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원주민선교의 이해와 한인교회의 역할(2)
II. 호주원주민 역사와 선교적 상황 그리고 사회적 문제점
1. 호주원주민의 역사: 과거와 현재
전 세계에서 6번째로 큰 나라인 호주의 면적은 자그마치 남한 면적의 약 77배에 이른다. 이곳에 예전부터 살고 있었던 호주의 원주민으로 불리는 애보리진(라틴어 aborīginēs)은 ‘ab’와 ‘origin’이 합성된 종족(ethnicity)개념의 합성어이다. 어원적 전승에 의해 16세기 후반 서구유럽 국가들의 제국주의와 식민지배가 본격화 될 무렵 ‘그 땅에 원래 살고 있던(being the frist of its kind in a region; primitive; native)’이란 사전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오늘날 호주정부의 공식명칭으로 ‘애보리진과 토래스 해협 도서민(Aboriginal and Torres Straight Islander)’ 또는 ‘원주민(Indigenous People)’으로 사용하고 있다.
2013년 푸가치(I. Pugach)의 유전자분석 연구팀에 의하면 16세기 유럽백인의 신대륙 정복 당시 호주에 약 75만 명에 달하는 원주민이 약 400개 이상의 종족형태로 살고 있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호주원주민의 기원은 약 4,000년 전 아프리카에서 인도를 거쳐 호주대륙에 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전적 결합과 유전자 흐름은 인도인에서부터 북부 호주인으로 141세대에 걸쳐 이뤄졌으며, 호주의 대표적인 들개의 일종인 딩고(Dingo) 역시 인도의 미세석기 화석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보고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은 호주정부가 현재 ‘First People’로 인정하고 있는 원주민에 대해 진화론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최소 4만 5천년 이상의 원주민 출현 역사와 매우 상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래에 발행되고 있는 대다수의 호주 역사와 관광홍보 책자에는 진화론 학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어쩌면 부끄러운 초기 호주이민 역사를 뒤로 감추고 원주민 문화와 가치를 기반으로 경제적 이익과 국가 이미지 제고에 큰 효과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한국창조과학회는 ‘연대문제와 성경’ 칼럼을 통해 ‘호주 원주민은 언제부터 호주에 살게 되었는가?’라는 제목의 비평을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호주원주민들이 오랜 기간 동안 호주 대륙에서 살아왔었다는 강한 정서적인(emotional) 요소들이 있다. 4만 년이라는 시간은 그들이 단지 2,000-3,000년 전에 살아왔었다는 것보다 호주원주민들의 땅을 강탈한 행동을 더욱 비도덕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또한 호주에서 ‘고대(ancient)’라는 주제는 호주원주민의 그림이나 기념품 등을 팔 때에 어떤 신비로움을 언급하지(상업적인 호소를 하지) 않아도 되게 하며, 검은 피부에 대한 자부심, 땅의 권리 등과 가깝게 연결되어있다. 심지어 최근에 만들어진 호주원주민의 록 음악(rock music)은 판매 효과를 위해 40,000년 전의 신비로움을 나타내는 것으로 과대선전 되고 있다. … 실제로, 증거의 무게는 호주원주민들이 노아 가족의 후손으로. 인류의 나머지 사람들과 매우 가까운 사촌으로서, 단지 수천 년 전에 호주에 있게 되었다는 사실들로 기울어지고 있다.”
