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
노스트라다무스 : Nostradamus
감독) 로저 크리스찬 / 주연) 체키 카료, F. 머레이 아브라함 / 1994년
프랑스 태생의 최고의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 (Michel De Nostredame: 1503 ~ 1566)의 삶을 영화화한 전기 영화로 미술 감독 출신의 로저 크리스티안 (Roger Christian)의 첫 연출 작품이다.

칸영화제 개막 영화로 지목되었으며, 흥행에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소년 노스트라다무스는 거대한 불길이 도시를 삼키고 땅이 갈라지며 검은 연기가 세상을 뒤덮는 악몽을 꾼다. 그의 할아버지는 그의 특별한 재능이 세상에 알려질까 두려워 그를 먼 곳으로 보낸다. 12년 후 몽빼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그는 허술한 당시의 의학에 나름대로 치료법과 학설을 주장하여 동료와 교수들에게 배척당한다. 마침 흑사병이 번지자 그는 퇴학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이 개발한 치료법을 사용해 많은 사람들을 살려낸다. 그후 명망높은 스캘린저 박사는 그의 재능을 인정, 자신의 모든 것을 전수하고 수많은 금서들을 공개한다. 그러나 스캘린저 박사의 조수 메리와 결혼, 아들을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린 노스트라다무스는 계속되는 환상에 두려워한다. 하지만 자신의 환상이 인류를 위한 신의 선물인 것을 깨달은 그는 프랑스 혁명, 히틀러의 출현, 케네디의 암상 등 자신이 보는 환상들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 노스트라다무스 (Michel De Nostredame : 1503 ~ 1566), “그의 예언에 귀 기울리라,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 (There’s Still Time to Understand his Words)”
○ 제작 / 출연
– 제작
감독: 로저 크리스찬 (Roger Christian)
음악: Barrington Pheloung
제작사: Allied Entertainments Vereinigte Film Partners
배포사: Orion Classics (USA), August Entertainment (UK)
시간: 119분

– 출연진
체키 카료, F. 머레이 아브라함
룻거 하우어, 아만다 플러머, 줄리아 오몬드, 아슘타 세르나
Tchéky Karyo as Michel de Nostradamus
F. Murray Abraham as Julius Caesar Scaliger
Rutger Hauer as The Mystic Monk
Amanda Plummer as Catherine de’ Medici
Julia Ormond as Marie
Assumpta Serna as Anne Gemelle
Anthony Higgins as King Henry II
Diana Quick as Diane de Poitiers
Michael Gough as Jean de Remy
Maia Morgenstern as Helen
Magdalena Ritter as Sophie
Leon Lissek as Inquisitor
Michael Byrne as Inquisitor

○ 줄거리
쌩 레미에서 출생한 노스트라다무스 (Nostradamus : 체키 카리오)는 아비뇽 대학에서 다방면에 걸쳐 많은 지식을 습득한 뒤 몽뺄리에로 옮겨 의학을 공부한다.
16세기 초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자, 노스트라다무스는 위생을 강조함과 동시에 장미 꽃잎으로 제조한 환약을 개발 많은 생명을 구해낸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느라 동분서주하는 동안 자신의 아내 (줄리아 오몬드)와 두 아이가 흑사병으로 죽게 되고 노스트라다무스는 정처없이 이곳저곳을 떠돌게 된다.
이때 종교 재판소로부터 미움과 시기를 사게되고 영화는 긴박하게 돌아간다.
형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와 의사로 활동하던 중 만난 과부 앤 (Anne : Assumpta Serna)과 재혼을 한 그는 당시 프랑스 국왕인 앙리 2세의 죽음을 예언하고 야망과 복수심에 불타는 캐서린 왕비의 보호아래 미래의 재난을 알려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자 예언서를 출판한다.
* 노스트라다무스 (Michel De Nostredame: 1503 ~ 1566) “그의 예언에 귀 기울리라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 (There’s Still Time to Understand his Words)”
프랑스 태생의 최고의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 (Michel De Nostredame: 1503 ~ 1566)의 삶을 영화화한 전기 영화로 미술 감독 출신의 로저 크리스티안 (Roger Christian)의 첫 연출 작품이다.
