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성직자 · 인구통계학자 · 정치경제학자로 대표적 고전경제학자,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 (Thomas Robert Malthus, 1766 ~ 1834)
토머스 맬서스(1766년 2월 14일 ~ 1834년 12월 23일)는 영국의 성직자이며, 인구통계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이다. 고전경제학의 대표적인 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영국 왕립 학회 회원이었다. 인구학에 대한 이론으로도 유명하다. 오늘날 그는 토머스 맬서스로 불리고 있으나, 그는 생전에 로버트로 불리기를 원했다.

–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 (Thomas Robert Malthus)
.출생: 1766년 2월 13일, Westcott, United Kingdom
.사망: 1834년 12월 23일, Bath, United Kingdom
.자녀: Lucy Malthus, Emily Malthus, Henry Malthus
.학력: Jesus College, University of Cambridge, University of Cambridge, Wallington Academy

○ 생애 및 활동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는 영국 서리주 길드포드에서 대니얼 맬서스와 헨리에타 맬서스 사이에서 8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부유했으며 아버지 대니얼은 데이비드 흄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으며 장 자크 루소와도 알고 지냈다. 토머스 맬서스는 집에서 기초적인 교육을 받은 후, 1784년 워링턴에 있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지저스 컬리지로 진학하였다.
대학에서 그는 라틴어, 그리스어, 영어 독법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였으나 주된 연구분야는 수학이었다.
맬서스는 1791년 학위를 수여 받았고 2년 뒤 전임 교수가 되었으며, 1797년 성공회의 성직자로 서품되었다.
앨버리에서 부제가 되었으며, 재임중에 ‘인구론’을 발표하였다.
맬서스는 1804년 그의 종질인 헤리어트 에커설과 결혼하였으며 둘 사이에 세명의 자식을 보았다.
1805년 맬서스는 헤일리 베리 동인도대학의 영국 수석 교수로 부임하였다.
1818년에는 영국 왕립 학회 회원이 되었다.
한편, 맬서스는 언청이를 치료한 1833년이 되어서야 자신의 초상화를 그렸다. 언청이는 집안 내력이었다.
토머스 맬서스는 1834년 사망하였으며 바스 대성당에 묻혔다.

○ 인구 이론
맬서스는 1798년 〈인구의 원리가 미래의 사회 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소론 – 고드윈, 콩도르세, 그리고 그 외 작가들에 대한 고찰을 포함하여(영어 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 as It Affects the Future Improvement of Society, with Remarks on the Speculations of M.Godwin, M.Condorcet,and Other Writers)〉의 초판을 익명으로 출간하였으며 1826년까지 6번의 개정판을 출간하였다. 매 개정판에는 새로운 소재, 당시 세계각국의 인구통계, 비판에 대한 대응, 자신의 입장 변화 등을 담아 논문을 보강하였다.
맬서스는 역사 속의 모든 인구 증가가 결국 빈곤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인구의 증가가 식량과 같은 자원의 증가보다 급격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주장하였다. 맬서스의 인구 성장에 대한 가설은 아래와 같다.(논문의 1798년 판)
1. 생존은 인구 규모에 의해 강한 제약을 받는다.
2. 생존 수단이 증가할 때 인구도 증가한다.
3. 인구 증가의 압력은 생산력의 증가를 필요로 한다.
4. 생산력의 증대는 더 큰 인구 성장을 기대하게 한다.
5. 생산력의 증대가 이러한 인구 성장의 필요 정도를 지속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인구 성장의 수용력은 한계에 봉착한다.
6. 성행위, 노동, 아이 등을 위한 개인의 비용/수익이 인구의 증가 또는 감소를 결정한다.
7. 인구가 생존 가능한 규모를 초과하면
8. 자연은 사회 문화적인 잉여(잉여 인구)에 대해 특정한 효과를 부과하게 된다. – 맬서스는 이러한 특정한 효과의 예시로 빈곤, 악, 곤경 등을 들었다.
그는 인구의 자연 증가는 기하급수적인데, 식량의 생산은 산술급수적이므로, 인간의 빈곤은 자연 법칙의 결과라 하고, 이것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합리화하여 사회주의적 사상에 반격을 가하였다.
또 그의 <경제학 원리>는 리카도에 반대하여 부·노동·가치·차액 지대·공황 등에 관한 자기 주장을 서술한 것인데, 전적으로 지주 및 자본가를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 영향
맬서스의 인구 이론은 당대 뿐 아니라 후세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야에 매우 강한 영향을 주었다. 과학에서는 찰스 다윈, 알프레드 월리스등의 진화론 학자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78년 마이클 하트가 발간한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맬서스는 80위로 소개되고 있다.
맬서스는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에 대해 과잉이란 표현으로 개념화하였다. 그의 이론은 당대에는 종종 놀림거리로 취급되었으나, 오늘날에는 후세의 대공황과 케인즈의 등장을 예견한 것이란 평가를 받는다.
맬서스 이전의 경제 비평가들은 높은 출산율을 긍정적으로만 평가했는데, 인구의 증가는 노동 인구와 경제활동 인구의 증가로 이어져 경제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맬서스는 인구 증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였으며, 이로 인해 여전히 높은 출산율이 총생산 증가에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제학자조차 급격한 출생률 증가는 수용가능량 당 생산량의 감소를 가져온다는 것에 동의하게 하였다. 데이비드 리카르도(맬서스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나 앨프레드 마셜은 맬서스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맬서스주의의 영향력은 정치로 확대되어 당시 영국 총리였던 윌리엄 피트로 하여금 빈자법에 의한 빈자의 지원을 중단하게 하였으며 휘그당은 맬서스의 저작으로 인해 토리당의 온정주의와 결별하고 1834년의 빈민법 개정을 주도하게 한다. 또한 맬서스의 인구 이론은 1801년 영국 최초의 근대적 인구 조사가 실시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 비판
– 당대의 비판
1820년 윌리엄 고드윈은 맬서스의 인구 이론을 비판하기 위해 《인구에 대하여》를 저술하였다. 존 스튜어트 밀, 나소 윌리엄 시니어와 같은 경제학자들, 로버트 오웬과 같은 산업가, 윌리엄 헤즐리트와 같은 논객, 윌리엄 코베트와 같은 윤리학자 등도 맬서스의 이론에 비판적이었다.
