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어버이 날의 고마운 젊은이
월요 밥집
스트라스필드 기차역 뒤 에버턴 로드를 곧바로 따라 올라가다 보면 차양막으로 하늘을 반쯤 가린 ‘맛대맛’의 빠알간 간판이 눈에 차 오른다. 식당 앞에는 노천 탁자가 가지런히 손님들 맞을 차비를 하고 있고 안 쪽 양옆으로는 좁다란 식탁들이 칸막이 사이사이로 숨어들어 부끄러운듯 낯을 가린다. 주방은 정오 손님맞이 준비로 칼질 소리가 요란하다. 댓자 밥솥에서는 희뿌연 입김이 쉴새없이 뿜어져 나오며 긴 하품을 한껏 켠다.
유리창문의 냉장고 안에는 식음료들이 총총히 빼곡히 채워져 있고 중문틀 사이 네온사인에 비추어진 반투명 프라스틱판에는 먹음직한 두 덩어리의 수박 사진이 시골 원두막의 한 여름을 풍자한다. 케이-팝송이 홀안을 맴돌면서 일하는 아가씨가 총총 발걸음질치며 홀안을 분주히 오고간다. 오늘 점심메뉴는 우거지 갈비탕이란다. 야채 무침, 갓 김치, 숙주나물 무침이 곁들여져 나오고 따스한 밥 한 사발이 식탁위를 장식한다. 뼈다귀 세 토막에는 고깃살들이 뭉쿨하게 감싸여져 있다. 젓가락으로 한 점 뜯어 입안에 넣으니 그대로 스르르 녹으면서 감칠 맛을 풍미한다. 거저 주는 것도 감지덕지인데 이렇듯 노인들 건강을 챙기는 갸륵한 정성에 할 말을 잊은 채 식당안은 국물 들여 마시는 후룩후룩 소리만이 잠시 맴돈다. 가족이나 자식들도 이렇듯 베품에 인색 할 터인데 하물며 십여년간을 잊지 않고 매주 월요일마다 베푸는 식당 주인의 배려에 다들 고마움에 잠긴다. 뿐이랴, 집에 돌아가시면 심심할 때 간식으로 드시라고 제철 과일인 주먹만큼 큼직한 연시 두 덩어리를 봉투에 넣어 챙겨주기도 하니 그 고마움은 배가 되어온다. 각박한 이민 사회 한 모퉁이 뒤안길에서 묵묵히 한인 노인들을 아우리는 한 젊은 식당주인의 체취에서 밝은 세상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마냥 가슴이 뿌듯해져온다.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세네카의 “베품의 즐거움”중에서 “은혜는 언제 어디서든 기꺼이, 남모르게, 미리 알아서, 상대방에게 환기 시키지 않고 베풀어야 하며 베푼 은혜는 잊어버려야 한다.”라는 대목이 회자되며 이를 묵묵히 실천에 옮기고 있는 한 젊은 시드니 속의 식당 주인의 온정에 애틋한 연민의 정이 감싸인다. 에버턴 로드의 차가운 겨울하늘이 오늘따라 따사함으로 감싸져 오며 짙은 푸르름으로 눈이 부셔온다. 식당 건너편 오뚝이 서있는 정자나무아래 파릇한 풀밭 위에는 행인들이 뿌려놓은 모이를 비둘기떼들이 쪼아 먹느라 법석을 떨고 있고, 비둘기 한쌍이 전기줄 위에서 정답게 부리 짓을 짙게 하며 낯 뜨거운 애정 행각을 마다않는다. 자연과 인간과 짐승들의 조화로움은 서로가 서로를 아우르는 생존의 세계속에 인간은 그들에게 먹거리로 다가오고, 그들은 인간의 둘레에서 즐거움을 선물하는 상생의 끈을 놓치 않으니 끈끈한 인연이 저버려지지 않는 듯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뱃속이 든든해야 매사가 즐거운 법, 오직 밥 힘만이 노인들의 유일무이한 삶의 수단이기에 월요일 점심때면 기차를 타고 내리고 버스를 갈아타고 다리 품을 팔아가며 에버턴 로드의 월요밥집은 노친네들의 축제장으로 북적거린다.
한 할망구가 차도를 건너며 멈칫하는 찰나에 전기줄 위 한쌍의 비둘기가 할망구 흰 모자 위에 주책없이 물똥을 깔긴다. 오가는 차량들을 정신없이 길가를 두리번 거리며 혼비백산된 할멈이 모자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까마득히 알 턱이 없다. 겨우 길을 건너 ‘휴우”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등짝에 꼬부랑 허리를 걸치고 월요밥집 문턱을 힘겹게 넘어선다. 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비둘기 한쌍이 요란스레 부리짓을 하며 저희들끼리 “구구..” 쫑알거린다.
수컷: 여보, 할멈의 카플린 모자위에 물똥 칠을 했으니 어쩌지, 구구..
암컷: 하필 할멈 모자위라니, 똥 쌀땐 조심 해야지. 구구..
수컷: 뭐, 그게 맘대로 되나, 먹기만 하면 쏟아지니 나 참 원, 구구..
암컷: 할멈이 월요밥집에 올때마다 모이를 한줌씩 뿌려주시곤 했었는데, 구구..
수컷: 그 은덕도 모르고, 그래서 우리는 한낱 날짐승에 불과한게지 구구..
한숨어린 대화에 귀 쫑긋하던 풀밭 위의 거송이 한마디 거둔다.