칸영화제 개막 영화로 지목되었으며 흥행에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니키타>에서 정보원 훈련 책임자로 열연한 터키 출신의 배우 체키 카리오가 노스트라다무스의 역을 잘 연기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수학 의학 천문학 동식물에 정통했으며 인류를 사랑한 휴머니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1555년 1000여 편의 예언시를 수록한 예언 시집 12권을 출간했다. 이중 특히 논란이 된 것은 99년 종말론에 대한 해석 방식이다. 그 4행시 중 ‘고독’ ‘홀로’ 같은 표현이 빈번한 것은 특정 교파에 의존한다는 비난을 살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란 설명도 있다. 그의 예언서는 불어로 된 4행시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압축된 섭답 (禪答)으로 심오한 뜻이 녹아든 자구 (字句)들을 조합한 탓에 그의 통찰력은 정당한 평가를 받기 못한 경우도 많다.
미국에서 노스트라다무스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는 스티븐슨 박사가 이것을 모두 모아서 순서대로 정리하여 영어로 번역하고 주석까지 달아놓은 책이 그의 예언서 연구에 있어서 최고의 텍스트로 꼽힌다. 여기에 일본의 구도 벤이라는 작가가 쓴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의 해설서는 그 책을 읽고 해석하는 방법에 대해서 많은 길잡이가 될 수 있는 뛰어난 것이었다.
예언가로서 그는 많은 것을 적중시켰다. 히틀러의 등장과 2차 세계대전을 상당히 세밀하게 예언하고 있는데 영화에서는 그의 이름을 ‘히슬러’라고 거의 정확하게 예언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그의 예언서를 보면 ‘히스터 (Hyster)’라고 되어있다. 그의 예언서에서 이 인물은 “강철의 갈구리를 이끌며 다뉴브강 양쪽을 모두 점령한다”라고 되어있는데 갈구리란 다름 아닌 나치의 하켄 크로이츠 갈구리십자를 말하는 것이며 유럽 역사상 다뉴브강 양쪽의 나라들을 한꺼번에 모두 점령한 것은 오직 나치 독일 뿐이다. 그는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1999년 7월에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의 예언에는 모든 세기 (Les Siecles) 10장 20절 “1900 90의 9년 7의 달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리라”라고 되어있어서 그 해석에는 갖가지 의견이 분분하다. 일본의 원폭 투하의 경우 예언서에는 “1945년 동방의 입구 (일본) 두 도시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전례없는 재앙 (원자폭탄)이 닥치고 철이 아닌 것(우라늄?)에 공격받은 이들은 불멸의 신 (천황)에게 읍소한다”라고 되어있다.
그는 1564년 국왕 찰스 9세로부터 시의 (侍醫)로 임명됐다.
1566년 임종 하루 전날 “내일 뵙겠습니다”라는 제자들의 하직 인사를 받고 “해가 떠도 나는 깨지 않을 걸세”란 마지막 예언을 남기고 운명했다.

그가 적중한 예언들은 다양한 시공에 걸친다. 프랑스 앙리 2세 기마 시합 중 사망 (1559년) 영국 찰스 1세 처형과 크롬웰 섭정 (1649),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1700), 나폴레옹 출생 (1769), 히틀러 출생 (1889), 제1차 대전 발발 (1914),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1917), 2차대전 발발 (1939), 일본 원폭 투하와 연합군 승리 (1945), 이란 회교 혁명 (1978), 프랑스 메테랑 사회당 집권과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암살 (1981), 영국-아르헨티나 포클랜드 전쟁 (1982), 체르노빌 원전 사고 (1986), 베를린 장벽 붕괴 (1989), 공산주의 와해 (1991), 세기의 역병 에이즈 출현 등.
영화에서 노스트라다무스는 야망과 복수심에 불타는 캐서린 왕비의 보호를 받으며 당시 프랑스 국왕인 앙리 2세의 죽음을 예언하면서 캐서린 왕비가 그녀의 여러 자녀들 보다 오래 산다고 예언하는 장면이 있다.
여기에 앙리 2세의 왕자 공주들이 모두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것도 실제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중 직접 이름이 소개되는 두 사람은 영화에도 많이 등장한다.
‘마르고 공주’는 바로 대작 <마고 여왕 (La Reine Margot)>의 주인공으로 신-구교도 간의 충돌로 이른바 ‘성 바솔로뮤의 학살’ 사건에 휘말리는 비극적인 생애를 산 여인이다.
황태자와 그와 어린 나이에 결혼한 ‘스코틀랜드의 매리 (Mary Of Scotland)’도 소개가 되는데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대로 창시합에서 죽은 부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태자는 이름 모를 괴질로 일찍 죽는다.
그리고 귀국한 후 스코틀랜드의 여왕이 되어 잉글랜드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와 피나는 권력 투쟁을 벌인 매리도 결국은 패하여 사형을 당한다.
