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현 목사의 성경인물 이야기
악역이 될 수밖에 없었던 여로보암
중국 역사를 다룬 소설 삼국지는 우리에게 단순히 중국의 역사를 넘어서 재미와 감동 그리고 여러 통찰력들을 준다. 한나라 황실의 후예로 촉나라를 세운 유비와 오나라를 세운 손권, 한나라 말기의 승상으로 위나라의 기틀을 닦은 조조가 천하의 패권을 놓고 대결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용맹스런 장수들의 무용담과 치열한 지혜의 싸움이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우리에게 친숙한 것은 14세기 나관중이 서술한 역사 소설 ‘삼국지연의’이다. 삼국지연의에서 나오는 주인공은 누구일까? 많은 독자들은 주저하지 않고 촉나라의 유비를 손꼽는다. 주인공이 있다면 악역도 있는 법, 나관중은 유비의 라이벌로서 조조를 대비 시킨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조조는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 도와준 사람이 혹시나 자기의 위협이 될까봐 죽이기도 하며, 후에 진궁이란 사람이 그것이 조조의 착각이었다고 말하자 그는 “내가 세상 사람들을 버릴지언정 세상 사람들이 날 버리게 하진 않겠다.”고 말하며 그의 본성이 악함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과연 조조는 정말 악인이었을까?
소설을 쓰는 작가에게 있어 그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주위 환경이나 시대적 배경이다. 나관중이 살았던 시대는 원나라 말기에서 명나라 초기로 난세에서 치세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원나라 말기, 부패한 정치의 암흑상과 혼란한 사회에 대항하여 나라 각지에서는 반란이 일어났고 농민들은 봉기하였다. 백성들은 통일을 갈망하고 혼란에서 벗어나 치세를 맞이하기를 바랬다. 나관중 또한 이에 영향을 받아 인정(仁政)을 펴고 왕도(王道)를 행하여 통일되고 안정된 정치 사회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사상과 당시 백성들의 염원은 소설 “삼국지연의”에 그대로 반영되어 어질고 너그러운 인군으로 이름난 유비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게 되고 그가 세운 촉을 정통으로 하는 이른바 촉한정통론을 기본 사관으로 삼게 된 것이다. 이러한 촉한정통론에 기초하여 작가는 조조를 한실을 찬탈한 역적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동승, 왕자복, 길평 등 한실에 충성하여 그 생명을 아끼지 않고 조조에 대항하는 그들을 충신이며 의사로서 찬양한다. 나라에서 의(義)와 충(忠)을 숭상하는 유교적 국가관에 입각해서 유비와 조조를 보았을 때에는 당연히 유비는 선인으로, 조조는 악인으로 운명이 갈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비교적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진수의 삼국지 정사에서 그는 조조를 평하기를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합리적으로 일에 대처했으며, 구악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이는 과거의 잘못을 따지지 않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대처해 사람을 등용했다는 의미로 간주되는가 하면, 중국의 마오쩌둥은 “조조(曹操)를 간신이라고 하는 것은 봉건정통관념이 만들어낸 것으로 반동사족들이 봉건정통을 유지보호하는 것이었다.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하면서 조조의 복권을 말한 바 있다. 그는 조조의 무너져가는 한나라 왕조를 재건을 위한 제도 개혁과 내전 때문에 굶어 떠돌아다니는 난민들을 새 땅에 정착시키고 정부가 보호해 주는 둔전제 등의 정치적 공적과 탁월한 군사재능 그리고 조조의 문학 재능을 칭찬하면서 조조를 재평가했다.
조조와 동병상련(同病相憐)인 여로보암
성경에서 여로보암은 악역의 대명사이다. 마치 삼국지의 유비와 조조의 대비처럼 다윗이 성군을 대변한다면 여로보암은 악한 군주로 대변한다. 다윗/솔로몬이 이룩한 왕조를 계승한 르호보암에 반기를 들고 북이스라엘 왕국을 세운 여로보암이, 유다 중심의 전통에서 악역을 맡은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가 전해 내려온 성경은 그 원형이 유다의 전통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유다의 전통이란 삼국지연의에서 기초사관이 된 촉한정통론과 같이 다윗과 솔로몬을 중심으로 세워진 역사관을 말한다. 따라서 두 왕국 모두 형편없는 역사의 길을 걷게 되더라도 북이스라엘에게는 악으로 평가절하하고 남유다에는 온정의 눈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로보암의 등장은 솔로몬의 학정과 실정에서 비롯된다(열왕기상 11:31 이하). 성경은 솔로몬의 정책에 대해 반기를 든 여러 지도자들이 있었음을 전한다(열왕기상 11:14∼25). 그 가운데서 여로보암은 가장 두드러진 지도자였다 왕위가 교체되어 르호보암이 솔로몬의 뒤를 이었을 때, 사람들은 정치적 망명객이었던 여로보암을 불러 지도자로 내세우고 새로운 왕에게 부왕의 학정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젊은 르호보암 왕은 온건한 원로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강경한 신진 군부세력의 의견을 따른다. 여기에 실망한 대다수 지파(10개 지파)들은 여로보암을 새로운 나라의 왕으로 추대한다.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한 데에는 실로의 예언자 아히야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실로는 제사장 엘리로 대표되는, 옛 부족 동맹의 정신을 왕권 체제를 통해 실현하려 했던 세력의 근거지였다. 사울의 지지세력 이기도 했던 이들에게 다윗―솔로몬 왕조는 자신들의 이상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아히야는 옛 부족 동맹 전통의 영향을 강하게 지키고 있던 북부를 대변하여 여로보암을 새로운 지도자로 승인한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북부 동맹은 국가발전 전략을 위주로 하는 다윗―솔로몬 왕권의 폐단을 시정하려 했지만, 그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유다 왕국과는 독립된 북 이스라엘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열왕기상 12:16∼20).
