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62) 중에서 _ 9월 16일자

“일즉다 다즉일” (一卽多 多卽一)
이말은 본래 대승불교의 주요 경전인 ‘화엄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진 말인데 한자는 물론이고 한글과 일본어, 영어로도 번역이 되어있습니다.
반세기도 훨씬 이전, 대학시절, 인도철학을 한 학기 수강했을 때, 교수님이 그 방대한 화엄경 중에서 몇 권을 가지고 오셔서 보여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책구경을 시켜주셨던 거지요.
그후 한글이나 한문으로 번역된 화엄경 조차도 단 한번 직접 접하거나 읽어보질 못했습니다.
하여튼 80여권이나 되는 이 방대한 경전을 그때 선생님께서는 단 한귀절로 요약해 주셨는데 지금도 그 선생님의 얼굴 모습과 가르침이 제 가슴속 한편에 남아있습니다.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
하나는 모두이고 모두는 하나다.
하나는 여럿이고 여럿은 하나다.
하나속에 여럿이 있고 여럿속에 하나가있다.
부분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속에 부분이있다.
이것만 기억해 두어도 좋겠다.
이것이 화엄경의 요체이며, 불교철학의 핵심사상이다.
돌이켜보니 이런 내용의 강의가 남아있는듯 합니다.
이와 흡사한 귀절이 있습니다.
“일중일체 다중일” (一中一切 多中一)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화엄경을 해설, 요약하시면서 ‘법성게’를 통하여 달리 표현하신 말씀입니다.
“일중일체 다중일” (一中一切 多中一)
의미는 같습니다. 하나 속에 전체가 들어있고 전체 속에는 하나 하나가 있다는 뜻입니다.
“일즉다 다즉일” (一卽多 多卽一)
“일중일체 다중일” (一中一切 多中一)
이 두마디는 불교의 근본사상중 하나인 ‘연기법’ (緣起法)을 설명하는 문장입니다.
‘연기’ (緣起)란 모든 존재하는 것은, 혼자, 따로 따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피차에, 서로 서로 다른 것이나 상대방에 의존하여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사상은 세상만사는 상호의존관계라고 봅니다.
개별은 전체를 구성하고, 전체는 개별의 모음입니다.
세상은 이것 때문에 저것이 있고, 저것으로 인하여 이것이 있기 때문에 서로 연기, 연속적 원인 제공자가 된다고 보는 겁니다. 때문에 우주는 떼어서 볼것이 아니라 연결시켜 볼 때에 그 본질이 더 명확하게 보여진다는 설명입니다.
하늘과 땅, 땅과 하늘, 인간과 자연, 자연과 인간, 나와 너, 너와 나, 식물과 동물, 동물과 식물, 있음과 없음, 없음과 있음 – 우주는 서로 서로 연계되어 있고 상호의존하여 존재하며, 그 ‘있음’과 ‘없음’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여기가 있으니 저기가 있고,
저기가 있으니 여기가 있습니다.
당신이 있어서 내가 있고,
내가 있음으로 당신이 계십니다.
비움으로 채움이 오고,
채운 후에는 비워여합니다.
열매는 씨앗이 되고,
씨앗은 다시 열매를 맺습니다.
애비는 아이를 낳고,
아이는 또 애비가 됩니다.
자연도 돌고 돌며,
인간사도 다 돌고 돕니다.
해 아래 새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세상이 변하길 바라면 내가 변해야하고, 그가 정직해지길 원하면 먼저 내가 정직해져야 합니다.
저희가 사는 동네 입구에는 Living Together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우리 동네는 다문화, 다인종사회이니, 서로 서로 어울려 살자는 뜻이지요. 한국을 포함한 동양에서는 상생 (相生), 공생 (共生)이라고 하지요.
너와 나, 여자와 남자, 흑인과 백인, 전라도와 경상도, 보수와 진보, 남과 북, 사람과 하느님, 자연과 사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기독교와 이슬람, 미국과 중국 – 모두가 다 그게 그것이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니, 같이 살고, 함께 행복하고 싶습니다.
“일즉다 다즉일” (一卽多 多卽一)
“일중일체 다중일” (一中一切多中一)
Carpe diem !
Bonam fortunam !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