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2년 2월 22일, 이탈리아의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 (Amerigo Vespucci, 1454 ~ 1512) 별세
아메리고 베스푸치 (Amerigo Vespucci, 1454년 3월 9일 ~ 1512년 2월 22일)는 이탈리아의 탐험가이다.
그는 1454년 3월 9일 피렌체 태생으로, 1494년 ~

– 아메리고 베스푸치 (Amerigo Vespucci)
.출생: 1454년 3월 9일, 피렌체 공화국 (현재 이탈리아) 피렌체
.사망: 1512년 2월 22일 (57세), 카스티야 코로나 (현재 스페인) 세비야
.성별: 남성
.국적: 이탈리아 피렌체
.별칭: Américo Vespucio (스페인어), Americus Vespucius (라틴어) Alberigo Vespucci
.경력: 신대륙 발견
.직업: 상인, 탐험가, 지도 제작자
아메리고 베스푸치 (Amerigo Vespucci, 1454 ~ 1512)는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탐험가이자 항해가로, 오늘날 ‘아메리카 (America)’ 대륙 이름의 유래가 된 인물이다.
1496년 메디치 가문의 사무원으로 에스파냐에 파견되었다. 거기서 세비야의 주오나토 베라르디 상사에 들어갔는데, 이 상사는 콜럼버스가 1차 · 2차 신대륙 항해를 준비한 곳이다.
1497년 첫 탐험에 나섰다. 1499년 신대륙의 북위 15°지점에 도착하고, 다시 브라질에 도착하였다 한다.
아메리카라는 이름은 그의 이름 ‘아메리고’에서 딴 것이라 한다.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1512년 2월 22일 세비야에서 말라리아로 사망하였다.

○ 생애 및 활동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공증인 나스타조의 아들로 태어났고, 1479년 이탈리아의 유명한 가문 메디치가와 관계를 맺으면서 메디치가의 대변인이 됐다.
1491년 메디치 가문은 베스푸치를 세비야에 파견했는데 이때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콜럼버스의 첫 번째 항해의 귀환식에 참석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콜럼버스와 상당한 인연을 쌓았다고 알려졌다.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1497년부터 1504년까지 직접 항해를 했으며, 1508년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수석항해사가 됐다.
이 과정에서 베스푸치는 선장들이 반드시 제출하게 되어 있는 각종 자료들의 해석과 편집을 하면서 새로 발견된 지역에 대한 공식적인 지도제작과 그곳에 대한 항해로를 작성했다.
이 과정 속에서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자신이 탐사한 대륙이 아시아가 아니라 신대륙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당시 유럽은 아시아로부터 후추를 수입해서 막대한 부를 쌓았는데 아시아로 가기 위해서는 아프리카를 돌아 희망봉을 거쳐 인도로 나아가는 항로가 있었다.
하지만 포르투칼은 지구는 둥그니깐 서쪽으로 계속 나아가면 아시아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항해해서 땅을 발견했는데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그곳이 인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학자들이 계산하기로는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계속 항해를 해서 도달한 곳이 인도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 있는 땅 (대략 절반 정도의 거리)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콜럼버스가 인도를 발견했다는 말을 학자들이 신뢰하지 않기 시작했다. 다만 콜럼버스가 카리브해에서 약탈한 보물 등에 귀족들이 정신이 팔리면서 콜럼버스를 존중했을 뿐이다.
콜럼버스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계속 항해를 했고, 약탈을 했지만 죽을 때까지 그곳을 인도라고 생각했다.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1501년 5월 13일 리스본을 출발하는 2번째 항해를 했는데 카보베르데 제도에서 잠시 머문 후 남서쪽으로 계속 항해를 해서 카보데산 토아고스틴오의 브라질 해안에 도달했다.
그러면서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자신이 항해한 땅이 ‘아시아’가 아닌 ‘신대륙’이라는 확신을 하게 된다.