.마르크스주의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9세기 중엽 그들의 공동저작들을 통해 맬서스의 이론을 비판하였다. 마르크스의 입장에서 보면 맬서스가 주장하는 생산 수단 상의 인구 압박의 문제는 실은 인구에 대한 생산 수단의 압박일 뿐 이었다. 즉,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는 값싼 노동력을 지속적으로 얻기 위해 실업상태에 있는 예비 노동자군을 반드시 필요로하며 맬서스가 말하는 과잉 인구란 실은 자본주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상대적 과잉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생물학
생물학자 찰스 다윈 (Charles Darwin, 1809∼1882)이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 1766∼1834)의 『인구론』(Essay on the Principles Population, 1798년 출판)을 읽고,(다윈 자신의 말에 의하면) ‘흥미삼아’ 읽은 이 책의 내용이 다윈이 직면하고 있던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했다. 인간사회의 치열해져 가는 생존경쟁에서 이기고 환경에 잘 적응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는 맬서스의 이야기는 다윈으로 하여금 ‘경쟁’의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해 주었다. 곧, 이 같은 ‘경쟁’이 어떤 종의 여러 개체 중에서 환경에 잘 적응하는 성질을 가진 것만이 살아 남을 수 있도록 하는 선택의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면 그 같은 성질을 가진 개체들만이 살아 남아서 종의 성질이 그 같은 방향으로 변화하도록 ‘선택’할 것이다. 또한 다윈은 『인구론』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이라는 하나의 종 안에서의 이 같은 ‘경쟁’을 같은 지역내의 여러 종들간의 경쟁으로 확장해서, 적응의 대상이 되는 환경에 한 종과 경쟁하고 있는 주위의 다른 종들도 포함되도록 했다. 기후, 풍토 등의 물리적 환경이 똑같은 갈라파고스군도의 서로 다른 섬들에서의 각각 다른 동식물 분포는 이 같은 종들간의 경쟁에 의해 설명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 진화의 메커니즘이라는 다윈의 이론의 핵심이 형성되었다.
로널드 피셔는 그의 책 《자연 선택의 유전학》에서 맬서스의 이론이 실제 자연 선택과 어긋남을 지적하였다.
– 낙관론
19세기의 경제학자들 중 일부는 노동의 분업과 특화 및 자본 투자의 증가와 여러 요인들로 인해 맬서스의 경고는 기우에 그칠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기술의 진보와 자본 설비의 증대가 없다 하더라도 노동력 공급의 증가는 수확 체감의 법칙을 극복하고 생산력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 확신하였다.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다음과 같은 말로 맬서스의 주장을 반박하였다.
“제이호크(매의 일종)와 사람은 둘 다 닭을 먹는다. 제이호크가 닭을 잡아 먹으면 닭의 수는 줄어들 뿐이지만, 사람들이 닭을 먹을 때는 닭은 증가한다.”

○ 대표 저서 ‘인구론‘
‘인구론’ (人口論, 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은 경제학책이며 영국 고전학파 경제학자 토마스 로버트 맬서스의 저서이다. 초판은 1798년에 ‘인구의 원리에 관한 일론 (一論), 그것이 장래의 사회개량에 미치는 영향을 G.W.고드윈 · M.콩도르세 그리고 그 밖의 저작가들의 사색에 언급하며 논함’ 이라는 제목으로 익명으로 출판하였다.
– 인구론의 논평
1882년, 구스타프 콘은 멜서스가 익명으로 출간한 ‘인구론’을 “지금까지 모든 국가 경제에 기반이 되는 중요한 자연법”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반해 독일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베르너 좀바르트는 1938년 자신의 저서 ‘정신과학으로서의 인류학’에서 멜서스의 ‘인구론’을 “세계의 문헌중 가장 멍청한 책”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맬서스의 인구 이론은 당대 뿐 아니라 후세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야에 매우 강한 영향을 주었다. 1978년 마이클 하트가 발간한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맬서스는 80위로 소개되고 있다. 맬서스는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에 대해 ‘과잉’이란 표현으로 개념화하였다. 그의 이론은 당대에는 종종 놀림거리로 취급되었으나, 오늘날에는 후세의 대공황과 케인즈의 등장을 예견한 것이란 평가를 받는다.
– 인구론의 내용
멜서스는 논리적 연역법으로 볼 때 논쟁의 여지가 없고 토속적인 3가지 전제에서 도출한 정치적 추론들을 ‘인구론’에 서술했다. 첫 번째 전제는 인간이 생산하는 생계 수단인 식량은 산술급수적 성장 법칙을 따른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식량은 동일한 시간안에 동일한 양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백분율로 계산하면 시간당 증가율이 감소함을 의미한다. 두 번째 전제는 이에 비해 인구는 기하급수적 성장 법칙을 따른 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자 계산 방법인 복리처럼 같은 시간 내, 같은 성장률이라 할지라도 기본이 되는 인구수가 달라지기 때문에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다. 세 번째 전제는 노동자 계층이나 하위 계층 사람들 대다수는 물질적인 생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출산율을 높인다는 것이다.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면 어느 시점에서부터는 식량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인구수가 식량의 양을 초과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래 서구 자본주의 사회는 맬서스의 예측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 왔다. 식량생산이나 인구 모두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으며, 1인당 소득도 급속도로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서구 선진국 사회는 식량의 걱정 없이 성욕을 마음껏 충족시킬 수 있게 되었다. 맬서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삼은 고전경제학은 자본주의 미래에 대하여 무엇 하나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가장 빈번히 나오는 지적 사항은 맬서스를 비롯한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기술진보의 위력을 과소평가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산업혁명 이래 인류의 기술진보는 눈부시도록 빠르게 이루어졌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 불균형의 심화
멜더스의 인구론은 이 책에서 우려하는 불균형의 원리에서처럼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직간접적으로 예상했으며 이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헌으로 평가받는다. 경제학자와 같은 전문가들은 물가상승과 섬경제 (Island economic)를 예시로 화폐경제의 문제점과 한계를 지적하기도 하며 불안정하게 이윤추구로만 발전해온 기술의 환경파괴나 소득 불균형을 언급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복지사회와 환경보호 그리고 소득재분재와 같은 긍정적인 면을 모색할 각성의 기회를 선구적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시사하는바가 크다고 여겨지고있다.

– ‘맬서스 트랩’ (Malthusian Trap) 이론
인구-사회 발전 이론으로 맬서스 (Thomas R. Malthus, 1766 ~ 1834)가 저서 ‘인구론’에서 주장한 사회 이론이다. 그는 후생은 산술급수 (arithmetic) 적으로 증가하나 인구는 기하급수 (geometric) 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인구 증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복리후생을 사회 구성원에게 충분히 제공할 수 없는 사태가 온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념은 근대 국가의 인구 정책에 직, 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대표적인 정책이 가구당 자녀의 수를 제한하는 산아제한 정책이다.이는 저출산이라는 결과를 가져오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산업 혁명 이후 식량 생산량이 급속히 증가하고 경제 공학이 발달하면서 이 이론은 많은 비판을 받게 되었으며, 특히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및 생물학계의 각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공격받고 사장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학계 일각에서는 이 이론이 유효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맬서스 트랩은 개괄하면 다음과 같은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기술 발달 → 임금/식량생산 증가 & 위생 여건 개선 → 인구 증가 → 위생 악화/질병/전쟁 → 인구 감소 → 임금/식량생산 증가 & 위생 여건 개선 → 인구 증가 → …
삶의 질은 꾸준히 최저수준에서 머무르고 인구는 계속 늘어나며 이 사이클은 무한 반복되어 “덫” (trap)이라고 한다.