그러나 그녀가 낳은 왕자는 후손이 없는 엘리자베스 1세가 죽자 영국의 왕위를 계승한다. 그가 바로 제임스 1세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는 캐서린 헵번이 주연을 한 <메리 여왕의 사랑과 종말 (Mary Of Scotland)>이 있고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매리 역)와 글렌다 잭슨 (엘리자베스 역)의 불꽃튀는 전설적인 경연으로 유명한 <비운의 여왕 매리 (Mary Queen Of Scots)>가 명작으로 꼽힌다.

○ 영화 관련 언론보도
– 노스트라다무스, 예언가의 숨겨진 인간애 부각
80년대 서점가에 예언서 바람을 일으킨 노스트라다무스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만약 그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관객들은 무슨 생각을 먼저 할까.
아마 조금은 음산하고 으스스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노스트라다무스” 하면 머릿속에 우선 떠오르는 단상이 “1999년 지구 종말”의 예언자이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 히틀러의 출현과 2차 세계대전격전지, 댈라스에서의 케네디 암살 등 섬뜩하리만치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그의 예언이 이같은 선입견을 더욱 견고하게 한다.
그러나 영화 “노스트라다무스”는 그를 단순히 “신통한 점성술가”로 묘사하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그의 감추어진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킨 데에 이 영화의 묘미가 있다.
아내와 자식의 안녕을 위해 예언하기를 거부했던 보통사람, 가난한 사람을 위해 기꺼이 인술을 베풀었던 따스한 마음씨의 의사,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인류최초로 사향향수를 발명한 로맨티스트가 바로 이 영화를 통해 발견되는 그의 새로운 면모들이다.
예언자로서의 그의 모습도 다가올 운명 앞에 인간의 자유의지를 제시한 철학자로서 제시되고 있다.
문득문득 자신의 눈앞에 펼쳐지는 미래 세계의 환상때문에 괴로워하던 그는 결국 이를 시적으로 표현한 예언서를 쓰기로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랫 속에서 앞서간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하는 것처럼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나의 예언에서 앞으로 가야할 올바른 길을 찾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이 영화에는 누구하면 알만한 대스타는 없다. 그러나 개성파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가 영화의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니키타”에서 차갑고 매력적인 첩보원역을 훌륭히 소화해낸 체키 카리요가 노스트라다무스역을 맡았다.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르역을 맡아 오스카상을 받은 머레이 에이브라함이 노스트라다무스에게 신비주의철학을 가르치는 스켄저역으로 다시한번 그의 연기력을 과시한다.
총75명의 의상스태프들이 철저한 고증을 거쳐 조달한 1천50벌의 중세의상도 눈여겨 볼만하다. _ 한경 <윤성민 기자>

– 영화이야기 : 노스트라다무스
이번 영화는 세계의 종말을 예언한 사람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 의 생애를 그린 영화‘노스트라다무스’ 입니다.
1503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미셸 노스트라다무스는 철학, 문학, 역사, 의학에 정통했고 연금술, 점성술을 배우며 불어로 된 4행시 12 예언시집들을 출간했습니다.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아래 이루어진 당시의 중세시대에 그는 과학과 실험정신을 굳게 믿으며 진정한 진리를 찾고자 힘썼던 진보적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페스트가 전 유럽을 휩쓸던 그때 따뜻한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며 ‘신 앞에서 만인은 평등합니다.’ 를 외치며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성직자의 병까지 치료해주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어쩌면 그가 인류를 위하는 예언능력을 갖게 된 것도 온갖 어려움에 맞서 진정한 진리를 추구하는 인도주의자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때는 페스트가 전 유럽을 초토화시킨 16세기 초의 중세 말, 거대한 재앙으로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앙심이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을 멈추게 하는 것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조금씩 신앙에 의혹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런 사회정치의 분열속에서 교회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사람들을 이단으로 몰아 화형에 처하면서 그들의 마음에 공포심을 조장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시키는 이른바 ‘마녀사냥’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노스트라다무스 (체키카료) 는 자신을 키워준 유모가 마녀로 몰리면서 길거리에서 화형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데 이때 그는 처음으로 기독교 윤리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진지한 의구심을 갖게됩니다.
그리고 12년 후, 노스트라다무스는 ‘몽벨리에’ 대학에서 의학을 배우지만 교수들이 언제나 고대 문헌에만 집착했고, 환자 개개인의 상태를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교수가 강단에 서서 문헌을 읽으면, 학생들은 그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적는 중세의 수업방식에도 의혹을 품었는데 문헌을 그대로 줄줄 읊는 교수들도 문제지만 학생들이 그것을 아무 비판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진보적인 ‘노스트라다무스’ 에게는 개개인의 독창적인 실험정신이 결여된 ‘몽벨리에’ 대학의 수업방식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 같아서 이런 교육현실이 안타까왔습니다.
