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
그을린 사랑(Incendies)
정치이념에 함몰된 종교의 아픔
캐나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그을린 사랑'(원제 ‘incendies’는 우리말로 ‘불에 그을려 타버린 사람들’이란 뜻)은 와이디 무아와드의 동명 연극을 토대로 하고 있다. 중동출신이 아니면서도 이 연극에 완전히 매료됐던 빌뇌브 감독은 익숙치 않은 중동역사를 공부하고 레바논, 요르단 등을 실제로 방문해가면서 이 영화를 준비하고 연출했다고 한다.
레바논 내전상황에서 전개되는 비극의 가족이야기
영화는 중동의 어느 허름한 집안에서 어린 사내아이들이 삭발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무런 대사없이 머리를 깍이고 있는 대여섯살쯤 되어보이는 남자아이가 카메라를 응시한다. “이 아이는 왜 이런 곳에서 머리가 깎이고 있는 것일까” 궁금하게 한다.
이어 카메라는 추운 겨울날 캐나다의 몬트리얼에 있는 한 공증인 사무소를 비춥니다. 공증인 앞에는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이 앉아있다. 갑작스럽게 사망한 어머니 나왈 마르완이 공증인을 통해 남긴 유언을 듣기 위해서다. 어머니의 유언은 “너희 아버지를 찾아서 편지를 전해라. 너희 형(오빠)을 찾아서 편지를 전해라. 편지를 전했다면 내가 너희 두사람에게 남긴 편지를 공증인으로부터 받아라. 내가 남긴 요청을 모든 행했다면 내 시신을 땅에 묻고 묘비를 세워도 좋지만, 만약 행하지 못했다면 옷을 모두 벗겨 얼굴이 땅쪽을 향하도록 뒤집어 묻은 다음 비석조차 세우지 말아라. 나는 하늘을 올려다 볼 자격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들 남매는 아버지가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던 것으로 알았고, 형(오빠)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어 어머니의 유언을 보고 어리둥절하다. 아들 시몽은 화를 낸다. 결국 잔느는 말리는 시몽을 뒤로하고 캐나다를 떠나, 사진 한장을 들고 어머니의 고향을 찾는다.
이렇게 시작된 영화는 잔느와 시몽이 어머니의 과거를 찾아나가면서, 자신들이 한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종교의 땅 중동 고국의 참혹했던 현실을 인식하고 어머니를 이해하며, 결국엔 자신의 뿌리를 찾아내는 과정을 다룬다.
한 가족의 허구이야기를 통해 보는 세상의 참상
이 영화는 사실 마르완 가족의 허구 이야기다. 하지만 그 배경은 당시 참혹한 레바논의 내전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레바논 남부지역에서 성장한 기독교인 마르완이 팔레스타인 난민 출신 이슬람인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당시 레바논에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쏟아져 들어왔던 상황을 반영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남자와 사랑에 빠진 기독교계 여성의 비극적인 운명 역시 당시 수많은 연인들이 겪은 일이었다. 마르완이 아기를 포기하고 고아원에 맡긴 후 대학생이 되고 정치혼란가운데 진보정치운동에 뛰어드는 것, 마르완이 고아원에 맡겨둔 아이를 찾으러 가는 과정에서 기독계 민병대가 저지르는 끔찍한 이슬람계 버스탑승객 학살사건을 목격하는 에피소드는 레바논 내전이 격화되는 계기가 됐던 실제 사건 그대로다. 기독교인이지만 기독민병대의 무차별 학살을 목격하며 배교후 이슬람테러리스트가 되어 기독교계 정치인을 총으로 쏴죽이는 장면은, 1982년 레바논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된지 3주만에 폭탄테러로 목숨을 잃었던 팔랑헤당 지도자 바시르 게마엘 암살사건을 그대로 재연해내고 있다.
영화 이해를 위해 레바논의 종교적 배경 알아야
레바논은 제1차 세계대전 후 레바논의 인구구성 중 51%를 차지했던 기독교도 마론파와 그 다음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는 수니파 이슬람교도간 연합으로 성립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기독교 세력의 우위를 보장하기 위해 대통령은 항상 마론파에서 선출되며, 레바논의 아랍적이고 이슬람적인 성향을 보장하기 위해 총리는 수니파, 국회의장은 시아파에서 선출되어야 한다는 협약을 맺었다. 1970년대 이슬람교도가 급증하면서 기독교도는 3분 1을 조금 넘는 구성 비율로 바뀌었다. 그러자 이슬람교도는 총리의 권한강화 등 보다 강력한 권한을 요구하였다. 이에 마론파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민병대를 조직하여 이슬람에 대응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간의 갈등은 1970년대 고조되어 극렬한 내전으로 치닫게 되었다.
레바논 내전(1972-91년)이 왜 일어났는가에 대해선 학설이 분분하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정정불안, 팔레스타인난민유입에 따른 종족, 종교적 갈등, PLO유입 등이 하나의 계기가 됐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내전이 불붙게 된 것은 1975년 기독교민병대의 ‘버스 학살’이 도화선 역할을 했다. 앞서 75년 4월 13일 팔레스타인계로 추정되는 무장괴한들이 4명의 팔랑헤 조직원을 사살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슬람계 주민들이 타고 있던 버스 한대에 기독교계 팔랑헤가 무차별 총격을 퍼부어 26명을 몰살한 것이다.
레바논의 비극, 세상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
빌뇌브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마르완 가족과 레바논이 겪은 비극과 분노는 지구상 어느 곳에서라도 벌어질 수있는 일이라고 했다. 또한 영화는 레바논 내전 그 자체보다, 고통스런 과거를 함께 헤쳐나감으로써 결국엔 이해와 사랑에 도달하는 가족의 내면에 집중하려 했다는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그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이 가족을 덮친 비극적인 상황에 가슴이 아파서, 내 아이들만큼은 ‘증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진실을 마주하도록 만들어야한다는 한 어머니의 굳은 의지가 존경스러워서, 그리고 한때는 풍요롭고 자유로왔지만 끔찍한 내전에 풍비박산된 한 나라가 안타까워서, 아니 이 세상의 모든 고통받는 국가들의 국민들이 안타까워서…
임운규 목사(본지 발행인)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