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48)
골프공 이야기
취미나 재미로 가끔 골프를 치시는 분들도 많이 아시는 이야기입니다.
15세기 스코틀랜드에서 목동들이 소나 양떼를 몰고 다니면서 초장에 널려있던 돌멩이들을 지팡이로 툭툭 쳐내면서 골프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초기 골프 클럽이라고해야 기껏 나무 막대기로 부터 시작되었으나, 그후 점점 질 좋은 막대기, 이를테면, 밤나무 가지 같은 것을 거쳐, 시간이 흘러가면서 스틸로 발전이 되었고, 오늘날에는 카본이나 티타늄으로 까지 크게 개선되어 왔다고 합니다.
물론 프로들에게는 골프 클럽이나 골프 공 이외에, 옷이나 신발이나 모자 등등 거의 모든 골프와 연관된 악세서리들이 다 상업적 광고 이상으로 운동 자체에도 큰 영향을 끼치겠지만, 그냥 취미 삼아 하는 이들에게는 골프 클럽과 골프 공, 이 두 가지가 제일 중요하지 싶습니다.

골프 공 역시 처음에는 오늘날 같은 공이 아니라 돌멩이가 원조였습니다. 그후 16세기에 접어들면서 목동들이 쳐내던 돌멩이 공이 나무를 동그랗게 다듬어서만든 나무공으로 발전이 되었습니다. 특히 당시에는 밤나무로 만든 공이 좋았다고 합니다.
이후 18세기에 이르러 골프가 상류층의 운동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골프공도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나온 공이 ‘페더리 공’ (featherie ball)이었습니다. 우리 말로 ‘깃털 공’이라 할 수 있을텐데, 가죽으로 공의 껍데기를 만들고, 속은 새나 닭이나 오리 깃털을 쑤셔 넣어서 만든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엔 이것이 더 발전하여 ‘구티 볼’ (gutty ball)이 나왔습니다. 구티나무의 수액을 굳혀서 만든 공이었는데 공이 아주 유연하고 따라서 멀리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말이 되었습니다. ‘하스켈 볼’ (Haskell ball)이 나왔습니다. 이 공은 코번 하스켈 (Coburn Haskell)이 발명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속에다는 고무실을 칭칭 감고 페르카 나무에서 추출한 고무를 표면에 씌운 것으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골프 공과 아주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하스켈 볼이 참 좋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그 이전의 구티 볼이 기껏해야 비거리가 약 120m정도였던 것에 비하면 거의 그 두배에 이르는 240여m 까지 날아가는 등 장점이 참 많았지만, 그 볼의 결정적 단점은 가격이었습니다. 당시엔 하나 하나가 다 수작업을 통하여 만드는 것이였기에 그 값이 여간 비싼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이 하스켈 볼을 쉽게 바꿀 수가 없어서 볼 하나를 가지고 계속 쳤습니다. 그런 중에 공은 여기 저기가 움푹 파이고 흠집이 생겨났습니다.
그 때 나타난 현상이 오늘날 골프 볼에 딤플 (dimple)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처음 만들었던 하스켈 볼은 달걀 껍질 처럼 아주 매끈하고 평평하게 만들어서 사용했는데, 그것이 값이 비싸서 계속해서 오래 쓰는 바람에, 공에는 수많은 상처가 생기고 울퉁 불퉁해졌는데, 그에 비해 공의 비거리는 거의 두배나 되는 것을 발견해 낸 것 입니다.

‘아 맞고 터지고 생채기가 생기고 울퉁 불퉁해진 공이 확실히 더 멀리 날아가고 홀에도 잘 들어가고 좋은 스코어를 내게 하는 구나 !’ 그걸 발견해 낸 것이 오늘 우리가 쓰는 솔리드 코어 볼 (solid core ball)이 나오게 된 계기였습니다. 오늘날의 골프 볼이 여기 저기 울퉁불퉁, 마치 흠이 있는 것 처럼 딤플을 많이 가진 것이 된 역사는 이렇게 된 것 입니다.
‘맞고 터지고 생채기가 생기고 울퉁불퉁해 질 때 거리는 늘어나고 점수는 더 좋아진다’
모든 것이 이와 흡사합니다.
뜨거운 불과 용광로를 통과한 후에야 정제된 강철이 나옵니다.
쇠는 담금질과 벼름질을 통하여 단단해지고, 이글거리는 불속을 지나야 쓸모있는 기구가 만들어 집니다.
99.9%의 순금은 그냥 처음 부터 금광에서 토출되는 것이 아니라 잘게 부수고, 깨고, 씻어내고, 끓여내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골프공만 흠집이 있어서 멀리 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저 혼자 걸음마를 하기 까지는 평균 2천, 혹은 3천 번 정도는 넘어진다고 합니다.
토마스 에디슨은 오늘날 우리가 쓰는 전구를 발명해 내기 까지 무려 999번의 실패 끝에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사람들은 에디슨을 가르켜 ‘세상에서 가장 많이 실패해 본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한번도 실패를 실패라 하지 않고 늘 실험이라고 불렀습니다’
페니실린 발명에 앞서 발견한 살바르산 606호는 에를리히 (Paul Ehrlich)가 605번이나 실패한 후 606번 째 실험에서 성공을 거둠으로 붙여진 이름 입니다.

인생이란 거의 이와 흡사합니다. 고난, 실패, 아픔, 쓰라림이 인생을 더 아름답게하고, 빛나게하고, 멀리 가게 해 줍니다. 많이 맞은 사람이 더 성숙해지고, 실패해 본 사람이 더 크게 성취하게 되고, 아파 본 사람이 더 강건해 집니다. 잔병치레 많이 한 사람이 더 장수한다고 합니다. 인생살이 이런 저런 시련 많이 격어 본 사람이 더 성숙한 인격과 성품을 지니게 됩니다.
제 주변에는 아픈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나이가 더해 가니 그런 것이겠지만, 벌써 수년 째 견디기 어려운 통증으로 고생하는 분, 걷기에도 불편한 몸이지만 좌절하지 않고 움직이는 분, 암 수술 후 방사선 치료를 하시는 분 등이 가까이 계십니다.
그러나 인생이란 사실 실패와 아픔을 통해서 더 단단해지고, 건강 할 때 보다 아플 때 훨씬 더 많은 것을 깨우치게 됩니다. 울퉁불퉁한 딤프가 있는 골프 공, 아프고 쓰라린 인생 – 그것이 우리를 더 멀리 가게하고, 더 높이 보게하고, 더 큰 희망과 가능성을 갖게해 주며, 더 깊은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깨우치게 해 줍니다.
흔히 꽃길만 걸으라고 축복해 주지만, 인생길엔 결코 꽃길만 있지는 않습니다. 가시밭 길도 많이 있습니다. 낮과 밤이 반반인 것 처럼, 꽃길 반, 가시밭길 반 입니다.
움푹 파진 골프공 하나를 보면서도, 고난은 연단을, 연단은 인내를, 그리고 인내는 마침내 영광을 가져오리라는 희망을 지닐 수만 있다면 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생각하는 9월의 첫날 아침입니다.
Carpe diem !!!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