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10) _ 2월 19일
“생각하기와 생각대로 살아가기”
(십자가묵상과 십자가지기)

기독교에서는 엇그제 수요일(17일)을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이라 부르며, 그날부터 시작하여 40일 동안을 “사순절” (Lent) 이라는 절기로 지킵니다.
이는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며, 그 분을 따라 고난, 사랑, 희생, 죽음의 길을 걷도록 깨우치게 하려는데 뜻이 있습니다.
다른 경우에도 그렇긴 하지만, 이 사순절 기간을 상징하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겠노라 다짐하게 하는 것이 그 목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에는 자기 희생과 포기, 아낌없는 이웃 사랑과 신에 대한 절대적 순종, 참되고 영원한 생명과 인류의 위대한 희망의 빛 등이 상징화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에서 십자가는 하나의 장식물이 되어버린지 오래되었습니다.
십자가 첨탑을 높이 세우고, 십자가 성호를 긋고, 금으로 만든 십자가 목거리를 목에 걸고, 이곳 저곳에 데코레이션 십자가를 꾸며대기 시작한 이후, 기독교는 십자가를 종교적 장식품으로 만들고, 기껏해야 그 십자가를 머리로 생각만 할 뿐이지, 실제 몸으로 지고 가는 것은 져버린 종교가 되고 말았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십자가는 이미 조롱거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장기적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그 때, 그 대통령은 십자가를 진다고 했고, 오늘날도 온갖 비리와 불의 속에 던져진 자들이 십자가를지고 골고다로 올라간다고 말합니다. 하기야 히틀러의 군인들도 그들의 군장 속에는 십자가를 그려넣고 전장에 나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죽였고, 전투에 나갈 때마다 군종목사의 기도를 받고 전쟁에 나갔으니까 더 이상, 십자가가 무슨 희생과 포기, 사랑과 고난, 죽음과 생명의 상징이랄수가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십자가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십자가의 역사, 의미, 형태, 종류 등등 참 공부 많이 했습니다. 전통적인 십자가의 형태와 종류만해도 수십가지나 됩니다. 그리스형 십자가, 라틴형 십자가, 정교회 십자가, 카이로 십자가, 예루살렘 십자가, 교황 십자가, 기사단 십자가를 거쳐 국제 적십자와 각국의 국기 속에 들어있는 십자가들은 세어보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십자가”라는 책은 송병구목사가 collection 한 168개의 다양한 십자가 모음집입니다. 어깨나무 십자가, 디아스포라 십자가, 태양 십자가, 지구본 십자가, 무지개 십자가, 야자수 십자가, 쟁기 십자가, 하트 십자가, 팽이 십자가, 우주 십자가, 오메가 십자가, 뿌리 십자가, 바퀴 십자가, 아픔 십자가, 나침판 십자가, 치료 십자가, 수의 십자가, 지팡이 십자가, 발자국 십자가, 퍼즐 십자가, 인터넷 십자가, 스펙트럼 십자가, 프리즘 십자가, 독수리 십자가, 비둘기 십자가, 어린양 십자가, 포도나무 십자가, 물고기 십자가, 다이아몬드 십자가, 지구촌 십자가 등등, 정말 별의 별 십자가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참 많이, 자주 생각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십자가를 선물로 주고 받기도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찬송가를 부르고 눈물을 흘립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감격해서 울컥하기도하고, 십자가 영화나 음악이나 미술작품이나 십자가 시나 설교를 들으면서 감격해서 울기도하고 부둥켜 안기도하고 통곡하며 어쩔줄을 몰라하며 몸을 뒤척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까지 입니다. 바로 여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입니다.
우린 십자가를 지지는 않습니다. 십자가를 공부하고, 십자가를 묵상하고 명상하며, 감격하는 것 까지가 우리의 한계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인문학과 철학에서는 인간을 늘 “생각하는 존재” – 호모 사피엔스라고 했습니다.
데카르트는 “Cogito ergo sum” –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칸트는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규정하고, 인간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양심과 상식에 따르는 존재로 이해했습니다.
로댕은 “생각하는 사람”을 빗어냈고,
함석헌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외쳤습니다.
저를 오해하는 분들 중에는 저를 생각하는 것, 사유하는 것만 강조라는 관념론자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더러 계십니다.
그런데 한가지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왜 생각합니까?”
“생각의 결과, 생각한 다음엔 무얼하자는 것일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이유, 생각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도달하려는 지향점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삶입니다. 행동이요, 행위요, 실천입니다.
우리는 행동하기 위해서 생각하고, 살아가기 위해서 연구합니다.
모든 생각은 할일이 없어서, 그냥 심심하니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은,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살고,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를 생각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 생각의 결과에 따라 살아보자고하는 것입니다.
“생각하기”와 “살아가기”는 연속성을 지닌 하나의 행위입니다.
둘 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입니다.
십자가를 공부도하고 묵상도하는 것은 결국 십자가를 지고 살기 위해서 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기껏 십자가를 책으로 공부만해온 사람입니다. 생각 따로, 삶 따로, 말 따로, 행동 따로, 고민 따로, 실천 따로, 그렇게 살아온 저는 이런 말씀을 드릴 자격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혹시 선생님은 지금까지 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눈물흘리시며 감격만해 오신 분은 아니십니까?
남은 숙제가 보이네요. 이제 우리 함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갈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생각하기”와 “살아가기”를 하나되게하는 일이 인문학의 과제니까요.
(참고서적: 십자가, 송병구 지음, KMC, 2005)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
참고서적
십자가 : 168개의 상징 찾아가기
송병구 / KMC (기독교대한감리회) / 2005.3.11
선분 두 개를 가로질러 겹쳐 놓은 십자가라는 상징의 168가지 변형태와 각각의 의미를 찾아 모아 놓은 책.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으로부터 시작하는 교회와 사랑, 박애를 실천하는 단체들의 로고에서 보이는 십자가를 찾아 그 의미를 곱씹어 본다. 싱가포르 독일어 교회 공동체가 사용하는 사람 인자 십자가부터 북한 적십자사에서 제작한 한반도 십자가까지, 적십자에서 사용하는 붉은 색 십자 마크까지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 인간을 향해 던지는 희생을 통한 구원에의 열쇠인 십자가 문양을 성서와 함께 묵상하며 희생과 구원의 참 의미를 얻을 수 있다.

