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대하 역사소설, 빅토르 위고 (Victor-Marie Hugo, 1802 ~ 1885)의 레미제라블 (Les Misérables, 1862)
‘레 미제라블’ (프: Les Misérables)은 1862년에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가 쓴 소설로, 잘 알려진 19세기 소설 중 하나다. 제목인 ‘레 미제라블’은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며, 대한민국에서는 ‘장발장’으로도 소개되었다.
프랑스 민중들의 비참한 삶과 1832년에 있었던 프랑스 6월 봉기를 소재로 하였다. 민중들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사회개혁의지를 보여주는 사회소설로 분류되기도 하나 실제로는 인간의 죄와 구원에 대한 실천적인 해법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의 대답이기도 하다.

실제로 시민혁명에 동참했다가 정부군의 진압으로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장발장이 하수도를 통해 피신시키는 장면은 작가의 사회운동에 대한 관심과 지지 뿐만 아니라 행위를 통한 인간의 죄와 구원을 향한 열망을 보여주고 있다.
‘레 미제라블’은 영화, 뮤지컬, 연극 등으로 많이 만들어졌다.
– 레 미제라블 (Les Misérables)
.저자: 빅토르 위고
.국가: 프랑스 / 언어: 프랑스어
.장르: 소설
.발행일: 1862년
○ 줄거리
굶주리는 일곱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의 감옥살이를 한 장 발장[2]. 전과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두의 박해를 받던 장 발장은 자신의 집에서 하룻밤을 재워주고 자신이 훔친 은식기에 은촛대까지 선물로 준 미리엘 주교에게 감명받아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미리엘 주교의 사랑에 감동받은 장 발장은 정체를 숨기고 마들렌이라는 새 이름으로 가난한 이들을 도우며 지내다 팡틴과 마주친다. 죽음을 눈앞에 둔 팡틴은 자신의 딸 코제트를 장 발장에게 부탁한다. 자신과 비슷한 용모를 지닌 상마튜라는 사람이 장발장으로 재판정에 선다는 것을 알게 된 장발장은 크게 고민하다가 재판정을 찾아가 자신이 진짜 장발장임을 밝힌다. 이후 장발장은 다시 도형장에 끌려가지만 물에 빠진 선원을 구하고난 뒤 수영하여 탈출한다. 그 이후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혹사당하던 코제트를 구하고 입양하여 자신이 키우기 시작했다. 자베르의 눈을 피해 프티 픽퓌스 수도원에서 포슐르방 노인에게 도움을 받아 살아가며 코제트를 키우다가 코제트에게 수도원 밖 삶을 보여주기 위해 파리로 이사한다. 이후 마리우스라는 청년과 코제트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국 결혼까지 한다. 장 발장은 처음엔 코제트를 뺏긴 것 같은 분노에 사로잡혔으나 결혼 이후 마리우스에게 자신이 전과자였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리고 장 발장은 자신과 함께 있으면 코제트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이유로 코제트를 마리우스에게 맡기고 떠난다. 테나르디에가 장 발장이 마리우스를 죽인 살인자라는 모함을 하려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마리우스에게 장 발장이 마리우스의 생명의 은인인 것을 알아채게 만들었다 (프랑스 6월 봉기에서 마리우스가 죽을 뻔한 것을 장 발장이 하수구를 통해 마리우스를 집으로 데려다 준 일. 마리우스는 그 은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있었다). 마리우스가 코제트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장 발장을 찾았을 때 장 발장은 이미 코제트를 보지 못하는 슬픔에 죽어가고 있었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코제트와의 재회를 크게 기뻐하며 만족스럽게 삶을 마감한다.
○ 등장인물
– 주요인물
.장 발장 : 프랑스 라브리 지방의 노동자로 가난과 배고픔, 가엾은 조카들을 위해 빵 한조각을 훔친 죄로 징역 5년을 선고 받고 툴롱의 감옥에서 복무하다 4차례 탈옥을 시도하다 결국 19년의 징역을 살았다. 죄수번호 24601으로 냉혹한 경찰 자베르에게 20년간 추격을 받게 된다.