그러던 도중에 한 교수가 갑자기 쓰러지는데, 노스트라다무스가 상태를 보니 흑사병이었습니다. 흑사병은 중세 유럽 사회를 붕괴시킨 커다란 원인 중 하나일 만큼 당시에는 큰 재앙이었고 그래서 길거리에는 사람들의 시체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의사이기도했던 노스트라다무스는 사람들에게 위생을 강조함과 동시에 장미꽃잎으로 제조한 자신의 환약을 주려고 했지만, 성직자들과 교회는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지하지 않고 의학에 의지하는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며 ” 예수 그리스도의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에 어찌 자네가 손을 대는가? ” 라고 반문합니다.
이 때 노스트라다무스를 이단으로 몰던 성직자가 페스트에 감염되고 노스트라다무스는 그를 치료하던 중, 우선 감염을 막기 위해 먼저 그의 옷을 태워버려야 한다고 말하자 감히 신성한 성직자의 옷을 태운다는 그의 생각은 기존의 기독교인들은의 거센 반발에 부딪힙니다. 게다가 페스트에 감염된 성직자는 “십자가에 입을 맞춰 보시오. 당신은 악마요. 그러니 당신의 입술은 타버릴 거야. 만약 당신의 입술이 타지 않는다면 나를 치료해도 좋소! ” 라고 말하고 노스트라다무스는 십자가에 입을 맞추고 그를 치료해줍니다.
상황은 악화되어 한시라도 빨리 치료를 해야 하는 시점에서 성직자는 노스트라다무스도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루터파인데 당신은 어떤파요?’ 그러자 노스트라다무스는 ‘ 저는 카톨릭입니다.’ 라고 답합니다. 중세 말, 조금씩 분열의 조짐을 보이던 교회가 ‘루터파’와 ‘칼뱅파’ 로 나뉘었던 시점입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대학을 졸업한 후, 당시의 저명한 과학자였던 ‘스캘린저’ 박사 밑에서 공부를 하게 되는데 어느 날, 스캘린저 박사는 노스트라다무스에게 자신의 저택 지하를 보여주고 거기에는 당시 입에만 올려도 이단으로 몰려 처형당할만한 금기 서적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물론, 현재는 위대한 자연과학계의 서적들로 여겨지는 것들이었지만 아무튼 스캘린저 박사의 조수였던 ‘메리’ (어섬터 세너 분) 와 결혼한 노스트라다무스는 혼인 후 메리에게 지하실을 보여주게 되고 메리는 과학서적에 푹 빠져 결국 스캘린저 박사와 노스트라다무스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게 됩니다.
중세의 유럽은 거의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했고, 때문에 신앙과 이성을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과학이라는 학문은 객관적이고 올바르게 논의될 수가 없었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과학은 이단, 금기시되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노스트라다무스의 과학과 실험정신은 언제나 억압받았고, 교회가 ‘아니다’ 고 할때는 어떤 과학도 입에 담을 수 없었습니다.
흑사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치료할 때도 기독교 때문에 반대에 부딪혔고 이런 속에서 노스트라다무스는 점점 불안한 미래를 예측하게 되는데 당시 프랑스의 국왕이었던 앙리 2세의 죽음과 여러 왕족들의 죽음을 미리 예측해서 맞추자 사람들은 그에게 예언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두려워서 ‘사탄’ 이라며 없애버리려고합니다. 하지만 야심많은 캐서린 왕비는 그를 구하고, 그녀의 후원아래 자연과학과 의학 연구를 계속해서 1000여편의 예언시를 수록한 ‘예언시집’ 12권을 출간하게 됩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그는 ‘나는 인류의 미래를 보았다’고 말하는데요, 그의 예언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예언보다 더 궁금한 것은 노스트라다무스가 과연 ‘인간 이성의 역사’ 에 있어서 암흑기나 다름없던 중세에 태어나 죽음 앞까지 몰고 가는 위기 앞에서도 도대체 무엇을 지키려고 그토록 피를 토하며 움켜쥐었던 것일까요?