맬서스 트랩의 이론적 근거는 수확 체감 법칙이다. 한정된 토지에 노동력을 증가시켜도 현재 농업 기술로는 토지 당 단위 생산물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인구는 정체된다는 것이다. 즉, 인류의 식량은 1, 2, 3, 4 식으로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인류는 1, 2, 4, 8, 16 등의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므로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인류가 커다란 재앙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말이 당시에도 충격적이었던 만큼 만일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미 인류가 끝장이 나 있었어야 했는데 왜 당시까지도 인류가 유지되고 있느냐는 반론에, 맬서스는 질병, 기근, 전쟁 등으로 여전히 높은 사망률이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의 일례로 자주 인용되는 것이 그 유명한 아일랜드 대기근이 있다. 흑사병 창궐 후 노동력 부족으로 노동자의 임금이 확 올랐다는 사실 역시 실례가 되며 중국의 인구증가 추이를 봐도, “안정된 왕조에서 인구가 늘어나다가 토지의 인구부양 한계가 닥침 → 민심악화 → 내전 → 인구수가 줄어들어서 정권이 안정됨.”이 반복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여파
이런 이론의 기반에서 맬서스는 모두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저소득층의 인구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능하면 결혼이나 출산을 늦추거나 안 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고, 적극적 방법으로는 전쟁, 기아 등으로 인한 인구감소도 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그에 감명을 받은 당시 영국 총리는 실제로 빈민법을 개정해서 빈민복지를 없애버렸다.
이러한 맬서스의 주장은 이론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당장 도덕적으로 큰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이론을 만들 때 쓴 인구증가 표본이 당시 유럽지역에서 인구를 마구 빨아들이던 미국의 통계라는 점 때문에 표본 신뢰성도 떨어진다. 물론 맬서스의 진짜 의도는 저소득층도 숫자가 줄어야 한명 한명이 더 많은 파이를 얻으니 서로 윈윈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1940년대 후반~60년대 주요 강대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이 전후 베이비붐으로 인구가 크게 증가했고 더군다나 새로 독립한 개발도상국들의 경우 기본 출산율이 5명을 넘어서는 나라들이 수두룩한데다가 의료수준이 높아져 영유아사망률이 급감하고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바람에 전 세계적으로 인구가 급증하자 맬서스의 주장은 세계 각지에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아주 뜬금없게도, 이 이론은 찰스 로버트 다윈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다윈은 새로운 종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출현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메커니즘을 연구했는데, 종의 기원 출판 20년 전인 1838년에 맬서스의 ‘인구론’을 읽고 답을 발견했다. 즉 “후손들은 제한된 양의 식량을 두고 투쟁할 것이다”는 맬서스의 이론이 “자연선택설”로 연결됐다.
.한계점
첫째, 기술 혁신의 배제
맬서스 트랩은 경제를 생물학적인 측면으로만 접근하고 기술 혁신, 제도적 요인이라는 요소를 완전히 배제해서 오류가 나왔다.
기술 혁신으로 토지 당 단위 생산물이 늘면 훨씬 더 적은 노동 인구로 더 많은 농업 생산이 가능하니 맬서스 트랩이 깨진다. 단적인 예로 산업 혁명 등으로 인구를 받칠 혁신적인 기술이 나오면, 그에 따라 인류가 수용가능한 총 인구수가 맞춰서 늘어나 단순한 인구 증가/생산량 증가의 2개 요소로는 완벽한 한계 수급 곡선을 도출해 낼 수 없다. 당장 그는 프리츠 하버가 지구 대기의 78%를 차지하는 질소를 이용한 질소 고정법 (암모니아 합성)으로 화학비료를 대량으로 찍어 내는 기술을 개발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맬서스의 모국인 영국은 물론이고 사회혼란이 극에 달했던 프랑스에서까지 질소고정법으로 인해 몇 년만에 농업생산성이 정확하게 2배 증가했다. 사실 이 이론에 영향을 준 당시 유럽의 기하급수적 인구 증가도 신작물 도입과 품종 개량과 농법 발전 등 기술적 발전에 힘입은 것이었으니, 현대의 농업기술 발달로 인한 식량생산성의 향상을 고려하지 않은 게 이론의 근본적인 실패 원인이었다.
현재 식량은 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복층 구조로 좁은 면적에 여러 작물을 재배할 수도 있고, 수경 재배를 할 수도 있으며, 미생물이나 벌레를 이용한 식량의 생산도 가능하다. 2019년까지 21세기 초반 기준으로는 세계의 식량은 여전히 땅에서, 지구의 70억 인구가 요구하는 수요의 2배 이상 생산하며 수요량을 초과한 식량은 폐기 처분할 정도로 양이 어마어마하다. 이런데도 아프리카 등에서 기아가 생기는 이유는 자본주의 체제의 특성 때문이다. 식량이 잉여생산되는 곳의 대부분은 선진국인데, 기아가 발생하는 후진국보다 인건비가 훨씬 높아서 일인당 구매력이 높다.괜히 굶는 사람 구제한다고 공짜로 내놓으면 농부들이 파산한다.
그리고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환경 파괴를 억제한다.
기술적 관점에서 더 미래까지 고려해서 이야기하면, 미래에는 어떤 식의 기술 혁신이 터질지 모른다. 생산량을 증가하는 방법 중 가시화 된 기술로는 줄기 세포와 연관이 깊은 인공 고기 생산이 있다. 기존 축산업보다 훨씬 좁은 토지에서 생산이 가능하며 동물을 키우는 데 드는 곡물 소비를 줄일 수 있다. 소비량 감소 쪽은 사이보그 기술이 발전하여 사람이 음식물 대신 전기로 에너지를 얻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도 있다.
맬서스 트랩을 고안해 낼 당시에는, 즉 산업 혁명 초기 시대에조차 그 어떤 혁신적인 기술도 이 부분을 해결하지 못했다. 맬서스가 살던 시대 영국은 역사 상 가장 부유한 황금기가 진행 중이었다. 산혁 이전까지는 중산층조차 1년에 한번 새 옷 만들어 입는게 고작이었으나, 멜서스가 자랐을 때는 수 많은 공장에서 증기기관으로 돌린 기계가 어마어마한 양의 면포를 생산했으며, 증기기관차와 철도가 영국 전국토를 연결했다. 그런 시대에조차 식량문제는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맬서스가 살았던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식량은 한번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적이 없었다. 맬서스는 그러한 영토와 식량 생산량, 그리고 부양인구의 한계가 닥치면 사회가 어떤 식으로 굴러가더라는 사이클을 본 것이고, 그 자신이 인지하고 있는 범위 내에서 이론을 작성했다.