거송: 이봐, 구구씨! 댁들은 참으로 착한 가족들인가봐. 은덕도 알고, 복 받을 거야. 댁들의 3지의 예는 부모 알기를 개떡처럼 아는 일부 인간 말종들이 새겨들어야 할 것 같네.
한낮의 따스한 햇살을 받아가며 풀밭위 모이를 쪼던 한무리의 비둘기떼들이 퍼드득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거목 위에 물똥세례로 답례한다.
이때 식당 밖으로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오며 할망구 모자위 물똥 꽃이 화두가 되어 이왕이면 맛도 보라고 손가락 시늉하며 꼬득거린다. 이내 모두들 배꼽을 잡고 파안대소들 한다. 어느새 주름살의 흔적도 사라지고 청춘 남녀의 젊은 시절로 환생되듯 모두가 행복한 표정들이다. 주일 내내 사람내음이 그리웠고, 반겨주는 이 없는 낯선 이민 사회의 끝자락에 서 있는 이들에게 월요밥집의 따뜻한 한끼의 베품은 노친네들에겐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남 이상의 삶의 촉매제 였음에 모자람이 없다. 낯선 이들 끼리 금새 동무 되어 한껒 웃음을 나눌 수 있어 행복했고, 부담없이 맛깔스런 한끼를 즐길 수 있어 부족함이 없고, 젊은이의 격의 없는 자상한 배려에 다림질된 마음의 평정을 되찾아 기쁘고, 이래서 월요일 점심때만 되면 소풍가는 아해되어 잊지 않고 찾게되는 밥집이었나 보다.
때론 베품의 순간도 소수점을 찍어야 하는 찰나를 맞이하듯 애석하게도 금년 말이면 월요밥집이 타의반으로 문을 닫는다고 한다. 그 일대 건물들이 몽땅 헐리고 그 자리에 주거용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하니 오매불망 월요일만 되면 찾던 발길이 갈 길을 잃은채 우왕좌왕하는 모습들이 자명함에, 모두들 잠시 시쿤둥한 표정들이 엄습한다. 그동안의 밥집 먹거리를 주마등처럼 떠올리고는 돌이킬 수 없는 추억속에 허우적거린다. 길 건너 전기줄위에서 떼거리로 노닥거리던 비둘기들이 뭔가 낌새를 알아차린양 똥그라진 눈망울을 멀뚱멀뚱거리며 창공을 향해 퍼드득 달음질친다.
“이제 누가 월요일이면 우리에게 모이를 주려나 구구..?”
정오의 햇살도 누그러들며 틀니 타령으로 우물우물 점심 식사를 겨우 마친 노친네들이 하나 둘씩 일어서며 먹고 난 식기들을 한데하여 한끼의 고마움을 담아 전해준다. 잠시나마 어울렸던 동무들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배낭을 등짝에 짊어지고 식당문턱을 내려서며 끼리끼리 어깨를 마주한채 조심스러이 거닐며 스트라스필드 기차역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내려닫는 길목에는 2층 퍼블릭 하우스가 파란 단장으로 오가는 이들을 유혹하고, 미용실은 바쁜 손질들이 분주히 오르락 내리락하고 있고, 피쉬 앤 칲스 점포에선 고소한 감자튀김 내음이 한낮을 풍미하고, 길 건너 고운 벽 칠의 굴다리 초입는 수줍은 여인네처럼 삐쭉 낯짝만 내밀고 있고, 뱃속을 채운 노친네들은 속 트림을 한껒 토해내며 한 편은 기차역으로 빨려들어 가고, 또다른 짝들은 길가 벤치에 걸터 앉아 한주동안 쌓인 속타는 수다에 또다시 열을 올린다. 노친네들의 망중한을 측은히 지켜보던 한 길손이 휑한 하늘에 기대어 서서 한마디 씨부령댄다..
왜, 유독히 시드니 겨울 하늘은 짙 파랗고
현기증 나도록 끝맺음이 없을까
자그마한 흰 구름송이 하나 얹어본다
은회색 구름송이 살짝 덮어 씌어본다
온통 짙은 먹구름으로 하늘을 가려버렸다
일순간의 희망과 좌절과 암담이 교차되듯
희망의 ‘월요밥집’의 따사함이 덧칠되니
좌절의 차디찬 병마의 뿌리는 줄행랑 치고
암담의 늪속에 쫄은 노인들의 머피의법칙 물거품되고
먹구름을 걷어 찬 시드니의 햇살이
에버턴 로드 ‘월요밥집’에 머물며
고소한 사람 내음에 코끝을 벌름거린다
‘월요밥집’ 문턱이손짓거리며
“다음주 월요일 친구분과 꼭 오세요.”
노친네의 쭈구렁 웃음이 문턱에 걸친 채
“홍 사장님, 고마워요.”
빨개진 햇살이 문턱 안으로 숨박질한다.
이상조(sanglee@y7mail.com)
노인들 주위에 훗훗한 정을 아낌없이 베풀어준 한 젊은이의 정성에 감읍하여 부족한 글이긴 하지만 아버지날을 맞아 글을 드립니다. 사연인즉 버우드 에버턴거리의 한 젊은 식당 주인이 매주 월요일마다 십여년을 변함없이 한인 노인들을 위해 따뜻한 한끼를 거르지 않고 베푼 정성이 갸륵하여 9월 3일 일요일 아버지의 날을 맞아, 언듯 그의 미담이 교민사회에 묻혀서는 안되겠다는 작은 욕심으로 소개하오니 시드니의 한인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