페스트로 도시가 사라질 만큼 매일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되고 그러자 기독교 지도부에서는 이 불안을 극복하고자 마녀사냥을 통한 공포정치를 시작하는데 공포정치는 지도자의 불안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나라도 수순이 기가막힌 것이 황교안 국무총리가 어느 날 느닷없이 애국을 말하더니 박근혜 대통령은 일언지하에 개성공단을 갑자기 중지한다고 발표합니다. 얼마나 큰 피해가 생기는지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 피해보다도 더 중대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리고는 사드를 배치 해야한다고 날뛰기 시작합니다. 오히려 미국은 북한의 핵만 포기시킬 수 있다면 한반도의 사드배치는 백지화 할 수도 있다고 발표해서 우리 정부를 멀쓱하게 만듭니다.
아무튼 정부는 총선을 앞두고 국가위기 상황이라며 국가가 테러위협에 처할지도 모르니 테러방지법이 필요하다면서 대통령은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합니다. 결국은 공포분위기를 조장해서 테러방지법이라는 명목으로 국정원에 더 강력한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일련의 수순같은데 국정원이 어디입니까?
서울시 공무원이던 유씨를 간첩으로 몰아세우기 위해 그의 여동생까지 협박했던 곳입니다.
이 사람이 간첩으로 적발이 되어 재판을 받았는데 무죄가 선고되었고, 이때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유씨의 중국과 북한 사이의 입출경 기록은 국정원이 조작한 서류라고 중국정부가 밝혔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선거에 개입했다고 의심받던 국정원 해킹팀 직원이 자살하는 소동까지 일어났었습니다. 이런 곳에 더 힘을 실어준다면 이들이 할 일이 무엇일까요?
테러방지법의 주요 내용은 국정원장이 국정원 소속의 테러통합대응센터를 운영하며 정부 소속 테러대책상임위원장까지 맡게 됨에 따라 대테러 활동을 총괄하는 사실상 국정원이 대테러 활동을 모두 가져가게 되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입니다. 세월호 사건 이전이 국정원 최대의 위기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런 점에서 세월호 사건의 최대 수혜자는 국정원 일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경제자문회의에서 희생, 불안,위기 세단어를 힘주어말햇다고합니다. 불안과 공포는 박근혜 대통령을 설명하는 키워드입니다. 그런데 공포정치는 사람들의 불안의식을 정치적 자원으로 삼아 사람들의 순응을 유도하므로써 목적을 실현하고자하는 정치를 뜻 한다고 합니다. 바로 중세시대의 암흑기처럼 말이지요, _ 영화감독 홍두완 (2016. 3. 16)

프랑스의 천문학자 · 의사이자 예언자로 명성얻은 노스트라다무스 (Nostradamus, 1503 ~ 1566) 개관
노스트라다무스 (Michel de Nostredame 라: Nostradamus, 1503년 12월 14일 ~ 1566년 7월 2일)는 프랑스의 천문학자, 의사이자 예언가이다. 노스트라다무스는 라틴어 이름이고 ‘성모 (聖母)의 대변자’라는 뜻이며 본명은 미셸 드 노스트르담 (프: Michel de Nostredame)이다.
1555년에 처음 출판된, 운을 맞춘 4행시를 백 편 단위 (Centuries)로 모은 ‘예언집’ (Les Propheties)으로 유명하다.
노스트라다무스는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상레미에서 1503년 12월 14일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의사, 아버지는 세리 (세무공무원)인 유태인 집안이다.
1522년 명문대학인 몽펠리에 의대에 입학했으며, 흑사병을 치료하여 매우 유명해졌다.
프랑스 남부의 살롱드 프로방스는 노스트라다무스가 머물던 곳으로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불린다.
르네상스 시대 다락방에서 예언하던 노스트라다무스는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권세부터 세계 2차 대전, 아돌프 히틀러, 달 착륙, 그리고 9.11 테러 사태까지 예언했다고 알려져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예언을 하기 전부터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프랑스 왕과, 왕비의 점성술 자문위원이었으며, 1550년부터 다작을 집필하며 천문력을 저술해 많은 돈을 벌기도 했다.

– 노스트라다무스 (Nostradamus)
.본명: 미셸 드 노트르담 (Michel de Nostredame), 노스트라다무스 (Nostradamus)는 라틴어식 이름
출생: 1503년 12월 14일, 프랑스 프로방스
사망: 1566년 7월 2일 (병사, 62세), 프랑스 파리
성별: 남성
국적: 프랑스
학력: 몽펠리에 의대
직업: 천문학자, 의사
.배우자: 안느 폰사르드 (1547 ~ 1566), 앙리에뜨 당코스 (1534 ~ 1537)
종교: 로마 가톨릭
노스트라다무스는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상레미에서 1503년 12월 14일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의사, 아버지는 세리 (세무공무원)인 유태인 집안이다.
