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기도란 무엇인가? (What is Prayer?)
매주 화요일 오전에 지방영에서 중보기도회가 열린다. 오늘은 지방장관 부인과 토퍼(Topher) 사관이 집사람과 어머님 그리고 1월에 ‘Post-Doc(박사 후 과정)’으로 영국 요크대학교로 떠나는 딸을 위하여 기도했다. 지방장관 부인은 ‘유니스’(Eunice)를 ‘루디아’(Lydia)라고 기도했다. 기도가 끝나고 생각이 났는지 “내가 루디아라고 해도 하나님은 유니스로 알아 듣는다”며 같이 웃었다.
정직한 중보기도 (Sincere Intercessory Prayer)
지난 주일(9월 20일) 구세군 교회에서 찬양과 간증을 했던 장종택 전도사가 ‘정직한 중보기도’라는 말을 했다. ‘중보기도’ 앞에 ‘정직한’이란 형용사가 들어가니, ‘기도’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정직한 중보기도는 말로만 하겠다고 약속하는 기도가 아니라, 중심으로 시간을 내어 하나님께 하는 기도이다. 기도 후 기도해준 사람을 다시 만날 때, ‘과연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을까’ 궁금해 하는 기도이다. 몇 주 전에 셋째 형이 갑자기 심장에 문제가 있어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중보기도를 부탁했다. 외국인이 한국사람 이름을 발음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더구나 기억을 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일주일이 지나고 ‘맨디’(Mandy)가 형의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하며 지금은 어떠냐고 묻는 것이다. 감동이었다. 그녀는 정직한 중보기도를 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가끔 기도에 회의를 가질 때가 있다. 기도하면 정말 치유될까? 기도하면 정말 해결될까? 의심이 깊어지면 기도에 게으르게 된다.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서 범하지 않겠다’(삼상 12:23)고 했고, 예수님께서도 일상의 바쁜 일을 뒤로 하고 ‘한적한 곳에서 기도했다’(눅 5:16)라는 것은 무엇을 시사하는 것인가!
누군가 그랬다. 우리가 일하면 우리가 하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물론 일하지 말고 기도만 하라는 뜻은 아니다. 기도하지 않고 일하면 자기 힘으로 하는 것이고, 기도하고 일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 없이 성공하면 교만해 지고, 실패하면 좌절하게 된다. 하지만 기도하고 일하면 성공해도 겸손해 지고, 비록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지라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다.
기도는 겸손( Prayer is Humility)
기도하지 않는 자는 교만한 자이다. 왜냐하면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적 존재인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다(벧전 5:5). 교만한 자는 자기 힘으로 사는 자이고,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이다. 인간의 타락은 교만에서 시작되었다. 창세기 3장 하나님 같이 눈이 밝아지기를 원했고, 창세기 11장 바벨탑을 높이 쌓아서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기를 원했다. 교만의 결과로 인류는 에덴에서 추방되었고, 언어가 분열되었다. 잠언기자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고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다’(잠 16:18)라고 하지 않았던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는 말씀을 기억하라. 자신이 교만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는 사실은 교만한 자가 아니다. 정말 교만한 자는 스스로 겸손하다고 착각하는 자이다. 가장 무서운 병은 병명을 모르는 병이라고 한다. 무슨 병인지 모르니 어떤 약을 써야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교만하다는 것을 모르는 자는 결코 겸손해 질 수가 없다. 죄에는 알고 지은 죄가 있고, 모르고 지은 죄가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모르고 지은 죄는 몰랐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모르고 지은 죄는 모르기에 회개할 기회도 없지 않은가! 어쩌면 알고 지은 죄보다 모르고 지은 죄가 더 나쁜 죄인지도 모른다.
기도는 호흡(Prayer is Breathing)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다. 기도하지 않는 자는 호흡이 멈춘 것이다. 호흡을 못하면 죽는다. 계시록의 사데교회는 모든 것이 풍족했던 교회이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살았다고 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살았다하나 실상은 죽은 자’(계 3:1)라고 했다. 세상적으로 풍족하지만 실상은 죽은 교회가 얼마나 많은가! 작금의 시대는 세속주의 물결이 쓰나미 같이 밀려와 교회를 침몰시키고 있다. 교회의 세속화란 교회가 세상과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침몰하는 교회와 세상의 차이가 있다면, 교회는 하나님을 통하여 ‘세상’을 얻으려 하고, 세상은 권모술수를 통하여 ‘세상’을 얻으려는 것이다. 초대 교회는 세상과 구분되어 핍박을 받았지만, 오늘날 교회는 세속화 되어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그러나 세상이 교회를 비난 한다는 것 자체가 아직까지 교회에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세상이 교회에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 비난도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도는 대화(Prayer is Conversation)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대화하지 않으면 관계가 단절된다. 인간은 관계적인 존재이다. 수직적으로 하나님, 수평적으로는 인간과 관계를 맺고 산다. 수직적인 관계가 중심을 잡아 주어야 수평적인 관계도 흔들리지 않는다. 중심이 없는 사람은 자기중심으로 관계를 맺는다.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 잘못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상황이 바뀔 때마다 카멜레온 같이 변화를 한다. 수직적 관계의 단절은 수평적 관계의 파괴로 이어진다. 가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고, 아벨의 제사만을 받았다고 해서 아벨을 죽인다. 수직적 관계가 깨진 사람은 옆 사람을 동역자가 아닌 경쟁자로 인식한다. 욕심보다 무서운 것은 시기이다. 옆 사람이 자기보다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한다. 시기란 상대방의 불행이 곧 자신의 행복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이는 어느 특정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중심을 잃어버린 우리들의 이야기다.
김환기 사관(구세군본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