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정체성에 나타난 원주민의 역사 문화유산의 가치와 확장성에 대한 문제점(4)
※ 본 논문은 「역사문화연구 제46호」(2013년)에 게재된 학술논문으로 호주의 지역적 특수성과 이미지를 대표하는 원주민의 대량학살, 토지강탈 및 잃어버린 세대에 대한 역사적 고찰과 함께 현재 호주 국가정체성에 미치는 원주민사회의 긍정적, 부정적인 사안들을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지역 역사문화 연구에 관한 학계의 이해와 관심을 도모하고자 한다. 신문형식상 각주는 생략한다.
III. 원주민의 가치 확장성에 대한 문제점
이장에서는 본문 제2장에 나타난 원주민의 역사와 문화유산 가치를 확장하는데 있어서 아직까지 원주민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주요 쟁점사항과 개선 방향을 1. 분쟁중인 원주민의 영토권, 2. 말살된 원주민의 정체성, 3. 사회적으로 심각한 원주민 범죄율 순으로 검토하였다.
1. 분쟁중인 원주민의 영토권
1901년 수립된 연방정부의 초대 총리인 Edmund Barton을 시작하여 2013년 4월 현재 제27대 여성 총리인 Julia Gillard에 이르기까지 원주민에 대한 차별정책에는 근본적으로 큰 변화가 없다는 끊임없는 논쟁에도 불구하고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호주 원주민사회에 지난 10여 년 간 매우 급격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특히 지난 200여 년 동안 임자 없는 호주 대륙의 원주민 토지 강탈을 정당화하고자 유지해왔던 법적명분은 지난 1993년 원주권법이 연방회의에서 통과됨에 따라 원주민의 토지와 주권인정에 중요한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러나 1996년 집권한 보수주의 극우파 John Howard(제25대)총리는 토착민의 권리로 인정됐던 관습법상의 권리를 삭제하고 백인 토지 개발업자에게 유리한 원주권법 개정안(1998년)을 통과하면서 제2의 원주민 토지강탈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이와 달리 2007년 새롭게 집권한 Kevin Rudd(제26대)총리는 국정연설에서 ‘이 거대한 땅의 진짜 주인은 애버리진 원주민이었다’고 밝힌 후, 이듬해인 2008년 2월 12일 호주정부와 국회를 대표해 지상파 방송을 통해 공식적인 사과문을 직접 발표하였다. 그 동안 국제사회에 들어내고 싶지 않았던 호주 원주민 학대와 차별대우에 대한 과거의 잘못을 사죄하며 원주민 사회문제 해결에 박차를 가하기 도 하였다.
원주권법은 2007, 2009년과 2010년 개정을 거쳐 원주민의 영토권을 상당부분 인정해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도심지역에서 멀리 벗어난 척박한 쓸모없는 오지가 대부분이며 원주민을 이러한 지역으로 유도하여 밀집시킴으로써 보이지 않는 강제수용소를 연상케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호주 전체인구 분포에서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영국계 호주들이 미치는 정치적 영향력과 그 동안 그들이 개발하여 현재 살고 있는 땅의 권리를 원주민을 위해 스스로 포기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한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그림 8] 1770년 당시 원주민 거주지(左)와 오늘날 원주민 거주지(右) (호주원주민연구원)
여기에서 우리는 오늘날의 호주사회가 있기까지 친모에 비유할 수 있는 원주민의 정신과 양모에 비유할 수 있는 유럽계 백인의 가슴으로 낳아 기른 양쪽 부모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과거 식민지 지배에서 원주민을 학살하고 강압 통치했던 부끄러운 역사의 흔적을 감추려 애쓰기만 하는 유럽계 백인들의 태도 변화와 그들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이 사회전반에 걸쳐 우선 조성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 말살된 원주민의 정체성
잃어버린 세대의 한 일원으로 호주 원주민위원회 의장을 맡았던 Rob Reily는 “저들이 우리의 국민성을 되돌려주기 전에는 결코 자신들의 국민성을 주장할 수 없다”고 설명하였다. 1996년 5월 자살한 그는 당시 실업자였다. 이 시대 대다수의 원주민은 Rob과 같은 잃어버린 세대에 해당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반세기 이상 원주민을 강제적으로 개화하려는 유럽계 백인 지배체제의 동화정책은 원주민의 공동체 분열과 종족 문화의 정체성을 말살하기에 충분하였다.
인류학·사회학적 관점에서 개진된 몇몇 선행연구에서는 원주민을 동화시키는 것은 지리적으로 고립되고 경제적으로 빈곤한 원주민사회를 근대화 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또한 정부의 통합정책은 원주민의 문화변용을 가능케 하여 사회참여 기회를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유럽계 백인들과 원주민의 우수한 혈통적·문화적 특징이 결합하여 혼종적 호주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인양 자칫 오해할 소지가 있다. 또한 다양한 문화가 혼합된 호주사회에서 원주민을 동화 혹은 개화시켜 완전한 사회통합과 동질성을 확보하려는 ‘원주민의 호주화’ 시도가 성공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망각에 사로잡힐 수 있다.
원주민 문화변용과 통합정책에 관한 선행연구에서는 원주민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와 시설 부족과 원주민 친화적 지도자와 전문성 결여로 인해 효율적인 원주민 교육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또한 원주민사회를 개방시켜 시장경제에 편입시키려는 시도 역시 지나치게 관료적인 외부의 간섭을 받기 싫어하는 원주민의 저항과 비협조로 인해 실패한 사실을 보고하고 있다. 더 나아가 농촌의 원주민 인구를 종족적으로 동질화하려는 정부의 실패한 통합정책 사례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종족의 정체성, 즉 원주민성(Indigenousness)이 이질문화에 영향을 받아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과 원주민사회의 내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을 먼저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호주 원주민의 경우 호주사회에 대한 동화 혹은 근대화의 정도에 따라 ‘매우 개화된 종족’과 매우 개화되지 않은 종족’의 정체성을 파악하여 시의적절한 정책적 대응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원주민의 정체성이 지속가능하려면 획일화되지 역사적·종족적 정통성을 계승하는 소수의 개화되지 않은 오지의 원주민 종족과 그들의 후손들을 잘 보전시키는 일이 매우 시급하다. 개화되지 않은 원주민의 경우 사회·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들만의 삶의 방식과 문화를 유지한다는 입장에서 볼 때 원주민사회의 변화만을 주장하기보다 대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종족의 풍토를 먼저 고려하고 수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달리 이미 호주사회에 동화 혹은 근대화된 원주민 종족을 대상으로 다양한 사회적·경제적·교육적 생활기반을 마련해 주는 동시에 원주민사회의 독특한 문화 보전을 꾀하는 창의적인 원주민 축제가 국가차원에서 보다 활성화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원주민의 다른 문화와 삶의 방식을 기꺼이 존중하고 인정할 때 갈등과 긴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첫 걸음을 시작할 수 있다.<다음호에 계속>
강재원 박사(시드니동산교회다문화선교부 / 호주 뉴사우스웨일즈대학교 사회과학과 국제학대학원 박사)
현> 세계스포츠선교회 호주지부 총무(태권도 공인 7단), 다문화정책 및 사회심리학 논문 다수발표, 현재 3H(Healing, Hope and Heaven) 프로젝트 진행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