1522년 명문대학인 몽펠리에 의대에 입학했으며, 흑사병을 치료하여 매우 유명해졌다.
프랑스 남부의 살롱드 프로방스는 노스트라다무스가 머물던 곳으로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불린다.
르네상스 시대 다락방에서 예언하던 노스트라다무스는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권세부터 세계 2차 대전, 아돌프 히틀러, 달 착륙, 그리고 9.11 테러 사태까지 예언했다고 알려져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예언을 하기 전부터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프랑스 왕과, 왕비의 점성술 자문위원이었으며, 1550년부터 다작을 집필하며 천문력을 저술해 많은 돈을 벌기도 했다.

○ 생애 및 활동
그의 조상은 원래 유대인이었으나 할아버지때 가톨릭으로 개종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영민한 미셸은 상업 대신 학문의 길을 택해 15세때 아비뇽 대학에 입학했으나 2년 뒤인 1520년에 흑사병이 돌아 대학이 휴교하자, 8년간 프랑스 전역을 방랑하며 견문을 넓히고 학문을 다듬은 후, 1529년에 당대의 명문 몽펠리에 대학 의대에 입학하여 의사 자격을 얻었다.
그 후 당대의 명의 스칼리제 밑에서 수련을 하면서 앙리에트 당코스라는 여인과 결혼하여 1남 1녀를 얻었으나, 흑사병 환자들을 치료해주고 돌아와보니 막상 자기 아내와 자식들이 흑사병에 걸려 죽는 슬픈 일을 겪는다.
그 후로 약 10년 간의 행적이 묘연하다.
그 후 1546년에 남부 프랑스에 흑사병이 퍼졌을 때 새로운 치료법으로 흑사병을 치료하는 데 공헌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의사로서도 당시 시대를 꽤 앞서 나간 모습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1546년에 남부 프랑스에 흑사병이 퍼졌을 때 ‘새로운 치료법으로 흑사병을 치료하는 데 공헌했다’고 전하는데, 이 새로운 치료법을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거리에 널브러진 시체 전부 수습해 매장하기
한번 쓴 붕대는 재활용하지 않고 더러워진 붕대는 전부 태워 버리기
쥐는 보이는 대로 모두 잡아서 불태우고 도랑에는 술이나 뜨거운 물을 뿌려 쥐가 다니지 못하게 하기
죽은 환자가 사용했던 시트나 옷은 전부 불태우기
물은 무조건 끓여서 마시고 끓인 물로 목욕하기
신선한 공기 마시기
동시기 동양권이나 현대 서양인 기준에서는 새롭게 느껴지기 어려우나 노스트라다무스가 살았던 시대는 ‘위생’이라는 개념이 모호했던 중세 직후 르네상스 시대였다. 노스트라다무스 본인도 이 치료법 대로 환자를 대할 때는 반드시 몸을 씻고 환자를 대했다. 이는 획기적이고 선구적인 것이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당시 흑사병의 미신적이고 주술적인 것에 의지한 원시적인 대처 방식에 맞선 최초의 임상의로 평가되기도 한다.
1547년부터 살롱 드 프로방스라는 마을에 안주하며 여기서 안느 폰사르드를 만나 재혼하게 된다. 안느에게서 3남 3녀의 자녀들을 얻는다.
1550년경부터 다음 해에 있을 일들을 예언하는 달력을 발간하기 시작했고, 예언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1555년에는 그 유명한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집의 초본을 발간하게 되는데, 인쇄술의 보급, 당시 지식인들 사이의 신비주의 열풍 등을 타고 프랑스 전체로 퍼져나가게 된다. 그러던 중 오컬트 신봉자인 앙리 2세의 왕비 카트린 드 메디시스에 의해 궁정으로 초청된다.
이후 앙리 2세의 마상 창 시합 도중의 사고사, 앙리 2세와 카트린 사이에서 얻은 아들들이 모두 프랑스 왕이 되지만 모두 요절한다는 예언이 들어맞으며 더욱 유명해진 그의 이름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사람들은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의 예언서를 뒤져보게 된다.
말년에는 통풍과 류머티즘으로 고생하였으나, 왕비의 총애를 받아 풍족한 노후를 보내게 된다. 1566년 7월 1일 병사하기 전날 밤에 자신의 죽음을 가족들에게 예언한 것이 마지막 예언이 되었다.