콜럼버스가 죽을 때까지 아시아로 믿었던 그 땅이 사실은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인의 관점에서는 신대륙인 셈이다.
그것이 유럽의 역사를 바꾸게 만들었다. 유럽인들은 그때부터 신대륙으로 진출을 하게 됐고, 그것이 오늘날 미국이나 브라질 등의 국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또한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발견한 땅이라는 뜻으로 ‘아메리카’라고 부르게 된 것이고, USA (The United States Of America)가 된 것이다.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신대륙을 발견함으로써 아시아-아프리카-유럽-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어지는 항해 루트가 완성됐고, 그것이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아시아에서 후추를 유럽으로 옮기고,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아메리카 대륙으로 팔아서 흑인 노예들에게 사탕수수 재배를 한 후 설탕을 만들어 유럽에 팔아넘기는 방식으로 유럽인들은 막대한 부를 쌓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본이 쌓이게 되면서 결국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된 것이다. 만약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유럽인들의 산업혁명은 늦어졌을 것이고, 거꾸로 동양인들의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신대륙 발견 이전의 유럽의 부와 아시아의 부를 비교하면 아시아의 부가 더 막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함으로써 그에 따라 부의 이동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이뤄지게 됐고, 그것이 유럽인들의 산업혁명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 사람들이 콜럼버스 보다는 아메리고 베스푸치를 더욱 존중하는 이유는 콜럼버스는 약탈자의 개념이 강했지만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를 바꾼 인물이기 때문이다.

- 주요 업적 및 특징
‘신대륙’ 개념의 정립: 당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자신이 발견한 땅을 인도의 일부라고 믿었으나, 베스푸치는 항해를 통해 이 지역이 아시아와는 별개의 새로운 대륙 (Mundus Novus)임을 처음으로 인식하고 주장했다.
지명 ‘아메리카’의 유래: 1507년 독일의 지도 제작자 마르틴 발트제뮐러가 베스푸치의 탐험 기록을 바탕으로 세계지도를 제작하면서, 그의 이름 ‘아메리고’를 여성형 라틴어로 바꾼 ‘아메리카’를 대륙 명칭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주요 탐험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후원을 받아 여러 차례 항해했으며, 브라질 해안 탐사, 아마존강 입구 발견, 리우데자네이루 및 라플라타강 탐색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천문 항해술 발전: 남반구 항해 중 북극성을 볼 수 없게 되자 ‘남십자성’ 등 남반구의 별자리를 관측해 항해에 이용했으며, 달과 행성의 합을 이용해 경도를 측정하는 방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수석 항해사 임명: 1508년 스페인 국왕으로부터 ‘수석 항해사 (Piloto Mayor)’로 임명되어 항해사 교육과 공식 지도 제작을 총괄하며 여생을 보냈다.
- 기타
공항 및 함선: 그의 고향인 피렌체에는 그의 이름을 딴 ‘아메리고 베스푸치 공항’이 있으며, 이탈리아 해군의 유서 깊은 범선 훈련함 명칭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 저작
아메리고 베스푸치 (Amerigo Vespucci)는 신대륙이 아시아의 끝이 아닌 새로운 대륙임을 주장한 탐험가로, 그의 주요 저작은 탐험 내용을 담은 편지들이다.
핵심 저작으로는 “신세계” (Mundus Novus) (1503/1504)와 “제4항해기” (Lettera di Amerigo Vespucci delle isole nuovamente trovate in quatro) (1504)가 있으며, 이는 유럽에 신대륙의 존재를 알리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 편지들은 당시 큰 인기를 끌며 유럽 전역에 퍼졌고, 1507년 발트제뮐러 (Waldseemüller)의 세계지도에 그의 이름 ‘아메리고’를 따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명명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 주요 편지 및 저작:
Mundus Novus (신세계): 1503년 또는 1504년경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보낸 편지를 바탕으로 출판되어, 베스푸치가 발견한 땅이 아시아가 아닌 새로운 대륙임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저작물이다.
Lettera di Amerigo Vespucci… (제4항해기): 1504년 소데리니 (Piero Soderini)에게 보낸 편지 형태로, 그의 항해와 발견 내용을 기술한 것이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