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11) _ 2월 22일
“곡선은 하느님이 만드셨고, 직선은 인간들이 만들었다”

어제 우리 카톡방엔 최진 선생님이 이준관 시인의 “구부러진 길”을 올리셨고, 몇몇 분들의 잔잔한 감동이 이어져서, 저도 이미 준비했던 오늘의 잡기장은 잠시 뒤로 미루고 “구부러진 길”을 중심하여 곡선과 직선에 대해, 한 2년 반 전에 써놓았던 잡문을 다시 찿아 올려봅니다.
전북 정읍 출신으로 70이 넘으신 이준관 시인은 평생 많은 동시를 써오셨고, 시집들을 내셨으며, 방정환문학상 등을 받으신 원로 문인 중 한분이십니다. 소개해 주신 시 “구부러진 길”은 16줄 짜리 짧은 시이지만, 우리가 읽으면서 느낀대로, 오늘날 온갖 직선도로를, 묻지도 않고 달리며, 일상속에 묻혀서 살아가는 우리로 하여금, 잠시나마 멈추어 서서, 자신을 돌아보며, 삶의 여유와, 그 여유가 가져다주는 구부러진 길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서정시입니다.
“자연을 따라, 자연속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이 시를 읽으면서 직선으로 만들어놓은 저의 아파트 속에서이지만 조금은 마음이 푸근해 집니다. 몇일전 소개해드렸던 타샤 튜더도 다시 생각나게 해 주고요.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 – The straight line belongs to man, the curve to God.
곡선의 대표적 건축물인 ‘성 가족 성당’ (Templo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을 만든 바르셀로나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Antoni Gaudi)가 한 말로 전해지는 명언입니다.
물론 가우디 외에도 곡선의 예술가들은 적지 않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건축가요, 화가이며, 환경운동가인 훈데르트바서 (Friedensreich Hundertwasser) 같은 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모두 건축과 그림에 달팽이 같은 나선형을 끌어드려, 인간의 삶과 죽음, 역사의 흥망과 성쇠를 구부러져서 돌아가는 “영원회귀” (니체가 말했던 Ewing wiederkehren)로 상징화한 분들입니다.
제 잡기장의 메모는 문화심리학자이며 화가인 김정운 교수가 2018년 8월 조선일보에 쓴 칼럼을 읽고 다듬어 놓은 글입니다.
그에 의하면, 원래 자연 속에는 직선이란 없습니다. 모든 자연은 꾸불꾸불하고, 삐쭉삐쭉하고, 휘어지고, 오르내리고, 뱅글뱅글 합니다. 산도, 나무도, 풀도, 길도, 다 곡선입니다. 구부러져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 하느님이 만들어 놓으신 곡선, 구부러져 있던 세상을 현대화 (Modernization)라는 이름으로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고속도로를 만들고, 도시를 계획하고, 직선적 고층 건물들을 세웠습니다. 훈데르트바서의 말대로 이는 “인간이 신이 되어 보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는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직선은 무신론적이고 비도덕적이다” (Die gerade Linie ist gottlos und unmoralisch)
모든 직선은 위험합니다. 곡선은 안전합니다. 병든 인간들은 그것을 거꾸로 생각하여 곡선은 위험하고 직선은 안전하다고 말합니다.
직선은 사탄의 유혹입니다.
빨리빨리 해 치우고, 빨리 빨리 먹어치우고, 빨리빨리 만들어 가면, 빨리빨리 죽을 수도 있습니다.
직선은 항상 “않되는 일이 어디 있어!” “우린 할 수 있어!”, “할 수 없으면 할 수 있게 해!”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약간 늦기는 했지만,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이준관 시인 같은 분들 때문에, 가우디나 훈데르트바서 같은 건축가들과 화가들이 있어서, “되는 일은 하고”, “않되는 일은 그냥 않하는 것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젠 구불구불 돌아가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임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길도 돌아가고, 집도 돌아가고, 나라도 돌아가고, 교회도 돌아가고, 행복도 돌아가고, 아 ! 그렇구나! 생각도, 말도, 행동도 천천히 돌아가는 것이 생명과 기쁨으로 가는 가장 좋은 길임을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큰 산을 만나면 돌아가고, 힘들고 어려운 길을 만나면 쉬어서 가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만날 땐, 그냥 그쯤해서 접어두라는 하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구부러진 길”에선 돌아갈 줄도 아는 자세와 태도가, 바로 절대자 앞에서는 겸손이 되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인간됨을 바로 하는 인격적 표현이 된다고 생각지 않으시나요?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