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잡기장

나의 이민목회 이야기 (1)
<미지의 땅을 밟다>
1980년 6월, 나와 우리 가족이 호주에 도착했을 당시 우리가 챙겨온 짐 속에는 포크와 나이프가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 와서도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만큼 우리는 호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고 우리에게 이 땅은 그저 모든 면에서 미지의 세계였다.
120년 전 조셉 데이비스(Joseph Henry Davies)가 알려지지 아니한 땅 조선을 찿아갔던 것 처럼 우리 역시도 미지의 땅 호주에 그렇게 첫발을 디뎠다. 정말 우리는 아프리카를 찿아가는 선교사처럼 이곳에 도착했다. 생각도, 준비도, 마음 자세도 여느 선교사들과 다를 바가 없이 우리는 이 땅으로 던져졌다.
우리 가족은 호주에 오자마자 시드니(Sydney)에서 서쪽으로 약 4천 킬로미터도 더되는 퍼스(Perth)라는 곳으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약 6개월을 머무는 동안 우리는 공부를 준비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한인교회를 개척했다. 그곳엔 주로 광산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한국사람들이 약 30-40세대쯤 살고 있었다. 그 교회가 지금의 <서부호주 한인교회>이다. 우리는 퍼스에서 참 좋은 학습 기간을 보냈고 또 적잖은 훈련을 했다.
그러다가 그해 말 다시 시드니로 왔다. 평신도들 몇몇이 이전에 자신들이 다니던 <시드니 한인 연합교회>를 떠나 새로이 교회를 설립하고 목회자를 찿고 있었는데, 우리 가족을 호주로 초청한 변조은(John Brown)목사님이 우리를 그 교회에 소개해 주었다. 그 교회가 <시드니 제일교회>이다. 나는 그 교회에서 1998년 12월 까지 만 18년을 목회했다. 1974년 4월 베트남 전쟁이 끝나기 이전 까지는 시드니에 사는 우리 교민은 약 3-40세대 정도라고 알려져 있었고, 1974년 9월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한인교회가 시작되었는데, 내가 시드니 제일교회에 부임할 당시 시드니에는 약 2천여명의 한인들과 5개의 한인교회가 세워져 있었다.
1999년 1월 부터 나는 <시드니 우리교회>의 부름을 받아 2013년 12월 까지 14년 동안 목회하다가 은퇴했다. 33년이 흘렀다. 엄청나게 큰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동안 우리 한인사회는 약 12만여명에 이르는 영주교민들과 4-5만 정도의 단기 체류자들을 포함하여 17-8만명에 이르는 커다란 공동체로 성장했다. 한인교회도 300여개나 되며, 각종 선교단체는 물론 여러 기독교 언론과 유관 단체들이 생겼다 사라지기도 한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장로교 통합측 출신의 목사로는 맨 처음으로 시드니에 와서 발을 붙인지도 어언 45년을 넘게 이 땅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결코 짧지 않은 인생살이와 목회현장을 경험해 온 셈이다. 지난날의 인생과 목회의 경험들은 나에게 여러가지로 생각의 폭을 넓혀주었고 인생의 교훈과 지혜를 더해 주었으며 나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돌이켜 생각을 가다듬어 보면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요, 나를 둘러싼 이웃들과 친구들의 도움과 사랑이라 여겨져 더 없이 넘치는 감사를 드리게 된다.
