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8년 7월 3일, 명나라의 약물학자•의사 이시진 / 리스전 (李時珍, 1518 ~ 1593) 출생
리스전 / 이시진 (李時珍, 1518년 7월 3일 ~ 1593년)은 명나라 정덕 13년인 1518년 7월 3일에 태어나서 명나라 만력 21년인 1593년에 향년 76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명나라의 의사이다.

이시진의 자는 동벽 (東璧)이며 호는 빈호 (瀕湖)로 호광 (湖廣) 기주 (蘄州) 사람이다.
이시진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의학자 (전문은 본초학)이자 박물학자였다.
본초학을 집대성한 본초강목을 지었고 후대의 동양의학과 박물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35세에 약물의 기준서 (基準書)를 집대성하는 일에 착수하여 생전에 탈고하였지만, 간행된 것은 그가 죽은 후인 1596년이었다.
이것이 유명한 《본초강목 (本草綱目)》(전52권)이며, 도판 2권에 1871종의 약품에 대하여 명칭의 유래와 형태· 수치 (修治)· 약효· 약리 (藥理)를 해설하고 처방을 부록으로 달아놓았다.
그는 훗날 만력제 치세 지절에 명나라 후베이 황강 태수 직책을 지낸 전력이 있다.
재위하는 동안 온갖 향락을 다 누린 명 세종의 제일 큰 근심은 죽으면 이런 부귀향락을 더 이상 누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늙어도 죽지 않는 불로장생 약을 구하려고 애썼으며, 전국 각지의 명의 (名醫)들을 조정에 천거하게 했다.
그때 초왕부(楚王府)의 의원이었던 이시진 (李時珍)도 천거를 받아 조정의 태의 (太醫)가 되었다.

○ 가족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의사였다.
이시진의 부친 이름은 이언문으로 자는 나욱이며 호는 월지이다.
○ 저서
– 본초강목 : 《본초강목》은 17세기부터 잇따라 아세아주 및 구라파주의 적잖은 나라에 전해져 관련 있는 의사와 과학자들의 중시를 받았으며 평가가 매우 높았다.
그 가운데 적잖은 부분이 이미 영어 · 프랑스어 · 독일어 · 라틴어 · 일본어 등 몇 가지 외국 문자로 번역되었다.
일본은 또한 일본어 완역본 (完譯本)을 가지고 있다.
– 빈호맥학
– 기경팔맥고 : 침구학 (鍼灸學)과 진단학 (診斷學)에도 어느 정도 이바지하였다
-《오장도론 (五臟圖論)》
-《명문고 (命門考)》 등도 지었는데 이미 없어졌다.

○ 본초강목 (本草綱目) 개관
《본초강목》 (本草綱目)은 중국 명나라의 이시진이 지은 약초학의 연구서이다. 중국 본초학 사상 가장 분량이 방대하고, 내용이 충실한 약학 저작이라고 평가 받는다.
– 개요
본초강목은 명나라 이시진 (1518년 – 1593년)이 1578년 (만력 6년)에 완성하여, 1596년 (만력 23년) 남경에서 출판되었다. 흙, 옥, 돌, 초목, 금수, 충어 등 1892종을 7항목에 걸쳐 해설하였다.
본초강목을 편찬하기 위하여 이시진은 약 27년의 세월을 걸쳐 작성하였으며, 세 번 다시 수정하였고, 800여 종의 문헌을 참고했다. 또한 현지 조사와 표본 채집 등도 병행하는 등 자신의 심혈을 기울인 역작이다.
총 52권을 수록하였고, 약의 종류는 1892종 (374종은 새로 받아들인 것), 1109장의 도해와 11,096종의 처방이 들어 있으며, 이 중 8,000여개는 이시진 자신이 수집·확정하였다. 약마다 이름을 주해하였으며, 명칭을 고증하고, 산지를 수록하고, 그 때까지 있어온 문헌의 오류를 바로 잡았다. 약의 제조법과 민간에 떠도는 처방도 수집하여 책에 실었다.