장 발장은 출소 후 미리엘 주교에게서 숙식을 도움 받아 살았다. 하지만 그는 은으로 된 값비싼 물건을 훔쳐가다 포졸에게 붙잡힌다. 하지만 미리엘은 그에게 은촛대까지 덤으로 주며 그를 구해주었다. 그후 그는 이름을 마들렌으로 바꾸고, 공장주인과 시장이 되면서, 선행을 베풀며 살다가 팡틴이라는 불쌍한 여인의 부탁으로 그녀의 딸인 코제트를 구하러 가려 하였으나 자베르의 계략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을 구하고 스스로 감옥으로 간다. 하지만 곧 탈옥하여 “종달새”라 불리고 있는 불쌍한 코제트를 구해서 수녀원 등지에서 숨어 지내며 키우다가 코제트를 마리우스라는 젊은이와 짝지어주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자베르 : 작중 탄생연도는 약 1779년이며, 1832년 6월 봉기 이후 파리의 센 강을 건너는 다리에서 투신 자살했다.
자베르는 교도관이었다가 경찰이 됐다. 극중에서는 ‘자베르 경위’ (Inspecteur Javert)로 불린다. 자베르는 주요 악역인물이지만, 극중에서 그의 성은 나오지 않는다.
.팡틴 : 극중에서 팡틴은 약 1796년에 태어났으며, 1823년에 사망했다.
고아인 팡틴은 파리에 살고 있는 금발과 흰 치아를 가진 아름다운 노동자였는데, 부유한 집안의 학생인 펠릭스 톨로미에스와의 사이에 아이를 가졌으나 버려졌다. 비혼모인 팡틴은 그 또래인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테나르디에 부인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누다 코제트를 맡기고 돈을 벌러 간다. 고향인 몽트뢰유쉬르메르로 돌아가 일을 하던 그녀는 함께 일하는 직공들의 모함에 의해 공장에서 쫓겨나게 된다.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보낼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 머리카락과 이빨을 팔고 성매매마저 하게 된 팡틴은 어느 저질 신사에 의해 사건에 휘말려 자베르경관에 의해 체포되는데 그 때 마들렌 시장 (장발장)과 직면하게 된다. 장발장이 그녀의 아이 코제트를 바래다 주기로 약속하지만 딸을 볼 수 있다는 희망속에 그녀는 결국 병으로 숨을 거둔다. 팡틴이 걸린 병은 무슨 병인지 정확히 알수는 없으나 폐렴 등의 호흡기 질환으로 추측된다.
.코제트 : 전체 이름은 외프라지 ‘코제트’ 포슐르방(Euphrasie “Cosette” Fauchelevant)이다. 극중 출생년도는 1815년이다.
코제트는 팡틴의 딸로, 어렸을 때 여관을 운영하는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맡겨졌다. 테나르디에 부부는 코제트를 여관의 하인으로 만들어 구박하였다. 팡틴이 죽은 뒤 장 발장이 테나르디에 부부를 찾아와 코제트를 데려왔으며, 장 발장의 딸로 자랐다. 이후 코제트는 수녀원 부속학교에서 교육받았다. 청소년이 된 코제트는 수녀가 되지 않고 장 발장과 함께 파리에 머물렀다. 거기서 코제트는 젊은 변호사인 마리우스 퐁메르시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
특이사항으로 코제트는 레미제라블 10th의 포스터에도 등장 하였다.
.마리우스 퐁메르시 : 코제트와 사랑에 빠진 마리우스는 한편으로는 바리케이트에서 앙졸라, ABC의 벗들과 함께 투쟁하기도 한다. 마리우스는 투쟁 과정에서 목숨을 잃을뻔 하지만 코제트의 양부인 장 발장에 의해 구출된다.
.테나르디에 부부 : 악역을 맡고 있다. 자베르와 달리 악역의 측면이 강한 인물들이다.
이들 부부는 평범한 노동자 계급(남편의 경우 나폴레옹 시절 육군 중사 출신으로, 마리우스의 아버지 퐁메르시 중령을 본의 아니게 구해 줬다.)으로, 사회에 자신들이 겪는 고통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여관을 소유하고 있으며, 손님들을 속여 돈을 빼앗는 일을 자주 한다. 또, 코제트를 자신들에게 맡긴 팡틴에게도 갖가지 명목으로 돈을 뜯어낸다. 그리고 코제트를 여관의 하인으로 만들어 많은 잡일을 시킨다. 여관을 잃어버린 뒤에는 이름을 존드레트 (Jondrette)로 바꿔 사기행각을 이어간다.
