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잡기장

늙음과 죽음 –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중에서
•이즈음 나는 80을 넘어서면서 전 보다 자주 <늙음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고 그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더듬어 보게 된다. 이는 아주 자연스런 현상일게다. 오늘 쓰는 잡기장은 에릭 와이너가 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마지막 두장, <보브아르처럼 늙어가는 법> 과 <몽테뉴처럼 죽는 법>을 읽으면서 밑줄을 쳐 두었던 부분들을 약간 다듬어 본 것이다. 이 책은 수 년전에 읽었지만 다시 읽어보니 새롭게 다가왔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The Socrates Express> – 작가이며 여행가인 에릭 와이너(Eric Weiner)가 지은 책으로 원판은 2020년 미국 Avid Readers Press에서 출판 되었고 한국어번역판은 전문번역가 김하현씨의 옮김으로 2021년 서울의 어크로스에서 출판되었다.
•개요 – 이 책은 전문성을 갖춘 철학개론이나 철학사상, 혹은 철학사를 서술한 책이 아니다. 그냥 보통 사람들이 쉽고 재미있게 접근 할수 있는 철학 에세이라고 할수 있다. 와이너는 아침에 와싱톤 DC에서 기차를 타고 유럽으로 건너가 아테네로 부터 로마를 거쳐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그리고 인도, 중국, 일본 까지 여러 지역을 방문하다가 저녁이 되어 다시 그의 집으로 돌아가는 <철학자들과 함께 하는 상상적 인생 여행기>를 쓰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설정한 여행길에서 만난 14명의 철학자들의 삶과 생각을 수필 형식으로 쓰고 있지만 수필 보다는 무게가 있고 아주 독특하면서도 재미있게 펼치어지고 있어서 비전공자들과 평범한 보통사람들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1부는 <새벽>이다. 잠을 깨우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소크라테스, 소로, 쇼펜하우어를 만난다. 2부는 <정오>다. 활기 차게 일하는 에피쿠로스, 시몬 베이유, 간디, 공자 그리고 세이 쇼나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3부는 <황혼>이다. 인생의 해가 지는 때, 니체와 에픽테토스, 보브아르와 몽테뉴를 만나 아름답게 인생을 마무리한다. 이 책은 우리를 思考의 세계로 초청한다. 인생이란 무엇인지,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지식을 넘어서 지혜를 얻게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지 다시 묻고 생각해 보도록 이끌어 준다.

•13장 <보브아르처럼 늙어가는 법, How to Grow Old Like Beauvoir> –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는 프랑스가 낳은 대표적 여성 철학자이다. 그녀는 현대실존철학자이며 작가이기도 하지만 적극적으로 앙가즈망을 펼친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대표작으로는 <제2의 성>을 비롯하여 <초대받은 여자> <레 망다렝> <노년>과 기타 자서전들이 있다.
1) 주위를 둘러본다. 눈에 보이는 사람 중 내가 가장 나이가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요즘은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당혹스럽다.
2) 어느날 아침 보부아르는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웬 낯선 사람이 자기를쳐다보고 있지 않는가?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지? 저 여자는 나 자신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저 여지는 내가 맞다. <나는 나이면서 동시에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보부아르는 궁금해졌다.
3) 보부아르는 죽음 보다는 노년을 더 두려워했다. 그녀는 <죽음이란 절대적 無> 이기에 위로가 된다고 생각했지만 늙어가는 것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4) 처음 보부아르는 나이와 싸우면서 마지못해 억지로 나이를 먹었다. 하지만 결국은 나이와 평화로운 관계를 맺고 노화를 받아드렸다. 나이와 싸우는 것은 지는 싸움이라는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이와 싸워서 이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5) 정말 터무니없는 질문이긴 하지만 <성공적 노화>란 가능한 것일까? 불가능하다. 노화는 질병도 아니고 비정상도 아니다. 노화란 그 어떤 원인이 있어서 생겨나는 것이아니다. 인간이 늙어가는 것은 그냥 그렇게 가는 것이지 거기에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철학자란 사람들은 너무 생각도 많고 말도 많다. 그들은 때때로 꼭 상상임신에 빠진 여인들 처럼 심오한 생각에 빠져들 때가 많다. 그래서 인간의 노화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썰들을 생산해 낸다. 허지만 때로는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좋은 답이 되기도 한다.
