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 20
아버지
아버지…조용히 속으로 읇조리니 무엇인가 그리우면서도 무겁고 쉽지 않은 느낌이 든다. 아버지는 자기관리가 철저한 분이셨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 엄격하고 완벽한 아버지의 성격 때문에 자주 혼난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집안은 늘 보기 좋게 정리 되어 있었고 가구는 어린 아이가 셋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 시골에서 올라오신 후 아버지는 줄곧 한 회사에서 근무 하셨고 성실히 많은 일들을 감당하셨다, 3교대를 하시며 한국의 여느 아버지들처럼 마땅한 취미생활 하나 없이 바쁜 삶을 사셨던 것 이다. 누구나 아버지라면 다 그런 일들을 하는게 맞다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인데 나 또한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반복적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피곤한 몸으로 출근하고 퇴근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나는 커갔고 아버지는 늙어 가셨다. 그런 철없는 둘째딸의 결혼준비를 위한 양가 상견례를 하루 앞둔 어느 늦은 밤, 아버지는 쓰러지셨다. 어머니의 다급한 소리에 방으로 달려간 나는 평소와는 다른 아버지의 모습에 놀라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간 아버지는 이제 예전에 무섭도록 완벽하고 단단한 그 분이 아니셨다.
갑작스런 뇌출혈, 진단이 나오자마자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지셨고 손가락 하나조차 움직일 수 없는 나약한 빈껍데기만 남아버린 것이다, 경과가 나아지지 않자 결국 가족의 동의하에 수술을 결정했고 수술을 위해 아버지머리카락을 삭발하는데 꾹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한번도 아버지의 머리카락이 저렇게 짧았던 적이 없었는데 나약해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이 정말 고통스러웠다. 우리가 그런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 외에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이 이처럼 한 가지를 간절하게 원한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매일 매일 하나님께 아버지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다.
교회의 온 성도님들도 함께 기도하셨고 그렇게 얼마 후 아버지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빠르게 건강을 되찾아 가기 시작하셨다. 큰 수술을 끝내고 중환자실에 계시던 아버지가 이렇게 빨리 회복되어 가는 것에 의사들도 놀랄 지경이었다. 그러나 예전처럼 몸도 생각처럼 움직여지지 않고 얼굴표정도 이상하게 굳어버린 아버지. 그래서 처음엔 많이 힘들어 하셨지만 곧 예전처럼 적극적으로 재활치료도 받으시고 꾸준한 관리와 정신력으로 내가 알던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만들어 가셨다. 그런 아버지가 평생 나에게 못 잊을 말씀을 두 번 하셨는데 첫 번째는 병원에서 정신을 차리자마자 내게 상견례를 취소하게 되어 미안하다고 하신 말씀이다. 상견례야 언제든 다시 할 수 있는데 뭐가 미안하냐고 해도 아버지는 전날 쓰러지신 게 내내 마음에 걸리셨던 게다.
또 하나는 호주에서 혼자 하람이를 낳고 연락을 드렸을 때인데 내 딸! 수고했다 하시며 사랑한다 라고 하신 말씀이다. 한편으론 얼마나 미안하고 한편으론 또 얼마나 기쁘셨으면 평생에 묵뚝뚝해 속에 간직하셨을 말을 꺼내셨을까싶어 웃음이 나왔다. 첫손주 소식에 아버지는 주일날 교회식구들에게 아이스크림으로 한턱 내셨다고 한다. 아버지…나는 호주에 살면서 그런 아버지를 자주 떠올린다. 한국 땅에서 자식 셋을 대학까지 다 보내고 결혼 시키는 게 쉽지 않으셨을 텐데 아버지는 어떻게 하셨을까. 어린 하람이 하나도 키우기 힘들어 쩔쩔매면서 같이 싸우기를 반복하는 나는 아직도 부모라기보다는 철부지에 가까운데 아버지는 어쩌면 그렇게 어른스러우면서 책임감 있게 삶을 꾸려 나가셨는지 궁금하다.
한참을 못 뵌 아버지는 얼마나 늙으셨을까. 여전히 어머니를 귀찮게 하며 흰머리를 숨기기 위해 염색해 달라고 조르고 계실까. 또 아직도 매일매일 약수터애서 물을 떠오시면서 으쓱해 하실까. 그 깔끔한 성격처럼 정리정돈은 잘 하고 계실까. 아버지가 반찬 없을 때마다 끓여 주시던 오묘한 맛의 설탕고추장국. 그래서 결국 아무도 먹지 않아 늘 혼자 다 드실 수밖에 없었던 달착지근한 국물 맛이 오늘은 그리워진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버지다.
박은정 사모(시드니동산교회 양화영 전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