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 49
(평생 초보엄마인 하람맘의 일상 속 에피소드)
엄마
엄마! 이렇게 불러 보는 게 정말 얼마만인지. 하람이에게 엄마라고 불리는 게 이제 익숙해진 저에게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기회가 아직 있다는 사실이 새삼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짧은 전화 통화로는 충분하지 않아 항상 뭔가 아쉬움이 잔뜩 남는 요즘 그래서 인지 엄마 생각이 더 나네요.
한국의 10월은 어떤가요? 새로 이사 간 집에서는 평안 하시구요? 오랫동안 산 집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적응하려니 힘들다며 문득 아무도 아는 이 없는 호주에서 둘째 딸은 어떻게 버티며 살았는지 생각난다 하셨죠. 가끔 답답할 때마다 산책 하듯 가던 대형마트도 가까이에 없어 하루 종일 무료 하다고 하람이 데리고 오라 하셔도 죄송해요 지금은 갈수 없어요.
엄마! 저도 가끔은 그런 생각해요. 사랑하는 부모님 곁을 떠나 효도 한번 제대로 못하고 첫손자 얼굴도 자주 못 보여 드리면서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가. 언니 결혼식에도 조카 돌잔치에도 못가 얼굴도 모르는 조카가 셋이나 생길 때 까지 가끔 전화만 하는 게 잘 하는 걸까 하고요. 이젠 꼼꼼하게 챙기던 가족 생일들도 가물가물 해져 제대로 신경 쓰지 않으면 지나서야 알게 되는 상황이 반복 되는 게 왠지 서글퍼요.
저만큼 어쩌면 한국의 가족들도 저희를 삶에서 점점 잊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구요. 곁에 없는 게 당연한 듯 여겨지는 건 아니죠? 사진속의 아빠 엄마는 이제 정말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다정히 조카들을 안고 계시네요. 한번쯤은 그 사진속의 가운데쯤 장난꾸러기 하람이 얼굴이 들어가 있다면 더 좋을 텐데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고 함께 하지 못한 세월만큼 많이 늙으셨어요.
엄마! 제가 하람이를 낳고 보름정도 호주에 오셨었지요. 예정보다 빠르게 애를 낳는 바람에 낳는 순간 함께 하지 못해 늘 미안해 하셨는데 엄마! 괜찮아요. 하람이를 낳으려고 병원에 가며 전화 드린 그 순간부터 얼마나 불안하고 걱정하고 기도하셨는지 아니까요. 첫손자 얼굴을 보기 위해 며칠이 지나서야 급하게 비행기에 오르신 엄마. 난생 처음 혼자 비행기를 10시간 타고 오셨을 엄마를 생각하면서 사실 저도 얼마나 불안하고 걱정했는지 몰라요. 공항에 마중도 못나가 문 앞에서 서성이며 엄마가 오기만을 안절부절 기다리는데 멀리서 들리는 정겨운 목소리
”우리 딸 수고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뵙는 건데도 단 몇 분 만에 마음을 포근하게 만드는 엄마의 그리운 향기.
기저귀 간지가 너무 오래전 이라 잘 할지 모르겠다고 하셨지만 호주에 계신 내내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하람이의 똥 기저귀를 감당하신 엄마. 서툰 딸은 자기 자식임에도 몇 번이나 기저귀를 잘못 채워 옆으로 새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말이죠.
참기름 넣고 솔솔 볶아 감칠맛 나게 끓여 주신 미역국이며 밤마다 각종 과일들을 까주시면서 많이 먹어야 엄마 없이 혼자 하람이 볼 수 있다며 걱정하시던 손길. 모유수유에 좋다면서 잘 안 되는 영어로 족발을 사와 푹 끓여 주셨죠. 비록 먹기는 조금 거북스러웠지 만요. 그래도 덕분에 하람이 분유한번 안 먹고 모유에서 바로 이유식으로 넘어가 분유 값 많이 절약 했지요. 엄마는 아마 모르실 거예요. 한국으로 엄마가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제가 한숨도 못 잤던 걸요. 육아 때문에 눕기만 하면 코골고 자던 제가 엄마가 가시기 전날 밤에는 도통 잠이 오질 않았어요. 옆에서 하람이와 곤하게 주무시는 엄마를 한참이나 지긋이 바라보며 내일이면 여기 안 계실 거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아 잠을 잘 수가 없었지요. 혼자 하람이를 돌봐야 한다는 걱정 보다 그저 엄마를 또 언제 볼 수 있을 런지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어요.
호주에 오시던 날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시는 날도 공항까지 함께 하지 못하고 하람이와 우두커니 집에 있어야 했던 시간. 집 앞에서 차에 오르시는 걸 보고 마지막 까지 잘 참고 있던 저는 차가 떠나자마자 하람이를 내려놓고 펑펑 울었더랬지요. 엄마가 한 솥 끓여 놓고 가신 미역국이며 가지런히 한쪽에 접혀져 있는 가재수건, 창틀이며 여기저기 손안가는 곳까지 말끔히 닦아 놓고 바쁜 와중에 포기김치며 깍두기 까지 냉장고에 가득 채워 넣고 가신 엄마의 그 사랑에 철없는 둘째 딸은 하람이와 그렇게 한참을 울었답니다. 그래도 저는 엄마가 평생 눈물로 쌓은 새벽제단의 은혜로 잘 버티고 잘 이기고 건강한 하람이의 엄마가 되었어요.
비록 사랑하는 가족들은 옆에 없지만 따뜻한 이웃들이 있고 조금은 부족한 살림이지만 자족하는 법을 배웠고 너무나 가족이 그리운 날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요. 하나님과 얘기하며 전 늘 많이 울고 그런 저를 하나님이 토닥토닥 다독여 주시면 또 그렇게 잠이 들죠. 엄마도 저를 키우시며 참 많이 우셨죠? 모든 엄마의 눈물로 자녀들이 쑥쑥 자라나 봐요. 마음에 아이를 심고 눈물로 키우며 오랜 세월 그러나 기쁘게 벼텼을 세상의 모든 엄마들.
엄마! 아직도 엄마가 필요한 저도 그러보니 엄마네요. 사랑해요 건강하세요.
박은정 사모(시드니동산교회 전도사 사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