부부에게는 에포닌, 아젤마라는 두 딸이 있는데, 이들은 응석받이로 자라났다. 또한 부부에게는 세 명의 아들도 있는데 이들 중 한 명이 가브로슈다.
.에포닌 테나르디에 : 극중에서 에포닌은 약 1815년에 태어났으며, 1832년에 사망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테나르디에 부부의 큰딸인 에포닌은 어릴 적부터 응석받이로 자랐다. 하지만 에포닌이 청소년기에 접어들었을 때, 테나르디에 일가는 거리를 떠도는 신세가 됐다. 에포닌은 부친의 범죄를 도왔고, 돈을 얻기 위해 거짓으로 가난한 체 하기도 했다. 마리우스 퐁메르시를 알게된 에포닌은 사랑에 빠졌다.하지만 마리우스는 코제트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 상태였다. 마리우스의 요청으로 에포닌은 장 발장과 코제트가 사는 집의 위치를 알려줬다. 마리우스가 코제트를 찾아왔을 때 에포닌의 부친이 일행을 데리고 장 발장의 집을 습격하려 한 적이 있었는데, 에포닌이 그 계획을 막았다.
파리 시내에서 봉기가 일어나자 에포닌은 남장을 하고 마리우스를 바리케이트로 이끈다. 그 곳에서 에포닌은 마리우스와 함께 죽을 생각이었다. 진압군 병사가 마리우스를 향해 총을 쏘려할 때 에포닌은 마리우스를 대신해 총을 맞았다. 에포닌은 죽어가면서 마리우스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고, 코제트가 마리우스에게 남긴 편지를 전했다. 에포닌은 마리우스에게 자신이 죽은 뒤 이마에 키스를 해달라고 부탁했고, 에포닌이 죽자 마리우스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줬다.
.앙졸라 : 소설에서 앙졸라는 혁명 모임인 ‘ABC의 친구들’의 지도자로 등장하며, 공화정과 진보적 생각을 옹호하는 인물로 나온다. 파리 시내에서 봉기가 일어나자 앙졸라는 봉기를 주도했지만, 봉기는 실패로 돌아갔다. 앙졸라와 동료들은 이후 총살당했다.
– 주변 인물
미리엘 주교
포슈르방 (포슐방)
아젤마 테나르디에
가브로슈 테나르디에

○ 저자소개 : 빅토르 마리 위고 (Victor-Marie Hugo, 1802 ~ 1885)
빅토르 마리 위고 (Victor-Marie Hugo, 1802년 2월 26일 – 1885년 5월 22일)는 프랑스의 시인 · 소설가 · 극작가이다.
프랑스 낭만주의 시인이자 극작가, 소설가, 정치가. 1802년 프랑스의 브장송에 태어났다.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바람대로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일찍이 문학적 재능을 보이며 시작 (詩作)에 몰두했다. 위고는 첫 시집 『오데와 잡영집』 (1822)으로 주목을 받은 이래, 희곡 [크롬웰] (1827), 시집 『동방시집』 (1829), 소설 『어느 사형수의 마지막 날』 (1829) 등을 발표하며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특히 [크롬웰]에 부친 서문은 고전주의 극 이론에 대항한 낭만주의 극 이론의 선언서로서, 위고가 낭만주의 운동의 지도자로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7월 혁명의 해인 1830년에는 희극 [에르나니] (1830)의 초연이 낭만파와 고전파 사이의 ‘에르나니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논쟁에서 낭만주의는 고전주의로부터 완전히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 1850년경까지 문단의 주류가 되었다. 그 후에도 위고는 왕성한 문학 활동을 펼치며, 시집 『가을 낙엽』 (1831), 『내면의 음성』 (1837), 『햇살과 그늘』 (1840), 희곡 [마리용 드 로름] (1831), [힐 블라스] (1838) 등을 발표했다.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 (1831)는 위고에게 민중소설가로서의 지위를 굳혀 주었으며, 1841년에는 프랑스 학술원 의원으로 선출됐다. 그 뒤 위고는 10여 년간 거의 작품을 발표하지 않고 정치 활동에 전념했고, 1848년 2월 혁명 등을 계기로 인도주의적 정치 성향을 굳혔다.