○ 목차
1부 생명
십자가와 인간사이
참 아름다워라
푸른 십자가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평화를 일구는 여성
주님을 찬양하여라
사람이 무엇이기에
2부 영성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지혜의 발견
십자가에 담긴 기도
말씀이 우리와 함께
보라 그리스도다
길에서 만난 하나님
씨 뿌리는 사람
3부 하나됨
땅 끝까지
다툼을 넘어 하나로
연합하는 세계교회
십자가의 오른손
마음을 합하여
교회마다 고유한 표정으로
○ 저자소개 : 송병구

1961년 영월에서 태어났다. 감리교신학대학과 대학원을 마쳤으며, 1989년 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 목사가 되었다. 김포 문수산성교회와 독일 노드라인베스트팔렌 (NRW) 한인교회연합회에서 목회하였고, 감리회 본부 선교국에서 전도운동을 담당하였다. 현재는 본부 비서실 기획부에서 일한다. 그동안 농민선교와 인권 그리고 우리 민족의 화해와 통일운동에 참여해 왔으며, 교회의 역사적 소명와 문화의 깊이와 부피를 확대하는 일에 관심을 모았다. <하나된 세상 하나님 나라>(1991년), <소금 항아리>(2002년), <색동스톨>(2003)을 썼다.
○ 추천사
오랫동안 독일과 세계 각처에서 모은 송병구 목사의 십자가에 대한 작업의 가치는 168개의 ‘십자가’가 그 수와 종류에 있어서 방대하고 다양하다는 것 외에, 그가 가진 십자가에 대한 통찰과 신앙고백과 재해석에 있습니다. 그 신비스러운 의미를 목회자의 자리에서 성서 본문과 연결하여 묵상하며 십자가에 대한 현대적인 의미를 부여합니다. 168개 십자가 하나하나에 그 발생 배경이나 제작의도나 사용된 매체와 관련 된 이름을 일일이 지어줍니다. – 민영전(대한성서공회 총무)
십자가는 두 개의 직선을 겹쳐 놓은 단순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적어도 기독교인들에게는 인류를 위한 희생양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합니다. 그러기에 차마 그것을 밞고 지나갈 수없이 순교를 무릎 쓴 돈독한 신앙인들이 생겨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은 고작 하나의 장식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 당하기 일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부적 취급을 당하고 맙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십자가를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상징으로 이해하고 또 상징으로 나타내는 작업들이 귀하게 여겨집니다. 송병구 목사님이 수집한 여러 십자가를 그러한 모범을 보여 줍니다. – 김문환(서울대학교 미학과 교수)
○ 출판사 서평
십자가는 인간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초대이다. 다름아닌 십자가는 옛 사람을 새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전환점이 된다. 십자가는 자신이 살아왔던 시간의 성을 무너뜨리고 또 자신의 살아갈 새로운 시간을 건축해 나가는 인간의 삶을 함축하고 있다.
십자가는 열 십 (十)자 형태의 질서를 지니지만 또 다른 자유와 파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형와 라틴형이란 기본꼴 십자가에 배의 닻과 물고기, 비둘기 발자국, 생명나무 등 고전적인 기독교 상징물이 덧붙여졌다. 또 복음이 흩뿌려지면서 지역, 역사, 인간, 문화를 배경으로 하여 신앙의 역동성은 십자가의 보편성에 자신의 고유함을 접목시켰다. 현대성를 가미한 십자가들조차 여전히 신비하게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은 십자가가 지닌 깊이요, 영원성일 것이다.
여기에 소개한 십자가 심벌들은 지금도 활발히 일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 된 지체들의 십자가들이다. 십자가 안에 함축되어 있는 고난, 아픔, 희생, 사랑을 조명하고 해석하면 심벌이마다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제자 됨이 잘 드러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건과 공간을 초월하여 그 이해와 골과 폭을 더욱 확장하면서 다양한 십자 형태를 연출해 왔던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