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잡기장

나의 이민목회 이야기 (2)
<선생님, 한대 피우시지요>
아주머니는 벌써 몇 달째 교회에 나오고 있었는데 아저씨는 아직 교회에 나오지 않는 가정을 방문하게 되었다. 집에 가 보니 마침 그 자리에는 주인아저씨를 비롯하여 두어 분의 친구들도 함께 자리하여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서로 통성명을 한 뒤에 자리를 잡고 앉자, 그 댁 아저씨가 선듯 앞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더니 그 중 한 개비를 빼내어 내밀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한 대 피우시지요” 당황한 나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일순간 분위기는 약간 썰렁해졌다. 아마도 그 아저씨는 한국 목사는 서구 목사들이나 천주교 신부들과는 달리 전통적으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걸 잘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 자신도 뭘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보통 한국 사회에선 처음 만난 남자들 사이에선 인사 후 우선 담배부터 권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요, 또한 인간 관계의 친밀도를 높이는 좋은 수단이 아니던가!
교인은 목사를 모르고 목사는 교인을 모른다. 교회는 세상을 모르고 세상은 교회를 모른다.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오해를 줄이고 가까워지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각자 자신의 무지와 한계를 인정하고 상대방을 용납하는 마음가짐이라고 하겠다. 그런 점에서 목회란 목사와 교인이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이요, 선교란 세상과 교회가 피차 소통의 길을 넓혀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교회나 목사는 세상을 다 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목회와 선교란 끊임없이 자기를 내려놓고 겸손해지는 훈련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내가 처음 호주에 왔을 때도 그런 마음가짐을 미처 챙기지 못해서 실수했던 경험이 있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초창기 한인교회는 대개 독자적으로 예배당을 가질 형편이 못되어 호주교회가 먼저 예배를 드린 후에 그 교회당을 빌려서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당시 우리가 빌려서 예배드리던 호주교회의 담임목사님은 주일 아침 예배 후 교회당 입구에서 교인들과 악수를 하는데, 늘 담배를 입에 물고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한국에서는 전혀 보지도 못했고 상상도 못했던 풍경이었다.
어느 주일예배 후 그 목사와 나는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그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교회에서 목사는 보통 담배를 피우지도 않지만 더군다나 교회에서, 교인들 앞에서는 담배를 피지 않아요” 그러자 그이는 좀 언짢은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담배든 와인이든 그런 것들은 다 개인의 기호일 뿐입니다. 담배는 나한테는 베스트 프랜드 중 하나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상은 나와는 다른 생각을 지니고 또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뒤엉켜져서 살아가고 있다. 종교든, 정치든, 경제든,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의 제각기 다른 생각과 다른 의견들이 있기에 아름답고 풍성해진다. 사실 목회나 선교도 일방적으로 한 쪽에서 다른 편을 향하여 주고 베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주면서 받고, 받으면서 주는 것이 세상살이의 이치다. 가르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다. 나는 그들을 구원하고 그들은 또 나를 구원한다. 그 어떤 관계도 일방적인 것은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가 서로 얽혀있고 상호 연계되어 있다.
<목사님이 요즘은 날 사랑하지 않잖아요!>
교우 가운데 늦둥이 아들을 낳은 집에서 어느 토요일 오후에 돌잔치를 열게 되었다. 그분은 나와 날짜와 시간을 정하고 구역식구들도 모두 청하고 싶으니 좀 연락해 달라고 했다. 나는 담당 구역봉사자에게 전화를 하여 그 댁의 뜻을 전하며 가능한한 구역식구들이 모두 참석할 수 있도록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 구역장을 맡으신 분은 그리하겠다고 말했다.
약속된 토요일 오후 우리 부부와 부교역자 부부는 시간을 맞추어 그 댁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쩐일인지 그 자리엔 한분 장로님 내외분과 그 구역장만 와있고 구역 식구들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좀 기다리다가 그냥 예배를 드렸다. 예배 후 나는 그 구역장을 맡은 여자 집사님께 물었다. “집사님, 왜 구역 식구들은 한 분도 못 오셨나요? 혹시 무슨 착오가 생긴 것은 아닌가요?” 그러자 그 분은 갑자기 눈가를 적시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요즘 목사님과 사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잖아요!”
이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선 말다틈을 할 수 없어서 그냥 우물쭈물 하며 적당히 상황을 덮어 버리고 마무리를 했다. 몇일이 지난 후 그분은 나에게 근래에 교회에서 무슨일로 인하여 다툼이 있었는데 아무도 자기를 이해해 주지않아서 섭섭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날 “요즘 목사님과 사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잖아요?”로 표출된 말은 바로 그의 아픔을 보듬어 줄 사람이 없어서 던진 하소연이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인생길을 걸어간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지구촌에 사는 사람들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이해 받고 사랑 받으며 살기를 원하고 또 그래야만 그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행복해 진다. 목회와 선교란 관심, 배려, 이해, 동정, 나눔, 대화, 베품 같은 형태로 표현되는 사랑의 변형이요, 사랑의 확대 재생산이다. 특히 이역만리 나라 떠나 이민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랑에 허기진 사람들이다.
목회와 선교 행위는 사랑의 연습이며 그 일의 성공과 실패는 사랑의 성공 여부에 의해서 결정된다. 사랑이란 죽고 싶도록 억울한 일도 그냥 받아드리고, 분노와 슬픔과 쓰라림도 아무 말 없이 감내하는 것이다. 사랑이란 내가 죽는 것이다. 사랑하기에 죽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안 되는 일은 정말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 죽지 않고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지 않은가?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있는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은 아직도 그들이 믿고 전하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죽은 분이다. 오직 사랑을 위해서!>
“목사님이 요즘 절 사랑하지 않잖아요!” 사랑에 굶주린 한 교인의 목소리가 마치 죽비소리 처럼내 가슴을 후빈다.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에겐 그늘이 생기고 그늘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챙길 여유를 갖을 수가 없다. 내가 아픈데 어떻게 구역식구들에게 전화해서 돌잔치에 오라고 알릴 수가 있었겠는가? 자신의 마음이 아픈 사람은 다른 사람을 챙기기가 어려운 법이다. 답은 사랑이다. 사랑으로 안되는 일은 절대로 없다. 만약 그 일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면 그건 아직도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인 줄로 알아야한다. (계속)
<이 글은 계간지 “이제 여기 그너머” 2017년 봄 호에서 옮겨와 다듬은 것입니다> *홍길복 (2025. 9.22) 나의 이민목회 이야기 (2)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