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잡기장

응급실 인생 (Emergency Life)
지난 해 나 보다 앞서 80대 중반을 살아가시는 한 인생의 선배를 만나 인사를 나누면서 물은 적이 있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그러자 그이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그져, 하루 건너 하루, 병원과 약국 가는 것을 일이라 생각하면서 삽니다. 아이 때 학교가는 것이나 젊었을 때 회사 출근 하는 것 처럼 늘 의사 선생님 만나고 약국 가서 약 타다 먹는 것이 일과입니다. 하루에 먹는 약이 한 열 가지는 될겁니다” 그런데 이즈음엔 나도 서서히 그 선배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
지난 달엔 깊은 밤, 새벽 1시에 000으로 전화를 걸어 구급차, Ambulance를 부르는 일 까지 해보았다. 50년을 목회하면서 예배 중에 쓰러진 성도로 인하여 두어번 교회에서 앰블란스를 불러 본 적도 있었고 90을 넘기신 우리 어머니를 위하여 구급차를 불러본 적은 있었으나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올 줄은 전혀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지금은 많이 편안해 졌지만 한 석달 전 부터 소변에서 자주 피가 섞여 나왔다. 우리 가정의사 선생님 (GP)을 찾아가 상담을 했다. 피검사를 비롯하여 여러 차례에 걸친 소변검사와 초음파 (Ultra – sound)와 CT 촬영을 했다. 그런데도 정확하게 원인을 알 수가 없다면서 결국은 나를 비뇨기과 전문의사 (Urology Specialist)에게로 보내셨다. 전문의사는 나의 모든 병력과 증상을 두루 묻고 살펴보았으나 지금으로써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면서 이렇게 말씀했다. “암이나 요도결석 같은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추측입니다만 아마도 12년전 전립선암 수술 후 전립선을 제거해 내고 7주에 걸친 방사선 치료 (Radiological Treatment)를 한 적이 있었는데 혹시 그 후유증이 아닐까 생각합니만, 그 또한 정확한 것은 방광과 요도 내시경을 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서 내시경 약속을 했다. 그러나 그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 길었다. 내가 앰블란스를 부르게 된 것은 바로 그런 와중에서였다. 저녁 무렵에 피섞인 소변을 본 후 한 밤이 되었다. 8시간이나 지나 방광에는 소변이 꽉 찼는데 견딜 수 없이 아프기만 할뿐 영 소변이 나오질 않았다. 결국은 도져히 참을수가 없어서 000에 전화를 걸고 앰블란스를 요청했다. 앰블란스맨들은 구급차에서도 여러가지 검사를 한 후 가장 가까운 콩코드병원 응급실로 데리고 갔다. 새벽녁 응급실에서는 방광에 소변줄을 끼어 소변을 밖으로 흘러나오게 하려고 하던 때였다. 그때 갑자기 억지로라도 한번 더 소변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화장실로 갔는데 아주 굵은 핏덩어리들과 함께 소변이 터져나왔다. 아주 기분이 좋아졌고 그야말로 살것 같았다. 그후 응급실에서는 몇가지 검사를 더 하더니 상태가 호전 되었다면서 또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다시 오라며 퇴원을 시켰다. 그 다음 주 나는 GP선생님을 만나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보고하고 응급실에서 준 경과 보고서를 전달해드렸다. 20년도 넘게 우리 부부의 가정의사로 우릴 돌보아 오신 기독교 신자이신 선생님은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내가 말했다. “80년도 넘게 타는 자동차가 어디 있나요? 그 동안 잘 썻지요” 그러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늘 시간되면 서비스도 잘 받으셨고 부품도 몇개는 갈아 끼웠으니 앞으로 몇년은 더 탈 수 있을 겁니다. 그냥 늙어가는 과정이고 주께로 더 가까이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셔요” 그리곤 내 손을 꼭 잡고 기도해 주셨다. 얼마전 내 또래이신 자신의 친정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신 선생님의 진솔한 말씀이 인간적으론 참 따뜻했고 신앙적으론 큰 위로가 되었다.
나는 지난 몇달의 병원 출입과 이번 응급실 경험을 통하여 몇 가지 크게 깨우친 것들이있다.
첫째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길이란 계속되는 응급 상황의 연속이라는 점이다. 세상이란 하나의 응급실이요, 인간의 삶이란 응급실 안에서 겨우 연명 치료를 받으며 목슴을 유지하는 것과 별반 다름이 없다. 사람은 살다보면 뜻하지 않고 전혀 예기치 못한 일들을 수도 없이 많이 맞다뜨리게 된다. 하루하루를 무사하게 사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다. 눈을 들어 세상 돌아가는 것과 우리 개개인들의 일상생활을 바라보자. 걸어가는 사람, 달려가는 사람, 자동차를 타거나 배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다 다른 것 처럼 보이지만 모두들 허우적 거리며, 싸우고, 넘어지고, 죽고, 죽이면서, 아귀다틈을 한다. 이런 인생의 전쟁터, 삶의 응급실에서 오늘 하루도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있다는 그것 하나만해도 기적이요, 신비요, 그래서 감사할 뿐이다. 그날도 나는 응급실에서 목숨을 잃고 시신 안치실로 이동하는 사람, 아파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양손에 수갑을 차고 경찰이 지켜 보는 가운데서 응급처치를 받는 사람에 이르기 까지 또 하나의 인간 세상을 경험했다. 이는 개인적 상황만이 아니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종교도, 문화도 그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세상사는 것이 다 응급상황이다. 폭우가 쏟아진 전라도, 경상도 땅 그 어느 곳만이 응급상황이 아니다.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만 응급실이 아니다. 백악관 부터 크레므린에 이르기 까지, 지구촌은 모두 다 응급환자들로 북세통을 이루고 있다. 인간도 사회도 모두다 응급실이요 응급환자들로 가득차 있다. 지구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무두 다 응급실에서 응급조치를 받으며 연명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번 콩코드병원 응급실에서 보낸 7-8 시간의 경험을 통하여 사람들 중에는 응급실 안에 있는 환자들과 아직 응급실 밖에 있는 환자들로 양분이 된다고 생각해 보았다. 병원 안에 있으나 병원 밖에 있으나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과 사회란 거이 모두가 다 시간을 재촉하는 응급환자들이라는 점을 새롭게 확인하게 되었다.