– 내용
52권 37책. 필사본. 이시진은 30여 년의 노력을 거치면서 고서 800여 종을 참열 (參閱:두루 읽어 참고함)하고, 명의와 숙유 (宿儒)를 방문하여 민간의 경험방을 구했고, 심산과 광야를 누비면서 약물을 관찰, 수집하였다. 그리하여 공전불후 (空前不朽)의 『본초강목』이 저술된 것이다.
제1 · 2권은 서례 (序例)로 칠방 (七方) · 십제 (十劑) · 기미 (氣味) · 음양 (陰陽) · 승강부침 (昇降浮沈) · 황부표본약식 (肓腑標本藥式) 및 상수 (相須) · 상사 (相使) · 상외 (相畏) · 상오 (相惡) · 상반제약 (相反諸藥) · 용약금기 (用藥禁忌) · 제가용약범례 (諸家用藥凡例) 등을 포괄하여 총론의 성격을 띠고 있다.
제3 · 4권은 백병주치약으로, 각과 100여 종 질병의 상용약물을 열거하여 임상의들의 선택을 돕고 있다.
제5∼52권은 약품 각론으로, 수 (水) · 화 (火) · 토 (土) · 금석 (金石) · 초 (草) · 곡 (穀) · 채 (菜) · 과 (果) · 목 (木) · 기복 (器服) · 충 (蟲) · 인 (鱗) · 개 (介) · 금 (禽) · 수 (獸) 및 인 (人)의 차례로 16부 60류로 모두 1,892종의 약물을 싣고 있다. 약물의 하면에는 또 교정 (校正) · 석명 (釋明) · 집해 (集解) · 정오 (正誤) · 수치 (修治) · 기미 · 주치 (主治) · 발명 (發明) · 부록 (附錄) · 부방 (附方) 등으로 나누어서 분별, 서술하고 있다.
그 가운데 집해 · 기미 · 주치 · 발명은 모두 역대 명가의 설을 인용하고 난 뒤, 자신이 다시 보충식으로 평론을 가했다. 그리고 부방은 모두 1만 1096수에 달하며, 그 중의 몇몇은 실제 치험례(治驗例)가 붙어 있다. 이 밖에 책의 앞부분에 총목 1권, 도보(圖譜) 3권이 덧붙어 있다.
이 책의 최대 공헌은 16세기 이전의 이른바 본초학에 대해서 일차적으로 비교적 완전한 총결을 한 것이다.
첫째 조금이라도 불합리한 전설은 비판을 하였다.
둘째 금 · 원(金元) 이래로 발전한 여러 약리학설을 흡수하였고, 아울러 허다한 약물의 주치항 밑에 단순한 주치증후를 기록하고, 다시 약물의 작용을 설명하여 변증론치(變證論治:병의 증세를 분별하여 치료함)에 편리하게 하였다.
셋째 새로 발견된 유효한 약물을 기재하고 긍정하였으며,
넷째 많은 과거의 의가들이 주장한 본초에 대한 이론과 구체적인 약물운용에 대한 실제 체험을 보존, 소개하여 후학들이 참고하고 선택하는 데 편리하게 하였고, 또한 어떤 식물에 대한 묘사는 매우 상세하고도 정확하여 약물의 감별과 식물학의 연구에 있어서도 훌륭한 자료이다.
– 의의와 평가
이런 내용과 배경을 가진 『본초강목』이 우리 나라에 전해진 것은 조선 선조 이후일 것으로 추측되나, 『본초강목』이 우리 나라의 본초학에 미친 영향은 크다고 할 수는 없다. 『동의보감』에는 『본초강목』을 참조한 흔적이 전혀 없으며, 우리 나라에서는 계속 『증류본초 (證類本草)』를 이용해 왔다.
그러나 이 책으로 인해 약물 및 본초학에 관한 지식이 많이 확충되었을 것임은 미루어 알 수 있다. 『본초강목』의 영향을 받은 책은 『본초정화 (本草精華)』 · 『광제비급 (廣濟祕笈)』 · 『일관강목 (一貫綱目)』 · 『임원경제지 (林園經濟志)』 · 『의종손익 (醫宗損益)』 · 『약성가 (藥性歌)』 · 『부방편람 (附方便覽)』 등이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장서각도서에 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