6) 키케로는 늙어도 배우고 공부하면 만족스러운 인생이 된다고 했지만 보부아르는 <개소리>라고 했다. 누군가는 <노년이란 인생의 황금기>라고 하지만 보부아르는 콧웃음을 쳤다. 그녀는 노인이란 <걸어 다니는 송장>이 맞다고 보았다. <노인들은 아는 것이 많다>고 하지만 그녀는 꼭 그런 것도 아니라고 보았다. <젊은 세대야 말로 노인들보다 훨씬 더 많이 아는 세대다>
7) 젊은 사람이 체크무늬 바지를 입고 LP를 들고 있으면 레토르, Retro (새로운 것이라는뜻의 new와 복고라는 뜻의 retro를 합성한 단어로 현대적 감성을 지녔다는 뜻이다)라고 하지만 늙은이가 그렇게 하면 <애처롭다>고 한다.
8 ) 세상에는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가 불가능한 것이 있다.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 나이가 드는 것은 그냥 받아드리고 수용해야 할 일이지 통제 하거나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젊게 살아볼려고 애쓰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9) 늙어서는 받아드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 제일 잘 하는 것이다. 늙음과 죽음은 받아드려야 할 최고의 공부이다.
10) 다음은 보부아르가 제시한 <잘 늙어 갈 수 있는 10가지 방법>이다. (1) 모든 지난 일들은 그냥 그대로 다 받아드려라. (2) 끝까지 친구를 사귀어라. – 우정이 행복의 원천이다. (3) 타인의 생각에 신경을 쓰지 마라. 타인으로 부터 칭찬, 존경, 배려, 환대를 기대하는 자는 어리석은 인간이다. (4) 호기심을 잃지 말아라. 영화, 미술, 신문, 여행을 통해서 세상구경을 실컷해라. (5) 프로젝트를 만들어라. 수동적 소일거리가 아닌 의미있는 일을 찾아서 해 보아라. 보부아르는 20대 때 보다 70대에 더 깊이 정치적 행동에 참여했다. 그녀는 반핵운동과 반전운동을 통하여 <노인 행동주의>라는 전통을 만들어갔다. (6) 늘 하던 일을 계속하여 습관이 되게 하여라. 습관이란 꼭 나쁜 것 만은 아니다. 아름다운 습관도 있다. 습관이 나를 지배하게 해서는 않되지만 내가 습관을 지배하면서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글도 쓰도록 하여라. (7) 게으름을 피우는 것도 꼭 필요하다. 때로는 아무 것도 하지 말아라. (8) 부조리한 일도 받아드려라. 세상은 합리적이지 않다. 이치에 맞지 않는 일도 많다. 스물다섯 살일 때나 일흔다섯 살인 지금이나 세상은 똑같다. (9)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한다. 조심스럽게 한 발 물러서는 것을 나는 <건설적 물러남>이라고 부른다. 물러남은 노인의 최종적 과제이다. (10) 마지막까지 다 끝낼 수 없는 일들은 그냥 그대로 남겨두어라. 별수가 없기 때문이다.

•14장 <몽테뉴 처럼 죽는 법, How to Die Like Montaigne> – 미셸 에켐 드 몽테뉴 (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1592)는 16세기 프랑스 출신의 철학자요 정치인이다. 그가 남긴 대표작은 <엣세, Essais>이다. 프랑스어로 엣세는 <맛본다, 한번 해본다, 시도해 본다>는 말이다. 이 말에서 오늘날 우리가 널리 쓰는 문학의 장로 <엣세이, Essay>이라는 말이 나왔다. <엣세>는 철학책이 아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하여 우정, 죽음, 전쟁, 여행, 등 100여 가지가 넘는 글들을 쓰고 있는데 글의 촛점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나는 누구인가?> 몽테뉴는 죽을 때 까지 자기 자신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은 철학자였다.
1) 회유론자였던 몽테뉴의 사유 방식은 두 가지였다. 무슨 일이든 결정하고 판단하기 전에 <계속해서 망설이고 또 망설이고> <여기 저기 빙빙 돌아가는 것>이었다.
