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
세키가하라 대전투 : Sekigahara (関ヶ原)
감독) 하라다 마사토 / 오카다 준이치, 야쿠쇼 코지, 아리무라 카스미 / 2017년
세키가하라 대전투 (Sekigahara, 일: 関せきヶが原はら)는 2017년 일본에서 개봉한 하라다 마사토 감독의 전쟁 영화다. 1600년 일본 다이묘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의 패권을 놓고 동군과 서군으로 나뉘어 싸운 세키가하라 전투를 다룬 작품으로, 시바 료타로의 1966년 소설 ‘세키가하라 전투’가 원작이다.
하라다 마사토가 각본과 연출을 맡았고, 오카다 준이치, 야쿠쇼 코지, 아리무라 카스미 등이 출연하였다.
2018년 제41회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촬영상, 조명상, 녹음상을 수상했다.
서기 1600년 10월 21일. 긴 혼란을 거듭한 전국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그 후의 일본 통치자를 결정 지을 대전투가 세키가하라에서 일어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충신으로서 서군(西軍)을 이끌었던 이시다 미츠나리와 권력에 불타올라 천하를 쥐기 위한 동군(東軍)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다양한 권모술수가 소용돌이치며 야망이 격돌하는 두 세력 간의 치열한 대결이 시작되는데…
누가 일본의 통치권을 거머쥘 것인가? 전국시대를 마감하는 사상 최대의 결전이었던 세키가하라 대전투가 지금 펼쳐진다!

○ 제작 / 출연
– 제작진
감독: 하라다 마사토
각본: 하라다 마사토
원작: 시바 료타로
제작: 이치카와 미나미, 佐野真之
음악: 후우키 하루미
제작사: 일본 도호영화
배급사: 일본 도호
개봉일: 일본 2017년 8월 26일
– 출연진 (배역 – 배우)
이시다 미츠나리 – 오카다 준이치
도쿠가와 이에야스 – 야쿠쇼 코지
하츠메- 아리무라 카스미
시마 사콘 – 히라 타케히로
고바야카와 히데아키 – 히가시데 마사히로
나오에 카네츠구 – 마츠야마 켄이치
도요토미 히데요시 – 타키토 켄이치
시마즈 요시히로 (시마즈 이신뉴도) – 마로 아카지
구로다 나가마사 – 와다 마사토
이이 나오마사 – 키타무라 유키야
후쿠시마 마사노리 – 오오토 타쿠마
하나노 – 나카고시 노리코
오타니 요시츠구 (오타니 쿄부) – 오오바 야스마사
고니시 유키나가 – 스즈키 쇼마
가토 기요마사 – 마츠카도 요헤이
안코쿠지 에케이 – 하루미 시호
시마 노부카츠 – 야마무라 켄