둘째로 깨우친 것은 인생과 역사란 사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요. 어두움의 내일이라는 점이다. 이 과학 만능의 시대, 이 지식 정보의 시대, AI가 모든 것을 알려주는 시대에 무슨 소리냐 할지도 모르겠으나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세상은 알려진 것 보다 숨겨진 것이 더 많고, 인간은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존재이다. 우리는 그냥 짐작하면서, 그럴 것이라는 개연성을 믿으면서 사는 존재이다. 정답이 없는 시대, 사실과 진실을 확인 할수 없는 포스트 모던 소사이어티 (Post –Modern Society) 속에서 우리들은 대충 어림짐작으로 “이렇게도 한번 해 보고, 저렇게도 한번 해 보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정치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의사들과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며 나 또한 그렇게 인생을 살아왔다. 물론 지금은 그 옛날, 기원전 몇 세기와는 비교 할 수도 없이 온갖 지식과 과학과 정보가 차고 넘치는 시대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인간과 세상은 아직도 아는 것 보다는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고 발견한 것 보다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이 엄청나게 더 많다. 인간의 이성과 믿음과 감성에는 한계가 있다. 의사와 과학자들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을 다 할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 대통령이라고 해서 지구촌에 평화를 가져다 줄수 있는 게 아니듯이, 의사들이라고 해서 세상의 온갖 질병을 다 고치고 모든 사람들에게 건강과 평안을 줄수는 없으며 4차원의 세계를 꿔뚫어 보는 과학자라고 해서 우주의 신비를 다 밝혀낼수는 없다.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배우고 깨우치는 것이 인생이라더니 이번에 또 다시 배웠다. 우리는 내일을 모르고 오늘을 살아간다.
셋번째 렛슨이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다. 응급실에서는 기다릴줄 알아야 한다. 응급실에도 자기 차례가 있다. 응급실이라고 해서 모두 다 즉시 응급처치를 받는 것은 아니다. 또 먼저 왔다고 해서 먼저 치료를 받는 것도 아니다. 응급실로 실려온 사람들은 조급해 한다. 그럴수 있다. 그렇지만 빨리 치료를 않해 준다고 조급해 하거나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면 않된다. 의료인들은 오랜 경험을 통하여 어떤 사람을 먼저 치료해 주어야 할찌 정해진 메뉴얼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응급환자라고 해서 다 응급한 것은 아니다. 응급한 환자에게도 등급이 있고 차례가 있다. 의사들은 응급환자들도 5단계로 나누어서 살펴보고 처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호주의 경우이기는 하지만 응급실을 찿아오는 환자 10명 중 2명, 약 20% 정도는 사실 응급실을 찿아올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글도 읽은 적이 있다. 응급환자에게도 종류가 있고 등급이 있다. 그들은 그 순서에 따라 진료한다. 또 내 차례가 되었다 할지라도 한 단계, 한 단계 순서가 있다. 한 단계를 지나면 다음 단계가 있고, 한 과제를 해결하고 나면 다음 과제로 나가게 된다. 응급실에 들어갔는데 의사들이 서두르면, 그것은 그 사람의 상태가 그 만큼 위험하다는 뜻이니 그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다. 아파도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직은 그리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는 뜻인 줄 알고 감사해야 한다. 여기에서 배우는 것이 있다. 인생살이란 기다림의 연습이요, 기다릴줄 아는 것이 인생의 훈련이라는 점이다. <누가 누가 더 잘 참고 더 오래 기다리느냐>가 인생의 승부를 결정한다. 옛 어른들이 들려주신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서두르거나 조급해 하지 말아라. 인생살이에는 다 순서가 있고 차례가 있는 법이다>
어제도 아내는 대학동기들 단톡방을 보다가 말했다. “선자 남편도 어제 응급실에 실려갔고 경애 남편은 지금 양로원에 있고 현희 남편은 작년에 하늘나라로 갔데요” 돌아보니 우리 동기들도 1년에 꼭 한두 사람씩은 하늘 나라로 이민을 떠난다. 그럴 때가 되었다. 인생살이란 게 뭐 별거있겠나? 앞서 가신 분들이 이미 다 경험해 본 일들을 나 역시 하나하나 뒤따라 가는 것이다. 때로는 느긋하게 또 때로는 조급하게, 때로는 알면서도 또 때로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면서, 어떤 때는 기다리면서 또 어떤 경우엔 아주 조급해 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난 나에게 주어진 오늘을 진심으로 감사한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참으로 사랑한다! (*) 홍길복 (2025. 8. 4)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