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
루이 14세의 권력쟁취 (The Rise of Louis XIV, La Prise de pouvoir par Louis XIV)
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 주연) 장-마리 파트, 레이몽 쥬르당 / 1966년
20여 년간 나라를 좌지우지했던 마자랭 추기경이 죽은 이후, 루이 14세는 강력한 군주가 되어 왕권을 드높이고, 절대왕정의 기반을 다지고자 한다. 루이 14세는 콜베르의 도움으로 권력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던 푸케를 제거하고, 마침내 ‘태양왕’으로 빛난다.

1960년대에 들어서 로셀리니는 텔레비전 용 영화를 주로 만들었다. 이 작품은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았던 작품인 동시에 신화와 신의 관계를 영화적 비전으로 훌륭히 해석해낸 걸작으로 손꼽힌다. 20년간 프랑스의 권력을 한 손에 잡고 있던 마자랭 추기경이 사망한 이후 루이 14세는 콜베르의 도움을 받아 권력투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이 과정에서 야심가인 재정총감 푸케를 제거하게 되고, 태양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절대왕정의 시대를 만들어낸다. <루이 14세의 권력쟁취>는 역사에 대한 재현 (신화화)인 동시에 영화를 통해 권력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탈신화화의 과정으로 제시된다. 특히 롱테이크와 줌의 활용을 통해 인간의 권력욕을 묘사하는 방식은 영화의 표현양식의 새로운 좌표를 제시했다고 평가 받는다. 외부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에 대한 유물론적 고찰 또한 두고두고 이야기되는 내용 중 하나이다. (2014년 제15회 전주국제영화제_이상용)
로셀리니가 ‘시네마의 죽음’을 선언하고, TV라는 새로운 매체를 지지하면서 TV영화에 주력했던 후기 작품들 가운데에서 비평적 관심을 받았던 걸작으로 TV 방영 후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로셀리니는 자신이 직접 개발한 판치노르 줌 렌즈와 롱테이크를 활용해 루이 14세의 권력욕과 역사적 메커니즘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마자랭의 마지막 호흡까지 완벽하게 화면에 옮겨놓은 첫 장면부터 매우 인상적이다. (2011년 시네마테크부산 – 월드시네마 VIII)
로셀리니 후기의 텔레비전 영화들 가운데 가장, 그리고 어쩌면 유일하게 비평적 관심을 받았던 작품으로 그의 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영화는 마자랭 추기경의 죽음 이후, 루이 14세가 콜베르의 도움을 얻어 푸케를 제거하고 절대 왕정의기반을 다지기까지의 과정을 경이로울 만큼 생생하고 꼼꼼하게 묘사하고 있다. 영화 장치의 탈신화화와 그 장치가 담아내는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접근을 동시에 시도했던 후기 로셀리니의 관심을 파악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작품이다. (2004년 로베르토 로셀리니 회고전)

○ 제작 및 출연
- 제작진
.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각본: 장 그뤼오 (Jean Gruault), 필립 에를랑제 (Philippe Erlanger)
.촬영: 조르주 레클레르 (Georges Leclerc), 장-루이 피카베 (Jean-Louis Picavet)
.편집: 아르망 리델 (Armand Ridel)
.미술: 모리스 발레이 (Maurice Valay)
.의상/분장: 크리스티안 코스트 (Christiane Coste), 네이딘 주브 (Nadine Jouve)
- 출연진
장-마리 파트
레이몽 쥬르당
실바그니
카타리나 렌
도미니크 벵상
피에르 바라출연
페르낭 파브르
프랑수아 퐁티
조엘 로쥬와

○ 로베르토 로셀리니 ‘루이 14세의 권력 쟁취’
- “태양은 산 너머로, 인간은 삶 너머로”…권력과 인간의 생로병사
“태양과 죽음은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 집무실 안, 루이 14세가 턱을 괴고 앉아 라 로슈푸코의 잠언을 되뇌며 생각에 잠긴다.
영화 ‘루이 14세의 권력 쟁취'(1966)의 끝 장면은 첫 장면과 이어지며 뫼비우스의 띠를 이룬다.
병든 권력이 내뿜는 지독한 죽음의 냄새로 시작된 영화는 20년간 프랑스의 권력을 좌지우지했던 수석대신 마자랭의 죽음과 함께 죽었던 권력이 루이 14세에게서 다시 부활하여 생명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절정에 이르렀을 때 끝난다.
이 영화는 ‘네오리얼리즘의 선구자’, ‘누벨바그의 아버지’, ‘현대영화의 창안자’ 등 수식어로 빛나는 이탈리아 거장 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후기 작품이다.
로셀리니 감독은 마자랭이 죽은 후 루이 14세가 국무참사회 장악, 재무총관 푸케 체포, 화려한 의상 고안, 베르사유 궁전 건설, 궁정예절 정비 등을 통해 귀족들을 길들이며 절대 권력을 쟁취해 나가는 과정을 극적인 요소를 배제한 채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려내었다.
권력 메커니즘의 큰 그림을 보여주는 역사 교과서 영화 속 사물들은 소품이나 배경에 머물지 않고 인물들과 더불어 중요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감독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생로병사의 자연법칙을 따르는 인물과 사물 간의 관계를 통해 권력 메커니즘의 윤곽과 함께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예시한다.
예를 들면 영화 시작 20분 후에야 화면에 등장하는 루이 14세의 침실은 고급스러운 가구와 장식품들로 꾸며진 마자랭의 침실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초라하기 짝이 없다.
권력의 현주소를 가늠하게 하는 이 장면과는 대조적으로 엔딩 장면에서 등장하는 화려하고 웅장한 베르사유 궁전은 루이 14세가 마침내 권력의 정점에 올라섰음을 알려준다.
특히 베르사유 궁전에서 장엄한 종교의식처럼 거행되는 루이 14세의 식사 장면은 요리 행렬이 쉴 새 없이 이어지며 그의 왕성한 식욕과 더불어 끊임없는 권력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런 왕의 모습을 경외심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귀족들은 이전의 거만했던 모습은 간데없고 인공적으로 잘 다듬어진 베르사유 궁전 정원의 나무들처럼 무기력하고 순종적일 뿐이다.
드디어 루이 14세는 태양신 아폴론의 화신으로 신격화되며 신화 속 ‘태양왕’으로 등극한다.
그런데 이 최고의 순간에 그의 코끝엔 마자랭에게서 맡은 죽음의 냄새가 스멀스멀 엄습한다.
‘영구불변하는 것은 없다’는 진리는 영원한 생명을 찾아 떠난 고대 메소포타미아 도시국가 우루크의 전설적인 왕 길가메시에게도, 불로초를 찾아 헤맨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제에게도 비껴가지 않았다.
물론 태양신으로 자처한 ‘태양왕’ 루이 14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루이 14세는 자신이 죽은 후 100년도 안 되어 직계후손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리라 예상이나 했을까?
더더군다나 이 순간 절대왕권도 단두대의 칼날에 죽으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보았을 때 인간과 사물은 생로병사의 법칙에 따라 아주 짧은 찰나에 반짝이는 섬광 같은 것인데 하물며 실체도 없는 권력은 어떻겠는가?
그러니 권력, 부, 명예 모두를 가진 솔로몬 왕이 죽음에 이르러 하늘을 우러르며 탄식할 수밖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_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영화에세이스트