묘우젠 – 단 미츠
우키타 히데이에 – 이쿠시마 쇼
시마즈 토요히사 – 미우라 마사키
마시타 나가모리 – 나카무라 이쿠지
모리 데루모토 – 야마사키 세이스케
야소지마 스케자에몬 – 호리베 케이스케
아차노츠보네 – 이토 아유미
혼다 타다카츠 – 아마노 다이스케
혼다 마사노부 – 쿠보 츄키치
호소카와 타다오키 – 세키구치 하루오
마츠다이라 타다요시 – 요시무라 카이토
이케다 테루마사 – 사이가 마사카즈
야규 무네노리 – 나가오카 타스쿠
네네 – 키무라 미도리코
마에다 토시이에 – 니시오카 토쿠마
요도도노 – 와다 나나
나레이션 – 키바 카스미
– 수상내역
2018 일본아카데미상 촬영상 (시바누시 타카히데), 조명상 (미야니시 다카아키), 녹음상 (야노 마사히토)
○ 영화 이모저모
2017년 개봉한 일본 영화로 세키가하라 전투를 소재로 제작했다. 한국내에는 영등위의 심의과정를 거쳐 2019년 6월 3일에 개봉했다.
1981년 같은 이름의 영화가 개봉한 적이 있지만, 2017년 영화와 다르다. 2017년 영화는 시바 료타로의 소설 세키가하라를 영화화 한 것이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그간 일본 사극에서 수도 없이 다뤄졌던 만큼 딱히 유별나게 새로운 내용은 없다. 단지 이시다 미츠나리가 정의의 상징으로 나온다거나, 닌자들을 이용한 전투 전의 첩보가 중요하게 다뤄진다든지 하는 특색은 있다.
한편 대부분의 사극에서 우물쭈물하다 스스로 동군에 합류한 고바야카와 히데아키가 서군에 붙으려 하지만 부하들이 서군은 이길 수 없으니 안된다며 만류하고 거꾸로 서군을 향해 돌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이에야스가 히데아키 쪽으로 포를 쐈다는 에피소드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이 부분은 대부분의 기존 작품들과는 다르게 실제 고증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며 기존 작품과는 다른 해석 또는 재미를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히데아키의 배신은 세키가하라 전투의 발발 원인으로 지목된다. 서군을 배신하기로 한 히데아키, 이를 파악하고 그를 치려던 서군, 히데아키와 합류하려던 동군이 세키가하라에서 붙었다는 것. 또한 전후 도쿠가와로부터 그의 아들에 준하는 대우를 약속받았다.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에도 진을 따로 치는 등 이미 동군 쪽에 기울어져 있었고 그의 배신이 서군 내에서 눈치 보던 다른 장수들의 연쇄 배신 및 전장 이탈로 이어졌다. 때문에 그가 배신하지 않았더라면 전쟁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 원작 : 시바 료타로의 ‘세키가하라전투’ 전5권 (시바 료타로 저 / 청어람미디어 / 2002.7.1)
일본인들의 정신적 스승 ‘시바 료타로’의 역사소설. 세키가하라 전투는 일본 3대 전투의 하나로, 일본이 중세에서 근대로 도약하는 분수령이 된 사건이다.
시바 료타로는 세키가하라 전투의 규모나 영향력이 워털루 전쟁 못지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전쟁의 승패가 일본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봉건제가 엄격하게 정착됨으로써 일본사의 특수성이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
1598년 일본 열도를 제패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천하를 차지하고자 하는 야망을 품는다. 이를 알아챈 미쓰나리는 자신의 성에 은거하면서 이에야스에 대항할 계획을 세운다. 마침내 세키가하라에서 이에야스의 동군 8만과 미쓰나리의 서군 10만이 격전을 벌이고, 격렬한 전투 끝에 시대의 승자와 패자가 갈리게 된다.
시바 료타로는, 전투에서 패한 것은 미쓰나리 쪽이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진정으로 승리한 것은 미쓰나리라 생각한다. ‘미쓰나리는 전투에는 졌을지 몰라도 역사에 의를 남기는데 성공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평생을 일본인의 정체성 탐구에 바친 작가답게, 역사소설의 외양 속에 깊이있는 사색과 철학을 담아 넣었다. 러일전쟁을 조국방위전쟁이라고 한 발언 때문에 군국주의자로 몰리기도 했지만, 만년에 그가 한 발언들-교과서 왜곡에 대한 규탄, 2차 세계대전의 어리석음-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한마디로 규정해버릴 작가가 아니다.
철저한 고증 아래 쓰여진 소설의 구성이 치밀하며, 문체도 간결하면서 굵직굵직 강한 느낌을 준다. 일본 고유의 용어에 대한 설명이 충실하며, 책 말미마다 일본 전국시대에 대한 설명과 연표, 해설을 수록하여 소설의 이해를 돕는다.

○ 목차
– 1권 히데요시의 죽음
옮긴이가 읽는 분들께
다카미아의 암자
사람과 사람
여자와 여자
나라
처마 밑 원숭이들
후시미 성 아래
과자
히데요시와 이에야스
혼란
히데요시의 죽음
하카타의 기요마사
도라지 무늬
서리 내린 아침
소송
후지주로의 딸
암약
오사카로
문책사
평판
암살
무코지마
부록
– 2권 이에야스의 모략
검은 옷
도도 저택
도시이에의 죽음
지는 봄
밀약
탈주
변환
모재.모지.모략.모의
세다의 이별
위세와 명망
엄청난 연극
오사카 성으로

나시노 마루
호슌인
오쓰의 하룻밤
분도야
오노 마을
여름 달
우키타 가 소동
아이즈 와카마쓰
오슈의 눈
부록

– 3권 미쓰나리, 일어서다
구니누케
도전
풍운
이에야스, 움직이다
비와 호반
습격
도주
쓰루가 사람
안코쿠지 에케이
전서
탈출
호소카와 가라샤
맹염
하타가시라

밀사
시마즈 이신 뉴도
미나쿠치 관문
긴고 주니곤
와카샤 쇼쇼
북상군
후시미 공격
부록

– 4권 결전 전야
부젠 사람
비보
내일
후쿠시마 진
여섯 푼의 동전
다키묘가
광풍
운명
대나무 베기
다마루
구와나의 성주
나베시마
구키
미노의 성들
사자
기후 주나곤
선진
도하
기묘한 사람
에도 출발
미노 오가키
고도 강
부록
– 5권 시대의 패자, 역사의 승자
에치가와
초조감
잇토쓰사이
신슈 우에다 성
밀서
이에야스, 진에 오다
세키가하라로
마키타 가도
마쓰오 산
안개 속
난구잔
혼란
인화
안개 걷히다
손톱을 씹다
배신
이시다, 무너지다
오토자카
후지카와 구릉
후루하시 촌
6조
시모카와하라
부록
해설

