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잡기장

과유불급 (過猶不及)
잘 알려진 이 사자성어는 공자께서 하신 말씀으로 전해지고 있다. 논어 (論語) 선진편 (先進編)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날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자장과 자하 중에 누가 더 낫습니까?>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자장은 좀 지나치고 자하는 좀 미치질 못하고 있다> 그러자 자공이 다시 물었다. <그럼 자장이 자하 보다 낫다는 말씀입니까?> 이때 공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지나친 것과 미치지 못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그 둘은 똑같은 것이다. 누가 더 낫다고 말 할수 없다> 자장은 너무 활달하여 지나친 면이 있고 자하는 너무 신중하여 미치지 못하는 데가 있다는 뜻이다. <過猶不及이니라. 지날 過, 오히려 猶, 아닐 不, 미칠 及> 영어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Too much of something is as bad as too little. 구체적 상황에 따라 그 쓰임새에서는 약간의 차이들이 있지만 우리 말의 <적당히> <정도껏> <공정하게> <바르게> 같은 말을 영어에서는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단어로 표현하고 있는데 참고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Suitably, properly, reasonably, rightly, moderately, fairly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고 하는 이 공자의 가르침은 공맹철학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중용 (中庸)을 따르고 실천하라는 교훈으로 이해된다. 모든 일에 있어 <더 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중용, 균형, 조화, 정도, 적당함이란 말처럼 쉽거나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인문학교실을 함께 해온 지난 8년 동안 나는 자주 <균형과 조화> 를 강조하고 언급해 왔다. 그것은 사실 남이 들으라는 말이 아니라 실은 나 자신을 향한 다짐이었다. 그런데 어줍찮은 이런 잡기장 하나 쓰는 것만 해도 상황과 처지에 따라 균형있게 말하고 지혜롭게 쓰고 공감 있게 표현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른 분들도 그렇겠지만 나도 여러 개의 단툭방들이 있어 수 많은 사람들과 서로 생각과 마음을 나누고 있지만 우리 친구들 중에는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단톡방의 목적이나 성격, 의미나 공공성을 잃어버리고 <지나치게 나가거나,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질 않다. 특히 정치적 잇슈나 종교적 견해에 있어서는 아주 심하다. <과유불급> – 정말 어려운 일이다.
지난날 현역에서 목회할 때 나는 신앙생활도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는 것을 많이 경계해 왔다. 기도생활이 아주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도 너무 지나치면 신비주의로 흐르기 쉽고, 성경공부도 꼭 해야하는 것이지만 이 역시 그것만 너무 강조하면 주지주의로 기울어지기 때문이었다. 영성과 지성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자고 말해왔다. 구원의 문제 역시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이 함께 보조를 맞추어 가도록 해야하고 생활 역시 개인적 경건과 사회적 섬김이 적당하게 균형을 맞추도록 노력하자고 강조해 왔다. 중용, 균형과 조화, 지나치지도 말고 모자라지도 않는 상태 – 過猶不及, Harmony and Balance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다 해당되는 것이라 하겠다. 정말 힘들고 어려운 과제이긴 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 해서 추구해 나가야 할 공동체적 삶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모두들 알고 있는 말이긴 하지만 운동도 지나치면 건강을 해친다. 적당히 해야만 목표를 이룰 수 있다. 나는 잘 하지는 못하지만 퍽 오랫동안 골프를 쳤다. 그린 위에서 퍼팅을 할 때, 너무 세게 치면 홀을 지나가게 되고, 그렇다고 너무 약하게 치면 홀에 미치질 못한다. 적당하게 쳐야 홀인을 할 수 있다. 過猶不及이다. 퍼팅을 할 때 마다 라운딩하는 친구들과 하는 말이 바로 過猶不及이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나 꼭 필요한 건강식품이라 하더라도 적당히 먹어야한다. 물 많이 마시라고 해서 턱없이 들이키다가는 큰 일이 날 수도 있다. 과식이나 과음도 몸을 해롭게 한다. 음식도 너무 싱겁게 먹으면 염분이 부족하게 되고, 그렇다고 너무 짜게 먹으면 건강을 해치게 된다. 설탕도 마찬가지다. 피곤하다고 해서 낮잠도 너무 오래 자면 좋지 않다고 한다. 어디서 읽은 글에는 낮잠도 30분 이상 자면 조기 사망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보고가 있다고 한다. 너무 뚱뚱해도 문제이지만 너무 날씬해도 문제다. 둘 다 병이 될수 있다. 환율도 너무 낮으면 수출이 줄게 되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높히면 수입이 어려워지지 않겠는가? 비도 너무 많이 내리면 홍수가 되고 너무 적게 오면 가뭄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세상 만사 모두 過猶不及이다.