둘째, 사회 구조 변화와 문화의 영향 간과
더불어 이 주장이 발표된 시기엔 능력없고 게으르고 가난한 사람들은 도태되고 죽어야는 게 당연하다는 매정한 시절이였다. 하지만 1970~90년대 이후 주요 선진국가들은 피임약의 보급과 가족을 구성해야할 사람들 대다수가 상류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차서 그냥저냥 먹고 살기라도 하려고 활발하게 사회에 진출하는 현상에 뒤따른 결혼 연령의 상승, 더불어 개개인이 소속 사회나 가정, 단체의 목표 보다는 개개인 각자의 개인적 삶의 목표를 더 추구하는 방향으로 사회상이 바뀌어 아이 낳는 것을 꺼리는 풍토가 생기자 인구대체수준 밑으로 급감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중국,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주요 개도국들도 산업이 발달하고 의료와 복지 수준이 올라가자 아이를 많이 낳을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이들 개도국의 출산율 하락도 가시적으로 관찰된다. 다시말해 인구론의 기본전제인 생활수준이 나아지면 출산율이 계속 올라간다는 기본 전제부터가 맞지 않는 주장이었고, 결국 이미 가루가 되도록 까였던 맬서스 트랩은 그야말로 입자 단위로 공중분해 되었다. 이는 선진국이나 산아제한을 실시한 나라들 뿐만 아니라 인도, 방글라데시처럼 산아제한을 실시하지 않던 개발도상국에서도 경제 수준이 올라가면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애당초 아프리카를 비롯한 저개발 국가나 빈민촌에서 출산율이 높은 것은 종교의 영향과 낮은 의료 수준으로 인한 높은 사망률, 그리고 공작 기계 대신 인력을 쓸 수밖에 없는 낮은 산업 수준, 그리고 인권이 시궁창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하며 산업 사회에서는 기술의 변화가 문화의 변화도 불러오면서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게 됐다. 베이비붐 세대는 그 이전 시대가 인류가 역사 이래 손에 꼽을 정도로 수많은 이들이 죽어나간 시기였던 터라 이에 대한 심리적 반동이 일어났던 특수한 시대였음을 간과한 결과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됐다.
90년대에는 인구의 급속한 증가로 지구가 수용할 수 있는 양에 비해 엄청난 수의 인류가 존재해 2050년대에는 270억 명이 넘는 인류 때문에 식량난이 가중화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UN 인구통계조사로 전세계적으로 인식 변화에 의한 출산율 감소 추세가 발견되자 이 주장을 담은 내용의 책들은 하나 둘 자취를 감추었다. 2000년대 이후로는 현재 출산율로는 2050년대에 200억 명은커녕 100억 명을 돌파하는 것도 어렵다고 할 정도니. 특히 이민을 받을 만한 수준의 충분한 경제력을 갖추지도 못 한 상태에서 벌써부터 저출산이 만성화된 동유럽, 이민받을 경제적 수준은 되나 강한 내셔널리즘으로 인해 이민자 정착이 어려운 동아시아 등은 비상이 걸렸다. 다만 일본처럼 현상이 장기화된 나라에서는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인식이 다시 변하면서 출산율이 서서히 증가하고 있기는 하므로 비관하기는 어렵다.
셋째, 동아시아 고령화의 주범
동북아 지역의 출산율이 산아제한 정책 시행전에 높은 수준 (일본은 1940년대 후반에 4명대, 한국은 1950년대-1960년대 중반에 5-6명대, 중국은 1970년대 당시에 3~5명대)이었기때문에, 산아제한 정책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아프리카 일대의 개발도상국들의 예를 들어 너무 과도한 출산율은 과잉인구를 촉발시키고 국력의 성장을 지체시킨다는 설이 대세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런 의견을 따르는 학자들은 이미 출산율이 인구대체수준 밑으로 떨어져 산아제한 정책이 필요없어졌음에도 정책이 상당기간 지속했으며, 발등에 불이 붙을 지경이 되어서야 출산장려정책을 펴는 등 대응이 너무 늦었다는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넷째, 저소득층, 개발도상국에 대한 비인륜성
가난한 이들에게 위생을 강조하는 것 대신 우리는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습관을 장려해야 하며, 마을의 도로는 더욱 좁게 만들고 집 한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바글거리며 살게 만들어야 하며, 전염병이 다시 돌아오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착지 건설은 건강을 해치기 딱 좋은 늪지대와 같은 곳을 장려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창궐하고 있는 질병에 대한 맞춤형 치료약을 배척해야 한다.
(Instead of recommending cleanliness to the poor, we should encourage contrary habits. In our towns we should make the streets narrower, crowd more people into the houses, and court the return of the plague. In the country we should build our villages near stagnant pools, and particularly encourage settlements in all marshy and unwholesome situations. But above all, we should reprobate specific remedies for ravaging diseases.) – 토머스 맬서스의 저서 인구론(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
맬서스 트랩이 격렬한 논쟁에 휩싸이고 비난받은 데는 물론 그 이론 자체가 지닌 이론으로서의 한계성 (잘못된 논리전개를 통해 도출된 잘못된 이론이라는 점) 외에도 저소득층과 개발도상국에 대한 비인도적인 태도를 들 수 있다. 극단적인 맬서스 트랩의 신봉자들은 기아가 발생하는 저개발국에 대한 지원은 오히려 비극을 연장시키므로, 선진국은 저개발국에 대한 지원을 끊어야 한다는 논리로 흐르게 되었다. 이것이 19세기의 이야기가 아니라 20세기의 미국에서 공공연히 회자되던 이론이었다.
또한 맬서스 트랩은 흑인들이 원래 게으르고 다산이라 빈곤에 허덕이고 못 산다는 편견을 합리화하는 이론으로 쓰이기도 했다. 실제로 맬서스주의자들은 명백한 인종차별적인 태도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들을 경멸하고 공격하였으며, 공공연하게 “개발도상국에서 모든 복지혜택을 중단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인종차별적인 맬서스주의는 사실 다양한 버전이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논지를 펴는 사람들이 많은데, 예를 들어 중국이나 인도가 경제를 발전시키면 지구상의 자원이 모두 고갈되어 지구가 멸망한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이야기의 원조는 인종차별적인 맬서스주의자들이 아프리카나 아시아는 영원히 저개발 상태로 머물러야 한다는 논리였다. 또한 히틀러 일당도 비슷한 논리를 사용하여 한정된 자원을 게르만족의 번영에만 사용하기 위해 동유럽의 슬라브족을 모조리 절멸하고 그 땅을 차지해야한다는 논리를 사용하였다. 순수하게 보이는 경제논리가 인종차별주의와 결합되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예라고 하겠다.
영국 내에서는 제국주의에 정당성을 심어준 이론이기도 한데, 영국의 본토 면적으로는 점점 늘어나는 하층민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어딘가 “외부”로 내보낼 필요성이 있었고 따라서 식민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타났기 때문이다.
