그렇게 혼자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갔습니다.
‘죽고 싶다는 말을 내게만 해 주었는데…’
그 아들은 친구의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사랑하는 친구를 잃은 아픔에 크게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너의 책임이 아니야’ 라고 위로도 하기도 하고 ‘너무 슬픔에 빠지면 너 할 일도 잘 못하게 된다’고 빨리 잊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B 라는 분은 아들의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던 그 날을 가정의 기념일로 삼기로 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으면 그 길을 갈 수 밖에 없었을까? ‘
아무리 마음을 나누어도 함께 나눌 수 없는 자리를 가진 인간인 것을, 고독과 불안을 존재양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인간임을 잊지 말자고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나던 날을 가족의 기념일로 삼기로 하였습니다.
자살한 자에게 돌을 던지는 종교인에서 존재적 불안에서 고통하는 세상 사람들의 눈물과 아픔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자로 다시 태어난 그 아들의 거듭난 생일날로 여기기로 하였습니다.
생일날은 온 가족이 모여서 그의 태어남을 축하하는 기념일입니다. 친구를 잃은 그 깊은 슬픔을 통해서 세상의 아픔을 함께 품을 수 있는 마음이 태어났습니다. 그 마음을 가진 새로운 사람이 되었으니 이 날은 거듭난 기념일이 됩니다. 그러니 생일처럼 기념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아들이 세상을 향한 치유자로 다시 태어난 생일날로 기념하였다는 말을 들으면서 내게도 기억되는 일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별로 친하지 않았지만, 나를 따라 교회에 온 반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교회의 다정한 친교와 사귐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그에게 다가와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말하는 여학생의 친절한 말에 마음을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가 발견한 교회의 따뜻함과 함께 그는 나와 급속하게 친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집으로 초대하고 교제하게 되었는데, 그 집의 분위기는 너무도 차갑고 냉냉했습니다. 굳어있는 모든 가족들의 얼굴들…
친구는 다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사랑이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그런 가족 속에서 살아왔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 경험해 본 친절함과 다정함에 빠져 버린 그는 교회에서 그를 따뜻하게 대해 주었던 한 여학생을 너무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학생을 따라 다니기 시작하고 심지어 그 집 앞에서 오랫동안 머물다가 가곤 했습니다. 교회적인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안된다고, 교회는 원래 그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이지, 개인적인 사랑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그 친구는 자기 행동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 여학생을 보호하려는 교회친구들의 노골적인 태도가 표현이 되고, 그런 가운데 그 친구는 어느 날, 가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두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그 친구가 일하던 공사장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고압선에 자신의 몸을 던졌다고 합니다. 가족 어느 누구에게도 웃음을 찾아 볼 수 없던 곳에서 자라왔던 그를 알고 있는 나는 교회에서조차 그를 받아줄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웠습니다.
그의 자살 소식을 들은 지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 친구가 사랑했던 그 여학생이 나에게 물었습니다. ‘그 친구가 죽은 것이 나 때문인가요?’
그 친구의 죽음이 그 여학생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여학생은 너무 많은 시달림과 오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가출과 자살 속에는 이루지 못한 사랑이 있었던 것은 분명했습니다. 내가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 그래요! 당신 때문이예요!’
사랑의 온기라고는 찾을 수 없는 가정에서 자라온 친구를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는 교회에 대한 반감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그 아름다운 여학생 마음에 못을 박고 말았습니다. 너무도 친절하고 따뜻해서 우리 모두의 여왕이었던 자매였는데, 그렇게 말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더 바보스러운 것은 그 말을 수백 번도 더 후회했지만, 고등학교 시절 이후로 십년은 더 넘게 흘렀지만, ‘내가 그 때 그렇게 말해서 미안하다’고 ‘너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하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아름다운 여학생은 내가 준 마음의 못 때문인지 모르지만, 젊은 나이로 10년 전에 병으로 천국으로 갔습니다. 함께 자라온 교회 친구 중에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더 바보스러운 것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 친구의 아픔을 까맣게 잊고 있는 내 모습이었습니다.
이 세상은 이렇게 아픈데 왜 나만은 이 세상이 천국인지! 우리의 자녀들은 집으로 돌아올 때 마다 세상의 아픈 이야기를 가득 담아 오는데, 부모의 마음은 이 아픈 마음들을 이토록 빨리 지우려고 하는지!
이제 가족 기념일을 만들어봅시다. 우리의 자녀들의 마음에 세워진 십자가와 꽃들이 놓인 자리에 가서, 그 죽음의 슬픈 이야기가 있는 곳에 가서 함께 울 수 있는 가족기념일을 만들어봅시다. 그 아픔을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 부모가 놓아두는 꽃은 죽음과 슬픔이 있는 세상을 천국의 화원으로 바꾸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아프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자녀들이 볼 수 있게 마음의 창을 열어주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새롭게 만드는 가족 기념일은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축하 받는 생일날이 아니라, 자녀들이 치유자로, 사명자로 거듭나게 하는 날이 되게 할 것입니다.
캔버라에서 시드니로 가는 길에도 교통사고로 죽은 분들 때문인지 십자가와 꽃들이 곳곳에 놓여져 있습니다. 그것을 볼 때 마다 그렇게 죽어 내 곁을 떠난 내 친구를 기억하게 해 달라고, 내 친구가 아파했던 그 아픔을 나도 아파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세상의 아픔을 내 가슴에 품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새로운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하는, 그런 기도문을 올려 드리는 기념일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김광호 목사(캔버라한인장로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