겉으로 나타난 것 만이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정신이나 영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예 (禮)도 지나치면 형식주의로 흘러 갈 가능성이 있고 너무 모자라면 무례한 인간으로 비쳐지게 된다. 자존심도 너무 높으면 교만이 될 수 있고 너무 낮으면 열등생이 될 수 있다. 지나친 기쁨이나 넘치는 슬픔 역시 적당히 조절할줄 알아야한다. 정도에 지나치게 기쁨에 빠져 펄펄 뛰거나, 슬픔에 젖어들어 방성대곡하는 것도 억누룰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을 조절할줄 모르는 사람으로 비쳐지지 않토록 조심해야한다. 지나친 셰셰는 허례 처럼 비칠 수 있고 지나친 칭찬은 아부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분노 역시 하나도 표현하지 않으면 정의감을 상실하게 되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들어내면 싸움이나 전쟁을 일으키게 됨으로 적절하게, 적당하게 나타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나치게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반드시 경계해야 할 일이지만 지나친 사랑 역시 위험한 일이다. 사랑도 미치지 못하면 매정하게 되고 지나치면 탐욕이 되기 쉽다. 적당히 해야지 기쁨과 평화가 된다. 자식에 대한 사랑도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할 수도 있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도 너무 지나쳐 만사에 <오냐 오냐>하면 그릇된 길로 빠질 수 있다.
믿음도 마찬가지다. 너무 지나치게 확신에 젖어들면 미신에 빠질 가능성이 더해진다. 속으로는 든든한 믿음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티나게 보이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못된다. 희망도 지나치게 붙잡히면 희망이 아니라 망상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믿음, 소망, 사랑이라 하더라도 분별력을 갖고 적당히 표현하고 정도껏 나타내야한다.
선행 까지도 적당히 해야한다. 사실 끝없는 선행이란 가능한 일도 아니지만 설혹 그런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자칫 지나친 선행은 죄인인 인간을 성자인양 착각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면 독이 되고 미치지 못하면 손해가 된다. 세상 모든 일에는 다 한계가 있다. 주어진 한계를 넘어서면 미치지 못함과 같이 된다. 같은 말이지만 결국 모든 일에는 적당함, 균형과 조화, 즉 過猶不及이 참으로 중요하다.
한 20여년전 나는 이곳 호주에서 가까운 남태평양에 있는 작은 섬나라 바누아투 타나섬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하루는 현지 선교사와 함께 깊은 오지에서 문명과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원주민 마을을 찾아갔다. 전기나 수도는 물론 길도 없고 차도 들어가지 못하는 곳을 3,4시간이나 걸어서 갔다. 거기에서 문명의 혜택이란 전혀 없이 원시인들 처럼 벌거 벗고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추장에게 물었다. <뭐 필요한 것이 없으십니까? 저희들이 좀 돕고 싶은데요> 그러자 추장은 정중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저희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늘과 바다와 숲은 항상 그 때 그때 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충분히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자연은 늘 더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채워주고 있습니다> 過猶不及이라는 단어는 알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그 말 그대로 모든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자연인들이 지금도 눈 앞에 아른 거린다.
하지만 살다보면 인생살이에서는 과해도 좋고, 모자라도 좋은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過猶不及의 반대말로 자주 쓰이는 고사성어 중 하나는 다다익선 (多多益善)이다. <많으면 많을 수록 더 좋고 넘쳐난 것 처럼 보여도 결코 나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뜻이다. 웃는 얼굴, 친절한 태도, 위로와 격려의 말, 마음을 열고 들어주고 양보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모습, 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같은 말을 자주 하는 것은 <多多益善 – 더하면 더 할수록 좋은 것들>이 아닐까 싶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가능하면 적을수록 더 좋은 것들도 있다. 탐심, 미움, 시기심, 우월감, 경쟁심, 우쭐거리고 잘난 척 하는 것들은 모자랄수록 좋은 것들이다. 사람들 중에는 돈이란 많을수록 좋을 것이란 생각을 갖은 이들도 적지 않은데 그건 절대로 그렇지 않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가져온다> <있는 것을 족한 줄로 알고 모든 일에 감사하라> 이것이 바로 탐욕으로 찌든 현대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는 고사성어 – 過猶不及과 多多益善이 가르쳐 주는 교훈이 아니겠는가! (*) 홍길복 (2025. 7. 7)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