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투데이
엘리자베스 여왕 서거

영국은 1688년 전제정치를 꿈꾸던 제임스 2세는 절실한 가톨릭 신자로 영국의 청교도를 박해하자 영국의회는 국왕의 정치권력과 징세권을 회수 하였다. 국가의 수반은 왕이지만 행정수반은 총리가 담당하는 방식으로 피 한방울 흘리지 않는 “혁명”이 이루어졌다. 이것이 영국의 “명예혁명”이다.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라는 왕권이 크게 제한되고 민주주의가 시작되는 현대 “입헌 군주제도”가 이루어졌다.
“아버지” (조지 6세)의 급서로 1953년 2월, 26세로 “엘리자베스 II”가 별안간 여왕이 되었다. 처음에는 왕이 되기 위한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아 “일반 가정주부”와 다름이 없었다. 그 당시 유명한 “윈스턴 처칠” 수상은 정책을 위해 여왕을 만나지만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았다. 여왕도 “윈스턴 처칠” 수상을 가장 무서워했다고 한다. “여왕”은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윈스턴 처칠” 경은 대학총장을 통해 영국의 정치사를 가르치도록 했다.
그가 영국 역사상 가장 긴 70년 200여일 이상 왕위에 있을 동안 세계인들에게 자비롭고 보수적인 왕 같지 않게 시대마다 감각적인 유행의 옷을 입어 많은 사람들에게 시원함을 보였다. 기쁠 때나 슬플 때 늘 나타나 같이 울고 웃었다. 고령에도 계속 여왕자리를 고수하게 된 원인은 권력의 욕심이 아니라 “아들의 이혼” 때문이다. 촬스 (Charles) 왕자는 그가 사랑하는 “카밀라”와 결혼을 원했지만 그의 어머니와 왕실은 평민출신이라 거절하고 12세 연하인 “다이애나”와 결혼하여 왕세손 (윌리암)과 둘째 (하리)를 두었다. 그러나 옛 애인 (카밀라, 현재 왕비)와 관계가 지속되어 결국 “다이애나” 왕비와 이별을 한다. 영국왕은 이혼하면 왕이 될 수 없어 어머니 (엘리자베스 여왕)가 왕위를 계속하고 지난 9월 8일 엘리자베스 여왕이 사망했다.
모두들 귀한 분의 사망에 애통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제껏 왕실에서 세금을 내지 않았던 것을 세금을 징수토록 했다. 현재 영국왕실 자산은 미화 280억불 (39조원)이 되나 부동산이나 공적 용도 자산은 촬스 3세에게 물려주지 못한다. 어머니 재산 7천억원 (한화)인데 이 돈은 2002년 여왕 모후가 서거할 당시 물려받은 7천만 달러(한화 약 968억원)에 더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재임할 동안 각종 투자와 예술 소장품, 보석류, 부동산 구매를 통해 축적한 재산이다.

올해 73세인 찰스 왕세자는 엘리자베스 여왕 사망 당시 부인 카밀라와 곁을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는 왕위 계승 서열 2위 윌리엄 왕세손 등도 있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영국 왕실은 여왕의 서거 소식과 함께 찰스 3세의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성명을 통해 “소중한 군주이자 사랑받았던 어머니의 서거를 깊이 애도한다. 나와 가족 구성원들에게 가장 슬픈 순간”이라고 전했다. 여왕 서거 직후 왕위를 승계한 찰스 3세는 10일 국왕의 자문기관 추밀원과 정부 관료 등이 소집되는 취임평의회를 거쳐 국왕으로서 맹세하는 공식 즉위 선언을 했다. 세계 각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공식 대관식까지는 시간이 더 걸린다.