맬서스주의자들은 사실 같은 백인이라도 하류층은 사실 뇌에 아무 생각이 없고 그날 번 거 그날 술 마시고 옷 입고 도박해서 다 날리는 계층으로 봤다. 이게 뭐가 문제냐면, 이들 경제학자의 주장은 노동 – 자본 – 축적 – 식민지 팽창, 유럽 각국간의 경쟁에서 우위로 이어지는데 하류층은 소모품 말고는 특별히 쓸 데가 없는 사람이라는 주장.
다섯째, 인구 증가의 원인에 대한 해석의 오류
맬서스 트랩에 대한 결정적인 논박까지는 아니지만, 맬서스가 인구론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분명히 저지른 착오가 있다. ‘인구론’에서 맬서스가 제시한 인구 증가율의 통계 자료 중에는 미국의 인구 증가율 통계도 있었다. 미국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통계를 근거로 맬서스는 ‘인구는 자연적으로 기하 급수적으로 증가한다’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미국의 인구 증가의 원인에는 대규모로 유입되는 이민자의 수도 있음을 간과한 것. 이 이민자의 유입을 무시하고 자연 증가로만 판단한 것이다.
.옹호론과 재평가
위의 의견들은 지속성장이 가능하다는 관점에서 바라본 전망이지만 현실은 인구 증가에 따른 오염 물질 배출로 인한 나날히 증대되는 환경 오염과 지구 온난화로 심해지는 기후변화, 폭증하는 인구와 그에 따라오지 못하는 경제성장과 기술 발전으로 인한 실업, 저소득층의 증가로 인한 양극화 현상 등 낙관적인 19~20세기와는 달리 21세기 들어서는 세계정세 패러다임이 변화함에 따라 시사하는 바가 어느정도 있다.
더군다나, 2010년대에 오면서 중국과 인도의 경제 발전에 따른 엄청난 환경 오염이 널리 알려지자, 자연스레 인구 규모도 맬서스 트랩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후발주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들도 미래에 똑같이 이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이 재평가로 인하여 시민들이 앞장서서 맬서스 트랩을 추종하고 있으며, 줄어들어가고 있는 인류의 인구 수조차 아직도 너무 많고 이런 열악한 세상에 책임도 제대로 지지 못할 거라면 자식을 낳는 것이 잘못이라는 인식인 반출생주의가 널리 퍼지고 저출산 기조가 선진국 계열 국가들에서 일어나게 된다.
과거에는 국가와 국제 기관 측에서 맬서스 트랩을 강요하였고, 시민들이 이에 반발했다고 한다면, 21세기에 들어서는 이 기조가 거꾸로 뒤집혀서 국가와 국제 기관에서 인구 절벽을 걱정하며 출산을 장려하고 있는데, 시민들이 멜서스 트랩을 추종하고 있다.
.맬서스는 정말로 냉혹한 인간이었나?
그러나 맬서스 본인이 그렇게 냉혹한 인간은 아니었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간혹 실제 의도는 그게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런 취급받는 경제학자들의 사례는 맬서스 외에도 여럿 있다. 사회운동가 마가렛 생어 역시 임신한 빈곤 여성이 겪는 비극을 막기 위해 산아제한 운동에 매진했지만 우생학이라고 비난받은 바 있다.
사실 맬서스 트랩이 나온 직접적인 정치적 배경을 본다면 빈민층에 대한 지원을 하려는 영국 정계에 대해 그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를 하면서 나왔다. 맬서스의 주장은 저소득층을 죽여버리자는 것보단 저소득층의 수를 일정 규모로 통제해서 다음 세대의 저소득층 한 사람 한 사람이 받는 혜택을 늘리자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맬서스의 가르침은 주류 경제학자들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계열로부터도 부정당했다.
본격적으로 호의적인 평가가 내려지게 된 시점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재평가하면서 나타났다. 그래도, 미래의 하류층을 위해 현재의 하류층을 굶어 죽게 내버려 둬야 한다는 따위의 주장을 긍정한 게 아니라, 가령 유사시에는 정부가 지출을 늘려서 개입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한 바가 발굴되어 재평가가 된 것이다.
이 외에도 맬서스의 학문적 업적이 또 있는데, 위에서 나온 정부개입을 학문적으로 정당화하는 주장을 하면서 마르크스나 케인스 등보다 앞서서 경기침체의 개념에 대한 설명을 최초로 시도했다는 것이다. 이 논문에 따르면 과소소비, 공급과잉이 불황으로 이어진다는 류의 주장을 맬서스가 했다고 볼 수 있다.
○ 대표 저서 ‘인구론‘
‘인구론’ (人口論, 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은 경제학책이며 영국 고전학파 경제학자 토마스 로버트 맬서스의 저서이다. 초판은 1798년에 ‘인구의 원리에 관한 일론 (一論), 그것이 장래의 사회개량에 미치는 영향을 G.W.고드윈 · M.콩도르세 그리고 그 밖의 저작가들의 사색에 언급하며 논함’ 이라는 제목으로 익명으로 출판하였다.
– 인구론의 논평
1882년, 구스타프 콘은 멜서스가 익명으로 출간한 ‘인구론’을 “지금까지 모든 국가 경제에 기반이 되는 중요한 자연법”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반해 독일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베르너 좀바르트는 1938년 자신의 저서 ‘정신과학으로서의 인류학’에서 멜서스의 ‘인구론’을 “세계의 문헌중 가장 멍청한 책”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맬서스의 인구 이론은 당대 뿐 아니라 후세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야에 매우 강한 영향을 주었다. 1978년 마이클 하트가 발간한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맬서스는 80위로 소개되고 있다. 맬서스는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에 대해 ‘과잉’이란 표현으로 개념화하였다. 그의 이론은 당대에는 종종 놀림거리로 취급되었으나, 오늘날에는 후세의 대공황과 케인즈의 등장을 예견한 것이란 평가를 받는다.