나는 그동안 호주에서 이민목회를 하며 유아세례를 포함하여 세례와 입교예식을 베푼 사람은 모두 920명이다. 170회의 결혼식과 67회의 장례식을 집전했다. 1500번 이상의 주일 낮예배 설교와 8천번 이상의 심방, 1700여회에 이르는 상담, 그리고 1200여회 이상의 각종 회의 참석과 인도가 나의 목회 일지에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하지만 이런 통계자료들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은 다 시간의 흐름들이 빚어준 결과일 뿐이다. 지금와서 돌이켜 보면 그런 통계에는 잡히지 아니하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오히려 더욱 더 깊은 의미와 여운으로 남게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지나간 세대, 한 이민목회자의 몇가지 에피소드들을 공유함으로 함께 웃으며 한번 더 마음과 생각을 새롭게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목사님, 콩나물 한봉지만 사다 주세요>
할머니 교인 한 분에게 오늘 낮에 심방을 가겠노라고 전화를 드렸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말씀이다. <목사님, 미안하지만 심방 오시는 길에 한국식품점에 들려서 콩나물 한 봉지만 사다 주세요> <예, 그렇게 하지요. 콩나물 말고 또 다른 필요한 것은 없으세요?>
요즘은 노인들도 버스나 기차를 타고 이곳저곳 잘 다니시지만, 초창기에는 그렇질 못했다. 한인공동체가 정착되어 가는 과정에서 이민교회는 교회의 전통적인 기능이나 역활 외에도 여러가지 사회봉사적인 일들을 감당해야만 했다. 처음 호주에 오는 이민자나 방문자들을 맞아주고 바래다 드리기 위해 수시로 공항에 드니드는 일은 거이 필수적이었다. 영사관을 찿아가 비자 문제를 안내해주고 아이들을 학교에 입학 시키느라 선생님을 찿아가는 것도 목회의 하나였다. 운전면허 시험을 치르도록 공부를 도와주고 시험장에 데려가고 통역을 해주는 일은, 요즘에야 운전학원이 하는 일이지만, 40년 전엔 그것도 목회의 일부였다. 그 때는 집을 얻는 일, 자동차를 사는 일을 포함하여 혼자 사시는 할머니들을 위해 쌀과 라면, 콩나물과 두부를 사다 드리는 심부름도 사역 가운데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1981년 5월 어버이날, 아직 한글로 된 매체 하나도 없던 때, 시드니에서는 처음으로 교민사회 전체를 수소문하고 연락해서 38명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을 시내 센테니얼 파크로 모시고 가서 제 1회 경로잔치를 열었다. 교회에 다니시든, 성당에 다니시든, 절에 다니시든 아무 상관 없이, 그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이민자들을 섬기는 하나님의 선교라고 믿었다.
<아저씨, 되게 말 잘하네요>
처음 퍼스에 가서 막 교회를 개척했을 때였다. 하루는 주일 예배 후 모두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데, 한 20대 초반의 처음 보는 아가씨가 말을 붙였다. <아저씨, 아저씨는 어쩜 그렇게 말을 잘 하세요?>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던 이들의 눈길이 그 아가씨에게로 쏠렸다. 아무리 나이가 어리고 무얼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목사를 <아저씨>라고 부르고 설교한 것에 대해 <말을 잘한다>고 하는 게 어딘가 이상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좀 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그 아가씨는 그날 난생 처음으로 교회라는 데를 왔고 예배하는 자리에 참석한 젊은이였음을 알게 되었다. 고국을 떠나 이역만리 호주로 유학을 와서 학교에서 만난 사람의 안내를 받아 한국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있으니 한번 가보라고 해서 찿아온 것이 그날의 발걸음이었다. 익슥하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흔히 세상에 아직도 교회에 대해 그렇게도 모르는 사람이 다 있을까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는 기독교 외에도 많은 종교들이 있고, 예배나 설교 외에도 부르는 명칭들이 제각기 다를 뿐만이 아니라 죽을 때 까지 교회라는 곳은 한번도 가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이들도 많이 있다.
우리는 지리적, 문화적 및 환경적으로 주로 가까운 사람들과 끼리끼리 모여 살아서 그렇지,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울타리 밖을 둘러 보면 나와는 다른 생각을 지니고, 다른 삶의 패턴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헤아릴수가 없다. 나와는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사람들 중에는 나서 죽을 때까지 교회라고는 한번도 안가보거나 못 가보고, 또 목사라는 사람은 평생 단 한번도 만나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음을 알아야한다.
나더러 아저씨라고 부른 그 생경한 부름말을 들으면서, 목사가 목사님이 아니라 <아저씨>가 되고, 목사 부인은 사모님이 아니라 <아줌마>가 되는 것이 하는 보좌를 떠나 사람이 되신 예수님을 아주 작게라도 재현해 나가는 게 아닐까 생가해 보았다. 본래 예수께서 그냥 평범하게 일상적인 말로 하셨던 그 이야기들을 우리 교회는 꼭 설교라는 종교적 언어로 바꾸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걸까? 복합문화사회에서 이민목회가 가져다 주는 또 다른 경험이 참 많은 것을 깨닫고 반성하게 만들어준다. (계속)
<위의 글은 계간지 “이제 여기 그너머” 2016년 겨울호에 게재되었던 것을 옮겨와 가다듬은 것입니다> *홍길복 (2025. 9. 8)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