2) 확실한 믿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심이란 과정을 통과해야 만 한다.
3) 죽음은 우리 모두를 철학자로 만든다. 가장 생각 없이 사는 사람도 죽을 때가 되면 철학자가 된다.
4) 우리가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잘 죽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5) 세상 모든 지혜와 이론의 핵심과 결론은 죽음이다. 죽음이란 불편한 진실이다.
6)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죽음을 대해온 방식은 다음 둘 중 하나였다. 첫째는 무시하는 것이요, 둘째는 겁내는 것이었다. 죽음을 무시한 대표적 철학자는 에피쿠로스이고 죽음을 두려워한 대표자는 몽테뉴였다. 그런데 몽테뉴는 자기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죽기 까지의 과정을 두려워 할 뿐이라고 했다.
7) 죽음을 그냥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이 가장 잘 죽는 것이다. 죽음을 무시하거나 회피하지 말아라. 그럼 인생살이의 다른 모든 기쁨도 함께 사라져버린다.
8 ) 우리가 삶 속에서 경험하는 모든 슬픔은 우리를 무너뜨리고 마비시킬 수도 있지만 반대로 삶의 새로운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살다보면 알게 된다. 가장 이름다운 것들은 언제나 엄청난 고통으로 부터 빚어진다는 것을!
9) 인간은 절대로 절대적 진실을 알 수 없다. 우리는 잠정적이고 임시적이며 유동적인 진실을 붙잡고 그것이 고정불변의 절대적 진실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다.
10) 잘 생각해 보아라. <내가 고양이를 가지고 놀아주는가? 아니면 고양이가 나와 놀아주고 있는가? <내가 죽음을 가지고 씨름하는가? 아니면 죽음이 나를 가지고 놀고 있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머리를 감싸고 알아보겠다고 애쓰는 사람들은 사실 지금 죽음에 의해 놀림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11) 우리는 살다가 마지막에 죽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니다. 죽음은 처음 부터 우리의 일상적 삶 속에서 늘 우리와 함께 가고 있다. 마지막에 죽는 게 아니다. 날마다 죽는 것이다. 죽음이란 인생의 최종적 원수가 아니다. 죽음이란 우리 밖에 있는 적군이 아니다. 같이 놀아주어야 할 친구다.
12) 병원에는 여러 분야의 전문의사들이 있지만 죽음 전문의사 (Death Specialist)는 없다.
13) 내 장인어른은 뇌졸증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요양원으로 퇴원하기를 몇 번이나 거듭했다. 병원에서 그 어른은 마치 비행기 조종석 처럼 수많은 기계가 삑삑 소리를 내는 가운데서 수 많은 주사기를 끼고 화면에서 오르내리는 숫자를 지켜 보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마침내 기계는 크게 삐삐 소리를 내더니 모니터의 화면은 정지되었다. 그분은 그렇게 숨을 거두셨다.
14) 죽음의 해결책은 긴 수명이 아니다. 죽음 앞에서 저녁 마다 먹어야 할 약이 있다. <받아드리는 것 – 수용성>이라는 약이다. 그 약은 억지로 먹을 약이 아니라 관대하게 수용해야 할 약이다.
15) 낙엽은 어떻게 떨어져야 할지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걱정하지 마라. 때가 되면 자연이 다 알아서 떨어져 준다.
16) 좋은 죽음은 좋은 삶의 끝에 온다.
17) 고대 이집트인들은 축제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가 되면 수종하던 하인들이 해골을 들고 와서 밥상 위에 올려 놓았다 한다.(최고의 권력 자리에 오른 대통령이나, 재벌회사의 회장님이나, 인기가 절정에 오른 연예인들에게도 해골을 선물로 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18) 좋은 죽음은 짧게 아프거나 아예 아프지 않다가 죽는 것이 아니다. 천천히 아프다가 죽으면 더 좋다. 높은 곳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것 보다는 조금 낮은 곳에서 서서히 떨어지는 것이 나은 법이다. 이것이 몽테뉴의 <점진적 죽음 이론>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와이너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갑자기 높은 곳에서 추락하는 것이 낮은 곳에서 서서히 떨어지는 것 보다 훨씬 더 낫다고 주장한다. (끝) *홍길복 (2026. 6. 22)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