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 41
(평생 초보엄마인 하람맘의 일상 속 에피소드)
후천적 A형
호주에서 혈액형 운운 하는 것은 조금 어울리지 않지만 어쨌든 나는 은근 소심한 A형이다. 물론 혈액형으로 성향을 정하는 것은 과학적 사실은 아니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정말 나는 이상한 성격을 가진 까칠녀라고 인정하는 셈이다.
어려서부터 낯가림도 심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 못해 늘 겉도는 아이였다. 특히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죽기보다 싫어했다. 그런 날이면 밤에 잠을 몇 번이나 깰 정도로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런데 과연 누가 지금 나의 얼굴을 보고 그랬으리라 상상이나 하겠는가. 새침하거나 도도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둥글넓적한 얼굴에 마치 막 퍼줄 것 같은 인심 좋은 원조 순댓국집 주인아주머니 이미지다. 그러다보니 원래 수더분 한가보다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으셨다. 하지만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뿐인 호주에서 정말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얼마간 집에서 은둔생활을 했는데 물론 아침 일찍 학교에 가 저녁 늦게 들어오는 바쁜 일정의 남편 때문이기도 했고, 대중교통이 불편한 지역에 살아 외출이 어려운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누군가를 만나 관계를 맺는 다는게 혹 도움이 필요해 접근하는 것으로 상대방이 오해하지 않을까. 그래서 혹시라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어쩔 수 없이 만나주는 거라면 차라리 혼자 있는게 나을 수도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 버린 것 이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유일한 친구라고는 마치 아이가 마구 짜증내며 우는 소리를 내는 새 뿐 이었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이런 말만 수없이 되풀이하던 호주에서의 초창기 시간. 그럴 때 놀랍게도 나를 그곳에서 빼내 준 것이 내가 그토록 힘들어하던 새로운 사람들이다. 우리보다 먼저 호주 생활을 시작한 선배로써 똑같은 전철을 밟고 지금까지 지내오신 분들이기에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셨고 수고로운 일들도 함께 감당하며 진심으로 염려해 주셨다. 그분들은 본인들도 호주에 처음 와 적응하기 힘들고 어려울 때 똑같은 도움을 받고 극복을 했기에 주변에 그런 이들이 있다면 꼭 도와주고 싶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받은 사랑이 둥글게 다시 흘러간 것이다.
진심이 통했을까. 그 덕분에 한국에서 오랜 시간 동안 변하지 않던 나의 성격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니 하나님은 이런 나의 모습을 이미 잘 아셨던 게다. 그래서 많은 것들이 감사의 제목이나 특별히 호주에 와서 우리 가족에게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관계의 축복을 더 하신 것 이다. 어쩌면 평생에 나의 단점으로 남을 수 있는 부분을 하나님이 조심히 만지셔서 온전하게 하신 것이다.
가끔 기운이 빠지거나 우울할 때면 어떻게 아시고 항상 먼저 연락하셔서 바람도 쐬고 맛있는 것도 먹자면서 둘만의 데이트를 신청하시는 좋은님. 여력이 없어 하람이 생일도 못 챙길 때 직접 만든 수제 케익과 선물로 생일상을 차려주시면서 감동을 주는 님. 영어를 못해 불편을 겪을 때 항상 서슴치 않고 집으로 달려와 모든 복잡한 문제들을 한 번에 풀어주던 해결사님. 호탕하고 직선적으로 보이나 그만큼 눈물도 정도 많아 진심으로 좋아해주고 걱정해 주고 기도해 주는 예비 엄마님. 본인의 삶을 증거로 어떤 일이든 못 견딜 것이 없고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승리하는 좋은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신 존경하는 님. 예쁜 얼굴 예쁜 목소리만큼이나 귀하게 섬겨 주시는 꾀꼬리님. 때로는 엄마처럼 이모처럼 다정하면서 따뜻하게 안부를 묻고 살펴주시는 푸근한 님.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어찌 이리도 부족한 자에게 어디서 일부러 쏙쏙 골라 주신 것처럼 좋은 분들만 허락 하셨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비록 나의 가족들은 모두 한국에 있고 그것을 감수하고 시작한 호주 생활이지만 지금 내 곁에는 피만 섞이지 않았을 뿐이지 가족만큼이나 귀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모두 댓가없이 사랑을 실천하는 메신저 들이다. 물론 나는 아직도 A형을 가진 사람이다. 영원히 바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예전에는 선천적 A형이었으나 지금은 후천적 A형이라고 말이다. 그것은 큰 변화다. 덕분에 살은 자꾸 오른다. 까칠함을 버린 대신 댓가로 받은 후덕함은 평생 지고 갈 십자가다 ^^
박은정 사모(시드니동산교회, 양화영 전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