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9년 4월 29일, 백년 전쟁의 영웅 잔 다르크 (Jeanne d’Arc, 1412 ~ 1431)가 잉글랜드를 물리치고 오를레앙 시 회복
백년 전쟁은 1337년 프랑스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잉글랜드 왕국과 프랑스 왕국 간에 분쟁이 일어난 것을 계기로 발발하였다.
1429년 초에는 프랑스 북부의 거의 모든 지역과 남서부의 일부 지역이 모두 잉글랜드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다. 부르고뉴파가 랭스를, 잉글랜드는 파리를 거점으로 통치하였는데, 랭스는 전통적으로 프랑스 국왕의 대관식이 열리는 장소였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는데, 왜냐하면 아직 어느 쪽 프랑스 왕위 주장자도 공식적으로 프랑스 국왕으로서 대관식을 거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잉글랜드는 프랑스 왕실을 지지하는 얼마 안 남은 도시 가운데 한 곳이자 루아르 강을 따라 있는 전략적 요충지인 오를레앙을 공성전으로 공략하였는데, 오를레앙은 잉글랜드가 프랑스의 남은 지역을 공략하는데 있어서 마지막으로 거쳐야 하는 장애물이었다.
어떤 현대 역사학자는 당시 상황을 가리켜 “프랑스 왕국 전체의 운명이 오를레앙에 달려 있었다.”라고 표현하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오를레앙이 잉글랜드의 파죽지세 같은 공성전을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프랑스 북동부 지방 동레미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난 잔 다르크 (프: Jeanne d’Arc, 1412년 1월 6일 ~ 1431년 5월 30일)는 ‘프랑스를 구하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백년 전쟁 (1337 ~ 1453년)에 참전하여 프랑스군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왕세자였던 샤를 7세가 프랑스의 국왕으로서 대관식을 치를 수 있게 도와주었다.
1429년 4월 29일 잔 다르크 (Jeanne d’Arc, 1412 ~ 1431)는 잉글랜드군의 포위를 받은 오를레앙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오를레앙을 지키는 프랑스군 지휘관이었던 장 도를레앙은 그녀를 전투회의에서 배제시키고 적군과 교전할 때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 등 무시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잔 다르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회의 및 전투에 참여하려고 노력하였다.

사실 잔 다르크의 실제 군사적 지도력이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해서는 역사학계 내에서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전통적인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잔 다르크가 순전히 앞에서 깃발을 휘두르며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아주는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라는 의견이 많다.
이러한 견해는 그녀가 마녀재판을 받을 당시 재판관에게 한 진술을 토대로 한 것이다. 당시 재판장에서 잔 다르크는 자신은 칼보다는 군기를 더 선호한다고 증언하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잔 다르크가 군 지휘관으로서 통솔력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수준급의 전략가로 보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례로 스티븐 W. 리키는 잔 다르크가 “전쟁의 흐름을 뒤바꾼 놀라운 일련의 승리들 속에서 군대를 계속해서 이끌었다.”라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잔 다르크가 백년 전쟁에서 프랑스에게 불리하던 전세를 뒤엎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