– 인구론의 내용
멜서스는 논리적 연역법으로 볼 때 논쟁의 여지가 없고 토속적인 3가지 전제에서 도출한 정치적 추론들을 ‘인구론’에 서술했다. 첫 번째 전제는 인간이 생산하는 생계 수단인 식량은 산술급수적 성장 법칙을 따른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식량은 동일한 시간안에 동일한 양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백분율로 계산하면 시간당 증가율이 감소함을 의미한다. 두 번째 전제는 이에 비해 인구는 기하급수적 성장 법칙을 따른 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자 계산 방법인 복리처럼 같은 시간 내, 같은 성장률이라 할지라도 기본이 되는 인구수가 달라지기 때문에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다. 세 번째 전제는 노동자 계층이나 하위 계층 사람들 대다수는 물질적인 생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출산율을 높인다는 것이다.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면 어느 시점에서부터는 식량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인구수가 식량의 양을 초과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래 서구 자본주의 사회는 맬서스의 예측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 왔다. 식량생산이나 인구 모두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으며, 1인당 소득도 급속도로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서구 선진국 사회는 식량의 걱정 없이 성욕을 마음껏 충족시킬 수 있게 되었다. 맬서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삼은 고전경제학은 자본주의 미래에 대하여 무엇 하나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가장 빈번히 나오는 지적 사항은 맬서스를 비롯한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기술진보의 위력을 과소평가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산업혁명 이래 인류의 기술진보는 눈부시도록 빠르게 이루어졌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 불균형의 심화
멜더스의 인구론은 이 책에서 우려하는 불균형의 원리에서처럼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직간접적으로 예상했으며 이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헌으로 평가받는다. 경제학자와 같은 전문가들은 물가상승과 섬경제 (Island economic)를 예시로 화폐경제의 문제점과 한계를 지적하기도 하며 불안정하게 이윤추구로만 발전해온 기술의 환경파괴나 소득 불균형을 언급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복지사회와 환경보호 그리고 소득재분재와 같은 긍정적인 면을 모색할 각성의 기회를 선구적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시사하는바가 크다고 여겨지고있다.
– ‘맬서스 트랩’ (Malthusian Trap) 이론
인구-사회 발전 이론으로 맬서스 (Thomas R. Malthus, 1766 ~ 1834)가 저서 ‘인구론’에서 주장한 사회 이론이다. 그는 후생은 산술급수 (arithmetic) 적으로 증가하나 인구는 기하급수 (geometric) 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인구 증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복리후생을 사회 구성원에게 충분히 제공할 수 없는 사태가 온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념은 근대 국가의 인구 정책에 직, 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대표적인 정책이 가구당 자녀의 수를 제한하는 산아제한 정책이다.이는 저출산이라는 결과를 가져오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산업 혁명 이후 식량 생산량이 급속히 증가하고 경제 공학이 발달하면서 이 이론은 많은 비판을 받게 되었으며, 특히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및 생물학계의 각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공격받고 사장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학계 일각에서는 이 이론이 유효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맬서스 트랩은 개괄하면 다음과 같은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기술 발달 → 임금/식량생산 증가 & 위생 여건 개선 → 인구 증가 → 위생 악화/질병/전쟁 → 인구 감소 → 임금/식량생산 증가 & 위생 여건 개선 → 인구 증가 → …
삶의 질은 꾸준히 최저수준에서 머무르고 인구는 계속 늘어나며 이 사이클은 무한 반복되어 “덫” (trap)이라고 한다.
맬서스 트랩의 이론적 근거는 수확 체감 법칙이다. 한정된 토지에 노동력을 증가시켜도 현재 농업 기술로는 토지 당 단위 생산물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인구는 정체된다는 것이다. 즉, 인류의 식량은 1, 2, 3, 4 식으로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인류는 1, 2, 4, 8, 16 등의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므로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인류가 커다란 재앙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말이 당시에도 충격적이었던 만큼 만일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미 인류가 끝장이 나 있었어야 했는데 왜 당시까지도 인류가 유지되고 있느냐는 반론에, 맬서스는 질병, 기근, 전쟁 등으로 여전히 높은 사망률이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의 일례로 자주 인용되는 것이 그 유명한 아일랜드 대기근이 있다. 흑사병 창궐 후 노동력 부족으로 노동자의 임금이 확 올랐다는 사실 역시 실례가 되며 중국의 인구증가 추이를 봐도, “안정된 왕조에서 인구가 늘어나다가 토지의 인구부양 한계가 닥침 → 민심악화 → 내전 → 인구수가 줄어들어서 정권이 안정됨.”이 반복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여파
이런 이론의 기반에서 맬서스는 모두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저소득층의 인구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능하면 결혼이나 출산을 늦추거나 안 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고, 적극적 방법으로는 전쟁, 기아 등으로 인한 인구감소도 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그에 감명을 받은 당시 영국 총리는 실제로 빈민법을 개정해서 빈민복지를 없애버렸다.
이러한 맬서스의 주장은 이론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당장 도덕적으로 큰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이론을 만들 때 쓴 인구증가 표본이 당시 유럽지역에서 인구를 마구 빨아들이던 미국의 통계라는 점 때문에 표본 신뢰성도 떨어진다. 물론 맬서스의 진짜 의도는 저소득층도 숫자가 줄어야 한명 한명이 더 많은 파이를 얻으니 서로 윈윈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1940년대 후반~60년대 주요 강대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이 전후 베이비붐으로 인구가 크게 증가했고 더군다나 새로 독립한 개발도상국들의 경우 기본 출산율이 5명을 넘어서는 나라들이 수두룩한데다가 의료수준이 높아져 영유아사망률이 급감하고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바람에 전 세계적으로 인구가 급증하자 맬서스의 주장은 세계 각지에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아주 뜬금없게도, 이 이론은 찰스 로버트 다윈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다윈은 새로운 종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출현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메커니즘을 연구했는데, 종의 기원 출판 20년 전인 1838년에 맬서스의 ‘인구론’을 읽고 답을 발견했다. 즉 “후손들은 제한된 양의 식량을 두고 투쟁할 것이다”는 맬서스의 이론이 “자연선택설”로 연결됐다.
.한계점
첫째, 기술 혁신의 배제
맬서스 트랩은 경제를 생물학적인 측면으로만 접근하고 기술 혁신, 제도적 요인이라는 요소를 완전히 배제해서 오류가 나왔다.
기술 혁신으로 토지 당 단위 생산물이 늘면 훨씬 더 적은 노동 인구로 더 많은 농업 생산이 가능하니 맬서스 트랩이 깨진다. 단적인 예로 산업 혁명 등으로 인구를 받칠 혁신적인 기술이 나오면, 그에 따라 인류가 수용가능한 총 인구수가 맞춰서 늘어나 단순한 인구 증가/생산량 증가의 2개 요소로는 완벽한 한계 수급 곡선을 도출해 낼 수 없다. 당장 그는 프리츠 하버가 지구 대기의 78%를 차지하는 질소를 이용한 질소 고정법 (암모니아 합성)으로 화학비료를 대량으로 찍어 내는 기술을 개발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맬서스의 모국인 영국은 물론이고 사회혼란이 극에 달했던 프랑스에서까지 질소고정법으로 인해 몇 년만에 농업생산성이 정확하게 2배 증가했다. 사실 이 이론에 영향을 준 당시 유럽의 기하급수적 인구 증가도 신작물 도입과 품종 개량과 농법 발전 등 기술적 발전에 힘입은 것이었으니, 현대의 농업기술 발달로 인한 식량생산성의 향상을 고려하지 않은 게 이론의 근본적인 실패 원인이었다.