엘리자베스 여왕 장례식이 열리는 19일은 공휴일로 지정됐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경우 왕위에 오르고 약 16개월 뒤에 공식 대관식을 진행했다. 찰스 왕자는 바로 찰스 3세로 즉위하게 되었다. 찰스 3세 부부는 9월 10일 버킹엄궁의 새 주인으로서 처음 입성했다. 버킹엄궁 앞에 모인 추모객들은 새 국왕에게 열렬한 환영을 보내고 국가인 ‘하느님, 국왕을 지켜주소서’ (God Save the King)를 부르기도 했다. 나이 73세로 영국 역사상 가장 늦게 왕이 되었다.
찰스 3세는 영국을 포함해 56개국 영연방국가의 수장이다. 이 중 영국 국왕을 군주로 인정하는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자마이카, 파프아 뉴기니아, 솔로몬 군도 등 등 15개국의 군주가 된다. 영국의 국왕은 15개국에 국가원수이자, 군 통수권자, 영국 국교회의 수장이다. 총리임명권과 전쟁선포권, 의회 소집과 해산권 등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다른 나라의 경우 전 식민지 국가간에 관계는 어려운 관계지만 영국만은 여왕이 주도가 되어 영연방이라는 국가로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 스포츠를 행사하면서 결집하여 “영연방국가”를 형성하여 친하게 지내고 있다. 15개 여왕을 수장으로 한 나라중에는 엘리자베스 여왕 사망 후 공화정으로 돌릴 계획이 있다.
여왕 재임중 무려 15번이나 방문했던 호주에서도 1999년 공화제 도입 관련 국민투표가 이루어졌으나 찬성 45%, 반대 54%로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노동당인 호주 알바니즈 수상은 공화정을 원하지만 호주 총리는 “지금은 엘리자베스 2세에게 경의와 존경을 표해야 할 때”라면서, 자신의 첫 임기 동안에는 공화정으로의 전환을 묻는 국민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마이카를 비롯해 카리브해의 조그마한 나라들은 영국 왕을 수장으로 하는 국가에서 이탈된다고 한다. 호주의 처음 공화정을 주장했던 “폴 키팅” 수상은 그는 원래 “미국식 대통령제”를 선호 했으나 근래 그는 미국의 정치 형태의 혼란상을 인식하고 미국식 방법을 버리고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여왕 사망 후 공화정 여론이 증가하고 있다
왕정 (군주제)이란 왕이 모든 권력을 가지고 있는 제도이다. 영국입헌군주제에서도 군주는 국가 대표이자 군의 최고 통수권자이면서, 행정, 사법, 입법부의 수반인 동시에, 영국 국교회인 성공회의 수장, 오스트레일리아와 캐나다 등 15개 영국연방 국가의 국가 원수다. 유럽에 경우 세계 1차 세계대전이 중에 민중이 주인이 되었던 유럽국가는 오직 혁명으로 왕을 단두대에 사형에 처한 프랑스, 스위스. 포르투칼 3개국이며 모두 왕정을 했던 나라였다. 그러나 “왕의 백성이 되는 것 보다. 민주사회 시민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유로 대부분 왕정 (군주제)을 버리고 공화정으로 바뀌어서 현재는 영국. 네델란드 등 10여 개국이 상징적으로 군주가 존재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모로코 등 3개국, 아세아에서는 일본, 타이 등 5개국과 중동에서는 사우디 아라비아 등 6개국이 남아 있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가 등극했던 1952년에는 전쟁이 끝난 지 7년 밖에 되지않아 영국도 생필품이 부족하여 국민들이 먹을 것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였다. 여왕취임 후 얼마 후 생필품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과학 기술이 발달되어 대관식은 처음 TV로 생중계를 했다. 그 당시 처칠 수상은 왕실의 지나친 노출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했으나 오히려 “여왕의 신비스런 생활”을 그리면서 사진을 붙이고 다니던 젊은이들에게 친근감을 주어 더욱 젊은이들로부터 지지도가 높아졌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여왕 70년간 재직 기간에 21세기 현대화된 “매스컴”을 통해 세계적인 여왕으로 지지를 받고 세상을 떠났다. 그 분이 더욱 훌륭한 것은 70년간 많은 권력이 있는데도 “군림하되 다스리지는 않는다”라는 철칙을 지켜온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63년만에 어머니가 사망한 다음날 9월 9일 등극한 “찰스 3세” 왕은 다르다고 한다. 찰스 3세 왕은 9세의 왕세자로 책봉시켜 그때부터 늘 도와주는 사람들이 따라 다녔기 때문에 늘 남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다.