이와 달리 유럽백인들의 최초 호주이민 역사를 살펴보면 1770년 4월 28일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이 호주대륙 동부에 위치한 ‘보타니 베이(Botany Bay)’에 도착한 이후 1778년 1월 18일 아서 필립(Arthur Philip)총독이 이끈 영국인 흉악범 죄수 751명이 호주에 수용 및 정착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영국의 식민통치(1788-1901년) 하에 국가 건설을 위한 노동력 확보를 위해 1868년까지 16만 2천 명의 범죄자가 총 806회에 걸쳐 호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다윈의 진화론에 큰 영향을 받았던 유럽백인들은 원시상태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원주민들을 동물에서 사람으로 진화하고 있는 ‘호모 에랙투스(Homo Erectus)’와 같은 미개인으로 취급하였다. 영국 식민지 정부는 당시 수많은 흉악범 죄수를 동원하여 원주민 대량학살을 자행하였지만 인간이기보다 동물에 가까운 원주민을 죽이는 것에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던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1911년 호주정부가 실시한 인구통계조사 결과에 보고된 원주민의 수가 31,000명으로 거의 멸종단계에 이르게 되었으며, 특히 타스마니아주 섬 지역 원주민은 단 한명도 살아남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영국백인들의 식민지 야욕은 당시 유럽과 달리 땅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합법적인 문서가 전혀 통용되지 않았던 원주민 부족마을의 영토를 침략하고 강탈함에 있어 정당성을 주장하게 되었다. 또한 1991년 호주연방정부 수립 이후 1970년 초까지 이어온 백호주의와 원주민개회정책(혹은 원주민 동화정책)은 부모에게 강제로 빼앗은 수십만 명의 원주민 어린이들이 특별감호소나 백인 가정, 교회, 고아원에서 길러지거나 방치되었으며, 오늘날 이들을 ‘잃어버린 세대(Stolen Generation)’로 부르고 있다.
과거 참혹했던 호주원주민 멸절사를 뒤로하고 오늘날 호주 원주민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11년 6월말 기준 호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호주전체 총 인구 22,323,933명 중 원주민 수는 3%인 669,736명으로 나타났다. 2.2%의 원주민 인구증가율은 1.2%의 유럽계 호주백인에 비해 훨씬 높다. 원주민 거주지 분포를 살펴보면 뉴사우스웨일즈주 31.1%(208,364명), 퀸슬랜즈주 28.2%(188,892명), 서부호주주 13.2%(88,277명), 북부자치구 10.3%(68,901명), 빅토리아주 7.1%(47,327명), 남호주주 5.6%(37,392명), 타스마이아주 3.6%(24,155명), 수도특별자치구 0.9%(6,167명) 순으로 집계되었다. 또한 향후 10년 이내 원주민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여 70만 명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편 1970년대 초 백호주의 폐지 이후 원주민을 품으려는 호주사회의 변화가 엿보고 있다. 1971년 원주민을 상징하는 검은색과 아웃백의 붉은 황토를 상징하는 붉은색, 태양을 상징하는 노란색으로 구성된 원주민 깃발을 ‘Flags of Australia’로 지정하였으며, 이 깃발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육상 400m 경기에서 우승한 원주민 출신 캐시 프리먼(Cathy Freeman)에 의해 전 세계인이 보는 가운데 펄럭여졌다. 그나마 지난 200여 년 동안 원주민 토지강탈을 정당화하고자 유지해왔던 법적명분들이 1993년 원주권법 통과 후 조금씩 사라지면서 원주민 토지와 주권인정에 중요한 첫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2008년 Kevin Rudd총리는 국정연설을 통해 원주민에 과거사에 대한 호주 정부의 공식 사과발표를 통해 “I move: That today we honour the indigenous peoples of this land, the oldest continuing cultures in human history… We are sorry!”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알리기도 하였다. 호주사회는 과거 원주민을 학살하고 강압 통치했던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이 사회전반에 걸쳐 조금씩 조성되어 가는 분위기다. 또한 원주민 삶의 터전과 예술문화를 전 세계에 호주를 알리고 국가이미지와 정체성을 높이는 다양한 가치(대표적·상징적 가치, 예술적·정신적 가치, 지질학적·자연 명소의 가치, 교육적·학술적 가치, 경제적·통합적 가치)로 활용해가고 있다. 특히 원주민 예술 관심도 조사에 대한 결과를 살펴보면 응답자의 90%가 원주민 예술은 호주 예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하였으며, 응답자의 64%가 원주민 예술에 강한 긍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식민지적 원주민 삶의 형태가 과거 영국 백인 침략자를 시작으로 사회개량주의자, 기독교 선교사, 산업가, 환경 보호자에 의해 현재까지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이제 그들의 운명을 전반적으로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다음호에 계속>
강재원 박사(뉴사우스웨일즈대학교 / 사회과학·정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