현재 식량은 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복층 구조로 좁은 면적에 여러 작물을 재배할 수도 있고, 수경 재배를 할 수도 있으며, 미생물이나 벌레를 이용한 식량의 생산도 가능하다. 2019년까지 21세기 초반 기준으로는 세계의 식량은 여전히 땅에서, 지구의 70억 인구가 요구하는 수요의 2배 이상 생산하며 수요량을 초과한 식량은 폐기 처분할 정도로 양이 어마어마하다. 이런데도 아프리카 등에서 기아가 생기는 이유는 자본주의 체제의 특성 때문이다. 식량이 잉여생산되는 곳의 대부분은 선진국인데, 기아가 발생하는 후진국보다 인건비가 훨씬 높아서 일인당 구매력이 높다.괜히 굶는 사람 구제한다고 공짜로 내놓으면 농부들이 파산한다.
그리고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환경 파괴를 억제한다.
기술적 관점에서 더 미래까지 고려해서 이야기하면, 미래에는 어떤 식의 기술 혁신이 터질지 모른다. 생산량을 증가하는 방법 중 가시화 된 기술로는 줄기 세포와 연관이 깊은 인공 고기 생산이 있다. 기존 축산업보다 훨씬 좁은 토지에서 생산이 가능하며 동물을 키우는 데 드는 곡물 소비를 줄일 수 있다. 소비량 감소 쪽은 사이보그 기술이 발전하여 사람이 음식물 대신 전기로 에너지를 얻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도 있다.
맬서스 트랩을 고안해 낼 당시에는, 즉 산업 혁명 초기 시대에조차 그 어떤 혁신적인 기술도 이 부분을 해결하지 못했다. 맬서스가 살던 시대 영국은 역사 상 가장 부유한 황금기가 진행 중이었다. 산혁 이전까지는 중산층조차 1년에 한번 새 옷 만들어 입는게 고작이었으나, 멜서스가 자랐을 때는 수 많은 공장에서 증기기관으로 돌린 기계가 어마어마한 양의 면포를 생산했으며, 증기기관차와 철도가 영국 전국토를 연결했다. 그런 시대에조차 식량문제는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맬서스가 살았던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식량은 한번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적이 없었다. 맬서스는 그러한 영토와 식량 생산량, 그리고 부양인구의 한계가 닥치면 사회가 어떤 식으로 굴러가더라는 사이클을 본 것이고, 그 자신이 인지하고 있는 범위 내에서 이론을 작성했다.
둘째, 사회 구조 변화와 문화의 영향 간과
더불어 이 주장이 발표된 시기엔 능력없고 게으르고 가난한 사람들은 도태되고 죽어야는 게 당연하다는 매정한 시절이였다. 하지만 1970~90년대 이후 주요 선진국가들은 피임약의 보급과 가족을 구성해야할 사람들 대다수가 상류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차서 그냥저냥 먹고 살기라도 하려고 활발하게 사회에 진출하는 현상에 뒤따른 결혼 연령의 상승, 더불어 개개인이 소속 사회나 가정, 단체의 목표 보다는 개개인 각자의 개인적 삶의 목표를 더 추구하는 방향으로 사회상이 바뀌어 아이 낳는 것을 꺼리는 풍토가 생기자 인구대체수준 밑으로 급감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중국,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주요 개도국들도 산업이 발달하고 의료와 복지 수준이 올라가자 아이를 많이 낳을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이들 개도국의 출산율 하락도 가시적으로 관찰된다. 다시말해 인구론의 기본전제인 생활수준이 나아지면 출산율이 계속 올라간다는 기본 전제부터가 맞지 않는 주장이었고, 결국 이미 가루가 되도록 까였던 맬서스 트랩은 그야말로 입자 단위로 공중분해 되었다. 이는 선진국이나 산아제한을 실시한 나라들 뿐만 아니라 인도, 방글라데시처럼 산아제한을 실시하지 않던 개발도상국에서도 경제 수준이 올라가면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애당초 아프리카를 비롯한 저개발 국가나 빈민촌에서 출산율이 높은 것은 종교의 영향과 낮은 의료 수준으로 인한 높은 사망률, 그리고 공작 기계 대신 인력을 쓸 수밖에 없는 낮은 산업 수준, 그리고 인권이 시궁창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하며 산업 사회에서는 기술의 변화가 문화의 변화도 불러오면서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게 됐다. 베이비붐 세대는 그 이전 시대가 인류가 역사 이래 손에 꼽을 정도로 수많은 이들이 죽어나간 시기였던 터라 이에 대한 심리적 반동이 일어났던 특수한 시대였음을 간과한 결과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됐다.
90년대에는 인구의 급속한 증가로 지구가 수용할 수 있는 양에 비해 엄청난 수의 인류가 존재해 2050년대에는 270억 명이 넘는 인류 때문에 식량난이 가중화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UN 인구통계조사로 전세계적으로 인식 변화에 의한 출산율 감소 추세가 발견되자 이 주장을 담은 내용의 책들은 하나 둘 자취를 감추었다. 2000년대 이후로는 현재 출산율로는 2050년대에 200억 명은커녕 100억 명을 돌파하는 것도 어렵다고 할 정도니. 특히 이민을 받을 만한 수준의 충분한 경제력을 갖추지도 못 한 상태에서 벌써부터 저출산이 만성화된 동유럽, 이민받을 경제적 수준은 되나 강한 내셔널리즘으로 인해 이민자 정착이 어려운 동아시아 등은 비상이 걸렸다. 다만 일본처럼 현상이 장기화된 나라에서는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인식이 다시 변하면서 출산율이 서서히 증가하고 있기는 하므로 비관하기는 어렵다.
셋째, 동아시아 고령화의 주범
동북아 지역의 출산율이 산아제한 정책 시행전에 높은 수준 (일본은 1940년대 후반에 4명대, 한국은 1950년대-1960년대 중반에 5-6명대, 중국은 1970년대 당시에 3~5명대)이었기때문에, 산아제한 정책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아프리카 일대의 개발도상국들의 예를 들어 너무 과도한 출산율은 과잉인구를 촉발시키고 국력의 성장을 지체시킨다는 설이 대세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런 의견을 따르는 학자들은 이미 출산율이 인구대체수준 밑으로 떨어져 산아제한 정책이 필요없어졌음에도 정책이 상당기간 지속했으며, 발등에 불이 붙을 지경이 되어서야 출산장려정책을 펴는 등 대응이 너무 늦었다는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넷째, 저소득층, 개발도상국에 대한 비인륜성
가난한 이들에게 위생을 강조하는 것 대신 우리는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습관을 장려해야 하며, 마을의 도로는 더욱 좁게 만들고 집 한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바글거리며 살게 만들어야 하며, 전염병이 다시 돌아오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착지 건설은 건강을 해치기 딱 좋은 늪지대와 같은 곳을 장려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창궐하고 있는 질병에 대한 맞춤형 치료약을 배척해야 한다.