○ 예언 관련
– 주요 예언
노스트라다무스가 남긴 예언서의 내용은 난해하여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며, 이로부터 예상되는 예언, 지나간 일에 대한 예언의 적중 등이 화제가 되기도 한다.
.프랑스 왕 앙리 2세가 마상 경기 도중 사고로 사망할 것을 예언 (豫言)하였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유명한 예언중에 “1999년 7월에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온다”는 예언이 있어 1999년 당시 상당히 시끄러웠다. 마침 나토가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주민 학살에 대한 책임으로 유고슬라비아를 공격하자 (코소보 전쟁) 당시 예언과 맞물려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코소보 전쟁은 6월에 종전됐으므로 사실상 1999년 7월 20일에 중국에서 발생한 파룬궁 탄압이 더 맞다는 주장도 있다. ‘공포의 대왕’은 중국 공산당의 잔인한 파룬궁 탄압, 뒷 구절 “그 전후 기간 마르스(Mars)는 행복의 이름 하에 지배할 것이다”의 ‘마르스(Mars)’는 당시 중국을 통치했던 공산당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해주었던 ‘마르크스 (Marx)’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 4행시 예언에는 지구 멸망이라는 단어는 없다).
.인간이 나중에 말 대신 자동차를 타고 다니게 되었는데, 그는 자동차의 이름을 ‘카로 (Carro)’라고 부르고 카로를 미친 듯이 좋아하는 사람을 ‘카로마니 (Carromanie)’라고 부르며, 카로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사후 360년 뒤에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청년시절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 지나가던 ‘펠리체 베리티’라는 기독교 수도사 (수사)에게 무릎을 꿇고 “교황 성하께 무릎을 꿇나이다”라며 경의를 표한 일이 있었다. 1585년 그 수도사는 정말로 교황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식스토 5세였다. 물론 이건 노스트라다무스 사후의 일이었다.
.2008년 9월 10일 스위스 제네바 근교에서 어떤 실험이 이루어지고 그 실험으로 검은 구멍 (블랙홀)이 생겨 지구를 삼켜버린다는 예언이 CNN을 통해 알려졌다. 실제로 현재 스위스/프랑스 국경에서 CERN이 LHC로 빅뱅을 재현하는 실험이 있어,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지구가 멸망한다는 것도 예언했는데, 혜성이 떨어질 때, 그가 칭한 마부스 (Mabus)가 나타난다고 하였다. 마부스는 적그리스도라는데, 히틀러, 나폴레옹보다 끔찍한 지구를 멸망시킨다는 적 그리스도라고 한다.

– 예언에 대한 분석과 논란
쿼티렌이라 불리는 1,000여편의 4행시 모음은 그를 전설로 남게 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3년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예언록을 작성했다.
이로써 942편의 4행시가 탄생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4행시 저서 예언록이 1955년 출간된 이후로 이 책은 성경, 셰익스피어 작품과 더불어 독자들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며 재출판되었다.
정확한 날짜나 사건을 언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노스트라다무스는 자신의 점성술을 이용하여 종말의 시기를 예언했다.
그가 예언한 종말은 1999년과 3997년 혹은 7000년으로 해석에 따라 시기가 각각 다르다. 그의 예언은 모호한 표현이 많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40년간 해석해온 장 샤를 드 퐁부키는 노스트라다무스의 4행시를 해석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퐁부키는 노스트라다무스가 나폴레옹 등을 예언했다는 것을 해석해냈다. 그러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등이 암살당할 것이라는 등의 잘못된 해석을 내려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그는 예언 해석을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은 역사의 많은 사건들을 보며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위안삼아왔다.
이러한 현상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두드러졌다.
노스트라다무스를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에는 HISTER이라는 글자가 있으며 이를 순서만 바꿔보면 철자 하나만 틀린 히틀러 (Hitler)가 된다.
