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현 목사의 성경인물 이야기
가족을 하나로 만들어 주는 어머니의 지혜, 드보라(2)
일상을 지배하는 여성의 지혜
드보라에 관한 성서의 전승은 사사로서 드보라의 존재를 분명하게 언급하면서도 전쟁을 수행하는 역할은 드보라가 지명한 장군 바락이 수행한 것으로 전한다. 대부분의 남성 사사의 경우 사사로서 직책과 군사적 지도자로서 직책이 일치하지만, 드보라의 경우는 다르다. 드보라는 예언자로서, 그리고 사사로서 일상생활 가운데서 사람들의 분쟁을 조정하고 재판을 담당했다. 그런데 가나안의 왕 야빈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했을 때 드보라는 바락을 군 지휘관으로 임명한다. 드보라는 군대를 지휘하는 바락과 동행해 전투를 명한다. 이 경우는 마치 사무엘과 사울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마지막 사사이자 예언자인 사무엘은 사실상 최고 군사지도자로서 사울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사무엘과 사울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시대보다 훨씬 앞선 초기 사사 시대 드보라와 바락의 관계는 사사의 중요한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를 매우 분명하게 보여주는 범례이다. 사사의 몫은 사실 효율적이고 기능적인 군사지도자보다는 자율적인 공동체로서 이스라엘을 일상적으로 돌보고 지키는 지도자의 역할이었다. 따라서 드보라의 경우 그 역할이 분리된 것은 여성 지도자로서 드보라의 역할이 제한적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사사의 고유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역할 분담에서 물리적 지배력에 대항해 새로운 대안 공동체를 추구한 자유민 공동체의 이상이 오히려 더 분명히 드러난다. 장군 바락이 수행한 군사적 대항은 위기에 대치하는 데에는 매우 효과적 인 조치였지만, 일상의 평화를 지속시키기 위한 과정에서는 제한적이고 부수적인 의미를 지닐 뿐이었다. 드보라의 이야기는 그러한 대비를 계속해서 보여준다. 드보라가 임명한 군사지도자 바락이 이끄는 군대는 다아낙에서 가나안 도시국가 동맹군과 대대적인 전투를 벌인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그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은 군사지도자 바락의 몫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변두리 인생에 불과한 이방 여인 야엘의 몫이었다. 바락의 군대와 싸우던 가나안 편의 군 지휘관 시스라는 병사들을 잃고 기진맥진해 미디안 여인 야엘의 집으로 피신한다. 야엘은 피신해온 시스라를 안도시킨 후 그가 잠들자 망치를 들어 그의 관자놀이에 말뚝을 박아서 목숨을 끊는다. 여인의 지혜 앞에 남성의 완력이 무력하게 무너진다. 게다가 이 여인이 적장 시스라를 물리친 것은 전쟁 무기인 칼과 창이 아니다. 일상의 생활 도구, 곧 노동의 도구인 망치와 말뚝이다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권력을 탐했을 때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한 여인이 던진 맷돌 짝이었다. 역시 똑같은 생활 도구이다. 이 사실은 상징적으로¸ 효율적인 지배의 도구는 군사력이라고 믿는 지배적인 가치관을 뒤집어엎는다. 드보라의 이야기는, 지배와 정복을 자랑거리로 삼는 남성적 완력에 대항해 일상을 일구는 여성의 힘과 여성의 지혜를 시종일관 웅변한다.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후 드보라와 바락은 승리의 노래를 부른다(사사기 5장). 성서는 이를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라고 전하고 있지만 사실은 드보라의 노래였다. 드보라가 자신을 1인칭으로 호칭하며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 드보라가 일어나기까지, 이스라엘의 어머니인 내가 일어나기까지’라고 노래한다. 바로 그 드보라의 노래는 남성의 완력과 여성의 지혜를 계속해서 대비한다. 아울러 남성적 힘에 의존한 여성의 운명을 비웃는다. 노래의 뒷부분은 불운한 가나안의 장군 시스라의 어머니와 시녀들의 한탄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의 병거가 왜 이렇게 더디 오는가? 그들이 어찌 약탈물을 얻지 못했으랴? 용사마다 한 두 처녀를 차지했을 것이다. 시스라가 약탈한 것은 채색한 옷감” 그렇게 기대하는 어머니에게 아들은 돌아가지 못한다. 승전한 아들의 약탈물에 대한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그렇게 아들의 운명에 의존한 어머니의 운명도 쇠락할 수밖에 없다. 남성적 지배 질서를 뒤집어엎는 드보라의 이야기는 그 지배 질서에 의존한 여인의 운명마저 그렇게 비웃는다.
연약한 여자, 강한 어머니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한다. 이 말이 결코 만고불변의 진리일 턱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여성상을 말한다는 점에서 일말의 진실은 있다. 약한 여자는 남성에 의존하는 여성을 말한다. 삼종지도(三從之道)라고 했던가?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해서는 남편을 따르고, 연로한 후에는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전통적인 여성관이다. 오늘날 이 가치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여성은 없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여전히 그 가치를 은연중 미덕으로 여긴다. 여전히 남성적 지배 체제 안에 여성들이 묶여있는 것이다. ‘약한 여자’는 여전히 그 질서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을 말한다. 반면에‘강한 어머니’는 의존적 존재와는 대비되는, 주체적 존재로서의 여성을 말한다. 남성 중심의 강력한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는 어머니상 역시 왜곡되는 것이 사실이다. 어머니가 공적인 영역과는 철저히 차단된 집안의 울타리 안에 갇힌 모성을 의미한다면, 그 어머니는 주체적 존재로서 여성을 뜻할 수 없다. ‘강한 어머니’는 자식들을 돌보며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여성상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강함은 남성적 완력 같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대체하는 힘을 의미한다. 근육질 남성의 강함이 아니라 섬세한 여성의 강함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권위와는 다른 어머니의 자애이다. 그런 여성의 힘을 보여주는 전형이 바로 드보라였다. 드보라를 일컬어 ‘이스라엘의 어머니’ 라고 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다 위대하지만 이스라엘의 어머니 드보라가 더더욱 위대하게 돋보이는 까닭이 있다. 드보라는 일상을 돌보는 여성의 자애가 사적인 영역에 제한되지 않고 당당하게 공적인 영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전형이기 때문이다. 남성적 지배 질서에 종속된 여성 지도력이 아니라 남성적 지배 질서를 뒤바꾸는 여성 지도력이라는 점에서 드보라는 빛나는 여성이었던 것이다.
한광현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