(Instead of recommending cleanliness to the poor, we should encourage contrary habits. In our towns we should make the streets narrower, crowd more people into the houses, and court the return of the plague. In the country we should build our villages near stagnant pools, and particularly encourage settlements in all marshy and unwholesome situations. But above all, we should reprobate specific remedies for ravaging diseases.) – 토머스 맬서스의 저서 인구론(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
맬서스 트랩이 격렬한 논쟁에 휩싸이고 비난받은 데는 물론 그 이론 자체가 지닌 이론으로서의 한계성 (잘못된 논리전개를 통해 도출된 잘못된 이론이라는 점) 외에도 저소득층과 개발도상국에 대한 비인도적인 태도를 들 수 있다. 극단적인 맬서스 트랩의 신봉자들은 기아가 발생하는 저개발국에 대한 지원은 오히려 비극을 연장시키므로, 선진국은 저개발국에 대한 지원을 끊어야 한다는 논리로 흐르게 되었다. 이것이 19세기의 이야기가 아니라 20세기의 미국에서 공공연히 회자되던 이론이었다.
또한 맬서스 트랩은 흑인들이 원래 게으르고 다산이라 빈곤에 허덕이고 못 산다는 편견을 합리화하는 이론으로 쓰이기도 했다. 실제로 맬서스주의자들은 명백한 인종차별적인 태도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들을 경멸하고 공격하였으며, 공공연하게 “개발도상국에서 모든 복지혜택을 중단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인종차별적인 맬서스주의는 사실 다양한 버전이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논지를 펴는 사람들이 많은데, 예를 들어 중국이나 인도가 경제를 발전시키면 지구상의 자원이 모두 고갈되어 지구가 멸망한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이야기의 원조는 인종차별적인 맬서스주의자들이 아프리카나 아시아는 영원히 저개발 상태로 머물러야 한다는 논리였다. 또한 히틀러 일당도 비슷한 논리를 사용하여 한정된 자원을 게르만족의 번영에만 사용하기 위해 동유럽의 슬라브족을 모조리 절멸하고 그 땅을 차지해야한다는 논리를 사용하였다. 순수하게 보이는 경제논리가 인종차별주의와 결합되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예라고 하겠다.
영국 내에서는 제국주의에 정당성을 심어준 이론이기도 한데, 영국의 본토 면적으로는 점점 늘어나는 하층민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어딘가 “외부”로 내보낼 필요성이 있었고 따라서 식민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타났기 때문이다.
맬서스주의자들은 사실 같은 백인이라도 하류층은 사실 뇌에 아무 생각이 없고 그날 번 거 그날 술 마시고 옷 입고 도박해서 다 날리는 계층으로 봤다. 이게 뭐가 문제냐면, 이들 경제학자의 주장은 노동 – 자본 – 축적 – 식민지 팽창, 유럽 각국간의 경쟁에서 우위로 이어지는데 하류층은 소모품 말고는 특별히 쓸 데가 없는 사람이라는 주장.
다섯째, 인구 증가의 원인에 대한 해석의 오류
맬서스 트랩에 대한 결정적인 논박까지는 아니지만, 맬서스가 인구론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분명히 저지른 착오가 있다. ‘인구론’에서 맬서스가 제시한 인구 증가율의 통계 자료 중에는 미국의 인구 증가율 통계도 있었다. 미국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통계를 근거로 맬서스는 ‘인구는 자연적으로 기하 급수적으로 증가한다’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미국의 인구 증가의 원인에는 대규모로 유입되는 이민자의 수도 있음을 간과한 것. 이 이민자의 유입을 무시하고 자연 증가로만 판단한 것이다.
.옹호론과 재평가
위의 의견들은 지속성장이 가능하다는 관점에서 바라본 전망이지만 현실은 인구 증가에 따른 오염 물질 배출로 인한 나날히 증대되는 환경 오염과 지구 온난화로 심해지는 기후변화, 폭증하는 인구와 그에 따라오지 못하는 경제성장과 기술 발전으로 인한 실업, 저소득층의 증가로 인한 양극화 현상 등 낙관적인 19~20세기와는 달리 21세기 들어서는 세계정세 패러다임이 변화함에 따라 시사하는 바가 어느정도 있다.
더군다나, 2010년대에 오면서 중국과 인도의 경제 발전에 따른 엄청난 환경 오염이 널리 알려지자, 자연스레 인구 규모도 맬서스 트랩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후발주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들도 미래에 똑같이 이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이 재평가로 인하여 시민들이 앞장서서 맬서스 트랩을 추종하고 있으며, 줄어들어가고 있는 인류의 인구 수조차 아직도 너무 많고 이런 열악한 세상에 책임도 제대로 지지 못할 거라면 자식을 낳는 것이 잘못이라는 인식인 반출생주의가 널리 퍼지고 저출산 기조가 선진국 계열 국가들에서 일어나게 된다.
과거에는 국가와 국제 기관 측에서 맬서스 트랩을 강요하였고, 시민들이 이에 반발했다고 한다면, 21세기에 들어서는 이 기조가 거꾸로 뒤집혀서 국가와 국제 기관에서 인구 절벽을 걱정하며 출산을 장려하고 있는데, 시민들이 멜서스 트랩을 추종하고 있다.
.맬서스는 정말로 냉혹한 인간이었나?
그러나 맬서스 본인이 그렇게 냉혹한 인간은 아니었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간혹 실제 의도는 그게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런 취급받는 경제학자들의 사례는 맬서스 외에도 여럿 있다. 사회운동가 마가렛 생어 역시 임신한 빈곤 여성이 겪는 비극을 막기 위해 산아제한 운동에 매진했지만 우생학이라고 비난받은 바 있다.
사실 맬서스 트랩이 나온 직접적인 정치적 배경을 본다면 빈민층에 대한 지원을 하려는 영국 정계에 대해 그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를 하면서 나왔다. 맬서스의 주장은 저소득층을 죽여버리자는 것보단 저소득층의 수를 일정 규모로 통제해서 다음 세대의 저소득층 한 사람 한 사람이 받는 혜택을 늘리자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맬서스의 가르침은 주류 경제학자들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계열로부터도 부정당했다.
본격적으로 호의적인 평가가 내려지게 된 시점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재평가하면서 나타났다. 그래도, 미래의 하류층을 위해 현재의 하류층을 굶어 죽게 내버려 둬야 한다는 따위의 주장을 긍정한 게 아니라, 가령 유사시에는 정부가 지출을 늘려서 개입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한 바가 발굴되어 재평가가 된 것이다.
이 외에도 맬서스의 학문적 업적이 또 있는데, 위에서 나온 정부개입을 학문적으로 정당화하는 주장을 하면서 마르크스나 케인스 등보다 앞서서 경기침체의 개념에 대한 설명을 최초로 시도했다는 것이다.출처 이 논문에 따르면 과소소비, 공급과잉이 불황으로 이어진다는 류의 주장을 맬서스가 했다고 볼 수 있다.

참고 = 위키백과, 교보문고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