○ 저자소개 : 시바 료타로 (司馬遼太郞)
1923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후쿠다 사다이치 (福田定一).
오사카 외국어 대학 몽고어학과를 마치고, 1959년 ‘올빼미의 성’으로 나오키 문학상을 받았다.
이어 1966년 발표한 <료마가 가다>로 기쿠지칸 문학상을 받았다.
1972년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1983년 요미우리 문학상, 1984년 신초 문학상, 1987년 일본 예술상 등을 받으면서 국민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1987년 이후에는 일본 재계 최고경영자 상담역을 맡기도 했다. 1996년 생을 마쳤고, 1998년 ‘시바 료타로 상’이 제정되었다.
지은 책으로 <시바 료타로 전집>(전50권), <꿈꾸는 열도>, <막말의 암살자들>, <명치라는 국가>, <몽골의 초원>, <미야모토 무사시>, <세계속의 일본 일본속의 세계>’, <세키가하라전투>, <소설 풍신수길>, <언덕 위의 구름>, <올빼미의 성>, <제국의 아침>, <타올라라 검>, <풍운의 성채>, <한나라 기행>, <항우와 유방>, <황제를 낚는 풍운아>, <나라 훔친 이야기> 등이 있다.
– 역자 : 서은혜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도리츠대학 대학원에서 일본 문학을 공부하였다. 현재 전주대학교 인문대학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다. 옮긴 책으로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 『체인지링』, 『우울한 얼굴의 아이』, 『책이여, 안녕!』, 『회복하는 인간』, 『오에 겐자부로론』,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세키가하라 전투』, 『선생님의 가방』, 『개인적인 체험』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나는 세키가하라의 일거를 의(義) 때문에 일으켰네. 그것을 이(利) 때문에 일으켰다고 오해당하는게 괴롭네.’
또한 미쓰나리는 말했다.
만약 여기서 요지로다유의 불행을 못본 척하고 도망친다면 불의한 일이다.
미쓰나리는 불의한 인간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 전쟁조차도 불의한 전쟁이 될 것이니 그 뜻을 잃게 된다.
(…)
미쓰나리는 거듭 거듭 타일러 끝내 요지로다유가 고발을 하도록 만들었다.
미쓰나리는 자신의 운명을 동굴 안에 앉아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단 한순간도 자살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본문 275쪽 중에서)
○ 출판사 서평
시바 료타로의 작품은 그 철저한 역사적 고증으로 유명하다. 7, 80년대 일본의 지식인 사이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 선생이 역사소설을 집필할 당시에는 서재에 펜과 원고지뿐이었지만 시바 료타로 선생은 트럭 하나분의 자료를 가지고 글을 쓴다. 일본의 역사는 시바 선생이 가르친다.”
『세키가하라 전투』 역시 다르지 않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전국시대 말기의 2년 남짓한 기간을 역사적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시바 료타로는 이 짧은 시간적 배경 속에 고대의 다이카 개신에서부터 근대의 메이지 유신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녹여내면서 일본사 전체의 맥을 짚어내고 있다.
이러한 철저한 역사적 고증으로 인해 시바 료타로는 정해진 역사적 시각이 아닌 자신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볼 수 있었고 역사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주변적 인물들을 새로운 주인공으로 재창조할 수 있었다.
이러한 대표적인 예가 사카모토 료마인데 시바 료타로의 작품 『료마가 간다』가 발간되기 이전의 사카모토 료마는 그저 교과서에 한두 줄 언급되는 인물에 지나지 않았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역시 이시다 미쓰나리, 시마 사콘, 오타니 요시쓰구 등 역사적으로 주변적 인물로 치부되었던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시바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은 역사상의 사건이 인간에 대한 통찰과 뛰어난 묘사력을 통해 독자들에게 친근한 것이 된다는 점에 있다. 4권에 등장하는 오야마 군회의 부분에서 이에야스는 이해관계에 따라 항상 다수의 편에 서려 하는 인간의 습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이것은 시바 료타로의 현실적인 인간관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한데, 이 회의에서는 복잡하고 약간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인간군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야마우치 가즈토요와 호리오 다다우지의 일화를 보면서 자기 주변의 비슷한 인물을 떠올리는 독자들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일본의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이러한 시바 료타로의 특성에 대해 “때로는 니힐리스틱할 정도로 어두운 역사관의 예각을 인간에 대한 통찰과 뛰어난 문장력이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고 평했다.

○ 추천평
세키가하라 전투는 단노우라 (壇浦) 전투, 도바 (鳥羽) · 후시미 (伏見)의 전투와 함께 일본 3대 전투로 불리는 대전투이다. 서기 1600년 일본 중부의 세키가하라 벌판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최대 실력자로 떠오른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어린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옹립한 이시다 미쓰나리가 각각 동군 8만, 서군 10만을 이끌고 격돌하였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일본의 중세와 근세를 나누는 분수령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주가 (主家)인 도요토미 가를 멸하고 에도에 막부를 설치하였다. 이를 통해 일본의 역사는 약 500여 년 간의 기나긴 중세 시대를 마감하고 근세, 즉 이후 약 270년 간 이어지는 에도시대로 들어서게 되었다.
또 하나의 의미는 당시까지 변방 지역으로 취급되었던 간토 지역이 역사의 중심 무대로 등장하는 전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간토 지역은 일본인들의 인식 속에서 ‘오랑캐의 땅’ 정도로 여겨지고 있었다. 이러던 것이 이에야스가 에도(지금의 도쿄)에 막부를 개설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중심 지역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의 간토와 간사이 간의 지역 감정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어 지금도 언어와 생활 습관, 사람의 성격이 많이 다르고 도쿄와 오사카를 축으로 한 서로 간의 경쟁도 치열하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