○ 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Roberto Gastone Zeffiro Rossellini, 1906년 5월 8일 ~ 1977년 6월 3일)
로베르토 로셀리니 (이: Roberto Gastone Zeffiro Rossellini, 1906년 5월 8일 ~ 1977년 6월 3일)는 이탈리아의 영화 감독이다. 로마 출생으로, 이탈리아 영화계에서 네오레알리스모 운동의 선구적 인물 중 한 사람이다. 대표작으로 《무방비 도시》, 《전화의 저편》, 《독일 영년》, 《스트롬볼리》, 《로베레의 장군》 등이 있다.
로베르토 로셀리니는 1906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건설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자주 접하면서 성장했고, 이후 음향 작업 등으로 영화계에 입문하였다.
그가 데뷔했던 시점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당이 이탈리아를 장악했던 무렵이었으며, 이 당시 로셀리니는 활동을 위해 당원증을 발급받았으며, 파시즘 선전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로셀리니의 본격적인 전성기가 시작된 것은 무솔리니와 그의 파시즘 정권이 몰락한 이후였다. 파시즘 치하의 이탈리아에서 틈틈이 도둑촬영을 하며 제작한 <무방비도시>로 명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무방비도시>는 비전문 배우의 기용, 핸드헬드 등 네오리얼리즘의 특징을 대다수 담고 있던 작품으로, 루키노 비스콘티의 <강박관념>과 더불어 최초의 네오리얼리즘 영화들로 손꼽힌다. 로셀리니는 이 작품과 함께 그는 세계적인 유명 감독으로 떠올랐다.
이후 <전화의 저편>과 <독일 영년>으로 대표적인 유럽 영화감독으로 떠오른 후, 로셀리니는 국제적인 스캔들에 휘말리게 된다. 당대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던 배우였던 잉그리드 버그만이 <전화의 저편>을 보고 매혹되어 로셀리니에게로 달려간 것. 당시 버그만과 로셀리니 모두 이미 결혼한 상태였기 때문에 두 사람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후 버그만은 로셀리니와 결혼하고 그의 페르소나가 된다. 로셀리니는 이 시기 <스트롬볼리>, <유로파 51> 등 네오리얼리즘에선 살짝 멀어졌지만 대신 모던 시네마의 시대를 개막하게 된다. 특히나 <이탈리아 여행>은 에릭 로메르나 장 뤽 고다르 같은 카예 뒤 시네마의 누벨바그 영화감독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를 언급하라 하면 항상 언급되는 편이다.
1957년 로셀리니는 여러 트러블로 인해 잉그리드 버그만과 이혼한다. 그는 동해 자와할랄 네루의 초청을 받아 다큐멘터리 <인디아>를 만들고, 1959년엔 <로베레 장군>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기도 했다.
로셀리니는 말년에 들어 TV라는 새로운 매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텔레비전을 위해 <루이 14세의 권력 쟁취>나 <블레즈 파스칼>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 이 작품들은 로셀리니의 이전 영화와는 다르게 미니멀하고 실험적인 양식으로 제작되었으며, 이런 이유로 로셀리니의 국제적 명성은 전성기에 비해 많이 사그라들게 된다.
로셀리니는 1977년 로마에서 세상을 떠났다.

○ 영화 이모저모
<루이 14세의 권력 쟁취>는 로셀리니의 후기 역사영화 중 가장 유명하며,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태양왕이라 불리우는 루이 14세가 권력을 확고히 챙취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메커니즘을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에서 외양과 리얼리티 사이의 관계라는 로셀리니의 관심사가 뚜렷이 들어난다는 것이다.
영화는 프랑스의 전제군주인 루이 14세가 무엇보다도 출중한 쇼맨에 가까운 인물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권력이란 그가 자신과 환경을 스펙터클로 만들어내는 과정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또한 스타일면에서 로셀리니 자신이 직접 고안했다는 판치노르 줌 렌즈의 활용이 눈에 띤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