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 47
(평생 초보엄마인 하람맘의 일상 속 에피소드)
일상탈출
이른 새벽. 다급하게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내가 워낙 잠귀가 밝은 편이기도 하지만 이 시간에 문을 두드릴 일이라는 게 그리 흔한 것이 아니기에 서둘러 뛰어 나갔다. 집 앞에는 옆집 할머니가 서 계셨다. 할머니는 앞마당을 가리키시며 우리집 토끼인 밍키가 우리에서 나와 뛰어 다니고 있는 걸 보셨단다. 할머니 말씀대로 정말 밍키의 우리는 텅 비어 있었고 밍키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집 앞은 찻길이라 밍키에게는 굉장히 위험 했고 어떻게 우리를 탈출했는지 도저히 알 수 없기에 난 어안이 벙벙해 졌다. 그렇게 새벽부터 우리 가족은 밍키를 찾아 앞뒤마당을 둘러보고 온 동네를 수소문하기에 이르렀다. 혹시 옆집 고양이나 밤마다 시끄럽게 짖어대는 성질 나쁜 개가 물어간 것은 아닐까. 아니면 무사히 찻길을 건너 공원에 숨어 버렸나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하게 머리를 휘젓고 다닐 때쯤 마당에 세워둔 차 밑에 뭔가 흰 물체가 조심스레 움직이는 것이 감지되었다. 밍키다! 동그란 털실마냥 둥글게 몸을 말고 숨어 있는 것은 밍키가 분명 맞았다.
멀리 안 나가고 차 밑에 들어가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그것을 빼기 위해 긴 막대로 한참을 들쑤셨더니 밍키가 쏜살같이 나왔다. 그리고는 또 온 마당을 뛰어 다니는데 그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집토끼도 이리 날쌔고 빠른데 야생토끼는 정말 잡기 힘들겠다 싶은 순간 구석에 몰린 녀석. 결국 나에게 긴 귀를 잡히고 말았다. 그래도 마지막 까지 발악을 하는데 토끼털이 사방에 날리고 덕분에 발톱에 내 손도 살짝 상처가 나고 말았다. 잡기 위해 나도 얼마나 열심히 뛰어 다녔는지 온몸에 땀이 흥건했다. 그렇게 우리에 다시 넣어두고 돌아서는데 밍키의 거친 숨소리에 우리가 들썩들썩 움직인다. 밍키도 놀라고 황당했을 사건이리라. 추측 하건데 누군가 밍키에게 먹이를 주고 문을 잘 내리지 않은 게 분명하다. 토끼는 유연하기 때문에 조그마한 틈에도 비집고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그렇게 숨어 있었는지 모르지만 한바탕 난리를 치고 들어오니 한편으론 밍키가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좁은 우리에 갇혀 얼마나 답답하고 우울했을까. 친구를 만들어 줄까 생각도 했었지만 워낙 토끼가 번식력이 강하다 하여 겁이 더럭 났더랬다. 대신 먹이라도 잘 챙겨 주고자 과일이며 채소, 사료 등을 돌아가며 신경 써서 줬는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동물이든 사람이든 자유를 갈망하는 것은 매한가지 인 것 이다. 가끔씩 해가 좋은날 줄에 묶어 마당에 풀어주기도 했는데 요즘은 바빠 그나마도 못해줬으니 밍키가 기회를 봐 탈출을 감행한 것도 이해가 간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먼저 하람이의 도시락을 싼다. 학교를 보내고 나는 일을 나가고 저녁에 돌아와서는 밀린 집안일을 한다. 그리곤 하람이를 씻기고 밥을 먹이고 숙제를 조금 봐준 후 잔다. 이것이 나의 일상적인 하루이다. 그렇게 반복되는 삶. 밍키의 삶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나도 가끔은 내 삶에 조금의 변화가 있기를 기대 한다. 나와 상관없이 계속 돌아가는 삶의 어딘가부터 살짝 지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느낌은 참을 수 없을 만큼 고되거나 힘든 것은 비록 아니지만 조금은 쉼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약간은 단조롭지만 동그랗게 안정적으로 굴러가는 삶이 잠시 휴식을 달라고 나에게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사랑하는 남편과 하람이의 따스한 관심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던 일상에서도 벗어나고 싶으면 나는 순간 상상을 한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산속 어딘가 그리고 입김이 살짝 나오는 초겨울의 상쾌함이 있는 계절이라면 더욱 좋겠다. 따뜻한 노천온천이 하나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그곳에서 몸 마디마디가 노곤하게 풀어지면 깨끗한 이불이 있는 방에서 푹 잠든다.
언제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도 없고 규칙도 없이 말이다. 그리곤 누군가 해놓은 따뜻한 밥상을 받는다. 한식이든 양식이든 이왕이면 금방 준비해서 김이 채 가시지 않은 식사면 좋겠다. 배부르게 먹는다는 느낌보다는 정갈하고 정성스런 음식을 대접받는 느낌의 식사. 가볍게 식사를 마치면 난 포근하면서 색깔 좋은 니트 가디건과 머플러로 귀와 입을 칭칭 감고는 근처에 예쁜 소품가게며 우동집이나 쵸콜릿 가게를 맴 돌 것이다. 우동은 에피타이져로도 한 끼 식사로도 후식으로도 부담 없이 술술 들어가고 쵸콜릿은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손이 시려워 지거나 으슬으슬 추워지는 시점에서 이제 발걸음을 돌릴 테다. 또다시 누군가가 피워놓은 벽난로 앞에서 혹은 따뜻하게 데펴 놓은 방안에서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이나 코미디프로그램을 보며 한참 웃고 울면서 감정을 다 태워놓으면 정말 그렇게 며칠을 지내면 일상을 다시 버틸 정도로 몸과 마음이 다 회복되지 않을까. 그러나 어쨌든 내가 이런 상상을 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남편과 아이는 옆에서 하루의 피로를 잠꼬대로 풀며 내 귀를 간지럽게 한다. 코고는 소리가 시끄러워 발로 살짝 밀면 육중한 남편의 몸이 잠결에 가볍게 밀린다. 이젠 나도 잘 시간인가 보다. 또다시 지루하지만 행복하게 돌아갈 내일을 기대하며 어쨌거나 나오는 작은 한숨….휴(休)… ….
박은정 사모(시드니동산교회 전도사 사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