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 46
(평생 초보엄마인 하람맘의 일상 속 에피소드)
그놈의 자슥!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감과 동시에 시작한 것이 유치부 교사였다. 어쩌면 하나의 전통처럼 교회에서는 신입대학생들이 교사를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받은 하나님의 사랑과 가르침을 기억하며 보조 교사를 시작으로 부서의 작은 일들을 먼저 감당한다. 간식을 챙긴다던지, 환경정리를 도맡아 하던지 새신자나 결석자관리 등의 일이다. 일은 솔직히 힘들고 모르는 것이 다반사라 실수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생전처음 해보는 교사에 흥분과 감사함을 느끼며 열심히 임했다. 그러나 그것은 순수한 열정뿐이지 분명 사랑은 아니었다. 내 마음과 뜻을 다하진 못했다는 뜻이다. 그런 내게 터닝 포인트가 된 사건이라 하면 하람이의 탄생이 아닐까 싶다. 아이를 낳고 나에게는 큰 변화가 생겼다. 하람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만 봐도 쉽게 눈길이 떠나지 않고 다큐멘터리 속에서 기아와 전쟁에 고통당하는 아이들의 내용을 보면 왜 그리 눈물이 나는지…도움을 주기위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그렇게까지 마음에 와닿지 않는 부분이었다. 나는 가끔 하람이가 내 곁에 없다면 난 과연 어떨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을 한다. 그것을 생각만 해도 나는 있는 자리에서 한참을 운다. 그만큼 자녀라는 것이 특별하고 다른 주변의 아이들까지 돌아보게 될 만큼 우리를 사랑이 넘치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는 존재인 것이다. 나 또한 하람이와 함께 힘든 시간을 이겨왔다.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가장 귀한 하람이를 이미 나에게 주셨는데 무언들 주시지 않겠는가 하는 위로 이다. 그런 내게 이제는 하람이의 동생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따스한 관심에 나또한 그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보다는 둘이 더 행복하겠지만 어찌 가족의 수를 결정하는 것이 내 뜻대로 되는 일인가. 그래서 어느 날 조용히 그것을 두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날따라 마음은 지극히 평온하고 고요헀다. 그때 문득 마음 한켠에 나즈막히 들리는 음성이 있었다.
[지금은 너의 마음을 나에게만 집중시키고 싶구나] 그 순간 실로 두렵고 떨리면서도 온전한 나의 사랑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며 나는 하람이를 오랫동안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 왔음을 깨달았다. 하람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나의 신경이 온통 하람이에게 집중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나에게 또 하나의 생명이 생긴다면 나는 또 나의 마음을 온통 빼앗길지 모른다. 이렇게 연약한 나이기에 온전히 설수 있는 시간이 분명 필요하다. 하나님은 내가 제대로 하나님을 바라볼 그때를 기다리고 계심에 분명했다.
그렇게 하나님의 질투(?)를 불러일으킬 만큼 애지중지 하던 하람이가 그런데 귀가 안 들리고 눈이 안 보인다니.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담임선생님께 듣고 온 순간 나는 솔직히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아직도 호주 땅에서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현실이 하람이에게 까지 영향을 준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검사결과는 정상. 신체적 결함이 없다는 진단서를 들고 선생님과 상담을 하러 가는 순간까지 수만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괜히 내가 혼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아무 문제가 없는 아이를 그렇게 까지 생각한다는 것에 화도 났다. 그래서 전날 우리는 이미 할 말들을 연습했고 영어는 조금 부족하지만 당당하게 보이기 위해 옷에도 신경을 썼다. 주일 이외에는 주로 청바지를 즐겨 입는 남편도 양복바지에 곱게 다린 와이셧츠와 깔끔한 가디건을 걸쳤고 키 큰 선생님과 교장선생님을 위해 난 잘 신지 않던 하이힐도 신었다. 상담실에 들어간 우리는 우습지만 품격 있어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선생님께서는 하람이가 한 번에 잘 집중하지 못하는 편이며 그로인해 학업성취도가 만족한 만큼 이르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검사를 권유 해 본 것이라고 했는데 역시 우리가 예상한 상황. 나는 준비한대로 하람이는 학교 가는 것을 즐거워하고 있다 오히려 부모인 우리가 지켜보는 바로는 느리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는게 느껴진다 다만 아직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이니 끝까지 관심 있게 지켜봐 달라고 부탁드렸다. 같이 참석한 디렉터 선생님도 내 말에 동의하며 Just boy!라고 나즈막히 웃는다. 그렇게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한편으론 마음이 후련하면서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 주를 마지막으로 하람이 선생님은 케냐봉사를 가신다. 가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아이를 돌보고 개선 할 방법을 함께 고민해준 것이다. 비록 멀쩡한 아이를 눈이 안 보이는 것 아닌가 귀가 안 들리는 것 아닌가 해서 한순간 큰 고민을 안겨 주긴 했지만 관심이라는 결론을 내리니 학교에 대한 신뢰도 오히려 높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안 보이는 것처럼 안 들리는 것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말썽꾸러기 하람이. 하지만 나라고 왜 안 그랬을까. 나또한 여전히 벙어리3년, 귀머거리 3년 그리고 속앓이 몇 년을 지속하고 있지 않은가. 호주 땅에 사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우리 하람이가 그런 호주를 이해하고 영어를 한국말처럼 편하게 쓸 날이 온다면 정말 그 때쯤이면 나에게도 추운 겨울은 가고 따뜻한 봄날이 올까. 그러기를 살포시 기대해 본다.
박은정 사모(시드니동산교회 전도사 사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