여로보암 악행의 실상
북부 동맹 역시 과거의 평등주의 체제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채택한 체제도 왕권 체제였다 그러나 왕조 이데올로기가 확고하게 자리 잡은 남 유다와는 달리 북부 동맹에는 여전히 옛 부족 동맹의 전통이 강했다 북이스라엘에 단일한 왕조가 지속될 수 없었던 사연은 이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북왕국 역시 왕권 체제를 택했다는 점에서 국가발전 전략이 갖는 모순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점에서, 북이스라엘 왕국도 남 유다 왕국과 같은 맥락에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남과 북 양쪽에 똑같이 부정적 평가를 내리면서도, 다른 근거를 들이댄다. 남유다 왕들에 대해서는 ‘다윗의 길’을 따르지 않아 악행을 저질렀다고 하고, 북이스라엘 왕들에 대해서는 ‘여로보암의 길’을 답습했다고 한다. 전자는 아무리 잘못했어도 봐줄 수 있지만, 후자는 아무리 잘 해봐도 별 수 없다는 식이다. 여기에서 여로보암은 만악의 근원으로 지명된다. 여로보암의 악행의 근원은, 예루살렘 성전 제의를 거부하고 단과 벧엘에 성소를 세워 그곳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두었다는 데 있다(열왕기상· 12:˙25∼31). 여로보암은 그 제단에서 유다와는 달리 8월 15일에 신년제를 드렸으며(열왕기상 12:32), 여러 곳에 산당을 짓고 레위인이 아닌 일반 백성 중에서 제사장을 임명했다(열왕기상 12:31). 유다와는 다른 이 조처들 때문에 여로보암은 두고두고 악행의 근원으로 규탄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다윗―솔로몬 왕가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 여로보암의 입장에서 그 구습을 그대로 따를 이유가 있겠는가? 단과 벧엘에 세운 성소는, 예루살렘 중앙집권 체제에 반하여 엣 부족 동맹의 중심인 그곳을 중시했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그 성소에 금송아지를 세운 것이 문제가 되었지만, 예루살렘 성전이라고 해서 형상을 두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도 법궤를 보호하는 그룹(Cherub)의 형상이 있었다. 그룹이란 짐승의 모습과 사람의 모습을 동시에 지니며 날개를 가지고 있는 존재로서 에덴동산을 지키는 존재, 성전의 법궤를 지키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어떤 것이든 그 형상으로 하나님의 입재의 조건을 규정했다는 것이 문제이지, 그룹은 정당하고 금송아지는 부당하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사실 종교문화사적으로 보면 양쪽 모두 자신들에게 익숙한 상징을 활용했을 뿐이다. 새의 날개를 단 천사 그룹이 남 유다에 익숙한 종교적 상징이었다면, 송아지는 북이스라엘에 익숙한 종교적 상징이었다. 척박한 남 유다의 자연 조건과 달리 물이 풍부하고 비옥한 토지가 많은 북이스라엘의 자연 조건에서 송아지는 매우 친숙한 동물이었다. 실제로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송아지를 하나님으로 떠받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보았다. 지방 여러 곳에 산당을 지은 것도 기본적으로 예루살렘 중앙집권 체제에 저항했던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각 지역의 연합체적인 성격을 지닌 북부 동맹은 당연히 지방의 역할을 중시했고, 그에 따라 각 지역별 성소를 공인했던 것이다. 아울러 레위인 사제를 교체한 것도 친다윗―솔로몬 왕권 인사 대신에 지방 토착세력을 기용한 것이니 북이스라엘로서는 당연한 것이다. 결국 만악의 근원으로 여겨지는 여로보암의 악행은 일방적으로 매도될 만한 것들이 아니다. 다윗―솔로몬 왕가의 정책에 그 나름의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로보암의 정책에도 그 나름의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 것이 더 특권체제를 강화하는데 기여했는지를 평가할 수는 있을지언정, 유다의 것과 다른 이스라엘 것이 잘못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북이스라엘 역시 왕권 체제로 귀결되었다는 근본적 한계를 지니고 있기는 하되, 중앙집권적 특권 체제에 저항했던 북이스라엘의 조처들에 긍정적인 요인들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도 있어야 한다.
뒤집으면 보이는 또 다른 가능성
북이스라엘은 악, 남유다는 선이라는 이원론적인 잣대를 들이대면 혹시나 악이라 평가되는 것 안에 숨어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북이스라엘이나 남유다 모두 한 민족이며 하나님의 통치하심에 포함되어 있는 영역들이다. 악이라 치부했던 북이스라엘 안에서 예언자들과 선지자들이 활동했던 것을 보면 그 역시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었음이 자명하다. 다시 말해 북이스라엘 역시 남유다와 마찬가지로 같은 하나님의 민족이다. 따라서 악의 근원으로 북이스라엘과 여로보암을 보기보다는 또 다른 길을 걸었던 지도자로 재평가 하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아울러 북한과 남한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가 유효할 것이다.
한광현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