이어 “치욕스런 왕이 세워지면 황금시대가 막을 내린다”라는 내용의 4행시를 들며 이것이 히틀러를 예언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9.11 테러를 예언했다고 주장하는 부분도 있다. “1999년 일곱 번째 달에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리라”는 내용이 있는데 현대 통용되는 달력에서는 일곱 번째 달이 7월이지만, 노스트라다무스의 시대에는 율리력을 사용했으므로 지금의 9월이 된다는 것이다. 성경에 1999년도 순서를 바꾸면 9-11-1이 되어 911테러를 의미하며, 공포의 대왕도 오사마 빈 라덴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예언도 있다. “이탈리아 근처에서 황제가 나타나 제국에 값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들은 황제의 군대를 보고 왕자의 모습이 아닌 도살자로 기억하리라”는 내용의 4행시는 나폴레옹을 예언한 것으로 추측된다. 나폴레옹은 프랑스령이었던 이탈리아 코르시카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군대는 살육을 하고 다녔기 때문에 도살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베일에 숨겨진 노스트라다무스》의 저자 피터 르미서리어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그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시는 어떤 의미로든 해석이 가능하다. 연관성 없는 의미도 부여하지만 거의 신빙성이 없다”고 말한다. 피터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시를 해석해보려 했지만 “미래의 사건을 제대로 해석한 경우는 없었다”며 쉽지 않았음을 토로했다. 항상 과거만 이야기 한다는 점을 들며 해석의 무의미함을 강조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대해서 과학적인 분석이 시도된적은 있었으나, 확실한 것은 밝혀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감정을 느낄때 발생하는 미세한 전자기력을 노스트라다무스가 활용했다는 설도 있으며, 과거에 있던 사건들을 재해석해서 우연의 일치를 의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맨 정신이 아니라, 최면가스를 이용해 최면 상태에서 예언을 했을거라는 추측도 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고향에 위치한 곳에서 노스트라다무스 박물관을 운영하는 잭 클린은 “밤이 되면 정신 집중과 평온한 상태여야 하며 델피 신전에서처럼 물과 촛불을 준비한 후 최면 상태에서 환상을 보고 그대로 적었다”며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방법을 소개했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죽고난 뒤 세월이 지나면서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한 학문이 발달하면서 예언가들은 사라졌으나, 몇몇 예언가들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빗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러한 예언을 믿고 싶어 한다.
점성가들의 예언 10개중 9개가 틀려도 하나만 맞으면 다들 감탄하게 된다는 것이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비롯하여 점성술이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고 분석된 예는 없다.
점성술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스탠포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칩 헬스 교수가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칩 교수는 노스트라다무스의 4행시 중에 ‘불’과, ‘도시’란 단어가 들어간 4행시를 8개 찾아냈고 이것들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한 그룹이 학생들에겐 911테러를 예언한 것이냐고 묻고, 다른 한 그룹의 학생들에겐 1950년 런던 대공습을 예언한 것이냐고 물었다.
그 결과 1/3 이상의 학생들이 예언이 맞았다고 답변했다.
이에 대해 칩 교수는 “어느 사건에도 들어맞을 수 있는 구체적이면서도 중의적인 표현을 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대중의 관심
2001년 9월 11일 911테러 당시 인터넷 검색 사이트 구글에서는 오사마 빈 라덴보다 노스트라다무스 검색어를 입력한 사람이 더 많았다.
이것은 노스트라다무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며, 사람들은 이러한 일이 벌어질 때마다 “이런 일이 예견된 것일까?”하며 노스트라다무스를 찾는다는 것이다.
○ 저서
– The Prophecies
먼 미래에 대한 예언을 모은 책이다. 첫 출판은 1555년에 있었다. 1557년에 289개 이상의 예언시가 추가되어 2판의 인쇄를 했다.
3판은 1558년에 300개의 새로운 시를 추가해서 인쇄되었다.
그러나 현재, 1568년 그의 사망 이후에 출판된 옴니버스판만 남아있다.
이 버전은 하나의 서술과 941개의 4행시로 구성되어 있다.
100개씩 9개로 나뉘었고 하나는 42개의 시가 담겨있다. 이것을 “Centuries”라고 부른다.
아래와 같은 다양한 출판물이 있다.
The Prophecies of Nostradamus: Man Who Saw Tomorrow
The Writings Of Nostradamus
Nostradamus, His Works and Prophecies
Lucky Number Dream Book
The Elixirs of Nostradamus
The Complete Prophecies of Nostradamus
Nostradamus and the Nineties
Centurias
Les Oracles De Michel De Nostredame
The Complete Writings of Nostradamus
The Nostradamus Reader
Nostradamuksen ennustukset kommentaareineen
The Complete works of Nostradamus
Nostradamus’ Prophecies
The Prophecies of Nostradamus And New Century Prophet
Traité des confitures
Las Profecías De Nostradamus
The Big Book of Prophecies
Oracles of Nostradamus
Nostradamus and His Prophecies
Les Vrayes Centuries de Me Michel Nostradamus
Les Propheties
Nostradamus – Profetioita vuosille 1555-3797
Nostradamus: Sextetas
Nostradamus Centurias
Visões do Fim do Mundo
Profezie
Les Vrayes Centuries Et Prophéties de Maistre Michel Nostrada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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