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 38
(평생 초보엄마인 하람맘의 일상 속 에피소드)
여행
호주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가족여행을 하기로 결심했다. 교회에서 수련회는 많이 갔었지만 가족끼리 단독으로 떠나는 것은 정말 처음이라 나는 조금 설레기도 하고 들떴다. 꽤 긴 시간 호주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호주에 유명하다는 곳을 가 본 적이 별로 없다. 오히려 한국에서 잠깐씩 오는 사람들이 구석구석 잘 돌아보고 가지 막상 호주에 사는 사람들은 살기에 바빠 돌아볼 시간이 없는 것 이다.
비록 가족 이라고 해봤자 남편과 하람이 나 이렇게 달랑 셋이지만 각자 맡은 일이 있고 이제까지 단 하루도 가족이 다 같이 쉬는 날이 없었다. 누군가 집에서 쉰다면 그 사람은 하람이를 돌보면서 있고 대신 다른 사람이 나가서 교대로 일을 해야 했다. 그런데 마침 단 2틀 황금연휴가 생긴 것 이다. 하람이의 방학이기도 했고 곧 내 생일도 다가오고 그리고 이렇게 결심하지 않으면 다시 언제 여행을 가게 될는지 알 수 없기에 조금은 무리해서 떠나게 된 것이다.
금,토의 짧은 일정동안 집을 잠시 벗어나 우리는 호주의 수도인 캔버라로 무작정 향했다. 물론 우리가 없는 동안 밍키가 먹을 건초와 과일을 가득 넣어 주고 혹 전기는 다 껐는지 몇 번이나 확인 한 후 나오는데 마치 그런 우리를 축복이라도 하듯 하늘은 맑고 높으며 바람도 잔잔했다. 특별한 여행 계획은 없었다. 그저 차를 타고 흘러가듯 가다가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피곤하면 잠시 차를 멈춰 쉬면서 일정에 구애 받지 않는 휴식 같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5분만 앉아 있어도 엉덩이에 뿔이나 뛰어 다니는 장난꾸러기 하람이도 그날따라 내내 얌전히 잘 참고 앉아 있어 주어 얼마나 기특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시드니를 조금만 벗어나도 호주는 전혀 새로운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길은 앞으로 쭉 뻗어 막힘이 전혀 없고 앞 뒤 다른 차 없이 단독으로 한참 달린 적도 많다. 가끔씩 드러나는 나트막한 산들은 웅장한 맛은 비록 없지만 아기자기 하면서 우거졌고, 사방에는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와 양 그리고 말들이 지천이다. 그런 모습이 질릴 때쯤 이면 한국의 읍내 같은 작은 마을이 나타나는데 우리는 거기서 잠시 내리기로 했다. 마을 구경도 하면서 고단한 몸도 풀어 주고 무엇보다 먼지가 잔뜩 낀 낡고 정겨운 의자에 앉아 커피도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캔버라에 입성 했다. 분명 5분 전까지만 해도 황량한 벌판을 달려 왔는데 갑자기 떡하니 나타난 캔버라 시티. 신기한 계획도시임에 분명하다.
처음 호주의 수도를 정할 때 시드니와 멜버른 두 도시가 수도 선정으로 경쟁하게 되자 결국 두 도시의 중간지점인 캔버라를 행정수도로 채택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인지 뭔가 살짝 부족 한듯하면서도 묘한 매력이 있는 캔버라. 하지만 어쨌든 캔버라는 행정에 목적을 두었기에 시드니에 비해 관광지가 적은 편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늦게 캔버라에 들어온 우리는 서둘러 짐을 풀고 저녁을 먹기 위해 나갔다.
아침에 출발 할 때는 날씨가 살짝 더웠는데 캔버라의 저녁은 일교차가 심한지 굉장히 추웠다. 눈만 안 올 뿐이지 한국의 겨울과 비슷한 느낌 이었다. 그래도 캔버라 까지 왔으니 뭔가 특별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어야 할 텐데 사전 조사를 안 한 초보 여행자 가족은 덕분에 거의 1시간을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음식을 찾아 거리를 배회해야 했다. 금요일 저녁이라 왠만한 식당은 거의 꽉 찬 상태이고 예약 없이는 들어 갈 수 없는 곳도 있었다. 그러다 오래돼 보이는 레스토랑에 어쩔 수 없이 갔는데 그곳은 팬케익 전문점이라 식사 보다는 디저트가 적당한 곳 이었다. 그래도 일단 배가 고프니까 추천받은 메뉴를 주문했다. 한참 뒤 나온 우리의 근사한 저녁만찬으로는 커다란 소시지 두덩어리와 팬케익, 이상한 소스를 얹은 스테이크와 팬케익, 그리고 그냥 팬케익 이었다. 그렇게 팬케익을 반도 못 먹고 남기고는 숙소에 들어와 라면으로 느끼한 배를 달래 주는데 괜히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비싸고 고급스런 요리라도 이 라면의 깔끔하면서 개운한 맛은 흉내 내지 못 할 것이리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어쨌든 배는 채웠으니 이젠 진짜 휴(休)의 시간을 가지려고 숙소에 딸린 작은 스파에 들어갔다. 하람이와 내가 들어가면 딱 맞을 작은 사이즈의 욕조였지만 그러면 어떠리. 이것만도 너무나 감사하다. 여행의 피로도 풀 겸 가져간 오일도 몇 방울 넣고 막 노곤해 지는 찰나 하람이가 “엄마! 찬 물이 나와요“ 라며 기겁을 하는 것이다. 정말 언제 부턴가 수도에서는 찬물이 꽐꽐 나오고 있었다. 방향은 온수가 맞는데 다시 확인하기 위해 붙어 있는 안내문을 유심히 살펴보니 일정양의 뜨거운 물을 다 쓰면 2시간 후에나 다시 뜨거운 물을 쓸 수 있다는 내용 이었다. 아니 무슨 이런 경우가… 내륙지방이라 물을 아껴 쓰는 건지 아니면 스파를 원래 뜨겁게 안하는 스타일인지 결국 우리는 미지근한 스파를 즐길 수밖에 없었고 남편은 우리가 씻고 나온 물을 다시 재탕하는 헤프닝을 벌였다.
처음 여행이라 그런지 피곤한데도 밤에 쉽게 잠이 오지 않는 나와는 다르게 시끄럽게 코를 골며 어느새 자든 남편과 하람이. 그렇게 여행의 처음이자 마지막 밤이 흘렀다. 물론 밤새 캔버라의 추위와 건조함에 자다 깨다를 반복했지만 말이다. 초보 여행자의 캔버라2탄 다음을 기대해 주세요^^
박은정 사모(시드니동산교회, 양화영 전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