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설교 : 성서속에 던져진 질문들 (10)

주제 : 성서속에 던져진 위대한 질문들 (The Great Questions in the Bible)
오늘의 본문 : 이사야 1장 10-17절
오늘의 제목 : (10)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Do you think I want all these sacrifices you keep offering to me?)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이사야 1장 10-17절)
지난해 부터 부족한 사람은 제 차례가 되면 <성서를 통하여 인간들에게 던져진 위대한 질문들>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어 왔습니다. 오늘부터는 이사야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질문들 몇가지를 묵상하려고 합니다. 이시야서에는 지난번에 본 욥기 못지 않게 하나님께서 던지신 질문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오늘은 그 중 첫 번째 질문입니다.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표준 새번역으로는 <무엇하려 이 제물들을 나에게 받치느냐?>로 되어 있습니다. <Do you know what I want to you? 내가 너에게서 원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너는 알고 싶으냐?> 오늘 이사야를 통하여 주께서 던지신 이 질문은 모든 시대를 통털어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원하시고 바라시고 요구하시는 것들을 단순화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시대나 지역, 사람이나 환경에 따라 여러가지로 다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기를 원하셨습니다. 모세에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길 명하셨습니다. 여호수아에게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는 배와 그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도록 했고 선교사들에게는 땅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천보영목사에게는 호주원주민들을 사랑하도록 사명을 주셨고 대부분의 우리들에게는 이 이민자의 땅, 다문화 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돌보도록 하신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보겠습니다. 않믿는 사람들에게는 예수 믿고 구원받기를 원하시고, 이미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믿는 사람답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이슬람 사람들과 싸우지 말고 서로 공생공조하는 길을 찾는 것이라고 봅니다. 트럼프에게 바라는 것은 이란과의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봅니다. 한국의 대통령에게 제일 원하시는 것은 예수 믿고 구원 얻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말씀의 요지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바라시고 원하시는 것은 시대나 지역, 개인이나 공동체에 따라 여러가지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나와 우리 시대의 인간들에게 진정으로 원하시고 바라시고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신 질문의 핵심입니다.
잘 아시다싶이 <선지자, 예언자, 선견자>로 번역되는 히브리어는 <나비>라고 합니다. 선지서는분류상 구약성서의 두번째 파트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는 흔히 <구약>이라고 하지만 유대인들은 히브리성서를 <토라 네비임 투게투빔> 즉 <율법과 선지자와 성문서>라고 부릅니다. 그중 두 번째 파트인 <네비임>은 선지서로 <나비>에서 온 말입니다. <나비>란 말은 옛날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 널리 쓰이던 아카디아어에서 나온 말로 그 뜻은 <부름 받은 사람>, 혹은 <누군가를 부르는사람>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나비>란 하나님께로 부터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를 비롯하여 구약에 나오는 모든 선지자들은 하나님께로 부터 부루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구약을 공부할 때 우리는 흔히 전기 예언자들과 후기 예언자들로 나누어서 말하고 후기 예언자들은 또 대예언자와 소예언자들로 분류하곤 합니다. 대예언자들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을 말하고 소예언자들은 호세아부터 말라기까지 나오는 12선지자들을 이릅니다. 대소선지자로 나누어서 말하는 것은 선지자들의 예언의 경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선포한 말씀의 분량으로 그렇게 나누어 왔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선지자란 <하나님께로 부터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지자, 선견자, 예언자의 ID요, 예언자의 정체성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솔로몬 이후 남북으로 갈라진 다음, 남쪽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웃시야가 죽던 해부터 요담과 아하스를 거쳐 히스기야에 이르기 까지 퍽 긴 기간 동안 활동을 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히스기야 치하에서 가장 오랫동안 예언을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남왕국 유다의 13대 왕으로 25세에 즉위하여 무려 29년 동안이나 통치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처음부터 이사야를 가까이 두고 그의 말을 청종하여 아세라 목상을 비롯한 각종 우상들을 타파하고 산당을 헐어버리고 성전을 보수하고 안식일과 유월절을 다시 회복 시키는 등 남유다 최초로 거대한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앗시리아로 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성읍을 크게 쌓고 예루살렘성 안에 처음으로 지하 수로를 건설하고 실로암 연못을 만들어 수자원을 확보하는 등 크게 국력을 강화했습니다. 