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22)
영어 삼매경
요즘 학교에 잘 적응해 가는 하람이. 그래서인지 학교를 갔다 오면 재잘재잘 말이 참많다. 오늘은 혼자 화장실에서 응가를 했는데 담임선생님이 (참고로 미혼의 미녀 호주 선생님이시다) 뒤처리 까지 함께 해주셨다고 자랑한다. 자랑할 것도 참 없지. 한 반에 호주, 일본, 인도, 중국, 한국아이들이 섞여 있는데 그 아이들이 힘들어 할 때마다 선생님이 화장실 뒤처리까지 해 주실걸 생각하니 고맙고 미안하면서도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제는 둥근 보름달이 오랜만에 떴다. 한국의 가을 날씨 마냥 초저녁 바람은 깨끗하게 시원하고 막 피기 시작한 꽃냄새가 지천이라 저녁을 먹은 뒤 하람이와 함께 앞마당에 잠시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대뜸 하람이가 “O”라고 크게 외친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 ”달이 오늘은 O 야. 어제는 D였고 저번에는 C였어“ 라며 달이 바뀌는 모양을 알파벳으로 표현한 것 이다. 누군가 이런 나를 보고 팔불출이라 해도 좋다, 순간 얼마나 하람이가 대견한지 이제 막 영어에 재미를 붙이고 모든 상황을 관찰하는 하람이의 눈썰미에 감탄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가정에서 100%영어를 사용하는 아이들과는 어쩔수 없이 많이 차이가 나고 선생님이 하람이가 잘 이해하지 못한다며 멘트를 굳이 남기실 때마다 하람이도 나름대로 얼마나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지 상상이 가 마음이 짠해진다. 나또한 호주에 온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영어가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이다.
한국에서 중 고등학교 시절 그렇게 죽도록 영어 공부를 했는데 여기서는 왜 써 먹을 수 없는지 시험을 위한 영어공부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는 것 이다. 영어하나 제대로 못해 호주에 와서 얼마나 답답한 세월을 보냈을지 상상해 보라. 오죽 답답하고 쉽게 영어가 늘지 않으면 하나님께 방언이라도 영어로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떼쓰며 기도한 적도 있다. 호주에서 10년을 살아도 공부하지 않으면 영어는 절대 늘지 않는다. 한국에 사는 친구들은 이젠 한국말보다 영어가 편 하겠다 라며 남의 속도 모르는 이야기를 한다. 영어가 쉽기는커녕 이제는 한국말도 잘 생각이 나질 않아 (교감선생님)을 (부교장 선생님) 이라고 말 한 적도 있다. 매주 목요일 마다 하람이는 뉴스발표를 한다.
아직 혼자 하기에는 벅차므로 함께 준비해 줘야 하는데 그 덕분에 요즘 내가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 할일이 없다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마음 같아서는 하람이와 같이 교복입고 학교 다니면서 기초부터 공부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오늘도 혼자 단어를 외우고 문장을 쓰며 하람이의 현명하고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연습을 한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영어 못하는 부모님을 창피해해서 학교에도 못 오게 한다는 누군가의 넋두리가 기억난다. 하루는 아이들의 그런 태도에 너무 화가나 ”너 영어공부 하라고 학비 대느라 엄마가 영어공부 못했으니 이제는 네가 엄마 학교 다니게 대신 돈 좀 벌어” 라고 했단다. 오죽 속상했으면 그랬을까 싶다. 살기 바빠서 그리고 다른 여러 이유로 호주 땅에서 맘껏 이야기도 못하고 제대로 따져보지도 못한 우리네 부모님들, 나또한 초보 부모로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며 그러나 이 땅을 정복하고 지경을 넓히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힘입어 다시 한 번 파이팅을 외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단 나는 영어정복을 조용히 꿈꾼다.
박은정 사모(시드니동산교회 양화영 전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