1851년에는 루이 나폴레옹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에 반대하다가 국외로 추방을 당하여, 벨기에를 거쳐 영국 해협의 저지 섬과 건지 섬 등에서 거의 19년에 걸쳐 망명 생활을 했다. 이 시기에 시집 『징벌』 (1852), 『정관』 (1856), 『여러 세기의 전설』 (1부, 1859), 소설 『레 미제라블』 (1862), 『바다의 노동자들』 (1867) 등 대표작의 대부분이 출간되었다. 특히,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대하 역사소설로서, ‘인간의 양심을 노래한 거대한 시편’이자 ‘역사적, 사회적, 인간적 벽화’로 평가받는 위고 필생의 걸작이다.
1870년 보불 전쟁으로 나폴레옹 3세가 몰락하자, 위고는 공화주의의 옹호자로서 파리 시민의 열렬한 환호 속에 프랑스로 돌아왔다. 1874년에는 『93년 : Quatrevingt-treize』을 출간했다. 대하소설 『레 미제라블』에 여담 형태로 삽입된 ‘워털루 전투’ 이야기는 위고가 벨기에 전적지에서 두 달간 머무르며 곳곳을 답사하는 노력 끝에 집필한 것이다. 위고 특유의 비장미 넘치는 문체가 돋보이는 이 글은 일세를 풍미한 영웅 나폴레옹의 패배 과정을 극적이고도 박진감 넘치게 그려내는 동시에 전투의 역사적 의미를 일깨우며 여운을 남긴다.
1876년에는 상원의원으로 당선됐으나, 1878년에 뇌출혈을 일으켜 정계에서 은퇴했다. 국민 시인으로서 영예로운 대접을 받았고, 비교적 평온한 만년을 보내며, 『웃는 남자』 (1869), 『끔찍한 해』 (1872), 『93년』 (1874), 『여러 세기의 전설』 (2부, 1877; 3부, 1883) 등을 발표했다. 1885년 5월 폐렴으로 파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러졌고, 200만 명의 인파가 애도하는 가운데 그의 유해가 판테온에 안장되었다.
○ 특징과 방대함

어마어마한 분량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를 그려낸 소설이다. 작가 빅토르 위고의 필생의 역작으로 그의 사상, 지식을 모두 쏟아 부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프랑스의 역사, 파리의 건축과 도시 설계, 정치, 도덕철학, 반정부주의, 정의, 종교, 낭만, 가족애의 유형과 인간의 본성, 당시의 사회상에 대해 매우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또한 당대 최고의 인기 프랑스 소설이었으며 같은 해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포르투갈어를 포함한 여러 외국어로 번역될 정도로 당대 유럽 최고의 인기 소설. 오늘날에도 프랑스를 대표하는 기념비적인 소설이다.
19세기 프랑스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작가 빅토르 위고의 삶은 『레 미제라블』의 내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위고는 나폴레옹 군대의 장교였던 그의 아버지, 왕정주의자였던 어머니, 그리고 십대 때부터 글로 생계를 꾸려갔던 문학 천재 위고가 어떤 역사적 격변을 거쳐 “기득권층의 든든한 기둥에서 망명자로, 눈부신 출세주의자에서 독립적인 저항자로, 중산층을 대변하는 인물에서 진보적 운동의 대변인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 극적인 변신에는 나폴레옹 3세와 형성한 대결 구도가 큰 영향을 미쳤다. 가난하고 탄압받으며 배척당하는 사람들에 관한 『레 미제라블』은 1851년 나폴레옹 3세의 친위쿠데타에 저항하다가 브뤼셀로 망명한 위고 자신이 배척당하는 인물이 되면서 초고보다 확대되어 영국 왕실령 건지섬에서 『레 미제라블』이라는 걸작으로 탄생했다. 가난이라는 주제는 레 미제라블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 미제라블을 분석한 책 ‘세기의 소설, 레 미제라블’을 저술한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 데이비드 벨로스는 레 미제라블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가난과 빈곤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레 미제라블이 이 개념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강조했다. “가난 앞에서 품위가 떨어지고 비천해지지 않을 만큼 강인한 영혼은 많지 않다. 보통 서민들은 믿기 힘들 만큼 어리석다.” 이렇듯 18세기 말에 출간된 『백과전서』의 ‘가난’에 관한 항목은 가난한 이들이 겪는 곤경에 대해 당사자를 비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맬서스는 『인구론』에서 인간은 천성적으로 게으르고, 절실하게 필요해야만 분발해서 생산적인 노동을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낮은 계급’은 곧 ‘위험한 계급’으로 여겨졌다. ‘불운 탓에 비천해진 사람’에서 ‘돈이 부족한 사람’으로 빈민에 대한 의미가 점진적이지만 근본적으로 변화하기까지 100년이 넘게 걸렸다. 