한번은 여왕이 보낸 편지가 잘못해서 쓰레기통에 버려 졌는데도 자기가 하지 않고 잠자는 돌봄이를 불러 편지를 꺼내달라던 일화도 있다. 그러나 여왕은 좋은 군주를 만들기 위해 아들을 평민과 같이 학교에 다니며 구별없이 대하도록 지시했고 호주 멜본 “질롱 그라마 스쿨“에도 6개월간 와서 공부한 적도 있다. 영국서 대학 과정을 이수해서 켐브리지 대학에서 역사학 전공으로 졸업을 했다. 왕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군에서도 공군에 낙하산 부대 출신으로 왕중 처음이다.
찰스 3세 왕은 2015년 파리 기후협정에 적극 협력한 사실이 있다. 미국 전 대통령 도날드 트럼프가 미국이 이에 협정을 파기하기로 하자 그와 대화에서 언쟁까지 생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정치적 관계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선단체를 운영하며 환경주의자다.
영국에서 10년 전만 해도 군주제 지지자들이 70% 이상이었으나 근래 조사는 60%로 크게 하락 하였고, 여왕 사망 후에는 영국을 비롯해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에서도 언제인가는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공화정으로 바뀔 승산이 많다. 벌써 카리브해 조그만 나라들은 이를 실행하려고 하고 있다.
영국도 근래 매년 왕실 보조금을 지급받는다는게 말이 되냐는 것이다. 실제 왕실 보조금은 2021년의 경우, 8630만 파운드 (약 1400억원)가 지급됐고, 여기에는 궁전들을 유지 보수하는 비용에서부터 찰스 3세가 사용한 전세기 비용 3만 2000파운드 (약 5100만 원)까지 다양한 항목이 포함돼 있다. 여왕 재직시 조용했던 “공화제” 논란이 여왕 서거로 인해 아예 공화정으로 바뀌자는 여론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
반면 여왕 추모가 대단하다. 여왕의 시신을 보겠다고 7km나 줄을 서서 14시간 이상을 기다려도 뵙지 못했다고 한다. 호주도 시드니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외벽에 “여왕에 초상화”을 보이게 하면서 많은 추모객이 모였다. 여왕 사망을 추모하기 위해 의회를 2주간 휴무하며 9월 22일은 일회성 휴무일로 정하고 “여왕을 위한 국가애도일”로 선포했다. 캔버라에 찰스 3세 즉위식도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BBC 방송이 보도한 바에 의하면 오페라 하우스에 여왕 추도회에 “리티아너 터너”라는 여인은 “나는 어릴 때 ‘God Save the Queen’을 노래하고 자랐으며 오늘은 찰스 3세가 새로운 왕으로 ‘God Save King’을 부르고 있다. 새로운 왕은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여왕의 서거는 너무나 가슴 이프다.”고 울부짖었다고 한다.
장례식 참석차 영국을 방문중인 “안토니 알바니즈” 수상은 기자가 공화정 국민투표를 묻자 “지금은 돌아가신 여왕을 추모할 때이며 공화정 국민투표는 다음 재선이 되면 생각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공화정을 적극지지 하였던 전 자유당 말컴 턴볼 수상은 당신이 여왕을 사랑하더라도… “우리는 독립된 국가입니다. 우리의 국가 원수는 우리 중에서 나와야 합니다.”라고 했다. 1999년 전 하워드 수상 집권 당시 공화정 찬반 투표 결과 군주제를 고집한 사람이 54.87%이고 공화정을 지지했던 사람은 45.13%였다.

하명호 (SBS 방송인,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