그후 앗시리아의 산헤립이유대를 침공해 왔지만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대로 그는 하룻밤 사이에 18만 5천이나 되는 병력을 잃고 최후를 맞게 됩니다. 하여튼 히스기야 치세의 남유다는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모든 면에서 나라가 흥왕되던 시기였습니다. 말년에 히스기야는 죽을 병에 걸렸으나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15년이나 생명을 연장 받는 등 참으로 남유다의 걸출한 왕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이런 남유다 최대의 전성기인 히스기야 통치 기간 중에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충격적입니다. 선왕 웃시야 때에 잃어버렸던 여호와 신앙은 회복되어 다시 제 자리를 찿았고 지난 날의 온갖 우상들은 거이 타파되었습니다. 나라는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굳세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하여 정말 무서운 말씀으로 도전하셨습니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라. 너희 고모라의 백성들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대부분의 성서 주석가들은 이 말씀은 유월절이나 혹은 유대교의 어떤 축제일에 선포된 말씀이라고 봅니다. 사람들은 구름 떼 처럼 예루살렘 성전으로 몰려들었고 수천 마리의 소와 양들을 제물로 드리던 중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정말로 하나님께서 이 백성과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 지를 분명하고 뚜렷하게 선포하십니다. 나라의 경제는 좋아지고 온갖 우상들은 타파되고 민족적 신앙은 제자리를 찾아가던 때,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크고 성대하게 축제를 벌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엄청나게 큰 제사를 드리던 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는 너희들이 지금 드리는 이런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양이나 소를 기뻐하지 않는다. 나는 짐승의 피를 즐거워하지 않는다. 나는 분향이나 월삭이나 안식일이나 대회로 모이는 것을 전혀 바라지 않는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냐? 이제 내가 말해주마! 나는 너희들이 깨끗해지기를 바란다. 각자 자기자신을 돌아보아 악한 행실을 버려라. 나는 너희들이 선을 실천하며 정의를 이루고, 학대 받는 이웃들, 고아들, 과부들, 가난한 사람들을 돌아보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잘 먹고 잘 살며 국력을 튼튼히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 처럼 예배당 크게 짖고 대형집회를 열고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는 것만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은 정치나 종교가 흥왕하고 부강하여 외형을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싸우지 말고 서로 사랑하고 의롭고 바르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종교적 부흥이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후 5장에 나오는 대로 제발 좀 <어두운 것을 빛이라 하고, 빛을 어두움이라 하지 말아라. 쓴 것을 달다고 하고 단 것을 쓰다고 말하지 말아라. 제발 좀 악한 것을 선하다 하고 선한 것을 악하다고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종교적 부흥이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 진실된 사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메시지는 오늘 우리 시대의 교회들에게도 똑같이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일찌기 사무엘은 사울에게 분명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 청종 하는 것 같이 좋아하시는 줄 아느냐? 순종이 제사 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 삼상 15:22> 예레미야의 메시지입니다. <너희는 제발 내가 하는 말을 좀 들어라. 너희들은 너희의 악한 행실은 하나도 고치지 아니하고 완악한 행실을 계속하면서도 내게 울부짖고 기도하니 나는 너희가 나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겠노라. 렘 7:21-28> 호세아서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는 인애와 인자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한다. 나는 너희가 나에게 번제를 드리는 것 보다 진정으로 나를 아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호 6:6> 아모스의 음성도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나는 너희들이 지키는 절기를 미워한다. 나는 너희들이 모이는 성회도 기뻐하지 않는다. 나는 너희가 나에게 받치는 번제와 소제도 받지 않겠다. 너희들이 드리는 살찐 희생과 화목제도 나는 더 이상 돌아보지 않겠다. 너희 찬송과 노랫 소리를 그쳐라. 너희 비파소리도 멈추어라. 너희는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강 같이 흐르게 할지니라. 암 5:21-24> 아모스는 이 앞 5장 1절 이하에서 장송곡으로 시작하며 이렇게 선포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애가로 지은 노래를 한번 들어 보아라. 악에서 떠나라. 의로운 삶의 자리로 나가거라.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거라. 너희 성문 앞에 정의를 세워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는 제사드리는 자리, 예배하는 자리, 통성으로 기도하고, 각종 악기를 총동원하여 두 손 높이 들고 노래 부르는 자리가 아니라 정의를 실천하고 인애를 기뻐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미가서에 나오는 말씀을 한번 더 들어 보십시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으로 나아가 그에게 경배를 드릴까? 내가 번제물로 일년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으로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가 내 허물을 인하여 내 맏 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내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너에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실천하고 인자를 사랑하고 겸손하게 너의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니냐? 미가 6:6-8>
