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2세와 베켓, 그리고 공민왕과 신돈

– 잉글랜드 헨리 2세와 베켓
잉글랜드 노르만 왕 헨리 2세 (Henry II, 1133년 3월 5일 ~ 1189년 7월 6일)는 여자들과 즐기고 전쟁을 일으키고 세금을 올리기 위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무제한의 자유를 원했다. 그러나 독립적인 지위를 가진 영국 국교회의 대주교가 늘 눈에 가시였다. 대주교는 늘 헨리의 계획을 좌절시켰다. 헨리는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술, 여자, 춤’ 친구인 토머스 베켓 (Becket)을 대주교에 앉히는 기발한 결정을 했다. 한 가지 문제만 제외하면 기막힌 결정이었다. 그런데 토머스가 자신의 새로운 소명 (하나님의 종이 되라는 부르심)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왕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헨리는 토머스가 대주교직을 적당히 수행하면서 옛친구이자 왕인 자신의 바람을 들어주도록 그를 설득했다. 그러나 토머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토머스는 자신의 직분에 충실함으로 결국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헨리 2세는 공적으로 참회하고 토마스 베켓을 순교자로 시성한다.
영화 ‘베켓’ (Becket, 1964)은 아카데미 12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리차드 버튼과 피터 오툴이 주연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잉글랜드의 노르만 왕 헨리 2세와 그의 술친구 토머스 베켓에 대한 스토리이다.
영국의 시인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 (Thomas Stearns Eliot)은 이를 소재로 “대성당의 살인”을 썼다.
– 고려말 공민왕과 신돈의 개혁
신돈 (辛旽, 1322년 ~ 1371년 8월 21일)은 고려 말의 승려 출신 정치가이다. 법명은 편조 (遍照)로, 신 (辛)은 속성이고 돈 (旽)은 환속 (還俗)하고 나서 바꾼 이름이다. 자 (字)는 요공 (耀空), 호 (號)는 청한거사 (淸閑居士)다.
공민왕을 만나 시국관 (時局觀)이 왕의 마음에 들었고 이후 노국대장공주를 잃고 실의에 빠진 공민왕에게 등용되어 환속 후 1365년 (공민왕 14년) 영문하부사 (領門下府事)와 감찰사판사 (監察司判事)와 서운관판사 (書雲觀判事)를 겸직하며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여 토지를 농민에게 보급하고 양인 (良人)이 노비가 된 자들을 석방시켰으며 성균관을 중건 (重建)하고 공자를 국사 (國師)로 격상시키는 개혁정책을 전개했으나 권문세족의 반격과 개혁정책에 염증을 느낀 공민왕에게 제거되었다. 그 뒤 1371년 7월수주 (水州)로 유배되었다가 역모를 꾸민다는 익명으로 된 투서(投書) 탓에 참수형으로 사형 집행되었다. 정치의 가혹함, 외세의 횡포와 노국공주의 죽음으로 정신적으로 한계에 봉착한 공민왕은 왕권에 집착하게 된다. 강력한 권력을 지니게 된 자신 주변에 남게 된 유일한 이해자이자 동지인 신돈을 압박하지만, 끝내 신돈이 굴하지 않자 신돈을 죽여버리고 만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