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
모던 타임즈 : Modern Times (DVD)
감독) 찰리 채플린 / 주연) 찰리 채플린, 헨리 버그만, 타이니 샌드포드, 폴레트 고다드 / 1936년 (2002, 2013년 재출시)
–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함박웃음! 찰리와 소녀의 행복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여정!
컨베이어 벨트 공장에서 하루 종일 나사못 조이는 일을 하는 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조여버리는 강박 관념에 빠지고만 그는 급기야 정신 병원에 가게 되고, 거리를 방황하다 시위 군중에 휩쓸려 감옥살이까지 하게 된다. 몇 년 후 감옥에서 풀려난 찰리는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한 아름다운 소녀를 도와주게 되고, 그녀의 도움으로 카페에서 일하게 되지만 우여곡절 끝에 다시 거리로 내몰리고 만다.

– 모던 타임즈 : Modern Times
.감독: 찰리 채플린
.작곡가: 찰리 채플린
.각본: 찰리 채플린
.출연: 찰리 채플린, 헨리 버그만, 타이니 샌드포드, 폴레트 고다드
찰리 채플린 (Charles Chaplin, 1889 ~ 1977)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희극 배우이자 영화감독, 제작자다.
1889년 뮤직홀 배우인 찰스 채플린과 해너 채플린 사이에서 태어났다. 술주정을 일삼던 아버지가 이혼 후 가족의 곁을 떠나고, 어머니마저 후두염과 정신병을 얻어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되자 채플린은 끼니조차 잇기 어려울 만큼 가난하고 불우한 유년기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부모의 연기 재능을 물려받아 일찍이 무대에 오르고, 1908년 열일곱 살의 나이로 프레드 카노 극단에 입단하여 희극 배우로 명성을 떨친다. 1913년에는 영화 제작자이자 키스턴 영화사의 설립자인 맥 세넷의 눈에 띄어 할리우드로 진출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몸에 딱 달라붙는 연미복에 헐렁한 바지를 입고 네모나게 자른 콧수염을 붙인 친숙한 모습으로 스크린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할리우드에서 배우로 큰 성공을 거둔 뒤 첫 장편영화 ‘키드’ (The Kid)로 본격적인 영화 제작에 뛰어든 채플린은 눈물과 웃음, 유머와 애수가 뒤섞인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여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호평을 받고,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미국이 냉전 분위기에 휩쓸리자 ‘위대한 독재자’ (The Great Dictator), ‘모던 타임스’ (Modern Times), ‘살인광 시대’ (Monsieur Verdoux) 등 전체주의와 물질만능주의, 인간 소외를 경계하는 사회 풍자적인 작품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채플린은 영화인으로서 성공을 거듭하며 주목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매카시즘이 만연한 분위기 속에서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혀 극심한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게 된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며 자기 성찰적인 시선으로 인생과 예술을 돌아보게 된 채플린은 삶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과 예술혼을 담아 중편소설 ‘풋라이트’를 집필하고 이를 바탕으로 후기 대표작 ‘라임라이트’를 탄생시킨다. 노년에 이른 한 천재 배우가 보여주는 삶과 예술에 대한 열정, 젊음과 나이 듦, 화려한 조명과 쓸쓸한 무대 뒤 풍경이 필연적으로 엇갈리는 작중 세계는 채플린의 굴곡진 인생을 그대로 담고 있다. 비극과 희극이 뒤섞인 자신의 영화처럼 평생 행운과 불운이 반복되는 삶을 살았던 채플린은 1972년 자신을 내쳤던 미국 땅을 다시 밟아 아카데미 특별상을 수상했고, 그로부터 5년 뒤 스위스에서 여든여덟의 나이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 줄거리
노동자들은 축사로 끌려가는 양떼처럼 공장으로 몰려 들어가고, 자본가는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노동자들을 감시한다. 최소의 시간으로 최대의 생산을 얻기 위해서 노동자들은 숨쉴 틈도 없으며 화장실 가는 시간도 체크당한다. 화장실에서 담배라도 한 대 피우려 하면 한쪽 벽의 대형 스크린에서 자본가가 불호령을 내린다. 점심 시간도 아까워 자본가는 작업 중에 급식할 수 있는 자동급식기계를 설치한다. 자동화된 일터는 실직자를 대량 생산하고, 그들은 거리에서 시위를 벌인다. 굶주림 때문에 빵 하나를 훔치는 사람도 있고, 시위를 하다가 총에 맞아 죽는 이도 있다. 그러한 이들 때문에 거리에는 경찰관들이 가득하다.
○ 감독 / 주연 : 찰리 채플린 (Charles Chaplin)

헐렁한 바지와 몸에 꼭 끼는 재킷, 작은듯한 모자와 지팡이, 나비넥타이와 낡고 해진 커다란 구두 그리고 도톰한 콧수염은 우리가 쉽게 채플린을 떠올릴 때 생각나는 모습이다. 채플린은 감독, 제작, 배우, 시나리오 작가, 작곡가, 연주가로서 영화의 전방위에서 활약하며 영화계 최초이자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사람이다.
1889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뮤직홀의 바리톤 가수 출신인 아버지는 알콜중독으로 사망하고 정신병에 시달리는 어머니와 가난을 겪어야 했다. 1898년 아동극단 ‘랭커셔의 여덞 꼬마들’에 입단하여 조금 나아진 생활을 시작했지만 빈민보호소 수용, 구걸과 노숙으로 끼니를 때우는 밑바닥 생활은 고통과 시련의 세월로 새겨졌다. 훗날 작품에 나타나는 사회적 메시지들은 이 시기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겨진다.
당대 최고의 촌근 흥행주 프레드 카노의 ‘무성희극 배우단’과 계약을 맺고 ‘영국 뮤직홀의 밤’ 미국 순회 공연을 성공리에 진행하던 중 키스톤 영화사의 대표 맥 세넷의 눈에 띈 채플린은 단지 두툼한 봉투에 이끌려 영화계에 데뷔하게 된다. 1914년 두 번째 영화 ‘베네치아의 어린이 자동차 경주’에서 첫 선을 보인 떠돌이 찰리의 희극으로 채플린은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이때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채플린을 생각했을때 떠오르는 모습의 첫 등장이었다. 1936년 ‘모던 타임즈’가지 떠돌이가 등장하는 일련의 작품들은 익살스러우면서도 애잔하고 한바탕 웃음 가은데 눈물이 핑 도는 코미디였다.
1977년 88세의 나이로 눈을 감을 때까지 영화계에 몸담은 54년간 채플린이 참여한 영화는 모두 81편. 최고의 자리에 머물던 그가 1952년 공산주의자라는 오해를 받으며 미국에 입국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기도 했지만 그에 대한 인기는 결코 시들지 않았다. 1971년 제 25회 칸 영화제, 1972년 제 44회 아카데미 영화제, 1972년 베니스 영화제의 특별상을 수상했고, 영국왕실로부터는 작위를 받았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