이렇듯 구약의 선지자들이 선포해 준 메시지는 오늘 우리의 상황에서도 잘 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한국교회와 한국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돌아 보십시다. 교회는 부흥하여 교인들의 숫자는 늘어나 오늘날 대형교회들은 수만 명, 혹은 수십만 명에 이릅니다. 교회의 예산은 수백, 수천 억을 지나 천문학적 숫자에 이르렀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는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입니다. 등록교인이 60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 외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50개 중 한국교회가 무려 23개나 들어 있습니다. 남부 순복음교회 10만 5천, 금란교회 5만 6천, 숭의 감리교회 4만 8천, 주안교회 4만 2천, 성락교회 3만, 광림교회 3만, 영락교회 2만 8천, 혜성장로교회 2만 3천, 소망교회 2만 2천으로 보고 되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거대한 재벌기업 처럼되어 버렸습니다. 담임목사는 부목사들을 자기 종처럼 다루고 차마 입으로 옮길 수도 없는 온갖 쌍소리를 해대고 자기 자식들에게 교회를 대물림하며 수백 억이나 되는 퇴직금을 받고 퇴직 후에도 교회를 쥐었다 폈다 합니다. 교회 뿐만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 또한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여 1인단 국민소득이 거이 4만 불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K팝, K컬쳐, K드리마, K영화, K음악, K음식, K화장품을 지나 광화문에서<아리랑>을 부르는 BTS로 부터 온갖 뛰어난 군사 무기에 이르기 까지 우리가 호주에 오기 전 불과 몇 십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에 못지않게 부정적 요소들 또한 무섭게 증가해 가고 있습니다. 사회적 빈부의 격차는 점점 더 크게 벌어지고 있습니다.먹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이 잘 사는 것 처럼 보이지만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밑바닥을 치고 세계에서 자살율은 1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회적 불평등은 심화되고 저출산은 갈수록 더욱 커지고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도는 최하를 향하여 달리고 사회적 가치관은 모든 게 다 물질주의로 뒤집어지고 말았습니다. 수준 미달의 정치의식을 비롯하여 사기, 마약, 음주운전, 사회적 차별의식 같은 것들은 도저히 개선 될 가능성이 전무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똑똑히, 잘 들어야 합니다. 이사야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들려 주시는 메시지를 새롭게 들어야 합니다. 종교적으로, 정치-경제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외형은 발전하고 눈에 띠게 하루하루가 새로와지는 것 같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들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우릴지어다.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너희들이 이루어 낸 그 성도들의 숫자, 그 교회의 건물과 크기, 그 교회의 헌금과 재력, 그 선교사들의 숫자와 활동, 그리고 지금 너희 나라가 성취해 낸 그 국력, 그 문화와 콘텐츠, 그것이 나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한번 되돌아 보아라. 지금은 다 불타 버리고 없어진 옛날의 도성, 소돔과 고모라가 생각나지 않느냐? 너희가 바로 그 소돔의 관원들이고 고모라의 백성들이다. 정신 차리고 똑똑히 들어라. 나는 이런 것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내 말은 듣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겉치장만 하고 사랑과 정의, 진리와 거룩함을 저버리면 꼭 소돔과 고모라 처럼 망할 줄로 알아라!> 잘 나갈 때가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겉이 번지르르 할 때가 제일 위험한 순간입니다. 교회가 부흥되고 국력이 강해지고 GDP가 높아질 때가 제일 불안한 때 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그랬고 히스기야 시대의 유대나라도 그랬고 지난 날 그리스와 로마도 다 그러다가 망했습니다. 오늘날의 한국도 정신 차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살길이 열립니다.
오늘 이사야가 우리들에게 외치는 메시지는 <돌아오라, 하나님께 돌아오라, 그래야 산다>는 것입니다. 입술로 드리는 형식적 예배를 떠나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입술로 고백한 믿음은 실천적 행동으로 연결 되어야 합니다. 선하게 살아야하고 착하고 옳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 가난하고, 힘없고, 억눌림을 받는 사람들을 보살펴야 합니다. 야고보는 뿌러지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 것인 줄 알지니라 …. 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 14-26>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킬지니라 … 나의 계명을 실천하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자니라. 요한 14: 15,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 7:21> 이사야를 통하여 던지신 하나님의 질문을 새겨 들으며 이 아침 다시 한번 저와 우리 모두, 심령의 옷깃을 여밉니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