그 사이에 『레 미제라블』이 있다. 장 발장은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도 가치 있는 시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인간의 본보기다. 장 발장이 계속되는 물리적, 도덕적, 감정적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은 그의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당시의 지배적인 태도를 거부하며 사회적인 계급에 관계없이 만인에게 도덕적 진보가 가능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데이비드 벨로스 교수는 위고에게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두 가지 혁명을 서술하면서 그가 왜 이 두 혁명이 아닌 1832년 봉기를 작품의 배경으로 선택했는지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친다. 위고가 실제로 겪은 최초의 혁명은 들라크루아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서 표현한 1830년 7월 혁명이다. 그런데 사흘 만에 부르봉 왕조를 전복하고 루이 필리프가 정권을 잡게 된 사건에 『레 미제라블』의 초점을 맞추지 않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위고 자신이 직접 봉기에 참여하지 않았고, 아내 아델이 넷째 아이를 출산하려던 참이었고, 『파리의 노트르담』 집필을 더는 미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루이 필리프 왕정을 전복시킨 1848년 봉기는 1848년 2월 귀족원 의원이던 위고는 군대의 임시지휘관으로 2월 봉기에서 바리케이드를 내린 당사자였다. 이후 임시정부의 빈민 정책에 성난 노동계급이 격렬한 시위를 벌이자 6월 계엄령이 선포되고, 위고는 이때 제헌의회 의원으로 무장 폭도에게 계엄을 선포하고 해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말하자면 『레 미제라블』은 바리케이드에서 싸운 사람이 아니라 바리케이드를 내린 군대의 임시 지휘관이 쓴 작품인 것이다. 1848년 혁명에 대한 경험은 위고의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위고는 1848년 봉기 대신 루이 필리프 집권 초기인 1832년 6월 5~6일에 일어난 봉기를 작품 배경으로 선택한다.
그는 왜 19세기 프랑스 역사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사람들만 기억하는 작은 봉기를 작품의 배경으로 택했냐는 질문에 벨로스 교수는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작은 혁명이 원론적으로 ‘혁명’의 의미를 설명하기에 좋았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위고는 정확한 역사 기록과 당대 사람들의 진술에 기초해서 1832년 6월 봉기를 재구성하면서 사실을 많이 바꾸기도 했다. 그는 이 혁명을 성난 하층민이 주도한 저항이 아니라 학생들이 혁명의 선봉에 서는 것으로 만들었다. 학생들을 동원한 것은 성공할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싸우려고 하는 교육받은 투사들이 대화와 연설을 통해 서로에게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사람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혁명에 참여한 동기도 제각각이었다. 위고가 말하고자 한 바는 이 모든 태도를 끌어안고 조화시키는 것이 바로 정치라는 것이었다. 위고는 혁명과 폭동도 엄격히 구분했다. 소설을 잘 살펴보면 진실을 파악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데, 1848년 혁명의 의미에 관한 논평 대목에서 그는 민중의 ‘생명과도 같은 원칙을 향한 비뚤어진 폭력은 진압해야 한다’고 쓴다. 바리케이드에서 장 발장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구하는 데 자신의 기술을 이용한다. 위고는 총을 통해서만 진보할 수 있다는 앙졸라의 확신이 옳지 않다는 것을 장 발장의 행동을 통해서 보여준 것이다.
프랑스어 원문으로 65만 5,478개의 단어로 쓰여진 역사상 가장 긴 소설 중 하나이다.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레 미제라블은 역대 가장 긴 소설 25위에 해당한다.
한국내 번역본 기준으로는 민음사판 레 미제라블은 5권 분량의 쪽 수는 2,556쪽으로 매우 길다. 뮤지컬, 축약본, 영화, 동화나 만화 등으로 본 작품을 먼저 접한 뒤 원본을 읽으려는 사람들에게 말을 먼저 하자면, 원본은 대단히 방대하다. 오죽하면 팬덤측에서 소설 원판을 부를 때 ‘벽돌(The Brick)’이라고 부를 정도다. ‘빵을 훔쳐서 형을 살고 나왔다가 개심한 장 발장의 이야기’라는 개요나 편집본을 먼저 견문한 뒤 원본을 읽는 사람은 굉장히 놀라게 된다. 애초에 소설을 보면 제1편 역시 장 발장의 이야기가 아니라 편집본에서는 그저 장 발장에게 친절을 베푸는 주교 정도로만 묘사되는 ‘미리엘 주교’의 신상과 행실, 사상 등을 100 페이지가 넘도록 기술하고 있다. 주인공인 장 발장은 제2장부터 등장하게 된다. 게다가 장 발장의 이름은 제 1권이 아니라 마지막 책인 제 5권에 붙었다. 이러한 방대한 내용으로 이 책을 백과사전 처럼 읽는 사람들도 있다. 어휘도 엄청나게 풍부해 63만 단어 중에는 약 2만 개의 다른 단어들이 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전체 단어들만큼이나 많은 단어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장 발장의 이야기가 주 내용이긴 하지만, 그 외 거의 모든 등장인물의 자세한 내력 성품, 환경 등을 몇 페이지를 할애하며 자세히 설명하고 있고 1830년대를 전후로 하여 살아가는 가족을 부양하기위해 낙인이 찍힌 탈옥수, 학대당한 아이, 처절하게 사회 밑바닥 끝까지 몰락한 직공, 나폴레옹 지지자라는 이유로 가족에게 의절당한 청년, 사기꾼 부모 때문에 콩가루가 된 가족, 세상을 바꾸려는 젊은이들, 그리고 엄벌주의에 집착하지만 결함을 가진 사회에 굴복한 경찰 등 프랑스의 많은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들 (Les Misérables)’의 이야기를 함께 다루고 있다.
방대한 분량은 레 미제라블 뿐 아니라 근대(19세기) 프랑스 소설의 주된 특징 중 하나라는 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위고와 함께 근대 프랑스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히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대표작 ‘몽테크리스토 백작’이나 ‘삼총사’를 보더라도 그렇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책이라고 불릴 만큼의 지위를 지닌 소설이다.
○ 작품과 관련된 말들
단테가 시로 지옥을 그려냈다면 나는 현실로 지옥을 만들어내려 했다. ― 빅토르 위고
인류의 고통은… 멈추지 않소.
인간이 무지하고 절망적인 곳,
여성이 빵을 위해 자신을 파는 곳,
어린이가 교육이나 따뜻한 가정이 없어서 고통 받는 곳이면 어디라도
『레 미제라블』이 문을 두드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오.
문을 여시오. 당신을 위해 내가 왔소. ― 빅토르 위고, 이탈리아어판 출판인에게 보낸 편지
한 인간의 작품이라기보다 자연이 창조해 낸 작품. ― 테오필 고티에 (프랑스 시인)
가장 위대한 아름다움. 이 소설은 하나의 세계요, 하나의 혼돈이다. ― 귀스타브 랑송 (문학비평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6대 소설 중 하나. ― 업턴 싱클레어 (미국 소설가)
나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읽고 있다. 옛날 생각나는 책이지만 다시 읽고 싶은 그리움이 컸다. 이 책은 매우 아름답구나. ― 빈센트 반 고흐
세기의 소설. 괴물 같은 분량에도 허술하게 늘어지는 부분이 한 군데도 없는 작품. ― 데이비드 벨로스 (프린스턴 대학교 문학 교수)
『레미제라블』은 빅토르 위고가 쓴 프랑스 역사소설로,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로 꼽힌다. ― 영어 위키백과
『레미제라블』은 첫 출간 이후 오랜 세월 동안 그 인기를 잃지 않은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축약판, 개정판, 영화,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컬까지 나와 있지만, 역시 빅토르 위고의 진정한 역량을 이해하려면 아무래도 원전을 읽어야만 한다. (…) 국가적 고전이라 불릴 수 있는 작품은 많지 않지만, 『레미제라블』은 확실히 그중의 하나로, 디킨스와 톨스토이의 대작과 같은 반열에 오를 역사 소설의 기념비이다. ―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